한국 탈핵 - 대한민국 모든 시민들을 위한 탈핵 교과서
김익중 지음 / 한티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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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에너지 부족으로 옥수수를 이용하여 천연에너지를 만들면 어떨까 라는 담론이 있었다. 자연에서 나오는 식물을 이용하여 오염물질이 아닌 천연연료라면 괜찮은 방법론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거대한 모순이 있었다. 옥수수를 키우려면 기본적으로 넓은 부지가 필요하고, 땅이 좁은 나라에서 불가능하다. 더 문제는 옥수수가 많이 수확되어야 하나, 보통 옥수수가 병충해나 기상이변에 모두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옥수수의 수확을 늘리기 위한 GMO 즉 생물유전자 변이된 종자를 사용하자는 것이다. 유전자가 변이된 식물은 단순히 작물 스스로가 아니라 주변 토양에 영향을 주고, 토양 내 미생물에서 토양생태계, 그리고 지하수까지 영향을 준다.

 

농지가 있는 부지는 항상 물을 대어주어야 하므로, 대부분 소하천 내지 개울가 근처에 있다. 하천 규모가 클 경우 수해로 인한 피해가 있을 수 있기에 배수문제와 급수문제를 고려하기 때문이다. 지하수의 레벨은 근처 하천에도 영향을 준다. GMO작물은 생태계에 큰 영향을 주고, 게다가 잘 사라지지 않는다. 옥수수를 이용한 연료는 무리수가 강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옥수수를 재배하기 위해선 노동력이 필요하다. 최근 노동력은 인간의 노동력을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로 재배한다. 기계를 사용하면 연료가 소모되고, 장비가 많고 가동시간이 길수록 연료소비는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면 에너지를 어떤 대안을 내세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어려운 숙제이고, 난해한 질문이다. 20세기 후반으로 오자 한국에서 이 문제는 화두가 되었다. 산업화시대 검은 하늘과 더러운 하천은 산업화의 상징이다. 하지만 환경오염으로 국민들은 병이 들고, 환경법의 시초인 공해방지법이 제정된 것이다. 산업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물류운송을 위한 운송수단인 자동차와 기차, 선박이기도 하나, 그보다 상품생산에 필요한 에너지 전기였다. 전기를 생산하는 방법은 댐을 이용한 수력이 있지만, 대부분 석탄과 석유를 연소하는 화력발전이었다. 화력발전의 문제는 대기오염물질을 발생시키고, 대기 중 비산먼지, , 질산 및 황산 산화물이 부유하고, 비가 오면 산성비가 되어 지면에 내린다.

 

산성비는 호수와 토양에 유입되면 수생태계 및 토양생태계의 pH(수소이온농도)를 저하시켜 생물에게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한다.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화력발전의 대기오염저감시설을 설치도 한계가 있고, 에너지 수급을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여기서 1980년대 핵발전소 설립이 추진되고, 지금 21세기 한국에서 골치가 아픈 월성, 고리 발전소의 사연은 국가적 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한국탈핵>을 읽으면서 이 책의 발간이 조금 더 늦었다면 좋겠다고 여겼다.

 

책에서 경주의 지반이 매우 약하고, 지반이 약한 곳에는 지하수 유입과 빗물의 침투가 심하여 토목구조물의 안정성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경주에도 핵발전소가 위치한 것도 있지만, 최근 1년간 경주에서 일어난 지진은 핵발전소 안전에 큰 경각성을 주었다. 2010년대 올라오면서 세계적으로 가장 큰 재난은 일본 후쿠시마 발전소의 폭발이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지진과 해일이 많이 일어나는 나라이며, 지진이 일어나면 화산폭발이나 쓰나미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지진 규모가 강진 규모에 이르면 아무리 견고한 구조물도 문제가 발생되고, 때에 따라서 붕괴 내지 파손이 발생된다.

 

지진이 중간 정도여도 집이 허물어지고, 건물은 파손된다. 일본 관동대지진 시기 많은 주택이 무너지고 화재가 일어난다. 보통 지진에도 화재가 위험하나, 핵발전소 인근은 더욱 위험하다. 지진의 1차적 사고는 바로 지각변동에 의한 구조물의 파손이나. 2차적으로 두려운 것은 지하에 매설된 가스, 수도, 전기의 손상이다. 일정한 유체유량을 지닌 이런 설비들은 어디서 중재하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뿜어 나온다. 전기에 의한 스파크에서 가스가 포진되어 있다면 화재사고로 이어진다. 주유소나 가스충전소의 위험도 그러하나, 더 심각한 곳은 원자력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만드는 핵발전소이다.

 

후쿠시마 발전소에 대한 교훈은 핵폭발이 주는 위험을 알려주고, 20세기 최악의 핵발전소 사고인 체르노빌보다 심각했다. 일본의 후쿠시마 인근에 위치한 바다는 방사능으로 오염되고, 하다못해 주변에 위치한 지역도 방사능이 넘쳐나고 있다. 일본 수도 동경에 방사능 수치가 일반적인 지역과 비교하여 심각한 것을 알 수 있다. 핵발전소가 위치한 곳은 대부분 중앙도심지보다 지역에 위치한 농촌 내지 어촌이다. 냉각수를 구하기 위해 바닷물을 이용하는 점에서 해안가에 더 많은 핵발전소가 있다.

 

국내 핵발전소는 바다를 끼고 있지만, 핵발전소 인근지역은 어촌만이 아니라 내륙으로 들어가면 농촌이 나온다. 그 말은 무엇이냐? 핵발전소가 문제가 생기면 그 지역만이 아니라 주변지역에 방사능이 퍼져가고, 시골지역이 인구밀도가 적다고 해서 무시할 사안이 아니란 점이다. 한국의 NIMBY 현상에서 가장 한심한 것은 중앙도심지가 아닌 다른 지역에 위험한 시설이 설치되어도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심각한 문제는 사고에 의한 피해지역 설정만 아니라 식량의 문제이다.

 

자신과 멀리 있는 곳에 혐오시설이 생기면 당장 문제는 없는 것처럼 보이나, 대부분 핵발전소가 농어촌이 위치함 해안가이란 점이고, 그곳에 나온 농수산품이 우리 밥상으로 올라간다는 점이다. <한국탈핵>에서 일본 후쿠시마 발전소 사고에 따른 일본 수산물 수입문제를 거론한 것도 있지만 국내 핵발전소에서 문제가 생기면 우리도 그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더 상기할 필요가 있었다. 최근 부산 기장에 사는 친구에게 기장 고리발전소 주변에 사는 어민들에게 핵가스 중독이 있다고 들었다. 발전소에서 나오는 수증기에 핵이 들어있고, 발전소 주변 지역과 해역에 분포하여 어민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반해 사무실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기장 해수담수화로 방사능 문제를 이야기했지만, 해수를 수증기로 만들어 물로 사용하는 것보다, 기장앞바다에서 잡은 물고기의 방사능오염치가 더 높은 게 아니냐는 말이다. 환경학적으로 생물농축에 대한 분석에서 상위포식계층에 갈수록 독성물질의 포함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독성물질이 오염된 멸치 100마리보단 농어 1마리가 더 위험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과연 고리 주변의 어민이 위험한가? 라는 토론은 그런 식으로 어물쩔하게 넘어갔다.

 

이래저래 들으면 무서운 말이나, 적어도 <한국탈핵>에서 나온 자료를 보면, 한국수력원자력공단에서 감춘 내용을 보면 사무실에서 나온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방사능에 노출되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암이다. 세포 내지 유전자 변이는 정상세포를 비정상세포로 만들고, 비정상세포가 증식하면 암으로 변이되어 각종 증세로 인명을 잃게 한다. 책에서 방사능으로 인한 암 발생 확률을 보니 핵발전소 인근 주민에게 높았다. 정부와 공단이 가해자지만, 한편으로 조사관이니, 정부가 어떤 세력이냐에 따라 핵발전소에 대한 정보와 안전대책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핵피아란 단어가 있다. 핵발전소와 관계되어 이권을 지닌 단체나 조직, 세력을 두고 한 말이다. 핵발전소는 핵발전 내지 원자력, 방사능 같은 위험물질을 다루고 있고, 게다가 이런 위험한 성분을 다루는 기술이나 연구단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일반사람이 어떻게 핵발전을 다루고, 그 원리를 이해하는가? 제한적 정보와 제한적 접근이므로 대규모 자본과 핵발전 이론을 아는 일부 세력만 잡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아니면 해외에 있는 연구자와 기업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핵발전소만 아니라 공항이나 항만 같은 국가시설은 보안이 필요한 시설이다. 일반 국민에게 공개되지 않으니, 핵발전소와 관련된 카르텔의 입장에 좌우되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대학교 전공으로 환경공학을 수학했는데, 핵발전에 대한 환경공학 전공에서는 국내 에너지 40% 정도이고, 대기오염을 만들지 않은 청정에너지기도 하나, 체르노빌 원전사고 같은 문제점이 있다고 기술했다. 다른 영역에서 대기오염과 관련된 서적에서 미국지하철 이야기가 나왔다. 미국 사망자 중에 수천명이 폐질환으로 사망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지하철 내 라돈가스가 폐에 침투하기 때문이라 했다. 라돈은 방사능 물질이다.

 

라돈이 아닌 세슘이나 스트론튬 등 물질이 나온다. 핵발전이나 핵폭발에서 발생되는 방사능물질은 200가지가 넘는다고 하니, 매우 두려운 재앙이다. 문제는 핵발전소가 세계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나, 한국은 아직도 계속 늘리려 하고, 30년 제한년도를 넘기고 계속 연장하려 하는 점이다. 후쿠시마발전소의 폭발이 지진문제도 있지만, 사용연한이 계속 넘긴 점도 있다. 결국 핵발전소가 많이 설치되고, 그 사용연한이 늘어갈수록 핵발전소 사고확률은 증가하고, 그에 따른 피해는 심해지는 것이다.

 

후쿠시마발전소 사고 시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했으나, 없는 것은 아니다. 미미하지만 비가 온 날과 그렇지 않은 날, 계절에 따라 방사능 수치가 달랐던 것이다. 한국풍향기상에서 대부분 서에서 동으로 간다. 중국의 황사가 계속 오는 것도 이런 연유이다. 하지만 동측에서 서측으로 오지 말란 법도 없다. 대기기상은 일정하지 않다. 계절과 태풍, 기온 등 다양한 인자에 따라 공기의 순환이 바뀌기 때문이다. 자연 중에도 방사능이 존재하나, 사실 우리는 그 이상의 방사능을 일상에서 접한다. 매년 내지 2년마다 건강검진을 받을 때 흉부 X-선이나, CT촬영, 조영술 촬영은 많은 방사능을 피폭하게 한다.

 

방사능은 피부로 닿는 것보다 신체 내에서 작용하는 것이 위험하다. 단순히 어느 제품에 방사능이 관리수치 이하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방사능 피복수치의 총량단위의 검토가 필요하다. 1일 식단이 600g이라 하나, 사실 물과 음료까지 생각하면 3~6까지 이른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문제에 대한 연구 기초자료도 없다. 원자력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원자력의 노출도가 높을수록 암에 걸릴 확률도 높다. 특히 어린아이와 여성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임신중인 여성에게 장애를 가진 태아가 나오거나 유산될 확률이 높다. 여성은 특히나 갑상선암이 위협적인데, 호르몬 작용과 관련하여 유전자 변이의 문제가 생사의 여부까지 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에 대한 환상과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계속 물고 늘어지는 것은 핵발전소 건설과 운영이 일부 특수집단의 이해관계이라면 우리는 이에 대한 다른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최근 태양열발전이 두각 되고 있다. 태양열발전을 하면 많은 토지를 소모한 것은 분명하나, 핵발전소 사고처리에 들어가는 금액이나 혹은 핵방사능 폐기물처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핵폐기물을 처리하려면 고준위 처리해야 하나, 한국의 지역이 넓은 것도 아니고, 최근 지진현상을 봐도 지질학적으로 안정하지 못하다. 지하수처리도 쉽지 않다. 단지 쉬운 길만 선택하면 어려운 뒤처리가 남은 것이다.

 

태양열발전이 되면 각 가정이나 주변 생활에 보급되어야 하기에 보편적인 시설이 된다. 그러면 일부 특정계층에게 이익이 가는 게 아니라 공공성을 띄게 된다. 산업화규모에서 어떤 특정계층에게 시장이 열린 게 아니라 수많은 산업체를 요구한다. 전기도 가정에서 생산하게 되므로 한국수력원자력공단의 전기에 의존하지 않는다. 에너지권력이 분산되면 분명 누군가는 손해 본다는 심리가 작용한다. 책에서도 좋은 사례를 보여주었지만, 태양열 발전을 하려면 강도와 재질을 고려하여 설치하면 충분하다. 고속도로 방음벽 안쪽은 몰라도 외부는 문제가 없고, 건물 옥상이나 창문 역시 가능하다.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서 많은 연료가 소모되고, 이에 따른 열과 대기오염물질 발생은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최근 전기자동차의 보급에서 자동차 연료로 들어가는 전기충전소의 보급에서도 문제가 있다. 전기는 무공해지만,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은 공해가 발생된다. 사람들은 다들 환경이 소중하다 말은 하지만, 자신이 사는 집주변에 맑은 공기와 깨끗한 생수만 즐기면 그만이다. 더 멀리 있는 지역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핵발전소에 발생되는 전기를 송전탑으로 전달하려면 많은 건설비와 관리비가 필요하다.

 

대도시 인근에 핵발전소가 위치하면 전기를 안전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지만, 자신이 사는 생활지에 거부하는 심리에서 이중적 잣대가 드러난다. 이 책을 보면서 예전에 핵발전소 인근에 사는 주민이 후쿠시마발전소의 사고가 터지기 전에 방문했다고 한다. 일본의 핵발전소에서 지역주민에게 지원하는 예산이 한국의 10배 정도라는 말을 듣고 한국 주민들이 부러워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부러울 게 없을 것 같다. 부산 기장군 장안에 위치한 고리에 핵발전소가 있기에 기장주민은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러나 사고가 나면 가장 먼저 인명사고가 일어난다.

 

핵발전소 건설이 한국에너지정책에 당장 이득은 볼 수 있겠지만, 장기적인 환경안전에서는 치명적인 독이다. 안전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사고는 자신의 의지보다는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토대에서 발생된다. 사람들이 심하게 착각하는 점은 핵발전소가 주변에 있어도 피해가 당장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방사능 역시 생물농축에 따라 수십 년 뒤에 발현되고, 그것은 자신들의 후손에게 일어나는 점이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피폭 같은 사고뿐만 아니라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 투하된 핵폭탄의 피해가 3대까지 계속 이어진다는 점이다. 핵방사능의 피폭만 아니라 베트남전쟁 당시 고엽제 후유증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으며, 하다못해 그들의 자손까지 건강에 큰 문제를 주었다.

 

핵발전소에 대한 인식을 고려해야 하는 점은 오늘날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위해서이다. 우리의 삶을 위해 폐기물들을 마구 남발하면서 그 책임을 후대에게 돌리고 모른 척하는 것은 얼마나 비겁한 일인가? 또한 우리가 앞으로 건강하게 살아가야 한다. 암이란 질병은 참으로 무섭다. 암은 외부에 침투하는 질병이 아니라 신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암을 발견하기도 어렵고, 발견해도 치료가 어려우며, 치료 후에도 재발 내지 전이되어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깊은 고통과 상처를 안겨준다. 핵발전소를 모두 없애는 것도 아니고, 점차적으로 감소시키며,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기술을 발전 및 보급이 중요하다. 환경을 위해서라도 안전을 위해서라도 아니라면 가족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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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17-08-15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인들에게 강추강추 또 강추하는 책 중 한권이네요^^

만화애니비평 2017-08-16 09:02   좋아요 0 | URL
조금 더 보완하여 재발간하면 좋겠다는 생각인 책입니다
 
오리 이원익 그는 누구인가 - 개정판 오리 이원익 그는 누구인가
함규진.이병서 지음 / 녹우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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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역사에서 가장 위기의 순간은 언제인가? 연산군의 폭정, 조선의 몰락도 있겠지만, 조선의 몰락에서 그 기원은 임진왜란으로 볼 수 있다. 조선의 후기로 넘어가는 과정은 임진왜란과 그리고 뒤에 일어날 병자호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임진왜란 이후에는 정치적 갈등이 어느 정도 이상으로 심각하지 않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넘어가면서 붕당정치의 최악의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물론 그 이전의 붕당의 폐단은 있었지만, 그 전초는 광해군 시대를 중심으로 선조부터가 문제일 것이다.

 

선조가 임금이 된 계기는 명종이 승하할 때, 그의 후사가 없었고, 명종의 아내 인현황후는 그다지 힘이 없었다. 사실 인현황후보다 명종의 어머니 대비마마인 문정황후가 더 큰 문제를 일으켰다. 조선의 왕권을 위해서 신권을 견제하고, 신권을 동맹을 삼기 위해 양반 사대부 집안과 혼인하나, 이것이 문제이다. 사실 여자들은 조선시대에 정치에 관여해서 안 된다. 지금도 여자가 정치하면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여자가 정치를 하면 안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 이유는 왕비가 정치적인 입지가 너무 커지면 인척관계에 있는 척신들이 지나친 횡포를 일삼았기 때문이다. 조선 마지막 임금 고종황제께서 정치적 입지가 없던 이유는 아버지 흥선대원군과 아내 명성황후의 관계이다. 명성황후 민비가 일본 낭인에게 살해되었고, 친일파가 을사늑약으로 조선을 팔아먹었기에 명성황후의 인상은 긍정적이나, 사료를 조금 더 들어가보면 아니다. 명성황후가 지나친 정치개입은 민씨 일가에게 큰 부와 권력을 주었고, 부정부패가 심했을 뿐만 아니라 그 왕비 본인도 흥청망청 재물을 소모하는 부류였기 때문이다.

 

옛날에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은 조선시대의 정치적 구조에서 드러나는 현실이었다. 지금 21세기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이니 그런 걱정은 없다. 지금은 어리석은 남자나 여자가 정치권력을 잡으면 나라가 혼돈에 빠진다. 당시는 인척간의 관계성이 결국 왕권 약화만 아니라 부정부패로 이어지고, 그 모든 폐단은 백성의 삶을 깊게 파고들었다. 백성의 운명은 오로지 현명한 임금과 어진 신하만이 아니다. 대비와 중전의 인품 역시 크게 작용했다. 정치적으로 선조시기에 중전이 누구의 딸이냐에 따라 정치적 입지가 바뀌었다.

 

즉 붕당정치에서 임금의 옆에 어느 정치세력이 붙는가에서 상대 세력이 몰살될 수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래서 임금에게 충성하는 신하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충성할 수 있는 신하는 외척관계보다 종실의 후손이 유리했다. 종친에는 대군과 군에 따라 작위가 3대 내지 4대까지 내려가고, 그 이후에는 일반 사대부와 같은 입장이 된다. 그래도 왕가의 성씨인 전주이씨가 남아있고, 전주이씨 문무백관은 그나마 신권과 왕권 사이에서 왕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군주가 후사가 없고, 군주의 형제도 없으면 방계의 후손으로 임금으로 올린다.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즉위하나, 정조와 순조, 순조의 아들이 죽자, 사도세자의 다른 후손인 흥선대원군이 고종을 임금으로 올릴 수 있는 이유는 이렇다. 조선의 왕족, 전주이씨 중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을 뽑으라면 세종대왕과 정조대왕이 계신다. 세종대왕이 보여준 업적은 한글 훈민정음 창시와 과학의 발전이고, 정조대왕은 조선 최고의 문무를 겸비한 군주이다.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은 무관이었고, 그 뒤의 임금 중에 그나마 무예가 뛰어난 임금은 세조, 효종과 헌종, 사도세자였다.

 

그러나 전주이씨는 임금과 왕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불멸의 이순신>이란 드라마를 보면 충무공 이순신 옆에 정성을 다해 보좌하는 이억기 수사가 나온다. 이억기 수사 역시 전주이씨 집안 출신이다.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전주이씨 문중 인물로 오리 이원익이 있다. 이원익은 태종임금의 아들 중 하나인 익녕군의 후손이었다. 임진왜란과 관련된 서적을 보다가 함명기 교수의 서적을 보면서 이원익이란 이름을 보았고, 그가 종친이기 때문에 선조가 상당히 의존했다는 글을 보았다. 이원익은 성균관 유생에서 학문을 수행하다 당시 정승인 동고 이준경을 만난 후 이준경의 영향을 받아 실천적 유교를 실행했다.

 

한국 정승 중에서 유명한 사람으로 황희, 유성룡, 채제공을 많이 알 것이다. 황희는 세종대왕과 유성룡은 임진왜란 시기 이순신 장군의 친구이고, 채제공은 영조와 정조를 모신 명신이다. 하지만 이준경과 이원익을 잘 모른다. 그들이 남긴 기록이 많이 없고, 태평성대 시기도 아닌 난세의 세기에 다른 인물에 가려진 정승이다. 이원익과 같은 경우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문신 유성룡과 거의 동급으로 볼 수 있다. 이번에 읽은 <오리, 이원익은 그는 누구인가>에서 숨겨진 명정승 이원익이 나온다. 이원익은 조선 역사에서 영의정을 가장 많이 한 신료 중에 하나이다.

 

그의 정치적 스승인 이준경의 초년은 사화와 관계되어 힘든 삶을 살았지만, 이원익이 몸이 약할 뿐이지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다른 문제는 중종과 명종 시기 왕권이 약화되고, 신료들은 정치적인 권력을 이용하여 재산을 불려갔다. 재산이 관계되면 정치권력이 모이고, 게다가 관직의 수는 한정적인데 계속 사람들이 오고갔으며, 동인과 서인이 구분되면서 피를 부르는 바람이 서서히 오고 있었다. 이원익은 동인과 서인 중에 동인계통이었다. 그가 이준경에게 큰 가르침을 받은 것도 있지만, 개혁적인 성향도 있었다.

 

임진왜란 전 기축옥사로 많은 동인 계열 선비가 죽고 상했다. 이 계기로 서인에 대한 복수를 하자는 쪽이 북인, 복수보단 조금 가라앉히고 정국을 주도하자는 부류가 남인이었다. 남인 쪽에 이순신과 유성룡이 있었고, 북인에는 남명 조식의 제자인 정인홍과 이산해 같은 인물이 있었다. 이원익은 남인이도 피를 피로 씻는 정치적 쟁략보단 정국운영이 중요했다. 초급 문관일 때는 사소한 일에도 집중하며, 하급관리의 일도 배웠다. 더 나아가 목민관이 될 그 지역의 문제를 알고 제도적으로 수정했다.

 

민심을 잘 어루 만져주고, 성품도 온화하며, 게다가 청렴하고 검소하여 뭇 백성들로부터 공경을 받았다. 이원익은 조선이 군주의 나라인 것을 아나, 그래도 조선의 군주는 만 백성의 어버이기에 어버이는 자녀를 사랑하며 돌보는 것을 매우 중시했다. 이런 성품은 전쟁이 일어나자 바로 알 수 있었다. 백성들은 전쟁이 나자 도망치기 바쁜 선조임금과 고관들을 비난했다. 다른 문관들이 먼저 길을 떠나면 백성들은 야유를 보내나, 이원익이 오자 모두 공손히 받아들인 것이다. 평소 행실이 위급상황을 타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이원익이 전쟁에서 가장 활약한 점은 전쟁을 직접 수행하는 것보다 전쟁에서 필요한 정치적 조율이다. 무관이 전쟁이 나가면 식량과 보급, 명군의 외교 등이 어려웠다. 게다가 전쟁이 나면 민심이 크게 동요하니, 다른 것을 몰라도 민심을 안정시키는 게 가장 급선무이다. 무관 중 문예가 깊은 자는 그나마 침착하나, 성질이 포악한 무장은 앞뒤 안보고 적진에 돌격하여 군졸을 죽고 다치게 만들었다. 조금 화가 나면 곤장을 치거나, 자기 말이 군율이기에 부하나 백성의 말과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참형에 처하기도 한다.

 

이원익이 가장 잘 한 정치적 행위는 이순신의 보호이다. 유성룡은 이순신을 아낀 것은 분명하고, 그의 백의종군에서 사형을 면하게 하려 한 것도 사실이나, 유성룡보다 이원익이 더욱 더 이순신을 구원하려 했다. 책을 보면 느낀 것이나 유성룡은 이원익보다 성품이 더 강직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름 이성적이고 냉철하고, 이원익 만큼 여유가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징비록>을 보면 그의 성품이 매우 치밀하고 논리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이원익의 논리정연하나 유성룡보다 포용력이 높았다.

 

남에게 싫은 말을 하는 편이 아니고, 게다가 선조의 신임을 무척 받고 있었다. <오리, 이원익은 그는 누구인가>를 읽기 전 이원익의 인물을 잘 알겠지만, 다소 아쉬운 것은 이 책에서 선조는 나름 괜찮은 임금으로 나온다. 이에 반해 광해군은 문제가 많은 왕으로 묘사된다. 선조는 초기에 이황을 스승을 모시고, 조선왕조역사에서 가장 많은 명신을 거느린 군주이다. 신하 중에 뛰어나지 않은 자가 없었다.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제자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이준경의 종족인 이항복도 있었다. 율곡 이이도 등장하니 조선 성리학의 최고봉을 이룬 것도 이때이다.

 

그러나 임금은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기축옥사를 정철에게 맡겨 피바람을 불게 만들고, 정철이 지나친 옥사를 만들어 사람들이 죽고 다치자, 민심이 흉흉해지자, 이번에 이산해와 동조하여 정철 무리를 숙청한다. 직계가 아닌 방계승위가 문제였고, 명종시기에 해결되지 못한 권력의 모순이 계속 이어졌으니, 정치권은 말 한 마디에 귀양을 가게 된 것이다. 임진왜란 시기 변방의 무장을 이해해주기 보다는 정치권력에서 생각했고, 의병이 북인, 근왕병은 남인 쪽이 많아 그쪽 세력이 강해지자 서인인 원균을 삼군통제사로 올리나 결국 왜군에게 패배한다.

 

죽기 일보 직전인 이순신을 백의종군시키다 결국 이순신은 유성룡의 탄핵 날에 순국한다. 광해군이 아버지 선조로 인한 스트레스와 정실부인이 아닌 서자 차남 출신이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북인의 편에서 정국을 운영하던 광해로선 주변 신료들과 마찰이 심했다. 이 책에서 광해군이 다소 평가가 절하되나, 한명기 교수 서적을 보면 광해보다 인조가 더 문제라고 서술한다. 광해군의 정치적 입지를 반대한 무리가 인조반정을 일으키고도 광해군의 정치구도에서 더 나아가지도 못한 것도 모자라, 실제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다.

 

이원익의 활약이 보이는 것은 여기서이다. 대동법을 김육이 했다고 하나, 사실 이원익이 먼저 준비했고, 중종반정으로 모든 백성들이 동요하고 있을 때 이원익이 궁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모두 안도했다고 한다. 다른 신하는 몰라도 이원익 하나를 보고 모두 안심했다는 점에서 이원익의 인품을 알 수 있다. 광해군이 형님 임해군과 동생 영창대군을 죽이려 할 때 모두 찬성하고 있을 때 이원익만 반대했고, 인조반정 후 광해군을 모두 죽이려 할 때 이원익만 반대했다. 광해군의 실각이 무능 내지 부패라고 하나, 막상 인조가 입권하자 인조의 무능함이 더 심각했다.

 

이원익의 특성은 필요할 일이 있으면 직접 몸소 나서고, 권력에 집착하지 않는다. 하지만 훌륭한 선비들은 나라의 문제가 발생되면 해결하려 하기보다 자연의 세계에서 처사로 지내기 원했다. 물론 중앙정부에 권력자들은 바른 말을 하던 자를 꼽게 볼 리가 없고, 정치적 실리보단 명분으로 권력을 사유화하기 바쁘니 조선의 운명은 청나라에 밟히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이원익은 조선의 문제점을 알았지만, 제대로 바꿀 수 없었다. 시대와 흐름은 결국 권력자들의 이기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원익의 외손자 허목 미수는 매우 뛰어난 학자이나, 처사적 삶을 살았고, 추후 예송문제로 활약했으나, 선비의 유유자적한 생활을 원했다. 그러나 이원익의 공적은 후대에도 전해져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경을 받았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나 정조대왕도 이원익의 공덕을 기렸다. 정조대왕 시절 채제공이란 명정승이 있어도, 이원익이 옆에 없음을 아쉬워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오리, 이원익은 그는 누구인가> 작가는 함규진과 이병서이다. 이병서 작가는 이원익의 직계후손이라 하는데, 그의 서문을 저술할 때 녹우당에서 작성했다고 나온다. 녹우당은 해남군 연동리에 위치한 고산 윤선도의 고택이다. 윤선도 역시 이원익 같은 남인 계통이고, 허목은 남인의 영수에 고산 윤선도와 친했다. 윤선도의 고모할머니는 기축옥사에 장형을 당해 억울하게 죽었다. 당시 기축옥사 때 동암 이발의 어머니가 윤선도의 고모할머니였고, 윤선도는 기축옥사 때 억울하게 죽은 정여립을 비롯한 선비들의 신원을 회복하려 했다. 윤선도보다 먼저 이 일을 시작한 인물이 이원익이다.

 

이원익이 하던 일을 윤선도, 그리고 이원익의 외손 허목이 이어갔다. 윤선도가 운명을 하자 허목은 윤선도의 묘비문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생각하면 전주이씨 문중 사람이 전주이씨 고택이나 사적보다 왜 해남윤씨 고택에서 서문을 적을까 하는 생각하면 역사란 지나간 것의 이야기라고 해도 여전히 당시 사람들의 의지는 우리에게 남아있다. 지금도 보면 실제 정책적으로 실행해야 할 안건이 당론에 막혀 일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원익은 상대편이라도 정책적으로 옳으면 실행하는 게 옳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원익 추진하고 하는 정책을 입안하면 상대편이 동의해 준 것이다. 이원익은 백성을 중심으로 정치를 한 인물이다. 물론 임금인 선조와 광해군, 그리고 인조를 보필하더라도 오직 백성의 입장을 생각했다. 임진왜란 당시 다들 백성들의 입장보다 자기의 안위만 챙겼지만, 결국 백성의 입장을 생각했기에 전쟁 중이나 복구 중이라도 정국이 돌아갈 수 있었다. 오늘날 정치인들이 꼭 배워야 할 자세는 타협의 정치보단 국민을 위한 정치이다. 정치를 하기 위해 타협하는 게 아니라 국민을 위해 타협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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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신명
이용두 지음 / 책과나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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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때이다. 아버지는 집안에 기묘사화를 당한 분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를 알아보니 기묘사화 때 죽임을 당한 조광조 선생의 문하로서 한양태학(漢陽太學), 성균관에서 학문을 수행하는 진사였다. 집안의 족보를 찾아보니 과연 조정암(趙靜庵) 종유(從遊)라는 글이 있었다. 족보에서 같이 딸려 나온 묘비명이나 기타 사료를 찾아보니 그분의 묘비명이 있었다. 어려운 한자어를 한글로 번역(그래도 명사는 한자이다)한 문장을 읽었다. 본래 진사로 성균관에 학문을 수행하다 기묘사화 때 스승을 잃고, 그분 역시 화를 당했다고 한다.

 

이때 화를 당한 사람 중에 그분의 재종조부(할아버지 사촌동생), 탄수 이연경 등 다양한 학자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화를 당한 것과 조정암 선생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고향으로 낙향했다. 고형에서 학문을 전파하고, 가까운 문우들과 학문을 논하면 말년을 보냈다. 그때 같이 학문을 논하던 인물 중에 탄수 이연경 선생이 있었다. 이연경 선생은 연산군 시절 갑자사화로 화를 당하신 분이다. 그분의 할아버지가 연산군의 생모 폐비윤씨의 사약을 내리려 간 집행참관자로 간 게 화의 근원이었다.

 

연산군은 이연경 선생의 할아버지 이세좌를 사약을 내리게 한 후 시체를 갈기갈기 찢는 것도 모자라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하게 했다. 게다가 이세좌의 아들들, 이연경 선생의 아버지와 그의 형제 모두 참수형을 당하여 그 머리를 효수하도록 해다. 집안이 화를 당해 풍비박산이 난 것이다. 이연경 선생의 비극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 자신도 제주도로 유배로 가야했다. 조선의 유배에서 한양에서 가까운 거리면 죄가 가볍겠지만, 멀리 남으로 진도, 기장, 해남과 북으로 함경도로 떠나면 그 죄가 엄중한 것이다. 가까운 것이라도 강화도 역시 죄가 무거운 죄인이 간다.

 

인조반정 광해군이 제주로 유배가는 이유 역시 그 죄가 깊다. 유배형은 사형 다음으로 높은 형이고, 유배지에 있는 죄인은 언제 금부도사가 찾아와 사약을 내릴지 모르는 형국이다. 이연경이 운이 좋은 건 금부도사가 제주도로 가서 형을 집행해야 하는데, 파도가 너무 심해 배를 띄울 수 없는 상황에 중종반정이 일어났다. 중종반정으로 이연경 선생은 다시 고향 충주로 가고, 그리고 이연경 선생의 사촌형제 역시 다시 고향으로 해배되었다. 이연경 선생의 사촌동생 중 이준경이란 인물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 역시 갑자사화로 처형되고, 이준경과 그 형 이윤경 역시 어린 나이에 유배 살이를 해야 했다. 조선의 형은 참으로 무섭다. 조선이 문장과 예의의 나라라고 하나, 백성들은 늘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렸고, 사대부들 중 권력을 잡지 못하거나 혹은 백성의 편에서 권력에 항거하면 그 화가 온 가족을 도륙 내었다. 이준경은 그저 폐비윤씨의 사형집행을 한 할아버지의 과거 일로 어린나이부터 힘든 삶을 사니 얼마나 힘들 것인가? 죄인이 되는 가족에서 남자들은 너무 어리면 유배를 보낸 후 일정 나이가 되면 사약을 보내거나 혹은 다시 압송하여 참형에 처한다. 여자들은 관가의 노비가 되어 손발이 퉁퉁 부을 때까지 일을 한다.

 

이준경의 어머니 역시 그렇다. 이준경이란 인물은 이렇게 갑자사화에서 화를 보다, 다시 기묘사화에서 화를 당한다. 그 본인은 당하지 않으나, 이준경의 사촌형인 이연경은 조광조 선생과 엄청 친한 사이고, 이준경 역시 조광조 선생에게 큰 가르침을 받는다. 이준경은 당대의 학자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하고 친한 학우였다. 그러나 2사람 모두 조정암 선생과 비교하여 더 높지 않다고 여겼다. 이런 이준경에게 내가 눈이 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묘사화 시 화를 당한 나의 할아버지가 시골에서 살고 있을 때 이준경이 나의 할아버지의 재주를 너무 아까워하여 무관직 어모장군에 천거했다.

 

몇 년 전 시골에 내려가 파() 시조의 제사를 준비하던 작은아버지가 신위를 만들고 있었다. 그때 참봉공, 통정공, 부사공, 만호공, 어모장군공, 훈련원정공 등등이 보였다. 어모장군에 임관된 할아버지가 바로 성균관 진사로 학문을 수행한 분이다. 문과 대과에서 진사로 계신 분이 무관직을 맡은 것은 의외이다. 문무를 모두 겸비했다고 하나, 문예로 출사한 분이 무예로 임관했다. 이준경이 그때 천거한 인물을 보니 족보에 구수담이란 인물이 있었다. 구수담은 당시 권력자를 비판한 죄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눈을 감았다.

 

기묘사화를 당한 분이 다시 기용되어도 기묘사화를 일으킨 자들은 무덤에 있지만, 기묘사하와 같은 참극을 일으킬 수 있는 권력자들을 여전했다. 이준경이란 인물은 바로 그런 탐관오리와 권력자 사이에서 국가의 업무를 돌보던 실천적 사대부였다. 이준경이란 인물이 또 다시 집안 족보에 나온 것은 본 적이 있는데, 기묘사화 때 화를 당한 분의 작은아버지는 본래 만호(萬戶)라는 무관을 지낸 분이 있다. 1555년 왜적이 을묘왜변을 일으켜 전남 해남, 영암, 강진 등을 약탈하며 전주성까지 위협한 큰 전쟁이었다.

 

선조시기 임진왜란을 대다수 사람들은 생각하나, 사실 임진왜란의 전초는 을묘왜변이었다. 을묘왜변 이준경과 그의 형 이윤경은 전주성과 영암성을 지키며 왜적을 소탕했다. 이때 집안 족보를 보니 만호를 지냈던 분은 이준경에게 을묘왜변 시 도움을 주었고, 이준경과 매우 친한 사이였다. 그래서 나는 이준경이란 인물에게 관심을 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 읽은 <청풍신명>은 이준경의 삶을 소설로 만든 책이다. 내용을 읽으면 다소 도교적 발상이 함유되어 있고, 조광조의 학문을 이은 이준경에게 유학의 기본이 중시되겠지만, 소설의 감인지 아니면 당대 사료를 보고 그렇게 했는지 알 수 없다.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이준경이 해오던 일들이 엄청났고, 파란의 중심에 있었다. 이준경은 갑자사화, 기묘사화를 직접 겪었고, 명종 때 을사사화로 조카를 잃었다. 권력에 저항하기보단 권력을 지닌 자를 어떤 계기로 통해 물리쳐서 위기를 넘어섰다. 이준경의 실수는 아니나 이준경이 가장 잘한 일이 엉뚱하게 된 것은 명종의 임종 시기였다. 명종은 후사가 없고, 그의 아내 인현황후는 선조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이때 척신 이양이 계속 압력을 넣자, 이준경은 이양에게 직접 내의관에 가서 환약을 가져오라 하고, 이때 왕에게 후사를 정하라 하자 왕은 왕비에게 눈빛을 보낸다.

 

왕비는 그 입으로 선조를 호명하자, 이준경은 큰소리로 따라 부르고, 승정원의 관리에서 기 이름을 기록하게 한다. 어려운 시기를 위기에서 기회로 만들고, 주변에 인물이 있으면 거론하여 그를 기용하거나 추천한다. 이준경이 추천인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오리영감 이원익이다. 조선 정승 중에서 가장 오래한 사람 중에 황희와 더불어 올라간 사람이 이원익이다. 전주이씨 출신인 이원익은 왕가의 후예지만, 왕보다 백성을 더 사랑했다. 이원익이 알아본 인물로 충무공 이순신이 있다.

 

소설을 보면 방진이란 보성군수가 나오는데, 활을 명수였다. 방진에게 외동딸이 있는데, 그딸을 이순신과 부부의 연을 맺으라고 했다. 이순신 장군은 문장력이 뛰어났지만, 매우 가난한 선비였다. 만약 방진 군수와 그 딸을 맞이하지 않았으면 우리는 일본에게 조선을 내어주었을지도 모른다. <청풍신명>은 그런 이준경을 삶을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그린 책이다. 우리 선조들 중에 위대한 인물은 모두 어려운 시절을 겪어도 거기서 좌절하지 않은 것은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후 느낀 바는 진정 백성을 사랑하던 관리들은 백성의 삶에 녹아들어 그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이준경이 지방의 목민관이 되었을 때 가난과 재난에 지친 백성을 위해 구휼활동을 하는데, 다른 지역의 목민관이 자신의 딸에게 병자를 위해 간호하게 하거나, 물을 길어 백성들을 돌보게 한 점이다. 이준경 역시 자신의 아들에게 명을 내려 그 여성을 돕게 하도록 하고, 나중에 혼인도 올린다. 이준경의 사무처리는 뭐든지 딱 잘라버리는 게 아니다. 나도 성격이 조금 급하고 섣부른 판단을 잘하는 편이라 잘 느낀다.

 

변방의 오랑캐가 계속 조선군민을 괴롭히자, 이준경은 그들을 토벌하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오히려 인정을 베풀어 조선의 백성과 계속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칼로 계속 그들을 베면, 그들은 복수심에 사로잡혀 계속 국경을 침범하고 마을을 약탈할 것이다. 이준경의 재치는 바로 뭐든 그때 상황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무를 처리한 점이다. 한국의 정치인이 배워야 할 인물 중에 황희, 이원익, 채제공, 정약용 같은 인물도 있지만, 이준경의 활약 역시 그러하다. 문관이라도 체술을 배워 전략과 전술, 전투까지 이어가는 것은 참 중요하다.

 

사람에게 항상 필요한 점은 선견지명인 것 같았다. 지금 당장의 이익보다 앞으로 다가올 세대를 위한 주춧돌을 놓아 후손들이 계속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미래를 위한 현재를 다시 재정비하는 일이란 어렵다. 사람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도리까지 저버리는 게 현실이다. 인간의 도리를 잃는 순간 모든 것은 허물어진다. 이준경은 인간의 도리와 더불어 명분을 중시했다. 그가 실용적 정치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당장의 문제만 생각하면 화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재미난 것은 당대의 인물들이 이준경과 만난 것이다.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은 그렇다고 하도, 토함 이지함(토정비결), 화재 이언적, 조선 최고의 기생 황진이도 등장한다. 임꺽정을 토벌한 남치근 등도 나온다. 중종반정 이후 중종과 명종은 기존 조선의 왕권이 신권으로 넘어가는 시기이다. 왕의 무능함이 결국 신권이 우위로 가고, 선조는 신권을 이용하여 왕권을 지키기 옥사까지 일으킨다. 이준경은 그런 것을 원하지 않으나, 결국 그렇게 되었다. 앞날을 보려면 현재를 보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하나,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보단 그저 감정과 사당의 이익으로 움직였다.

 

책을 보고, 사료를 보면, 이준경이란 인물은 매우 신중했다. 이준경의 삶을 따라보면 당시 당대의 학자 이황과 조식, 기대승도 나오나, 율곡 이이도 나온다. 율곡은 학문은 깊으나 성격이 너무 급하여 경솔한 행동을 했다. 이준경이 죽기 붕당의 투쟁을 걱정했고, 율곡의 행동이 붕당정쟁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 했는데, 과연 붕당의 폐해는 심각했고, 기축옥사의 참혹함이란 말할 수 없었다. 이준경의 삶을 보면 언제나 고난의 연속이나, 그 고난 속에서 다른 사대부들처럼 권력을 누리거나 혹은 처사로 숨어있기보단 그 앞으로 나와 해결하려 했다. 세상이 더럽다고 피해도 그 더러움이 물러나지 않는다. 청풍신명이란 책제목처럼 맑은 바람, 올바른 마음의 형태가 신의 명령, 즉 우리의 사명이란 말처럼 이준경의 삶은 그렇게 살다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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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서 어떤 마음이나 감정을 담아 부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듣는 음악으로 가요가 있지만, 대중가요의 한계는 가사소재 대부분이 연인간의 사랑, 이별 등과 같은 연애 요소가 많다. 하지만 대중가요라고 해도 모든 곡이 연애문제가 아니다. 블랙홀 4집에 수록된 마지막 일기는 광주에 사는 어느 고등학생의 일기를 본 후 블랙홀 리더 주상균 씨가 만든 곡이다. 가사를 보면 못 다한 나의 숨결은 오월의 늘 위에 붉게 떠 있는 부신 큰 빛이 되어 리운 모든 사랑을 바라 볼 거야.’라고 나온다.

 

가사의 의미를 본다면 그 학생은 결국 살아 돌아오지 못한 운명의 강을 넘은 것이다. 물론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은 그 학생뿐만 아니다. 수많은 광주의 학생들이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차가운 시신이 되었다. 518에 대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대학생 정도 될 정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518의 진상은 7~8년 전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광주 망월동에 위치한 518묘역은 4~5년 전에 가본 것 같았다. 사진으로 찾아볼 수 있으나, 518의 참혹한 기록을 간직한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의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잔인하게 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계엄군에게 살해당한 사람은 노인, 여성, 어린이 할 것 없이 몽둥이로 때리고, 칼로 찌르고, 총으로 사격까지 가했다. 인터넷 사진을 보면 어떤 여성이 하체가 다 벗겨진 채 목 위로 머리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 성폭행 후 살해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518기념관 옆에 있는 희생자 영정이 모셔진 곳에 가면 더 놀라운 모습을 본다. 영정사진 중에 아직 돌 전후의 어린 아이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이다. 실제 인터넷에 찾아보면 4~5세 정도의 어린아이가 살해당해 거리에 그대로 방치된 사진도 있다.

 

518을 두고 많은 의견을 분분하다. 어느 누구는 광주의 민주화 운동이라 하고, 누구는 북한군 개입설을 말한다. 하지만 최근 미국 국방부 비밀문서 해제에서 북한의 개입은 전혀 없었으며, 오히려 미국은 이런 상황을 두고 지켜보려 했다. 미국에게 중요한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게 아니라 한국이 자신의 우방국으로 배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중요했다. 만일 북한이 개입했더라도 한국의 20사단이 아니더라도 미군의 첩보로 통해 사전조치를 했을 것이다.

 

계엄군에 대항한 시민군이 가진 무기는 겨우 파출소에서 탈취한 구형소총이고, 계엄군은 신식 소총인 M-16에 기갑탱크부대를 끌고 올 정도이니, 전략상 처음부터 이기지도 못한다. 설사 그런 작선을 실행해도 아무런 이득이 없이 상대 진영에게 대놓고 보여준다면, 그런 작전을 세운 장교부터 총살될 확률이 높다. 최근 미군의 기록만이 아니라 당시 국방부 자료를 찾고, 사격탄알 흔적을 찾아 분석하니 군부가 무리하게 진압했다는 증거가 나오고 있다.

 

광주의 민주주의 운동이라 하나, 사실 서울도 민주주의 운동이 계속 진행되었고, 서울에서 5월의 봄이 스쳐간 것 같으나, 광주에서 그런 비극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광주의 5월은 민주주의 운동이라고 말하기 전에 제노사이드라고 먼저 칭하는 게 옳을 것 같다. 자국민의 저항에 총으로 사격하는 행위가 지역적 갈등을 이용한 점에서 본다면, 집단살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계엄군 부대 병사들은 주로 경상도 권역, 장기복무 부사관 미 장교들은 베트남전쟁 경험자를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자국민을 대하는데도 몽둥이로 무참하게 때리고, 칼로 배를 가를 수도 있는 것이다. 시신의 사진을 보면 얼굴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격당한 피해자가 있고, 머리를 전기톱으로 자른 것도 있다. 차라리 총으로 사격하여 즉사했다면, 장례식을 치룰 때 시신을 온전하게 모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시신도 있었다. 이 모든 비극이 일어날 때 광주 밖에 있는 한국사람들은 모두 모르고 있었다. 방송국에서는 오히려 광주에서 일어나는 일이 북한군의 개입 내지, 불량 조직폭력배가 개입했다는 식으로 왜곡했다.

 

광주에 전화선로가 끊기고, 모든 교통이 통제되어 있으니 아무도 그들의 비참함을 알지 못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위르겐 힌츠페터(피터) 기자이다. 독일인이던 그가 일본에서 외신기자로 활동할 때 한국의 극한 상황을 듣고 김포공항으로 입국한다. 기자이던 그는 저널리즘 정신으로 들어왔지만, 문제는 광주에 어떻게 가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 문제였다. 이때 개인택시 운전사인 만섭이 사글세를 벌기 위해 피터를 데리고 광주로 간다. 영어도 되지 않고, 오로지 먹기 살기 위해 택시를 모는 만섭에게 서울 오월의 봄과 민주주의 운동보다 석가탄신일의 손님이 더 관심이었다.

 

보통사람 모두나 만섭 같이 가난한 서민이고, 만섭은 아내를 사별한 후 낡은 택시를 몰며 돈을 벌어 외동딸을 힘겹게 키우고 있었다. 택시 주행거리가 60, 지금 나온 차들도 30가까이 되면 무리가 오는데, 옛날 차가 60이면 움직이는 것도 용하다. 만섭이 원하는 것은 다른 것 없이 딸 은정이가 자신과 같이 살아가는 게 유일한 삶의 낙이고 행복이다. 사우디에서 5년동안 고생하여 귀국하여 아내를 잃고 좌절한 그에게 단 하나의 희망은 은정이었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만섭의 중심으로 클로즈업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만섭의 얼굴에서 표정과 눈빛, 눈물과 입술의 주름까지 모든 게 작품의 주제와 연결된다.

 

평범한 가장, 그리고 세상의 문제보다 자신의 가정에 충실하던 만섭의 모습은 송강호 씨가 전에 촬영한 <변호인>과 비슷하다. 변호인에서 송우석 변호사는 세무전문 변호사로 돈을 벌고 좋은 아파트에 가서 가족과 편안한 삶을 사는 게 목적이다. 그런 그에게 과거 우연히 만난 국밥집 주인과 그 아들을 만나면서 인생을 변했다. 만남은 우연이나, 만남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인연이 되어 운명으로 되었다.

 

<택시운전사> 만섭이 피터를 만나 광주까지 들어갈 때까지 그저 골치 아픈 외국인에 불과했다. 그러나 광주에 가서 광주시민들을 보고, 광주에서 택시를 운행하던 운전사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어 갔다. 송강호 씨의 연기가 영화를 보면서 처음에 민주주의 운동을 하던 학생을 부정적으로 보던 사람이 이제는 그들을 이해하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 자신의 안위를 버리게 된다. 송강호 씨의 연기는 마치 스펀지와 같이 모든 것을 빨아들인 후, 어느 일정 선을 통과하면 모든 것이 폭발한다.

 

서울에서 택시를 몰던 서울시민 만섭이 이제는 불의를 세계에 알리는 광주시민으로 변한다. 폭도라고 여기던 사람들이 알고 보니 정 많고 다정한 이웃이었다. 기름을 무료로 넣어주고, 주먹밥도 그냥 주는 인심, 만섭이 차를 고치기 위해 순천에 가면서 그의 마음을 되돌린 것은 주먹밥이었다. 아무 것도 넣은 것도 없이 쌀밥을 모아 만든 주먹밥은 참 맛이었다. 옥상에서 맛있게 주먹밥이 순천 시내 식당에서 국수를 시키면서 서비스로 나온 주먹밥을 먹으면서 만섭이 고뇌한다.

 

게다가 옆 자라의 손님은 광주에서 일어난 일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신문에서 폭도라고 하니, 만섭의 마음은 서울과 광주 사이에서 갈등한다. 기자 피터는 택시운전사 만섭을 두고 진정한 영웅이라 말한다. 하지만 영웅이 되어주던 만섭은 처음부터 영웅이 아니라 소시민이었다. 영웅은 만섭만이 아니다. 광주시내에서 부상당한 시민을 데리고 병원에 옮겨주던 광주의 택시기사와 시민, 병원에서 환자를 돌봐주던 의사와 간호사, 그들을 위해 밥을 내어주던 동네 아낙네까지 모두가 영웅이었다.

 

그러나 영웅이란 언제나 영광만이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지금 518민주화운동을 기념하여 나라에서 법으로 국가유공자로 기리지만, 가족을 잃고 몸을 다친 그들에게 국가유공자란 법적인 대우보다, 당시 급박한 상황과 비참한 죽음, 억울한 누명을 알려 다시 재조명을 받는 것이 목표이다. 최근까지 518비하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37년 동안 상처를 받은 그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것은 역사의 진실과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기록이다. 나도 이번에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지 않았다면 당시 택시운전사들의 활약을 제대로 알 수 없었고, 피터가 어떻게 외국에 무사히 필름을 전달할 수 있었는지 몰랐을 것이다.

 

영화는 영화로서 재미도 있지만, 영화라는 매체로 통해 충분히 사회적 함의를 이끌어내 수 있다. 영화라는 것은 대중문화이고, 대중문화는 기득권, 정치세력 혹은 거기에 대항하는 세력에 의해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부여할 수 있다. <택시운전사>의 대중문화에서 보는 관점은 영화라도 단순히 영화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소가 있다. 영화 <변호인> 역시 부림사건을 소재로 했기에 그 잔혹한 역사를 보고 우리는 영화관을 나오며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하는 게 바람직하다.

 

<택시운전사>에서 518의 참혹함을 담아내던 피터의 이야기이기에, 영화에서 보여주는 장면이 잔인할 수 있다(어느 어린 아이의 어머니는 계엄군이 광주시민에게 사격을 가할 때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택시운전사>518운동에서 피터의 여정을 그리지만, 피터는 518의 광주사람의 있는 그 모습을 담아내었다. 피터를 안내해주던 재식은 대학생이다. 그가 대학교에 간 이유는 대학교를 가야할 곳보다 대학가요제를 가고 싶어서 갔다고 한다. 광주에서 총을 맞고 쓰려진 그 많은 이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인 것이다.

 

피터가 광주에 간 이유는 자신이 기자이기에 간 것이고, 만섭이 나중에 피터를 끝까지 책임지고 공항에 데리고 간 이유는 그가 택시운전사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공정한 시각에서 기록하는 것이고, 택시운전사는 손님이 무사히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요한 순간에 그들은 서로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무시할 수 있다. 피터나 만섭이나 모두 돈을 벌기 위해 기자가 되고 택시를 몰았지만, 거기서 모든 것이 결정된 게 아니라 또 다른 하나의 출발점이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광주시민과 적대하던 계엄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행위는 차마 용서할 수 없는 잔인한 집단살인을 저질렀다. 그러나 계엄군 속에서도 양심이 있는 자가 있었다는 점을 잊지 않았다. 피터와 광주를 떠나던 만섭은 계엄군 감시를 피해 산길로 돌아가나, 그 곳에서 검문을 당할 때 어느 중사가 그들의 정체를 알면서도 보내주려 했다. 이때 검문소로 전화 온 명령이 모든 외국인을 포박하라고 했기에 만섭은 택시를 급하게 몰며 간다. 정말 그럴까 하는 의문을 들지만, 영화는 광주시민을 학살하던 계엄군 그 자체를 악으로 여기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연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영화 제목처럼 <택시운전사>이고, 택시운전사들이 활약하던 장면은 보안사령부 비밀요원들이 만섭의 택시를 추격하는 장면이다. 위기의 순간, 광주의 택시운전사들이 목숨을 걸고, 만섭을 무사히 보내주는 장면이 나온다. 광주택시가 앞에 있는 만섭의 택시 뒤에 따라오는 보안사 지프차량의 추격으로부터 막아준다. 예상외의 차량 추격전에서 광주택시의 희생으로 무사히 필름은 지킬 수 있었다. 광주택시를 몰던 그들은 영웅심리로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영웅이 되고자 했다면, 피터의 도주를 도운 재식의 죽음이나 총알이 빗발치는 거리에서 부상당한 사람을 옮기려다 죽고 다친 광주시민들의 의지를 비웃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진보성향과 보수성향의 영화에서 서로 스토리나 흐름이 비슷하거나 목적하는 바가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진보든 보수든 영화의 재미를 기대하더라도 모든 영화는 시나리오라는 이름 아래 서사구조를 가지고, 그 서사구조에서는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긴 이데올로기 매체이다. 이데올로기란 틀에서 영화서사 내 의미하는 바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이순신 장군은 민족의 성웅이고, 한국과 조선의 역사에서 무의 완성인 분이다.

 

그분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 때, 보수는 이순신 장군을 중심으로 영웅적인 요소를 찾는다면, 진보는 이순신 장군과 더불어 같이 활약하던 이름 없던 수군과 민초를 더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영화 <대립군>에서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인물 중에 하나인 광해군의 청년기를 보여준다. 정실부인 출생도 아니고 장자도 아닌 광해군이 분조의 수장이 되어 고난을 겪을 때 광해군에게 자신의 소임을 일깨워준 것은 조선의 백성이었다. 돈이 없어서 남의 군역을 대신하던 대립군과 그들의 가족을 보면서 삶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영화 소재나 장르는 언제나 형식이나 틀에 얽매일 수 없다. <스펙타클의 사회>를 제작한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감독 기 드보르의 <사드를 위해 절규>란 영화를 1번 아닌 2~3번 이상 볼 수 있다면 말을 조금 달라질 수 있을지 모른다. 영화라는 그 자체를 해체 내지 부정하지 않은 이상 어느 영화든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면 아무리 빤히 보이는 내용이라도 그 내용이 의미하는 바가 중요하다면 어떻게든 보여주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

 

<택시운전사>를 보면 518 자체를 모르는 사람에게 상당히 낯설지 모르나, 518에 있었던 사람을 보면 전혀 낯설지 않다. 다들 꿈 많고 정 많은 소시민들의 이야기이다. 지금 그런 사람들을 두고 다소 바보로 취급받아 무시당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과 정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에 있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는 현실적으로 보이는 실사에 가려진 허구의 세계이다. 허구의 세계에 현실과 더불어 현실을 초월한 그 무엇인가를 넣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택시운전사> 현실과 허구의 재구성에서 현실에 있었던 사실 그 자체를 약간의 허구를 가미하여 재구성했기에 대중영화의 영역에서 일반영화와 르포르타주영화 영역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일반 대중영화지만, 영화전개는 르포르타주의 재구성으로 조합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장면은 피터가 죽기 전에 인터뷰한 모습이 나온다. 피터는 자신을 광주까지 태워준 택시운전사를 보고 싶다는 말을 하며 눈물을 흘린다. 피터는 결국 광주까지 태워준 택시운전사를 만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하지만 영화 속의 피터는 19805, 그 비참하고 아름다운 5월의 택시운전사를 만나 우리에게 안타까운 사연을 보여준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신파적인 요소를 최대한 억제하고, 있는 그 자체를 보여주려 한다. 영화서사에서 목적지는 광주518이지만, 영화에서 카메라의 관점이 되어주는 인물은 피터와 만섭이다. 처음에 광주시내로 가는 것을 반대하던 만섭이 뒤로 가면 병원에서 주저앉은 피터를 일으켜준다. 기록하고 기억해주게 하라고 말이다. 이 글의 윗부분에 블랙홀의 노래 <마지막 일기>가 소개한 것처럼, 가사의 주인공인 광주의 고등학생 518 당시 죽는 것이 무섭고 어머니가 그립지만, 그래도 그곳을 찾아간다. 만섭 역시 피터를 데리고 가려면 목숨을 잃을 수 있고, 만섭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의 딸은 고아가 된다. 그래도 손님은 끝까지 목적지까지 모시고 가는 게 택시운전사의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 인간은 이성을 가진 동물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성적 판단을 내린다. 만섭이 내린 판단은 이성의 논리보단 인간의 도리에서 나온 행동이다. 인간의 도리는 이성의 판단보단 감정의 판단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보다 감성적인 존재인 게 더 나은 것이다. 인간이 사상을 만들었지만, 인간을 지배하는 사상이다. 그러나 감정이 없다면 인간의 사상은 그저 말뿐인 단어에 불과하다. 옳은 일이란 머리로 움직이는 것보다 마음으로 먼저 움직이는 것이 정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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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8-06 1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 만화애니비평님의 닉네임은 아무래도 너무 짧습니다. 만화애니도서영화비평으로..... 알라딘은 20바이트 닉네임 용량을 보장하라.

만화애니비평 2017-08-06 17:42   좋아요 0 | URL
보장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20177월이 마무리가 되어가는 시점에 나는 영화 <군함도>를 보았다. 군함도란 이름을 이전에 몇 번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3~4년 전 조선의 근대사를 공부하면서 일제침략 시절 강제징용 역사에서 군함도에서 일어난 일들이 엄청난 만행이란 것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런 것일까? 류승완 감독이 영화 <군함도>를 제작한다는 말에 군함도에 대한 역사학자의 도서 내지 소설가들의 이야기도 나왔다. 아마 이전에 역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군함도가 소개된 것이 있을 것이다. 군함도 이야기가 20177월 한국을 강타하기 전 시골에 있는 외할아버지를 만나러 간 적이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올해 연세가 99세이다. 조만간 100세를 향해 가는데, 외할아버지가 태어난 시점은 일제강점기가 한참이던 시절이다. 외할아버지가 예전에 징용을 끌려간 적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번에 어머니가 외할아버지를 만나보면서 일본에 징용을 갔는지 물어보니 끌려갔다고 했으며, 징용피해자에겐 1년마다 소정의 보상금이 나온 것으로 되어 있었다. 당시 외할아버지가 징용을 가면서 엄청나게 많이 맞았다고 한다. 외할아버지가 계신 노인복지센터에서 나온 후 이제는 아버지가 태어난 시골집으로 갔다.

 

본래 친할아버지가 살던 곳이나 친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세상을 떠나고 없으나, 작은 아버지가 시골에서 소를 키우고 농사를 짓고 있었다. 징용과 관련하여 이래저래 이야기하니, 우리 할아버지는 4형제 중 3번째인데, 4형제 중 제일 큰형과 막내가 징용에 끌려갔다고 했다. 그리고 작은할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 잠시 봤을 정도로 어느 정도 천수를 누렸지만, 제일 큰형이던 큰할아버지는 징용을 다녀온 후 병으로 사망했다고 했다. 집안에 일제에 의한 징용피해자가 3명이나 있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일본이란 나라에 그렇게 적대심은 없고, 일본인에게 그래 나쁜 감정은 없지만, 일본정부와 기득권에 대한 분노는 강하게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다. 과거 일제 앞잡이들이 다시 광복 후 권력을 잡았는데, 아버지나 작은아버지가 군사정권 시대의 기득권에게 상당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다. 독재정권 시절, 독재정부에 이익을 보던 자들 대부분이 친일파들이었고, 친일파들은 남성들은 강제징용으로 여성들은 위안부로 강제로 보내는데 일조를 했다.

 

가끔 일본정부가 한국정부에 대해 과거 징용 내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하는 이유는 아직까지 피해자와 그들의 가족들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점이고, 피해 받은 자들이 겪었던 슬픔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결코 해소될 수 없는 앙금이기 때문이다. 영화 <군함도>를 보기 전에 집안 상황을 다시 확인한 나로서는 군함도가 가진 의미가 단순히 지나간 일보단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현재형이란 사실을 다시 확인한 셈이다.

 

영화 <군함도>를 보면서 고증의 절차를 다시 생각했는데, 광부들이 지하 1,100m 정도 내려가면 더위도 문제지만, 산소도 부족하고, 게다가 석탄가루가 내려오니 폐병에 잘 걸렸고, 음식이나 휴식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않으니 영양실조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사람들이 병으로 죽거나 사고로 죽으면 그들에겐 별 의미는 없다. 다시 새로운 조선인을 데리고 와서 죽음의 섬에 집어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영화 <군함도>를 그런 시점에서 보고 나니 조선인들의 비참한 모습이 다시 스크린 위로 올라왔다. 영화 속에서도 비참함이 그대로 전해지지만, 실제 상황은 더욱 참혹하고 비참했다. 누구는 이 영화를 두고 너무 국뽕에 취해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도 드나, 영화로서 재미보단 이런 일이 있었다는 그 사실만으로 슬픈 영화라는 점은 분명했다. 영화에서는 그동안 짓눌린 억압에 대해 다시 복수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군함도에서 많은 조선인들이 희생되자, 광복군 소속 장교가 군함도에 잠입하여 친일파를 제거하고, 모두 탈출하려 했다.

 

일본 입장에서 군함도에서 고생하던 조선인이 탈출하면 모든 만행이 드러나고,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게 되어 끝내 전쟁재판에 회부되어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 자료를 모두 없애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증인이 모두 없어지는 것이다. 일본은 징용을 끌려간 조선인을 살해하거나,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가는 배를 침몰시키기도 했다. 역사에 가려진 조선인들의 원한은 21세기에 되어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어질 것처럼 보였다. 20세기 대한민국은 징용피해자들의 원한을 대중에게 노려지는 것을 꺼려했다.

 

만일 일본이 그랬고, 그런 자들이 고생했다면, 중간에서 누가 그들을 죽음의 절망으로 떠밀었는가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그 사실을 드러내기 싫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영화 <군함도>가 많은 논란에서 시작된 원인도 그렇고, 또한 영화 내용조차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다. 영화는 상당히 어두운데도 나름 유머를 잃지 않고 있다. 배우 황정민 씨의 연기력이 발휘하는 것은 아무리 절망의 나락에서도 어떻게든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 자신의 딸과 같이 탈출하기 바라는 아버지로 나오나, 뒤에는 자신이 죽더라도 딸의 미래를 걱정하며 눈을 감는 아버지가 된다.

 

조선인들은 살아남아야 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기에 처음에 어려울 것이다.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조건 아래에서 행동할 수밖에 없다. 일본이 증거와 증인을 없애려는 그 마지막에도 일본의 인텔리적 요소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운명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 옳다. 단지 그 선택의 조건과 상황이 어느 정도 부합되어야 성립된다. 영화 <군함도>에서 그런 상황이 주어진 게 특징이고, 그 상황을 맞추어 살아남았다는 게 특징이다.

 

단지 영화연출 요소에서 지나친 슈퍼히어로 요소가 가미되었기에 아쉬웠다. 광복군 장교라면 분명 뛰어난 두뇌와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다. 총을 관통하고 며칠도 되지 않은 상태에 과감한 전투장면, 부소장이 불에 타고 있을 때 한 손에 일본도를 가지고 목을 잘라 내버리는 것은 너무 지나친 설정이 아닌가 싶었다. 이런 점이 국뽕적인 요소로 보일 수 있으며, 연애적인 요소에선 억지로 맞추어 넣는 신파적 요소 역시 없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영화 <군함도>1번을 봐야 하는 이유는 그때 살아가던 조선인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죽어갔는지, 또한 거기에 등장하는 인간들의 군상과 다양한 이야기들은 우리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영화 마지막에서 일본이 군함도를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했고, 거기에 있었던 잔인한 만행을 공개하지 않으려 한다. 근대라는 역사적 유산에서 우리 인류는 발전이란 이름을 전쟁과 착취 그리고 파괴를 일삼아왔다. 근대와 현대는 연결되나, 근대에 새겨진 상처의 얼룩을 지우려 하면, 그 겉은 보이지 않아도, 속은 곪아 썩어가게 된다.

 

대한민국이란 이름은 상해임시정부로 통해 광복 후에 정식으로 가진 이름이지만, 광복 전에 우리 한국인은 여전히 조선인이다. 군함도에 끌려가거나 그밖에 많은 죽음의 땅으로 끌려간 사람 모두 조선인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한국인이라고 말해도 조선인이라 이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조선인이란 이름을 망각하는 순간 우리의 상처 입은 과거를 망각하고,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영화 <군함도> 작품보다 그 영화를 통한 수입배급 체계나 혹은 작품 내 지나친 설정은 문제가 있지만, 영화 소재로 본다면 반드시 보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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