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처한 미술 이야기 1 - 원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미술 : 미술하는 인간이 살아남는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1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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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빗살무늬토기에 새겨진 빗금도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연구가 더 필요하겠지만, 이처럼 빗살무늬토기의 빗금을 단순한 무늬가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는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그 순간, 원시미술이 가진 힘이 크게 다가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 힘을 인간이 태초부터 품어왔던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만 년 전 원시인들이 처음 벽화를 그린 이래 문명은 복잡하게 변화했고, 온갖 기술과 제도도 현란하게 우리 눈을 어지럽힙니다. 하지만 그런 지금도 원시미술은 우리 가슴을 뛰게 만듭니다. 왜일까요?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 원시미술의 꿈틀거린느 생명력이, 그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하는 호모 그라피쿠스가 살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167-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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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2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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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들을 보면서 신이 본 세상을 기억하는 것보다 더 멋진 일이 어디있을까?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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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의지해 그림을 그리게 되는 행복한 눈멂의 시간을 준비하는 것이 곧 세밀화가의 일생이라는 이러한 해석은 시간이 흐르면서 의외의 결과를 낳았다. 당시 헤라트파의 장인들은 책 애호가인 왕이나 왕자들을 위해 그리는 그림을 손을 숙달시키는 일종의 연습으로 보게 되었고, 하루 동일 쉬지 않고 촛불 아래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장님이 되기 위한 행복한 준비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실제로 미렉은 평생동안, 어떤 때는 손톱이며 쌀알, 심지어 머리카락에까지 잎사귀나 나무들을 정교하게 그렸다. 일부러 하루빨리 장님이 되기 위한 행동이었다. 때로는 햇볕이 잘 드는 평화로운 정원을 그리면서 ‘영원한 어둠‘이 찾아노는 시기를 조심스레 연기하기도 했다. 가장 행복한 최후에 도달하는 데 가장 적당한 때를 찾기 위해서였다.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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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은 커튼에 비치는 햇살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생각했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대관절 무슨 쓸모가 있는 것일까? 맹수들이 많았던 옛날에는 남성의 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몇 세기 전부터 남자들은 거의 아무것에도 쓸모가 없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이따금 테니스 경기를 하면서 따분함을 잊는다. 그건 별로 나쁠 게 없다. 하지만 때로 그들은 <역사를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들이 역사를 발전시킨다고 생각하면서 벌이는 일은 주로 전쟁과 혁명이다. 전쟁과 혁명은 터무니없는 고통을 야기할  뿐 아니라. 매번 모든 것을 백지 상태로 만들고 다시 건설할 것을 강요함으로써 과거의 가장 좋은 것을 파괴하기 일쑤다. 그리하여 인류의 진화는 정연한 흐름 속에서 점진적으로 상승해 가는 양상을 보이기보다는 무질서하고 불규칙하고 폭력적인 양상을 보였다. 그 모든 것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은 전적으로 남자들에게 있다. 모험과 도박을 좋아하는 그들의 성향, 그들의 기괴한 허영심, 그들의 무책임, 그들의 폭력에 말이다. 그들의 기괴한 허영심, 그들의 무책임, 그들의 폭력에 말이다. 여자들이 주도하는 세계는 모든 점에서 남자들이 주도하는 세계보다 나을 것이다. 비록 진보는 더딜지언정, 그 세계는 모두가 행복한 상태를 향해 규칙적으로 나아갈 것이다. 되돌아가는 일도 없이, 그리고 모든 것을 한 번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일도 없이 말이다. 22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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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는 사실상 낯선 이방인의 권유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집과 배, 사업 그리고 어쩌면 뒤따르는 가족도 버리고, 전 세계에서 이상주의적이고, 전적으로 비현실적이며, 돈키호테 같은 몽상가로 간주될 한 인간의 으쯤 사도가 되었다. 그 인ㄴ간이 바로 예수였다. 예수는 어부 시몬이 맡을 새로운 사명을 표시하고자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으니, 고대에는 흔치 않던 반석이라는 의미의 ‘페트로스Petros‘, 즉 ‘베드로‘였다. 성서에는 이 이름이 다른 누구에게도 부여되지 않는다. 베드로의 믿음이 예수를 저버린 때도 종종 있었지만, 베드로는 예수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아라고 주장한 최초의 인물이었다([마태오의 복음서] 16장 13절 참조). 대신 예수는 베드로에게 ‘왕국의 열쇠‘를 주었다.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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