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마인드 (10만 부 기념 코멘터리 북) - 무의식이 이끄는 부의 해답
하와이 대저택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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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101-24-06 더 마인드 The Mind, 하와이 대저택 저, 2024


서평단 및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서협찬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1. 들어가며...

"생각은 바이러스와 같아. 끈질기고, 전염성이 강해. 

아주 작은 생각의 씨앗이라도 자라나면 한 사람을 규정하거나 망가뜨릴 수 있지."  (영화 인셉션 Inception 中)

위 대사는 크리스토퍼 놀란 Christopher Nolan 감독의 흥행작 "인셉션 Inception" 에서 나온 한 대사이다. 잠깐 영화에 대해 말하자면, 한 거대 글로벌 기업이 막강한 경쟁자인 다른 그룹을 이기기 위해, "꿈의 조작자"들을 은밀히 고용하는데서 영화가 시작한다. (디카프리오 분) 그들의 계획은 경쟁 관계에 있는 그룹의 후계자 구도에 의도적으로 개입하여 자신들과 경쟁관계에 있는 계열사를 해체하여 해당 분야를 독점하려는 속내를 보인다. 의뢰를 다 들은 디카프리오는 제시한 의뢰의 가능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경고하면서 위에 소개한 저 대사를 말한다. - 이후 영화는 최고의 팀들이 모여 이 의뢰를 달성하기 위해 "꿈의 세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

이 영화는 통상 프로이드 Freud 로 대표되는 심리학, 즉 "무의식"의 영역이 어떻게 인간의 일상인 "의식"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를 잘 드러내며, 흥행에도 매우 성공한 명작이다. 특히 심리학에서 말하는 개념적이고도 추상적인 용어들이나 이론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눈앞에 그려내며 명시적으로 다루어 당시 큰 호응을 받았다. 영화 내내 무의식(꿈) 속의 행동들이 투사자에게 영햐을 끼치며 현실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잘 그려내고 있다. 때문에 주인공은 그 위험성에 대해서 익히 잘 알고 있고 - 사실 자신이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므로 -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잘할 수 없는 제안"으로 인해 인위적인 무의식의 조작을 감행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까지의 서사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당연히 다음의 생각으로 치닫게 된다.

 "무의식을 의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면, 내가 원하는데로 설정할 수 있지 않을까?"

비단 이 생각은 놀란 감독이 제기한 게 아니라, 프로이드가 무의식에 대한 통찰로 세상에 "심리학"이란 학문의 성립 가능성을 입증해낸 시점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프로이드의 주된 목적은 정신병으로 분류된 환자들의 치유나 개선에 자신의 통찰이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 시작한 일이다.) 따라서 이 질문은 그 이후 늘 우리의 무의식을 통제 가능성에 대한 많은 시도를 낳았고, 이는 본 저서의 저자에게도 해당하는 도구적 방법이다.

여기 또 하나 살펴볼 인물이 있다. 그 인물은 다름 아닌 "군주론"으로 유명한 마키아벨리 Machiaveli 이다. 지금도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 읽히며, 특히 전략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영역이나 "자기계발 自己開發"의 영역에서 매우 단골 소재로 삼는 문헌이다. 통상 "마키아벨리즘"으로 대표되는 이 사상은 일종의 실용주의 實用主義 의 한 변형으로 현재는 분류되며 언급된다. 즉,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신념"만이 현실적으로 우위에 설 수 있음을 역설力說하는 것이다. 당시로서도 꽤나 과감한 주장이었지만 꽤 호응을 받았고, 실제 당시 이탈리아의 피렌체 공화국에서 공싱적인 정책으로 한때 채택되기도 한 사상이다. 이후 그 논란의 여지는 차치하고 그 선명한 인상으로 인해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이 두 가지의 배경에서 저자는 "무의식"의 설정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이라도, 우리가 원하는 부富의 추구를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고 소개하고 있다.

2. 저자의 의도...

책의 서두에서 밝히듯이 이 책의 저자는 통상 "하와이 대저택"으로 활동하는 유투브 인플루언서의 자기 계발 서적이다. 평범한 사람으로 시작하여, 역경을 겪고 나서 깨달은 바를 위해 자기계발을 시작했으며, 이를 달성한 후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각종 동기 부여 영상으로 많은 조회수를 자랑하는 인기 유투버이다. 대중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이 저서를 발간하기에 이르렀으며, 책에서는 자신의 목표에 거의 다다렀음을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는 제목에서도 쉽게 발견되듯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 의식적인 행위를 통해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역설하고 그로 인해 부에 대한 통찰력이나 추진력을 유발하는 전략을 독자들에게 설파하고 있다. 

3. 인상적인 부분...





먼저 이 책의 저자의 주장은 거의 한 단락으로 간결하게 요약된다. 

1. 목표를 소리 내어 하루 100번씩 말하기.

2. 손으로  하루 10번 씩 100일간 쓰기.

3. 상상으로 시각화하기.

4. 감사하기

5. 노트에 목표를 적고 취침 전후로 읽어보자.

6. 1000번씩 90일간 말하기.

7. '선불 감사 하기.

8. '셀프 하이파이브' 하기

9. 작은 끌어당김 경험하기.

10.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 정리하기.

마치 성경의 십계명처럼 단순하고 명료한 열 개의 문장으로 군더더기 없이 자신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이는 일반적인 독자들에게 쉽고 단순하며 명확하게 전달하며 그 실행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저자의 전략이 엿보인다. 복잡할수록 의구심이 들고, 따라서 그 실행가능성이나 동기유발이 적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한 실전적인 방법이며, 아마도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는 독자들이 호응하기에 좋은 대목으로 보인다. - 단숨함의 미학으로 읽을 수도 있다. -

그러나 가장 중요한 대목은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의미부여"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좋아보이는 일이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 논리적, 감정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으면 일단 주목도가 떨어진다. 이는 저자의 주장에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할 여지가 있으므로, 위 핵심 주장의 앞뒤로 그 "정당성"을 부여한 구절을 몇개 소개한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당신의 무의식에 설치된 가난한 생각부터 깨끗히 삭제해야 한다." (63pp.)

"그들(일반대중)의 무의식이 부자와 자기 자신을 아예 다른 '종족'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69pp.)

"나의 현실은 계속 반복해서 듣는 말, 나 스스로 하는 말, 그리고 다른 사람이 동조하는 말에 의해 컨트롤된다." (79pp.)

"진짜 문제는 이 말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믿는다'는데 있다." (84pp.)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모른다." (115pp.)

"상상을 통해 얻어낸 당신의 긍정적인 감정은 당신의 태도를, 태도는 습관을, 습관은 무의식을 형성한다." (146pp.)

"원하는 걸 이룰 때까지 스스로를 속여라." (161pp.)

"그 간절함은 '진짜'인가" (191pp.)

"그들(위대한 예술가)은 하나같이 마치 처음부터 작품의 전체 모습을 안다는 듯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작품을 만들어냈다." (226pp.)

"지금 '이 짓'을 왜 하고 있는지 알아야 '셀프 퇴장'을 하지 않을 수 있다." (240pp.)

"피 대신 생각이 흐르게 하라." (291pp.)

소개한 문장에서도 관찰되듯이 비교적 인상적인 문장들을 곳곳에 배치하여 자신의 신뢰도를 높이며 독자들을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정서직인 접근도 빼놓지 않는다. 이성적, 논리적으로만 치우치는 주장은 감성적인 접근에 의해 매우 위협받을 수 있다. 따라서 저자는 이 부분도 놓치지 않고 성공을 위한 독자들의 마음에 감성적으로도 문장들을 남겨놓는다.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 책은 결코 학술적이지 않다. 100% 내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정수만 담았다." (15pp.)

"더 나은 삶을 욕망하라." (51pp.)

"원하는 것을 이루고 그 일상을 누리는 당신의 모습을 상상했을 때 가슴이 설레는지 점검해보라." (120pp.)

"아침에 눈 뜨자마자 '선물 감사' 하기" (209pp.)

"나 자신과 '하이파이브'하기" , "작은 끌어당김" (210~211pp.)

"경제적인 부분에서 건전한 불만족이 있다는 말은 당신에게 '욕망'이 존재함을 뜻한다." (279pp.)

"당신은 '어떤' 당신이 아니다. 그저 당신일 뿐이다." (329pp.)

"우리는 보통 언제 두려움과 무서움에 사로잡힐 까? 바로 '익숙하지 않은 것'을 할 때이다...(중략) 이는 바로 두려움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답이 있다." (332, 334pp.)

소개한 문장들에서 보듯이 독자들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는 생각들이나 불확실성을 자극하여, 확실함으로 이끌 수 있는 표현들로 주로 채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독자들에게 적절한 안배를 가해 자신의 방법론을 보다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이는 일정 부분 성공적이라 보인다.

4. 아쉬운 부분...

글의 서두에 언급한 영화 인셉션에서는 위 사진에서 보는 "토템 Toteme"이라는 물건이 등장한다.  이 물건은 자신만이 이 물건의 "비밀"을 아는 물건으로써, 무의식(꿈)과 현실의 세계가 구별이 모호해지는 조작자들이 현실과 구별하기 위해 반드시 지녀야하는 물건으로 등장한다. 즉, 이처럼 무의식의 변형은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이 방법을 채택하는 저자에게도 필연적으로 해당되는 말이다.

아무리 그 의도가 좋다하더라도 주장하는 바데로 무의식의 세계에 "의식적"으로 메스를 가하는 것은 반드시 그 부작용이 수반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즉, 원하는 성공을 이루고 난 이후의 삶에서도 지속적으로 자신의 무의식은 기존에 세팅해놓은 데로 작동하기 쉬우니, 이는 독자들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저자는 서두에서 이 책의 의도를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을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고 소개한다. 그런데 저자가 언급하는 "행복"은 의외로 소소한데서 오는 행복일수도 있고, 부의 성취를 통해서 달성하는 행복일수도 있다. 후자라면 위의 방법론이 이후의 삶에 미치는 단점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전자의 경우라면 정작 독자들이 원하는 행복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하지 못하고 흘려보낼 가능성이 농후함을 지적하고 싶다.

또한 저자는 이 책의 목표로 부의 성공을 위한 "방법론"을 제시할 뿐, 이 책으로 얻은 자세를 가지고 이후의 구체적 실현 수단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다. 물론 독자들 개개인이 강점을 가지는 분야가 다 다르고, 성취할 수 있는 결과도 제각각이니 그 부분은 독자에게 맡기는 것이라 보인다. 따라서 그 구체적인 부의 달성 "비결"이 궁금한 몇몇 독자들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 그것은 순전히 자신들의 문제로 남음을 알고나면 공허한 외침으로 느낄 성급한 독자들이 나는 눈에 선하다. 따라서 구체적인 인사이트 In-sighr를 얻고 싶은 독자들은 다른 컨텐츠를 찾아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 물론 이는 저자의 책무가 아니며, 오로지 독자들의 몫이다. -

5. 나오며...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주장과 동기화하여 한번 이 책의 방법론을 간단한 도식도 Diagram으로 정리해 보았다. (위 사진 참조.) 저자가 선정하고 이야기해주는 문장들도 나쁘지 않으나, 현재 독자들의 경향을 파악해보면 "시각화"의 필요성을 느껴서이다.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의외로 저자가 주장하는 방법론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에게는 보다 더 좋은 참고가 되길 바란다.

아울러 부의 추구, 이를 위한 욕망의 현실화를 꿈꾸는 독자들에게 좋은 지도가 될 수 있지만, 그 이후의 일도 꼭 같이 염두에 두며 이 책을 보시기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결국 이 모든 행위의 전제조건은 바로 당싱이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니까...

 

#더마인드 #하와이대저택 #웅진지식하우스 #응답하라 #응답하라7기 #응답하라서포터즈

@woongsin_rea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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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수학책 - 내 안에 숨겨진 수학 본능을 깨우는 시간
수전 다고스티노 지음, 김소정 옮김 / 해나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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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101-24-05 다정한 수학책. 수잔 다고스티노 저, 2024


서평단 및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서협찬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1. 들어가며...

"다음 대화를 읽고 지희가 가지고 있는 사탕은 몇 개인가?

은영 : 나는 7개만 더 있으면 30개가 돼.

지희 : 나는 은영이보다  9개가  더 많아." - 대한민국 초등학교 수학 교과서

위에 제시한 문제의 정답은 무엇일까? 아마도 다음과 같이 당신은 생각할 것이다.

(지희) = (은영) +9 = (30-7) + 9 = 32 (개)

답은 32개이다. 간단한 이 문제는 실제로 우리 나라 초등학교 교과서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다음의 문제를 다시 한 번 풀어보자.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을 돌보는데 하루에 4 제국 마르크가 들고, 치료를 받고 있는 정신 질환자는 300,000 명이 있다.

(a) 이 사람들을 유지하는데  전부 얼마나 비용이 들어가는가? 정답 : (         )

(b) 위 돈으로 만약 1,000 제국 마르크의 결혼 자금을 준다면  하루 당 몇 쌍이  보장되는가? 정답 : (         )

- 나치 치하, 독일 제 3 제국의 수학 교과서  (*제국 마르크 : 나치의 화폐단위)

이번에 제시한 문제의 정답은 다음과 같이 생각할 것이다.

(a) 300,000 * 4 = 1,200,000 제국 마르크

(b) 1,200,000 / 1,000 = 1,200 (쌍)

자, 정답은 하루에 1,200쌍 꼴로 신혼 부부를 보장할 수 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 어렵지도 않고, 정규 교육 과정의 초등 과목을 이수한 사람 정도면 쉽게 계산이 가능한 문제인데 정작 답을 하고 나면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게 된다. 만일 이 문제에서 밝힌 조건처럼 300,000명의 정신 질환자를 돌보는데 쓰는 비용을 신혼부부들에게 문제에서 제시한 액수로 지급한다면 매일 1,200쌍에게 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지 않은가! - 더 나아가 저들을 추방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뉘앙스도 함께 보이면서 말이다. -

이 문제는 실제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이후 성립한 독일 제 3제국의 초등학교 수학 문제의 일부이다. 당시 나치의 선전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라디오"의 대대적인 보급을 통한 대국민 선전이고, 나머지 또 하나는 이른바 "히틀러 소년단" 창설을 비롯, 학계와 교육계의 대대적인 탄압 및 교육과정 검열을 통해 나치의 선전을 아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세뇌하는 것이었다. 이 모든 작업을 통해 독일은 하나의 거대한 군사 집단이 되어버리고, 이후의 행보는 전쟁, 홀로코스트 Holocaust 로 이어지는 어마어마한 반인륜적 범죄로 나아간 것은 익히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위의 두 비교 사례에서 보듯이 수학적인 사고 과정에는 그 어떤 "가치 판단 價値判斷"도 들어가지 않고 합리적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계산의 과정과 끝난 이후에 드는 생각은 도저히 합리적으로 다다르지 못하는 결론에 쉽사리 도달할 수 있도록 교묘히 설계되어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우리는 수학은 흔히 자연 과학 중에서도 "논리의 철옹성 鐵甕城"으로 인식한다. 논리적 추론과 그 계산 결과의 신뢰성은 인종, 언어, 시대와 무관하게 동일한 공리 公理 아래, 정해진 연산 규칙을 따르면 언제든 똑같은 정답을 반복해서 도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학은 가장 신뢰하는 진리이며, 자연 법칙으로서 그 권위를 부여받고 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들게 하는 이 비극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2. 저자의 의도...



이 책 "다정한 수학"의 저자는 수학자이며 "워싱턴 포스트 Washington Post"지를 포함한 유력 매체에 다수의 글을 기고하는 과학 작가이다. 거창한 유명세와 권위를 가진 학자들과 달리, 뒤늦게 수학을 공부하여 학위를 받고, 이후 수학 교육에 투신하며 작가로 활동하고,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 서 온 다소 이색적인 경력의 학자이다. 이 책의 머릿말에 나오듯이 고등학교 시절 수학에 낙제하여 학업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수학의 매력을 발견하고 다시 도전하여 박사 학위 취득 및 교육자로서 제 2의 전성기를 맞은 개인사를 소개하고 있다. 아마도 이 책으로 미국 수학 협회 AMS 에서 수여한 "공로상"이 저자의 열정적 인생에서 제일 정점을 찍는 일이 아닐까 사료된다. 

이 책은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의 실생활에서 접할 수 있지만, 그 특유의 비호감을 가지는 수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보다 더 친근감을 형성하고, 실제 사례를 구체적으로 나열하며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지점을 지나, "감성적 emotional"으로 까지 이 학문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의도한 저서이다. 따라서 아주 쉬운 지점으로부터 시작하여 보다 더 큰 주제로 나아가고 있고, 그 과정에서 수학의 "친절함 kind" 을 표방하며 우리를 이끌고 있다. 

2. 인상적인 부분...

먼저 이 책은 쉬운 사례들로 이루어져 있다. 수학에 존재하는 많은 명제들과 골치 아픈 기호들을 배제하고,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고 간단하게 계산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명제들을 위주로 독자들에게 친근함을 내세운다. 앞서 밝혔듯이 본인의 실패한 경험을 거울삼아 너무 불친절한 소개로 흥미를 잃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실제 생활에 중요한 사례들을 하나씩 설명해가며 왜 우리가 수학을 하는 지를 독자들에게 납득시키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 중 몇몇 소 챕터들은 일반 독자들의 고정관념이나 통념을 깨고, 새로운 시각을 전달할 수 있는 명제들을 - 예를 들어 "벤포드 법칙" - 선정하여 흥미를 돋운다.

또한 자연의 아름다운 형상에 담긴 많은 기하의 정리들이나 원칙들을 직관적으로 풍부한 그림과 함께 소개하고, 그 세부 내용을 하나씩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청소년 기의 자녀를 둔 독자들이나 또는 청소년 본인들이 직관적으로 따라오기 좋도록 배려를 하고 있는 모습이 엿보인다. (그리고 같이 토론을 할 수도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기하학 幾何學 의 문제는 우리가 관찰하는 주변 환경에서 늘상 접하는 원칙이지만, 의도를 가지고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그 숨은 법칙을 관찰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많은 것들은 어떤 "형상 形狀"으로서 이 세계에 존재한다. 그 형상을 이루고 있는 원리들은 다른 자연 과학들과 원리적으로 연결이 되고, 이 자연을 바라보며 이해하려는 인간의 시도는 늘 기하학을 필요로 해왔다. 다만 소수의 훈련된 사람들이나 학자들만이 독점해 온 그 지식은 인류가 발전함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대중 사회에 퍼져나간 역사가 존재하며, 지금도 우리는 실생활에서 그 원리를 종종 활용하여 편리하게 쓰고 있음을 저자도 역설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매 소 챕터마다 저자는 질문을 하나 씩 던진다. 복습의 의미라기 보다는 해당하는 원리가 진짜로 작동하는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추가적인 간단한 문제들을 제시함으로써 수학의 실용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도전해 볼 수도 있고, 문제의 정답은 책의 후반부에 자세한 설명과 함께 실려 있다. 따라서 이 책의 독자가 함께 풀어볼 수도, 또는 생략하며 다음의 장으로 넘어갈 수도 있도록 하여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저자 본인이 흥미를 잃었을 때 겪은 심리적 위축을 고려하여 반드시 구성하고자 한 것이 포착된다. 그리고 이 책으로 공로상을 받음으로써, 학자들로부터도 이 지점을 높게 평가한 지점이 엿보인다. 

4. 아쉬운 부분...

이 책을 읽으며, 나와 함께 하는 독자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과연 따뜻한 kind 수학은 가능한가?"

안타깝게도 나는 "아니오"라고 말하고 싶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날 감정 感情 에 따라 매번 그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계산을 당신은 믿을 수 있는가? 우리가 과학, 특히 수학에 기대하는 것은 그 "명료한 객관성"이며 이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 이는 마치 "동그란 네모"를 현실의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수학은 추상 抽象 의 개념을 도구화하여 형이상학적 문제를 포함하는 객관적 진리에 가장 가까운 학문이다. 이 수학에게 본연의 의미를 배제한다면 그 근본적인 존재 이유를 제거해 버리는 일이리라. 

수학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동일한 객관성을 유지한 채 그 위치를 점할 뿐이다. 다만 문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문제"인 것이다. 그 특유의 수사와 현학적 표현에 있어, 표기를 바꾸거나 보다 쉽게 할 수 있을지언정 그 본질적인 면은 바꿀 수 없다.

그렇다면 수학에 좌절하거나, 이를 외면하는 대중들에게 이 책과 같이 감성 感性 을 불어넣는 작업이 가능한 것인가? 라는 질문이 남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답은 "그럴 수 있다"이다. 실제로 우리의 일선 교육 현장에서는 입시 위주의 문제 풀이로 모든 수학 시간을 진행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교과서의 개념들이 어떻게 도출되고, 무엇을 지향하며, 어떤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지 충분히 납득하기 전에 성급히 문제를 풀어야만 하는 강요를 당하니 좋은 기억이 생기기 힘들다. 설령 정규 교육 과정에 잘 적응한다 하더라도 수학의 어떤 것을 느끼기 이전에 그냥 지나가야 하는 통과의례 通過儀禮 로 우리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벗어나 생각해보면, 많은 나라들이 수학적 원리 자체를 전달하는데 매우 공을 들이고 있고, 교과서도 우리들이 충분히 납득가게 끔 끈임없이 노력을 하고 있다. 더욱이 우리 주변에서 수없이 일어나고 있는 많은 현상들은 자연의 법칙으로서 수학을 품고 있다. 이를 대중들에게 드러냄으로써 이해를 돕고, 더 나아가 적어도 "혐오감"은 없도록 학계에서는 노력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그런 의도에서 충분히 납득이 가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허나 한 가지 반드시 지적해야 하는 점은 있다. 수학에 있어 원리 자체에 감성을 불어넣을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떠한 대상을 다루고,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며, 우리가 어떻게 해석할지는 감성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지점에서 존재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과거 수비학 數?學에 기초한 피타고라스 학파의 설처럼 "숫자 3은 완벽한 수이다"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유사과학 類似科學"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 극단의 예로 이 글의 도입부에 소개한 나치의 사례까지도 이를 수 있다. 이는 수학사에서 여러 사례로 나타나며 쉽게 빠질 수 있는 오류이다. 따라서 그 의도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가치 판단"의 문제를 부여할 시에는 과거의 오류를 교훈 삼아 수행한다면 보다 더 대중들에게 올바른 방향으로 목적한 바를 이룰 것이다.

5. 나오며...
 

자 다시 현실로 돌아와, 앞서 본 극단적이고 끔직한 사례말고, 희망에 찬 그것을 보자.

첨부한 첫 번째 이미지는 현대 미술에서 한 위치를 차지하는 미술가 솔 르윗 Sol Lewitt, 1928~2007 의 작품이다. 통상적으로 미니멀리스트 Minimalist 로 분류되고, 개념 미술가이다. 평생 본인의 철학에 따라 누구나가 자신의 "설명서 Manual"를 읽으면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자신의 작품을 재현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제작을 하지 않는 파격적인 시도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작가이다. 이 "설명서"의 상당수는 수학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조형미와 단순미를 오브제 objet 로 삼아 설계되어 있으며, 생전에 수학의 미를 적극적으로 예술작품으로 차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 그리고 그의 작품은 이미지에서와 같이 우리에게 멋진 작품으로 남아있다. -

이와 같이 같은 도구적 이성인 "수학"을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그 결과물은 극명히 차이를 보임을 알 수 있다. 즉, 수학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위해 활용할 것인가인 "우리"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다 더 수학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어려워하지 않으며, 언제나 찾을 수 있도록 반가이 맞아주는 "친구"로서 그 위치를 설정하려는 저자의 노력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또한 대중적인 작가들 뿐만 아니라, 학계의 전문가들도 같이 공감하여 수학이라는 학문의 권위를 강압이 아닌 "친절함"으로 바꾸도록 해야만 한다. 다시 말하지만 수학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기 때문에...
 

#다정한수학책 #수잔다고스티노 #해나무 #수학 #과학 #교양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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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천재 - 루소부터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고명섭 지음 / 교양인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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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101-24-03 4 광기와 천재. 고명섭 저, 2024


서평단 및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서협찬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1. 들어가며...

"우리는 모두가  (어느 면에서) 정신병자다..." - 만프레드 뤼츠

위 문구는 독일 심리학자 만프레드 뤼츠 Manfred Lutz 의 도발적인 어록이다. 물론 문자 그대로 우리 모두가 정신병적인 병리학적 증상이 있다라기 보단,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 학문적으로 결정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 문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만큼 인간의 심리나 감성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밀기가 어려운 측면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통상적으로 우리가 어떤 인물을 "천재적이다"라고 평하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무엇이 한 사람을 모두에게서 돋보이게 하는 것인가. 과학자라면 어떤 이론의 유효함, 인문학자라면 보다 더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혜안, 예술가라면 즐거움을 주어야 할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것들을 가능케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건 "사고"의 전환내지는 남다른 방향성 아닐까?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흔하게 다루는 방식으로 남들에게 제안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다르게 다가오기는 힘들 것이다. 무언가 남다름이 있으려면 그 "독특함의 유효성"이 존재해야만 마땅할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사고가 가능한 사람들은 적어도 일반인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다시말해 사고의 방향이 남들과 달라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금 전에 거론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문제가 된다. 

과연 그들에게, 그러한 사고가 가능한 그들에게 일반인의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짐작하기 쉽다. 예를 들어, 그 유명한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화가이자 발명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자신이 관찰하고 분석한 모든 것들은 자신의 수기 노트인 codex에 남겨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알려진 노트의 많은 필사와 드로잉들은 지금도 예술적 가치와 학문적 놀라움을 전해주고 있다. 그런데 그 노트의 구절에 보면 매우 일반인들과 다른 통찰을 보여준다. 이는 지금에 와서 봐도 놀라울 정도라고 평가받는데, 당대의 일반 대중들에게는 이해될 수 없는 광인의 기록으로 비쳐지지 않았을까?

이렇듯 남다른 비범함을 사고하는 사람들은 종종 일반인들에게 이해되기 어렵다. 그래서 광기에 찬 천재의 모습은 매우 흔하게 그려지는 그들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그 광기의 내면에는 사고의 남다름에서 기인한 것들이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두 가지의 면은 실은 하나의 모습인 것이다. 이 책에서도 흔하게 관찰되는 이런 모순의 상황들을 우리가 잘 아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고, 이는 그동안의 업적에 가려진 그들의 내면의 모습을 보는 좋은 기회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2. 저자의 의도...

이 책의 저자 고명섭 작가는 전작 "생각의 요새"에 이어 지속적으로 철학에 대한 사유와 이를 소개하는 중견의 작가이다. 이번 작품은 2007년에 발간한 자신의 작품을 다시 재가공하여 발표한 작품이다. 기존 작품과 일관되게 작가 자신의 문제의식에 따라 철학자, 사상가, 정치가들을 분류하고 그들을 하나의 주제의식 아래 묶어낸 작품이다.

이번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특정 인간의 사유와 행보의 흐름이 보이는 "모순"이다. 누구도 완벽할 수 없는 우리 인간들의 삶에서 모순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보다. 통상적으로 추앙받는 위인들의 개인사를 들여다보면 적잖이 모순점들을 파악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어떤 비판의 지점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생애와 그 사람의 사고는 반드시 일치하기 어려우며, 역사는 그 불일치하는 지점을 용납한다. 이 책에 거론되는 인물들은 인류의 지적 흐름에 적잖이 족적을 남긴 사람들이며, 그들의 유산은 지금도 찬란히 빛나고 언급된다. 그러나 한가지 깨달은 것은 그 사람의 도덕성과 업적을 반드시 일치시켜서 보는 의식은 확실히 문제점이 있다. 그 어느 누구도 모든 면에서 도덕적일수는 없으며 (심지어 그 당시의 도덕률과 지금 현대의 그것이 일치하지 않기도 하고) 그가 남긴 유산으로 오롯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지점에서 작가의 문제의식과 나는 동조하는 지점이 존재하며, 다만 이 책에서 언급하듯이 그러한 것들이 사유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는 따져보아야 할 문제이다. 저자도 이 점을 머릿말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이 책을 시작하고 있다.
 

3. 인상적인 부분...

먼저 눈에 띄는 이 책의 특징은 선정한 인물들의 격상 내지는 격하를 위한 비판이 아니라는 점이다. 평생 아비의 역활을 거부한 장자크 루소, 오로지 자기 증명에 매달려 거대한 철학의 반추 지점을 만들지만 이내 스스로 부정하는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너무나도 그 악명이 높은 히틀러까지... 모두가 작가의 눈에서는 인물들의 개인사가 사유에 미치는 과정을 추적하고, 거기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지점을 포착하려 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들이 어떻게 평가받을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도 빼놓지 않고 더한다. 이는 기존의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이 사람들의 이미지에 대해 다른 각도의 조명을 제공한다. 그냥 한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그 순간의 과정에 몰두한 사람들이었고, 훗날 그것이 인류 역사에 남는 발견이었을 뿐, 그것이 마치 신의 권능도, 악마적 재능도 아닌 것임을 따라가는 것이다. 

또한 인간적인 부분을 드러냄으로써 이 사람들이 고민했던 지점을 같이 관찰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를 충분히 납득시키고 있다. 사실 선정한 인물들의 면모를 보면 하나같이 자신의 영역에서 거대한 족적을 남긴 위인들이다. 한 사람만 특정해서 다루어도 지면이 모자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가는 과감히 논의의 장을 자신의 주제의식에 맞추어 철저히 다루고 있다. 따라서 선정된 인물들에 대한 자세한 배경을 모른다 하더라도, 이 책에서 소개된 정도만 따라가도 대략적인 그 인물의 업적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아마도 이 거대한 인물들의 사상을 접하기 힘든 현대인들에게 이런 의도로 접근해서 소개를 할 수도 있는 접근법을 택하였다고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각 장에서 보는 인물들의 구성은 일대기에 가까우며 작가의 서술대로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한 인간의 조명된 역사를 관찰할 수 있다. 이 짧은 지면으로만 특정 인물의 모든 것을 판단이 가능하다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이 정도의 접근으로도 저자의 주제의식은 충분히 전달될만큼 좋은 필력을 가진건 사실이다. 이 작가의 기존 작품에서처럼 최대 강점은 서술의 호흡이 매우 짧지만, 조밀해서 빠르게 독자들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런 작가의 장점을 여전히 볼 수 있다.

4. 아쉬운 부분...

이번 작품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챕터를 나눈 기준이 여전히 자의적이고, 각 장의 유기적인 구성은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다시말해 각 장의 챕터가 독립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어,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전체 책을 다 읽고 나서 전체적인 주제의식을 느낄려면 이 인물들을 다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좀 힘들수도 있다는 말이다. 즉,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있고, 저자의 의도를 눈치챌만큼 독서의 수준이 되지 않은 독자라면, 그냥 각 소 챕터별로 단절된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또한, 소개하는 인물들의 업적에 비해 제한된 분량을 할애한 바, 실제 각 인물들의 발언이나 인용은 직접보기 어렵다. 루소의 경우, 그 사람의 주장에 동조하는지와 상관없이 명문장으로 유명하며, 실제 그 문체에 매료된 독자들도 적지 않다. 카프카 또한 독특한 서술의 구조를 자랑하는 작가이니만큼 원전의 어떤 것들을 직접 독자가 보지 않으면, 저자의 소개대로만 피상적으로 받아들일수 있는 여지가 있어 아쉬운 대목이다. 그렇지만 지면의 관계상 원전의 구절이나 인용을 넣는다면 엄청난 분량으로 말미암아 독자들의 의지를 꺾었을거라는 판단을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이러한 점은 양해를 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도 보인다.

5. 나오며...


 

다시 우리의 문제로 돌아오도록 하자. 당신이 살아가면서 모든 사고가 일관되게 진행되어 간다고 확신하는가? 살아오면서 오점 하나 없이 매 순간 최적의 판단을 한다고 자신하는가?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요즘 각광받는 AI에게나 해당될법한 이야기일 것이다. 인간은 생애 전반에 걸쳐 많은 모순된 상황에 직면한다. 설령 자신의 주관대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자신의 소신대로만 결정을 내리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여기 이 위인들도 마찬가지이다. 한 인간이었고, 사고의 남다른 지점이 있지만 그들도 매일 똑같은 상황에 직면해서 삶의 투쟁에서 살아갔을 것이다. 그들의 남겨진 업적이 거대하고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해서 그들이 생애 전반에 그렇게 살아왔다고 보는 것은 과도한 추측이다. 그들도 한 인간으로서,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안고 살아가는 사회인으로서 내릴 수 있는 한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는 먼 훗날 지금 우리를 바라보는 후세도 아마 같은 생각으로 우릴 판단할 것이다.) 다만 그들이 남긴 유산들을 우리는 계승하며 우리의 자산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단지 그뿐이다. 그들을 신의 위치로 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그들의 업적을 외면하고 폄하할수도 없는 것이다. 남다른 사고를 한 그들을 한 인간으로서 조명한 이번 작품에 공감하고, 이 기획을 한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며 이 글을 마친다.

#광기와천재 #고명섭 #교양인 #철학 #사회과학 #심리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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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에디터스 컬렉션 16
조지 오웰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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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101-24-03 : 카탈로니아 찬가. 조지 오웰 저, 2023


서평단 및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서협찬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1. 들어가며...


당신은 "내전 Civil War"에 대해 아는가?

인류가 문명을 이루기 전후로 분쟁의 역사는 늘 있어왔고, 필연적으로 그 투쟁의 방편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정치적 이유이건 경제적 이유이건 대립하는 당사자들 간의 화해와 조정이 불가능하면, 결국 남는 것은 "힘의 논리"였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걸 쉽게 목격할 수 있지 않은가... - 아마 영원히 사라지는 것을 바라는건 너무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

있어서도 안되고, 있게 되면 그 참상의 끔찍함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전쟁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추악한 전쟁은 "내전"이라고 역사가들은 종종 지적한다. 어제까지 우리편인 그들과 오늘은 갈라서 생사를 다퉈야하는 그 특유의 속성때문에 전쟁사에 있어서 내전만큼 추악한 전쟁은 없다고들 말한다.

전쟁은 생과 사를 가르는 중차대한 기로의 문제이다. 따라서 적과 나와의 투쟁에 대한 정당성 부여는 모든 전쟁에서 기본 중의 기본이다. 싸워야만 하는 이유를 우리편에게 납득시키지 못하면, 일단 전쟁 수행 의지를 꺾고 들어감은 물론 전쟁 중의 모든 감정적(도덕성을 포함) 상황을 감당할 수 없다. 따라서 전쟁의 기획자 - 내지는 입안자 - 들은 전쟁의 당위성을 우리편에게 주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게 마련이다. 다시말해, 적과 나를 구분하고, 그 싸움에 대한 명분을 제공해야만 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 비극이 시작이 되는 지점이다.

어제까지 나와 다르지 않은 그들을 타자화시켜야 하고, 감정의 이입대상이 아닌 투쟁의 대상으로 전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이데올로기적, 종교적, 경제적 등의 이유를 들어 그들을 "타도의 대상"으로 전락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작은 차이점도 놓치지 않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분을 제공하지 위한 선동이 작동하게 되고, 어느 것 하나라도 대중들에게 먹혀들어가면 그때부터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됨을 우리는 역사에서 익히 잘 보아왔다. 

이와 같이 추악한 전쟁의 이면을 모두 담은 "내전"이야말로 인간의 비극이 어디까지 나락으로 떨어지는지 보여주는 장일것이다. 이 땅의 6.25 전쟁도 그중 하나였으며 그 후유증을 지금도 청산하지 못한채 이렇게 대치하고 있지 않는가? 이와 유사한 사례로 들만한 20세기의 전쟁 가운데 "스페인 내전"을 들 수 있다. 우리와 지리적으로 먼 나라의 이야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계사에서 스페인 내전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한 국가의 내전이라고 한정하기에는 너무나 특이한 지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먼저 표면적으로는 파시즘과 공화파와의 대립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념의 대립이 정말 다채롭다. 공산주의를 비롯 아나키즘, 공화주의 등 20세기를 수놓았던 대표적 이념들로 세례를 받은 정치 세력이 "의용군"형태로 참전했기 때문이다. 둘째로 파시스트 정권을 지원한 독일, 이탈리아와 공화파를 지원한 소련간의 대립이 이후 엄청난 파국을 불러올 "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 격인 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치는 여기서 신무기의 성능 시험이나 실전 능력의 축적을 통해 이후 2차 대전의 초석을 쌓게된다.)

여기서 특이할만한 점은 파시스트 세력들의 막대한 지원에 맞서 전 세계 각국에서 "의용군" 형태로 정말 다양한 세력들이 참전했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내전, 즉 집안싸움을 두고 국제전의 양상을 띄게 된것도 모자라, 자발적으로 맞서 싸우는 의용군의 명분을 내세우게 되었다는 지점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이나 매체들이 이 지점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고, 지금 소개할려는 조지 오웰의 책, "카탈로니아 찬가'도 대표적인 작품으로 우리에게 기억된다.

2. 저자의 의도...

저자인 조지 오웰 George Orwell 은 "동물농장", "1984"들의 걸작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이다.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영국 작가들중에 단연코 상위권을 자랑하는 작가이며, 그 특유의 냉소주의와 비판적인 문체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이다. 이 작품, 카탈로니아 찬가는 비교적 초기작으로써 본인이 직접 의용군으로 참전하여 느낀 점을 르포 형식을 빌어 발간한 작품이다. 따라서 책의 곳곳에서 생동감있고, 현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며, 저널리스트 경력에 맞게 각국의 정세와 이해 관계, 그리고 반응들을 다각도로 보여주며 이 전쟁의 참삼을 알리는데 널리 기여한 작품이기도 하다.

조지 오웰의 정치적 성향은 흔히들 반파시스트, 반자본주의 성향으로 분류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리버럴리스트, 즉 자유주의자에 가깝다고 평하고 싶다. 그 이유는 작품 세계에서 보여주는 전체주의 - 파시즘이나 사회주의를 포함하여 - 에 대한 극렬한 냉소 및 비판의 지점이 그 이념적 모순이나 실현 가능성에 기초한 비판이 아니라, 전체적인 권력의 집중으로 인한 모순의 상황들을 주로 비판하는 지점때문이다. 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에서도 그 맥락을 같이 하는 지점이 발견된다. 즉, 거대 독점 자본주의의 횡포에 맞서 합리적인 지점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고 나아가 사회적으로도 견제해야 함을 피력하는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오웰은 "거대한 권력의 횡포"를 가장 견제하고 이를 비판하는데 평생을 바쳐왔다고 말하고 싶다. 이 작품에서도 그런 성향을 숨기지 않으며, 이 작품의 성공 이후로 자신의 방향성을 확고히 하고, 이후 언급한 명작들을 쏟아내게 된다.

3. 인상적인 부분...

이 작품 카탈로니아 찬가의 가장 큰 미덕은 그 생생한 현장감에 있다. 피상적으로 멀리서 바라보며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부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는 다양한 구조적 모순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바데로 정리하고 있다. 당시 의용군은 정말 이념의 스펙트럼이 다양하여, 지금에 와서 보면 화합하기 불가능할 정도의 세력들이 의용군의 간판 아래 함께 공존하는 기이함을 보인다. 그러므로 그 수면 아래서 벌어지는 세력 간의 대립과 모순은 정말 다양했고, 조지 오웰은 이를 놓치지않고 이 작품에서 낯낯히 기록한다. 공산주의자 내에서도 볼셰키비 주의자들과 트로츠키 파와의 해묵은 갈등, 아나키스트들의 일당 독재에 대한 공격, 공화주의자들의 현실적인 무능함들을 가감없이 그려내며 한낱 "혁명"의 이름으로 가려진 이들의 비현실주의를 아주 냉소적으로 조롱한다. (훗날 이 지점은 논란의 대상이 된다.) 

또한, 앞서 이야기한 모순의 모습을 드러냄에 있어 "블랙 코메디"의 형식을 차용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일단 제목부터가 스페인 내전의 참혹함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외면당한 카탈루냐 지방을 빌려 "카탈로니아 찬가"라고 쓰고 있다. 이 모든 모순점들을 드러내며 모든 투쟁의 명분을 시궁창으로 끌고한 그 현실에 대해 찬가라는 반어법적 수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책의 곳곳에서도 지극히 냉소적으로 조롱하며, 쓴 웃음을 짓게만드는 대목을 의도적으로 배치한 흔적이 포착된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내전의 추악하고도 비참한 현실에 대비하여 웃음을 잃지 않게되는 비극적 모순을 작가의 의도에 따라 느끼게 된다. 실제로도 이 책을 읽는 나를 포함하여 많은 독자들이 "재미있다"라고 표현할만큼 그 의도는 명백히 관찰되며,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신문 저널기자 출신답게 그 당시 각국의 반응과 의의를 아주 생생하고도 다채롭게 분석하고 있다. 실제 스페인 내전에 대해 사전 지식이 없다라더라도 이 책의 부록으로 분류된 챕터만을 읽어보면 그 당시의 분위기를 능히 짐작하게끔 잘 정리해놓았다. 다만 초판본에 이 챕터는 중간의 한 장으로 기획되어서 출간되었지만, 위에서 언급한 블랙코디디로 점철된 내용의 흐름과 너무도 상충하여 작가 본인도 이를 못마땅해 한 나머지 재판본에는 따로 분류하여 실었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이 장은 이 책의 주된 의도와 상관없이 생략되거나, 따로 존재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지 오웰은 반드시 이 장을 포함시키고자 했다. 개인적으로 그 이유를 추측해 보건데 일종의 "부채 의식"이 작용하지 않았나 보인다. 다시말해 자신이 목격한 그 참혹한 현장을 단지 희화화한다는 비판의 여지를 작가 본인 스스로도 감지하고,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반드시 이 장이 필요했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 그럼으로써 직접 체험한 동료들의 비참한 죽음에 대한 마음의 빚을 털어낼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4. 아쉬운 부분...

작품의 재미로만 보면 이 카탈로니아 찬가는 충분히 그 역활을 다한다. 적덩히 위트도 있으며, 지적이고 냉소적인 거리감도 유지할 수 있으니 밀이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은 그 비극의 참상이 우리가 생각하는것 이상으로 깊다. 이 전쟁 이후 프랑코 총통은 완전히 정권을 장악하고 무려 40년 가까이 철권을 휘두르는 독재 정권을 수립한다. 이후 무수한 학살과 탄압, 부정부패는 두고두고 스페인을 잠식하며 지금도 이 당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의 문제는 조지 오웰의 작품에서 과연 희화화될 정도의 문제인가라는 지점은 여전히 논란을 낳고 있다. 만일 누군가 우리 한반도에서 벌어진 6.25의 비극을 블랙 코메디로 다룬다면 과연 당신을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마찬가지의 정서적 반응이 당연히 지식인들 사이에 존재했고, 특히 진보진영의 공격은 매우 극렬했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문학작품이고, 예술의 영역에서 다루지 못할 것은 없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 큰 피를 흘린 사건이다. 따라서 이 지점의 비판은 조지 오웰 본인이 피할 수 없는 지점이고, 작가도 두고두고 고민했다는 여담이다.

또한 이 책에서 주된 분노의 지점인 "혁명"의 모순에 대해 나는 반드시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실제로 조지 오웰은 이 작품 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 - 동물농장 같은 - 에서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해온 경력이 있다. 합리주의적이자 현실주의자인 오웰의 특성 상, 혁명의 전후에 벌어지는 많은 일화들은 상식적으로 모순덩어리로 보이는게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치밀하게 계산하고, 냉정하게 그 명분을 따져 대처함으로써 보다 그 현실 가능성을 높인다면 그 대의적 명분이 좀더 높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은 그의 논리대로라면 타당한 지적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동의하지 않는 지점은 결코 혁명은 그렇게 계산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혁명이란 구 체제의 모순에서 비롯되며, 그 모순으로부터 켭켭히 쌓인 "감정"의 지점으로부터 그 힘을 얻게 된다. 즉, 도저히 지금의 현실로는 내 삶이 망가진다는 느낌을 참을 수 없을때 비로소 안정을 깨고, 변화의 길을 택하는 것이다. 따라서 혁명은 정치적 "감정"의 극단적 표현이 반드시 수반될 수 밖에 업고, 이는 예측이 가능한 영역이 될 수 없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이유로 촉발되어 어떠한 모습으로 전개되어갈 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주의적인 비판은 결과론적인 것이지, 그 당시의 유효한 주요 담론으로 채택되기 어렵다. 당장의 정치적 감정을 쏟아낸 대중들에게 비젼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냉소적 비판을 가한다면, 대부분 외면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5. 나오며...

이제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보자. 스페인 내전의 상흔은 지금도 스페인 사회에서 큰 사회문제로 여전히 남아있다. 혼란의 와중에 벌어진 대규모 학살과 이후 이어진 기나긴 독재,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부정부패와 또다른 인권 탄압의 문제는 덮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그 상처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나긴 세월동안 이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채, 스페인은 이른바 "침묵의 협약"으로 조용히 망각을 택했다. 즉, 지금은 해결할 수 없으니 일단 잊자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를 말하고 싶어하고, 그 피해 당사자들의 기억은 지속된다. 위에 올린 그림처럼 스페인 내전 중 벌어진 게르니카 학살의 참상을 피카소가 작품으로 표현하여 지금도 추앙받는 명작으로 그 기억을 담아내고 있으니, 그 상흔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 땅의 현실 또한 너무나도 닯아있다. 해방 이후 극렬한 좌우 대립이 남긴 끝없는 폭력의 역사와 급기야 6.25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생사를 가르고 그 피해를 고스란히 겪었다. 게다가 그 당시 벌어진 많은 학살들은 여전히 대중들에게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며, 지금도 좌우대립의 구시대적 모순이 지속되고 있다. 일례로 제주 4.3 사건의 경우, 그 참혹함은 스페인 내전을 능가함에도 여전히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서야 국가가 그들을 기리기 위해 추모공원을 설립하고, 몇몇 뜻있는 학자들이 그 참상을 고말하는 학술 자료들을 발간하고 있지만, 내가 본 기록들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만일 당신이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정부가 발행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기록을 참고하면 나의 이 지적이 왜 유효한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너무나도 그 기록이 참혹하여 차마 지면에 필설할 수 없을 정도의 참혹함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도 스페인의 그들처럼 망각의 길을 택했다. 그리하여 똑같이 역사의 장에 그 상처를 그냥 안고 가는 모순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나는 과연 이 미봉책이 언제까지 가능할지 가늠할 수 없다. 세월이 흘러 보다 더 자유로워진 세상, 또 지금의 기억을 보다 더 거리를 두고 다룰 수 있는 세대가 지금 우리가 잊기로 한 이 사건들을 보면서 그걸 망각하기로 한 우리들을 무어라 평가할지 두렵다. 훗날 이 조지 오웰처럼 누군가 우리는 냉소적으로 비아냥대는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한번쯤 생각해야 한다고 느끼며 이 책을 덮는다.

 

#카탈로니아찬가 #조지오웰 #문예출판사 #스페인내전 #문학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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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클래식 수업 8 - 차이콥스키, 겨울날의 찬란한 감성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8
민은기 지음, 강한 그림 / 사회평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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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101-24-02 :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8. 차이코프스키 , 민은기 저, 2023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서협찬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1. 들어가며...


 

빌리 부친 : "...사내 자식이  계집애처럼 무슨 발레냐? 먹고 살기도 힘든 이 마당에...하라는 복싱은 안하고 이게 무슨 짓이야?"

빌리 : (보란듯이 춤을 추며) "아빠!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춤을 춰야되요! 보시라구요!"

(이어서 바로 빌리의 뺩을 때린다. 그러나 빌리는 지지않고 계속 춤을 춘다.)

당신은 혹시 영화 "빌리 엘리어트(2000)"를 기억하는가? 국내에서도 꽤나 언급이 되었고, 뮤지컬로도 제작되어 상당한 인기를 얻었떤 작품이다. 못보신 분들을 위해 대략의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배경은 80년대 '대처리즘'으로 상징되는 최악의 불경기로 신음하던 영국의 한 탄광이 나온다. 대규모 해고와 파업으로 혼란한 시기이고, 남성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인 환경에서 비교적 연약한 주인공인 빌리는 뜻하지 않게 자신이 '춤'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사내다운 운동인 복싱을 배우러 간 체육관 한 켠에서 발레를 연습중이던 여학생들을 보고 말이다.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에 고뇌하지만, 춤을 추는 순간의 기쁨과 자신의 운명의 이끌림으로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가족들 몰래 계속 춤을 연습한다. 급기야 더이상 배울게 없을 정도로 성장한 빌리는 왕립 발레학교에 오디션을 보러 가게 되지만, 아버지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 - 위 장면이 바로 그 대목에서 나오는 장면이다. - 우여곡절 끝에 고향을 떠나고 발레리노로서 승승장구한 빌리는 훗날 "백조의 호수"에서 당당히 주연 발레리노가 된다. 이때까지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아들의 공연을 처음 초대되어 보러오게 된다. 발레리노로서 성장한 아들이 찬란하게 허공을 향해 비상하는 장면에서 '아..."하는 깊은 찬사와 탄식을 보내며 영화는 끝난다. (사진참조)

나는 이 책 "난처한 클래식 수업 - 차이코프스키"를 읽으면서 줄곧 이 영화가 떠올랐다. 땀냄새와 매케한 연기가 가득한 그 마초적인 탄광촌에서 한줄기 꽃처럼 빌리가 피어났고, 얼마나 자신과 맞지 않는 환경에서 고민했을까 말이다. 게다가 극중에서 성적 소수자임을 짐작케하는 장면도 나오니 말이다. 또한 그런 아이를 둔 아비의 심정과 결국 아이의 꿈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아비의 모습 - 파업을 하는 동료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직장으로 복귀하는 - 도 함께 말이다.

그런데 내가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맨 마지막 장면이다. 아무리 삶이 시궁창스럽고 너무 견디기 힘들다 하더라도, 창공을 향해 완벽한 한 마리의 백조가 되어 날아오르는 빌리의 모습을 보고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탄식이 나오는 그 장면...!

우리에게 예술이란 그런 것이리라. 현실의 유무와 상관없이, 어떤 예술적 경이를 보면 누구나가 보편적으로 느끼는 그 경외감이야말로 예술의 본질 아닐까? 한 순간이라도 이 더러운 세상에 한 줄기 성스러운 "아우라"가 느껴지니 말이다. 우리 인류가 지적 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자기 표현의 수단이자 사회적 활동의 산물인 예술은 늘 우리 곁에 존재해왔으며,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거라 나는 생각한다. 이는 인간 감성의 가장 밑바닥에 내재한 욕망을 위로하고, 그것을 현재의 세상으로 끌어내는 본능에 가까운 행위양식이니 말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아쉬움도 존재한다. '고전음악' 이라는 거창한 단어에 짓눌린 저 본능의 욕구...일종의 '권위'로 말미암은 본질의 왜곡은 가끔 내게 참을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클래식 음악이건 대중음악이건 관계없이 이 양식들은 우리의 내면을 위로하고, 감정을 표현하게 해주며 때로는 삶의 빛을 안겨주는 그 고유의 성격을 느끼지 못하는 안타까움말이다. - 아무리 문외한이어도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의 도입부만 들어도 그 장중한 전율을 느끼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 따라서 이 책과 같이 간간히 나오는 대중 클래식 서적에 대해 반가움을 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2. 저자의 의도...

이 책의 저자인 민은기 교수는 한국의 1세대 음악가에 해당하는 학자이다. 기존의 클래식 저변에 자리잡은 선입견을 타파하고, 대중 저변에 좀더 친숙한 클래식의 이미지를 설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이력이 있다. 다수의 저서와 다양한 매체의 기고를 통해 대중입문격인 클래식의 소개부터 작품의 해설까지 방대한 작업을 해왔으며, 최근에는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에도 출연하여 그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진행을 해온 바 있는 교수이다.

이 채 "난처한 클래식 수업" 시리즈는 그러한 민은기 교수의 노력의 결실물이라 보인다. 그동안 수없이 난립한 대중 클래식 소개서와 달리, 현재 대중들에게 보다 더 적합하고 와닿을 수 있는 면을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역작이다. 매 권마다 소개하는 작곡가 - 내지는 음악사조 - 에 대해 꼼꼼하고도 지루하지 않게 대화체로 진행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매 장마다 소개한 내용을 정리하여 핵심적인 부분을 기억하기 쉽게 해준다. 또한 가장 중요한 작곡가의 음악작품을 유투브나 각종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도록 잘 소개를 해놓고 있어 따라가기 쉽게 해놓았다. 

3. 인상적인 부분...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쉬운 해설서"라는 점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문체가 딱딱하지 않고, 대화체로 구성이 되어 있어 마치 옆에서 친근하게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듯한 인상을 받도록 배려해놓았다. 클래식이라는 권위와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그 본질인 음악에 다가가기 위해 외피를 좀더 친숙하게 한 배려는 좋은 시도로 보인다. 또한 그러면서도 다소 난잡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을 미리 의식하여 매 장마다 해당 챕터에서 강조하는 주요 포인트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페이지만 보아도 대략 이 장에서 작가가 의도한 내용을 쉽게 짐작할 수 있고, 미쳐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쳐온 부분에 대해 다시금 상기시키는 장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가장 큰 부분인 음악에 대해서도 매우 세심한 배려가 되어 있다. 해당 음악이 언급되는 절 옆에 주석이나 기존의 장식보다는 QR코드를 이용하여 찾아보기 쉽고, 빠르게 해당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배치해놓아, 현대의 독자들에게 보다더 편리하게 저자의 소개를 따라올 수 있도록 친절함까지 엿보이고 있다. 아마도 근래들어 본 대중 클래식 소개서 중에 이토록 철저히 독자들을 배려한 입문서가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매우 정교하게 잘 짜여진 구성이 돋보이는 저서이다.

또한 차이코프스키라는 작곡가에 대해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좋은 시도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들 우리가 전기로 접하는 상당수의 작곡가들은 어릴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는다던지, 혹은 정규교육에 준하는 훈련을 거쳐 음악가로서 성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차이코프스키는 전혀 다른 인생의 행적을 초창기에 보인다. 가계로부터가 음악과는 거리가 다소 있었고, 실제 법학도로서 학업을 지속했었다. 차이코프스키카 살던 당시 제정 러시아의 후반에 해당하며 법률가로써의 삶을 시작한 다소 이색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적 운명에 이끌린 차이코프스키는 결국 자신의 새업을 그만두고, 늦깍이 학생으로써 처음 음악적 삶을 시작하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 혹은 전설이 시작된다. - 늦게 시작한 음악공부에도 불구하고 단기간 내에 놀랍도록 무섭게 성장하여 그 어렵다던 '교향곡'을 2년만에 작곡하며 천재성을 단숨에 드러내게 된다. 이를 일찍이 감지한 루빈시테인과의 만남과 이후 이어지는 음악적 행보는 전설의 서막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교향곡이나 발레곡의 초연이 실패한 경우도 많았지만, 꾸준하게 작품들을 내놓으며 자신을 뛰어넘는 곡들을 생산해내게 되고 이후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인생의 2막에서 자신이 하고자하는 모든 것을 이룬 상태였지만, 비극이 찾아오게 된다. 

지금은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차이코프스키는 '성소수자'였던 것이었다! 그로 인한 것인지는 알기 힘들지만 결혼 생활의 파경, 그리고 연이은 남자 제자들과의 염문으로 말미암아 인생에 있어 큰 굴곡을 남기게 된다. 지금도 남성중심적인 사회분위기로 유명한 러시아인데, 그 당시 제정시대의 러시아란 그야말로 성소수자였던 차이코프스키에게는 창살없는 감옥과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 실제로 당시 법적으로도 금지되었다. - 연이은 대중적 성공과 드높아가는 명성과는 달리 자신의 사생활은 비참함에 가까우리라는 것은 짐작코도 남는다. 결국 이것이 문제가 되어 공식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한 시점이 기록에 존재한다. 그리고 찾아오는 급작스러운 죽음... - 공식적으로는 "콜레라"로 기록되어 있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다. - 이 모든 것들이 그의 찬란한 음악적 유산과 대비되어 상대적으로 묻힌 감이 없잖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부분들은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논란을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적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지점을 여과없이 잘 제공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잘 다뤄지기 어려운 주제이기도 하지만, 인간 차이코프스키를 보다 더 깊게 이해하고, 그로 인한 음악적 세계의 특징적인 부분들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지점이라고 평소 공감하던바이기에 이 대목은 매우 돋보였다.

마지막으로 사실 당대의 러시아 민중들에게 주류로 간주되던 소위 "러시아 5인조"의 언급도 좋은 시도였다고 본다. 실제로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적인 면이 없잖아 있지만, 앞서 언급한 민족주의 악파하고도 거리가 상당히 있다. 오히려 당시의 평가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너무 서구적'이란 비판을 자주 받았고, 러시아 국민악파와의 관계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따라서 현재의 인식과 다르게 차이코프스키는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으며, 초반기 대중적 인지도도 러시아 국내보다는 바깥에서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 지금 러시아 발레의 정수이며 위대한 작곡가로 칭송받는 평가와는 상당히 다르지 않은가. - 이러한 맥락에서 당시의 평가나 음악적 사조 측면에서 러시아 5인조와의 비교도 분명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과감히 끌어들여 간략하게나마 소개를 함으로써 보다 더 입체적으로 차이코프스키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아마도 학자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고 언급했을수도 있고, 아니면 차이코프스키의 모든 면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측면에서의 시도로 보이며, 이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는 바이다.

4. 아쉬운 부분...

앞서 설명했던 이 책의 미덕인 "대중입문서"라는 점은 분명 강점이지만, 반대로 이 책의 한계이기도 하다. 차이코프스키의 작품들은 워낙 잘 알려져 있고, 일반 대중들에게 선호되는 작품들도 많기 마련이라 사전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독자라면 본 책의 내용이 그리 새로운 것은 많지 않을 수도 있다. 게다가 이 책에서 음악적으로, 기교적으로 깊게 들어간 부분은 거의 없으며 이는 식상함으로 다가올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한다. 따라서 더 깊은 논의를 원하는 독자들은 이 책이 심심하게도 느껴질수도 있지만, 이 책은 철저하게 대중입문서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납득할만하다. 

또한 차이코프스키의 인생에서 중반기를 차지하는 일화의 조명도 좀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음악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인 "폰 메크 부인"과의 후원관계가 그것이다. 현재도 많은 연구가 나오고 있으며, 대중적으로도 꽤 알려진 이 기묘한 관계를 - 평생 플라토닉한 후원 - 둘러싼 무수한 가설이 존재하고, 이는 차이코프스키 음악생애에 중요한 지점에 해당하는 사건이므로 마땅히 중요하게 다뤄야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단순한 치정극으로 보기에 이 에피소드는 미스테리한 부분이 존재하고, 정규 학자로서 추측만이 난무하는 이 대목을 본격적으로 다루기에는 적절치 못했으리라. 따라서 현 작품에서의 비중 정도로 끝내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차이코프스키의 정수를 전달함에 있어,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지 않는가하는 지적을 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기에,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단연코 "우아함"이다. 교향곡이나 협주곡, 그리고 잘 알려진 "1812년 서곡"조차도 그 음악적 형식미에서 어쩔 수 없이 광대한 멜로디와 악기 구성을 보기 쉽지만, 실제로 그의 선율은 매우 서정적이며 결코 선을 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남성적인 면으로 느껴지기에는 좀 다른 측면이 감지된다. - 베토벤이나 리햐르트 슈트라우스와 비교해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 웅장한 대목에서도 결코 우아함을 잃지 않으며, 완전히 폭주하는 부분은 차이코프스키 작품 전반에 걸쳐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발레곡이나 왈츠를 차용한 멜로디 부분에서 유독 차이코프스키의 강점은 독보적이다. 여성적인 우아함을 남성임에도 가장 잘 구사하며, 심미적인 면을 너무도 잘 포착하는 것은 대표적인 그의 특징이다. - 혹자는 이런 부분에서 그의 성소수자적 성향과도 관련짓기도 한다. - 실제로도 매우 연약하고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로 기록에 나오며, 이는 그의 작품에서 숨김없이 드러난다고 본다. 따라서 그의 이러한 성격이 당대의 시대적 배경에서 얼마나 인간적으로 고뇌한 부분이 존재했으리라는 짐작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의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분명 존재하지만 이 책에서 그 비중만큼 다루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대목이긴 하지만 그의 인생사 전반을 다루고 다양한 측면을 할애해야하는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수긍은 가는 대목이다. 

5. 나오며...

다시 돌아와 글의 초반부에 언급한 "빌리 엘리어트"로 돌아가보자. 결말부에 해당하는 "백조의 호수"는 매튜 본 경이 재해석한 작품이 등장한다. 이 작품이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유는 어찌보면 차이코프스키의 특징과 연결된 부분이 존재하지 않은가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성소수자인 매튜 본 경 스스로가 기존의 이 작품을 남성 발레로 완전히 재해석한 부분이다!

흔히들 머릿속에 떠올리는 여성 발레리나의 여리여리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우아한 남성들의 육체의 향연으로 바꾼 것이다. - 빌리가 바로 이 무대의 주인공인 이유가 느껴지지 않는가. - 전혀 어울리지 않을거라는 편견을 보란듯이 비틀어서 남성의 육체도 얼마든지 고혹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그 무대는 당시에 파격에 가까웠다. 마치 그 고지식한 빌리의 아버지가 마지막에 비상하는 아들의 유려한 몸동작에 깊은 탄식을 지를 수 밖에 없도록 하는 그 장면이 우리의 반응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이 매튜 본 경의 백조의 호수는 매우 활발하게 공연되고 있으며, 대중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흔히들 예술은 그 당대의 생각을 반영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니체도 언급했듯이 "예술은 언제가 대중들에게 경계를 묻는 존재여야 한다"는 견해가 존재한다. 즉 당대의 편견과 소수의 혁신적인 시도로 인해 큰 변화를 줄 수도 있고, 그럼으로써 또다른 장의 표현을 가능케한 전례는 늘 존재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우리가 보아온 예술의 행보이다. 즉, 그 표현의 한계를 누군가가 임의로 설정할 수도 없으며,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표현된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현실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예술로 받아들이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현대의 예술의 가능성은 전례없이 그 경계를 무한히 확장하고도 있다. 만일 차이코프스키가 현대에 태어났다면 그의 정체성과 예술적 감각을 승화시킬 기회는 좀더 다양하지 않았을까하는 추측도 해본다. 그러나 역사에 가정은 없는 법...당대의 분위기에서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시도를 해서 우리에게 영원히 남을 작품들을 남겨주었다. 이것만으로도 고생한 그에게 경의를 표하며, 이제는 편히 안식을 취할 것이라고 나는 위로를 건네고자 한다. 우리 인류 역사에 그만큼 위대한 작품을 남긴 그에게 그 정도의 존경의 표현은 과하지 않다고 보변서 말이다. 이토록 위대한 작곡가를 쉽게 설명해준 저자에게도 심심한 감사의 말을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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