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
김현 지음, 산제이 릴라 반살리 외 각본 / 북스퀘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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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끔씩 신문 사회면을 휩쓸고 가는 이슈가 '안락사'이다. 안락사라고도 하고, 요즘은 존엄사라고도 하는 이 문제는 전신마비 환자나 식물인간 처럼 의식불명으로 누워 있는 환자들이나 가족들에게 한번쯤 고민해보는 주제일 것이다. 이런 환자는 기본적인 인간적인 삶을 누리지 못하는 고통과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수 없는 삶속에서 인간답지 않다고 생각해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또한 그의 가족들은 경제적인 면에서나 환자를 돌보아야 된다는 육체적인 제약이 고통으로 수반되는 문제들이다. 아무리 보험을 잘 들어 놓았다고 해도 어느 시점에서는 경제적인 면에서 부담을 느껴 가족이 환자를 죽이는 사건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그런 고통을 주는 환자들도 삶이 인간답다고는 할수 없을 것이다.

 

이런 안락사 문제를 다루고 있는 좋은 작품이 등장했다. 청원이라는 영화가 일단 먼저 상영되었었고, 관객들에게 많은 감동과 생각거리를 제공했던 영화였던 것 같다. 사실 영화를 보지 못했던 나로서는 사진으로나마 상상할수 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소설을 읽고 난후 느끼는 감동이 영화로 제현되는 장면들을 충분히 연상해 볼수는 있다. 김현이라는 작가가 영화를 소설화 시킨 <청원>~ 메말랐던 감정에 고요하게 잔물결을 일으키는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원작이 영화의 각본인 만큼 영화를 통해 보여지는 장면과 대화로 상세한 심리 묘사와 배경묘사를 해 나야 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텐데, 영화의 메세지를 충분히 살린 탓인지 등장인물의 말 한마디 한마디와 부연 설명의 묘사들이 좋은 글귀가 되는 부분이 상당수 보인다.

 

인도 최고의 마술사로 전성기를 누리던 이튼은 14년전의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고 만다. 그 후 12년 동안 자신을 헌신적으로 간병해온 간호사 소피아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고, 그런 소피아도 이튼에게 연민을 넘어 사랑의 감정을 키운다. 하지만 이튼은 14년동안의 고통을 마감할 <안락사>에 대한 청원을 해달라고 친구 변호사인 데비아니에게 소송을 재기해달라고 부탁한다. 소중한 생명을 인간이 어찌할수 없다는 종교적인 문제를 떠나서 자신이 행복해지고 싶어 죽음을 당당히 선택한다고 이튼은 주장한다. 옆에서 지켜본 지인들도 그것은 다 공감하지만 법적인 문제가 걸려 있다. 안락사 문제를 일부 유럽 나라에서는 단편적으로 허용하는 국가들도 있지만 아직도 논란의 소지를 가지고 있는 뜨거운 감자이기도 하다. 그런 문제를 이 영화에서 다루는 이유는 바로 이들의 고통을 한번 뒤돌아 봐달라는 메세지가 보여진다.

 

35 "안락사라고 하지! 요즘엔 존엄사라고 하던가? 들어봤을 텐데? 문자 그대로 안락하고 존엄하게 가겠다는 건데 뭐가 문제지?"

 

이런 식으로 항변해보는 이튼~ 그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몸을 움직일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은 스스로 자살이라는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데, 이튼은 그럴수도 없는 입장이다. <지긋지긋한 육신의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어.>라는 말로 자신의 고통을 대변하고 있다.

 

마술이라는 멋진 소재를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팍팍한 현실세을 뛰어넘어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마법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사실로 가슴 벅찬 생을 살았던 이튼. 그런 그가 , 라디오 디제이를 하면서 그의 삶을 책으로 써내기도 하고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게 정신적 지주였던 그가 안락사를 꿈꾼다니 이율배반적인 행동이라 비난을 하지만 결국은 그의 삶을 이해한 많은 이들은 그의 청원에 심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나도 안락사에 반대이지만 감정적인 면에서는 그의 안락사 청원에 충분히 공감이 가는 것은 어쩔수 없는 사실이다. 안락사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고통이 끝났다는 기쁨에 행복해하는 이튼을 보면서 마음이 짠해지는 것은 감정이 있는 인간이라면 느껴질 것이다.

 

256 제가 오늘 행복한건, 고통이 어제로 끝났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고통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그래서 웃을수 잇는 겁니다. 전 이제 행복하게 떠날 겁니다."

 

261 .....인생은 무척 짧지만 열심히 살면 길어질 수 있어요. 그러니 틀을 깨세요. 빨리 용서하고, 진실로 사랑하고, 즐거웠다면 후회하지 마세요.

 

죽어가는 순간까지 아름다운 마술사 이튼은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에 대해 고민하면서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틀을 깨세요. 빨리 용서하고, 진실로 사랑하고, 즐거웠다면 후회하지 마세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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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친한 친구들 스토리콜렉터 4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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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에게 죽음을>로 베스터 셀러 작가 대열에 오른 <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두번째 작품이었던 <너무 친한 친구들>을 읽었다. 타우누스 시리즈 네번째 작품인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로 먼저 우리 나라에 알려진 저자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노이하우스의 머리 속이 정말 궁금할 정도로 40대의 아줌마가 이런 다양한 직업과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에 놀람을 금할수 없다. 미스터리 소설의 중요한 장치의 하나로 몇몇의 살인 사건과 사건 정황들이 결국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스토리로 묶어 낼수 있는 상상력을 들수 있다. 상상력이지만 현실의 뉴스에서도 일어나는 사건들을 소설의 이야기 소재와 사랑, 욕망 등의 등장인물의 심리와 맞물리게 이끌어 내는 재주는 흔한 능력이 아닐 터이다.

독일의 타우누스 지역의 어느 한 동물원, 오펠 동물원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발목과 손목이 잘려 있는 잔인한 살인 사건이 터지고, 피해자가 여러 사람들로 부터 원한을 사고 있던 <환경운동가><동물보호가>등으로 활약하던 사람이었다. 피해자 파울리는 당연히 정치계나 동물원 담당자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던 처라 여러 사람들이 용의자 선상에 놓여 있게 된다. 관련된 사람들을 한사람 한사람씩 탐문 해가는 강력계 형사 반장인 보덴슈타인과 열혈 여형사 피아 키르히호프는 그 사건과 연관된 사람들의 욕망과 본능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 욕망들이 파울리를 죽게 할수 있었던 동기로 작용하면서 정작 누가 진짜 범인인지 쉽게 알아 내지 못하는 난국에 처한다. 피아 형사는 자신이 납치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용의자 처럼 보이는 아리따운 청년에게 유혹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성적이고 냉철한 여형사로 이름이 나있는 피아 형사도 감정에 흔들릴수 있는 사람이고 여자로 비쳐지기도 한다.

 

아버지 대의 친했던 사람들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신들의 욕망으로 친구를 미워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그런 정황이 그들의 아들대에 이르러서도 너무도 친했던 친구들 사이가 서로 싸우고 죽이는 관계로 흘러 갈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게도 느껴진다. 이 소설의 중요 등장인물에 속하는 아름다운 청년 루카스의 고백을 들어 보면 행복은 물질에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123 "물질적 소유는 행복을 주지 못해요. 이건 어렸을 때 이미 깨달았어요. 우리 부모님이나 친구들의 부모님을 보면 알수 있죠. 돈으로 뭔든 살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더라구요."

 

루카스는 정작 갖고 싶어 할때의 설레임이 소유했을 때의 불행보다 훨씬 더 값진 것이라는 철학적인 이야기도 하고 있다. 어떤 것에 대한 욕망이 이루어 버리고 난 후 공허감으로 사람들을 상실감에 빠뜨릴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비극은 온갖 욕망이 초래하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인간의 욕망이 삶의 활기찬 에너지를 생산하기도 하고, 인간 문명을 발전 시키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부정할수는 없다. 지나친 기대는 오히려 실망을 가질수 있으므로 물질적인 소유에 대한 갈망을 경계의 대상으로 삼으라는 메세지가 미스터리 소설인 이 작품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은 내용일 것이다. 범인의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으로 친했던 친구들 마저 죽이는 행동은 어찌 보면 강박관념적인 정신병에서 초래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본능에 항상 내면하고 있는 심리이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성자들은 무소유에 대한 메세지를 강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때문일 것이다.

행복은 절대 물질적 소유에 있지 않다. 몇개월 전에 읽은 <서머싯 모음>의 <면도날>에서 주인공 래리는 물질적 삶에서 느끼지 못한 행복과 즐거움을 정신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라 말했던 것이 떠오른다.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자만에 빠져 있는 현대인들이 진정 추구해야 될 것은 무엇인지 , 행복은 어디에서 찾고 발견해야 될 것인지 가벼운 미스터리 소설을 읽고 느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만큼 여러 사람과 소통하고 그곳에서 사소한 정신적인 행복을 발견할수 있다고 강독하고 있는 광고인 <박웅현>씨의 울림이 피비린내 나는 살인 사건에서 발견하는 것이 너무 뜬금없는 역설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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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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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에서 작가의 전달 메세지가 너무 충격적이고, 강력한 것이어서 <구병모>라는 작가를 한동안 잊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간으로 나온 <아가미>를 기필코 읽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했었었다. 결국 읽게 되었고,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만큼의 충격은 아니지만 작가의 메세지는 강력하게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약간의 흠을 잡자면 아직도 청소년 문학이라는 단위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그 내용이 풍부하지 않았던 것이 아쉬웠다. 위저드 베이커리야 청소년 문학상 대상에 빛나는 분량의 소설 내용이어서 청소년에게나 성인에게나 모두 강력하게 내용이 와닿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 문학상 수준에서 벗어난 좀더 폭넓은 분량과 더욱 깊은 내용을 담았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은 평가를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를 제외하고는 인어남자라는 소재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와 동화인 <인어공주>를 연상케 하고, 여러가지 판타지를 상상할수 있어 참신했다.

 

<아가미>는 극적인 상황에 인간이 놓였을때 살고자 하는 강인한 생명력이 만들어낸 새로운 생명체의 이야기이다. 잊을 법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이야기 이다. 자살하려고 아버지가 아이를 데리고 뛰어든 호수에서 아가미를 가지고 호수에서 살아난 <곤>이 살아가는 방법이 묘사되어 있다.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구해내고, 사고로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해내는 등의 영웅적인 행동을 하지만 곤은 영웅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헐리우드에서 항상 만들어지는 영웅의 이야기에 비해 식상하지 않아 괜찮았다.

 

곤의 삶은 처참할 정도로 인간들의 호기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를 지켜준 노인과 강하와 또한 해류라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호기심에서 벗어나 살아가게 된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생명체로서의 강인한 생명력 일것이다.

 

P.62 그들은 모두 살아 있었고, 살아 있는 건 언제 어디서라도 그걸 부르는 자에 의해 다른 이름을 가질수 있었으며, 곤에게 의미 있는 건 그것을 뭐라고 부르는지가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오래도록 또는 눈부시게 살아 숨쉬는지였다.

 

곤이라는 이름은 어린이 문고판의 <장자>에서 큰 물고기에 비유되는 鯤. 물고기 곤으로 지어 졌는데, 이 이름은 강하라는 본인이 물과 연관된 이름을 가진 곤보다 5살 많은 소년에게서 붙혀진 이름이다. 그리고 또다른 물과 관련된 이름의 해류라는 여자가 등장한다. 다리에서 핸드폰을 주우려다 강에 빠진 해류를 곤이 구해 내면서 부터 프롤로그가 시작된다. 작가는 물과 관련된 모든 한자어를 동원하여 이들 이름을 지어 내고 소설의 분위기에 걸맞게 녹아내려 이름들이 익숙해져 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노인과 강하는 홍수라는 거대한 물에 의해 쓰러져 가 버린다. 이런 저러한 다양한 사건속에서도 곤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물과 함께 살아 삶을 유지해 나가면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아 헤맨다.

 

어류와 양서류로 포유류로 진화되어 가면서 잃어 버렸던 퇴화된 흔적인 아가미가 곤의 귀와 목사이에 상처러럼 자리잡고 있다. 그 아가미는 물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명력으로 표현되어 지고 있다. 인어의 표상인 하체의 긴 물고기 꼬리가 진화되어 두다리로 살아가는 곤의 다리는 누구를 위해 얻은 다리일까하는 의문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건 단순히 아이들의 동심에 의해 생각되어진

<인어공주>의 이야기와 다분히 귀결되어진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노인과 강하를 찾아 헤매다 어린소녀의 비치볼과 신발을 찾아다 준 곤의 모습을 보면서 어린 소녀는 이러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p. 187 엄마, 내가 인어를 봤다니까? 그 아저씨는 분명 바다 같이 궁전에 사는 인어 왕자님일거야, 그런데 마녀가 준 약을 먹고 두 다리가 생긴거지. 인어 왕자님은 누구를 위해 다리를 얻은 걸까? 그러면 역시 언젠가는 물거품이 되어서 아침 햇살에 부서져 버릴까?

 

<인어공주>의 마지막 부분에서 받았던 여운이 아가미에서 일치하면서 남기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를 어느정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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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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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라는 생소한 작가의 작품 <대성당>이다. 12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단편집으로 그의 대표작이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대성당>이다. 이 두편이 카버가 소중히 여기는 단편작이라 한다. 사실 나는 이 단편들을 읽으면서 알렝드 보통의 에세이집을 읽는 듯한 느낌에 빠져 들었다. 알렝드 보통의 책보다는 좀 쉽지만, 일상의 리얼리즘은 그에 못지 않은 것 같다. 리얼리즘이 너무 강하다 보면 좀 철학적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일상의 세밀한 묘사속에 작가 자신의 내면과 철학을 반영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12편의 작품 중에 결말이 애매하게 끝을 내고 있어 짚은 여운을 남기고 있는 작품들이 있다. <깃털들> <보전> <비타민> <조심> 등을 읽고 나면 한국의 미술에서 느끼는 여백의 느낌이 너무 커서 그 여운을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단순한 그 현상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무언가 어떤 메세지를 주고자 하는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레이먼드 카버를 수식하는 말들이 많은데,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 체호프 정신을 계승한 작가> 로 불린다. 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 그 상황에 대한 해석의 어려움이 밀려온다. 그러니 체호프를 계승한 작가는 맞는 듯 하다. 고전스럽거나 문학상들에 버금가는 작품들을 보면 단순하게 줄거리가 진행되는 추리 소설과는 다르게 깊은 철학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는 경향이 많다. 당췌 무슨 메세지를 주려는지 단순한 이해로는 힘들다. 그래서 어려워 보이고, 무언가 있어 보이는 작품들이 고전이라는 이름아래, 더 각광을 받고 있는 지 모르겠다. 사실 흔히 요즘의 베스트셀러들은 읽기 쉬운 반면에 쉽게 잊혀지는 경향이 많다. 그것은 너무 쉬운 데서 오는 가벼움 때문에 머리속에서 쉽게 증발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어렵다고 생각했던 몇 작품에 비해 카버가 소중히 여기는 <별것도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과 <대성당>은 메세지가 쉽게 다가와서 오히려 감동이 전해져 온다. 아이를 교통사고로 잃어 버리고 당황스럽고 힘든 부부에게 빵집 주인의 케이크를 찾아 가라는 전화는 화를 돋우게 된다. 그런 빵집을 찾은 부부는 오히려 빵집 주인이 만든 빵을 먹으면서 빵집 주인의 이야기 속에서 풍겨져 나오는 솔직함 때문에 공감을 하게 된다. 그 공감이 죽은 아들을 인정하게 되고 마음의 안정을 찾아 가게 되는 계기로 그려지고 있다.

141 "내가 갓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니는 게 좋겠소. 이럴때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그가 말했다.

142 그들은 지치고 화가 나 있었지만, 빵집 주인이 하고 싶어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빵집 주인이 외로움에 대해서, 중년을 지나면서 자신에게 찾아온 회한과 무력감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을 잃어 가장 심한 상실감에는 오히려 가장 일상적인 행동, 즉 빵을 먹는 따위의 일이 오히려 도움이 되고, 자신만이 느끼는 상실감외에도 중년 빵집 주인의 회한과 무력감을 알아가자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는 단순한 생활의 진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거창한 <대성당>에서 벌어지는 어떤 일들을 떠올린다면 오산일 가능성이 많은 <대성당>~ 맹인 친구를 둔 아내가 이상해 보이고, 그 맹인을 초대해서 하룻밤 같이 지내는 동안 전혀 다른 세계에 살것 같은 맹인의 세계에 주인공도 같이 빠져 들게 되어 공감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그것도 맹인과 손을 맞잡고 그려보는 대성당의 그림속에서..... 이야기 화자인 '나'는 생소한 맹인에게 텔레비젼에서 보여주는 대성당에 대한 이야기를 말로 표현해 주고 있다. 하지만 말로 표현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대성당의 모습을 알고 싶어 하는 맹인 로버트의 제안으로 손을 맞잡은 ' 나'는 눈을 뜨고 대성당 그림을 그리다 눈을 감고 맹인의 처지에서 그리게 된다. 그러면서 나타나는 동질감에 '나'는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라는 말로 공감을 표현한다.

 344 텔레비젼에서 대성당 하나가 나왔다. 그러더니 오랫동안 천천히 또다른 성당을 비추었다. 마침내 화면은 벽날개와 구름에 닿을 듯 치솟은 첨탑이 있는, 파리의 그 유명한 대성당으로 바뀌었다.

 353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

 카버의 단편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이혼을 했거나 알콜 중독자 거나 실직을 당한 , 어찌보면 우울하고 스산한 생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인물들의 행동과 주변 배경의 묘사가 섬세하여 소설의 결말은 오히려 <종소리 처럼 긴 여운>을 주는 묘한 매력을 품고 있다. 이런 필체에 헤밍웨이, 체호프와 유사한 찬사를 보내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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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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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 씨의 소설 중 내가 읽은 두번째 소설 <고령화 가족>이다. 평균나이 49세의 인생 실패자들만 모여 든 가족의 이야기이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젊은 시절, 깡패였던 형님인 오함마가 교도소로 떠나 갔고, 여동생 미연이가 취직했다고 집을 떠나가고 마지막 나 영화감독이 결혼하면서 떠나갔다. 그렇게 떨어져서 살던 세남매가 인생낙오자, 파산자, 이혼자가 되어 다시 한집에서 뭉쳤다. 그들이 엮어 내는 이야기라 너무나 현실적이서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였지만 의외로 가슴이 쏙쏙 와닿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런 고령화 가족이 모여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갈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작가의 전개 능력을 지켜 보기로 하고 계속 읽어 갔다.

 

일흔 살이 넘은 화장품 판매를 하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실패자가 되어 돌아온 세남매에게 야단은 커녕< 이보다 더 힘들때도 살아 왔다>면서 <몸만 성하면 괜찮다>는 어머니의 가치관에 따라 모여살게 된다. 그런데 이들 가족 관계의 막장 드라마 같은 내용이 쏙쏙 밝혀 지는데.... 친형으로만 알아왔던 깡패 오함마가 이복형제였음이 알려지고, 친여동생인줄 알았던 여동생 조차 어머니가 바람펴서 낳은 이부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주인공은 경악한다. 이들의 막장 드라마는 도대체 어디 까지 일까? 일흔의 어머니한테 애인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어지고, 이  중절모의 노인이 여동생 미연의 생부임이 또 밝혀지고, 미연의 세번째 결혼에 드디어 등장하게 된다. 여동생 미연의 인생도 그녀의 바람끼로 인해 두번의 이혼과 세번의 결혼식이 있게 되고, 미연의 딸 민경의 등장과 함께 두 삼촌들과의 아이러니한 에피소드가 펼쳐져 나간다. 변태성욕자라고 칭해지는 형인 오함마가 폭력, 절도, 강간 등으로 교도소에 끊임없이 드나 들었던 경력 답게 조카인 민경의 팬티를 가지고 수음하는 장면이 목격되어 한바탕 난리가 일어나고, 돈이 궁한 주인공도 조카 민경에게 삥뜯기 까지 하게 된다. 그런 가족들이 싫어 가출한 민경과 더블어 일어나는 소녀들의 연쇄 강간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가족들은 애가 탄다. 그런 민경을 찾기 위해 나선 오함마가 결국 찾아 내고, 같이 찾으러 나섰다가 선수를 뺏긴 주인공은 무안해 한다. 이들 형제는 <스팅> 이라는 영화 처럼 범죄 사기극을 벌여 오함마는 미용실 수자씨와 함께 캄보디아로 도주하고, 그 뒷일을 치르느라 <저수지의 개들>이라는 영화를 한판 찍으면서 깡패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우리의 주인공  오감독의 이야기로 , 영화같은 이야기는 극에 달한다. 폭력에 의해 죽음의 경계를 오가던 오감독은 옛 여자 후배인 <캐서린>과의 재회로 새로운 사랑을 얻기에 이른다.

 

5가족의 캐릭터 한사람 한사람 모두 특이하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가장 신비주의에 감춰져 있던 일흔살의 어머니의 삶이 드러나게 되는게 절정에 와서 알려 지게 된다. 그저 생활력 강하고 허영심이 강한 보수적인 노인으로만 보이던 어머니가 불륜을 저지르고 불륜의 씨앗인 미연을 데리고 와서 키우고, 그 생활을 용인한 아버지와 피 한방울 안섞인 오함마를 키워 낸 어머니, 도대체 이 가족의 끈은 어떻게 이리 질기게 연결이 되어 있는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이다. 그렇게 미워 하던 오함마를 위해 죽도록 두들겨 맞으면서도 형의 행방을 입 다물었던 오감독의 행동도, 조카인 민경이 버릇 없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가출한 민경을 찾아 떠나려는 삼촌들의 행동도 모두 그들만의 끈끈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방귀 냄새 풍기고, 디룩디룩 먹으면서 살만 찌는 형일지라도, 화냥끼가 있어 여러 남자와 붙어 먹은 여동생일지라도, 담배 꼬나 물고 씨발 이라는 욕을 달고 사는 조카일지라도 그들에게는 혈육을 넘어선 그 무엇인가로 단단히 연결 되어 있었던 것이다. 고령화 가족이라고 불쌍하다고, 꼴 사납다고 생각 할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도 의리와 사랑이 있고, 그들만의 세계가 있어 <헤밍웨이>처럼 권총을 머리에 대고 자살하지 않는 한 삶은 멈추지 않고 계속 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로 헤밍웨이의 전집에 대한 관심이 쏟아 나고, 별 흥미가 없었던 범죄 영화들이 눈에 쏙쏙 들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책 제목이 영화 제목이 이 소설의 부제목이 되어 있어 지루 한줄 모르고 읽게 된다. 그리고 너무도 현실적이서 귀에 쏙쏙 들어 오는 욕찌러기와 변태 같은 성적인 이야기도 흥미 유발의 촉진제로 작용한다.

 

천명관씨는 <고래>에서 판타지한 이야기로 사람을 매혹 시켰으며 <고령화 가족>에서는 너무도 현실적인 내용으로 스토리 속으로 빨려 들게 만들고 있다. 구구절절하게 더 말이 필요치 않고 한번 읽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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