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신화
쟈크 브로스 지음, 주향은 옮김 / 이학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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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사실상 전 우주적 몽상의 가장 적합한 기반인 것 같다. 왜냐하면 나무는 인간의 의식을 포착할 수 있는 길이요. 우주에 생기를 부여하는 생명의통로이기 때문이다. 대립되는 두 개의 무한을 서로 연결시키는 동시에 상반되는 의미를 갖는 대칭적인 두 심연인,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어두운 지하의물질과 접근할 수 없을 만큼 빛나는 에테르가 서로 결합하는 나무 앞에서 인간은 꿈을 꾼다. 묵묵히 서 있는 나무 줄기에 몸을 기대면 인간은 나무에 동화되어 그 내적인 움직임을 들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북아시아인들이 우주목으로 여겼던 전나무 대신 이곳에서는 어째서 자작나무가 우주목의 역할을 하는 것일까? 분명 자작나무의 키가 훨씬 컸기 때문은 아니다. 베툴라 베르코사Betula verrucosa Ehrh.‘는 25미터를 넘지못하고 ‘베툴라 부브세켄스Betula pubsecens‘ 는 그보다 조금 작아서 15~20미터 정도이다. 그리고 전나무의 수명이 적어도 700년은 되는 반면 자작나무는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거의 100여 년을 넘지 못한다. 그러나 섬세함과 우아함, 그리고 정상을 향해 뻗는 순수함, 은빛 도는 백색 껍질의 아름다움 등등, 자작나무는 모든 전승이 인정하고 있는 여러 특징을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자작나무는 본질적으로 빛의 나무인 것이다.

 게르만의 신화에서 자작나무는 벼락과 전쟁의 신인 도나르-토르의 나무였 
다. 이 신은 북유럽, 특히 노르웨이에서는 오딘보다도 더 힘이 센 최고의 신 으로 간주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러시아의 민속에서도 자작나무는 중요한역할을 담당했다. 켈트족이나 북슬라브인들에게서와 마찬가지로 게르만-스칸디나비아인들이나 알타이인들에게서도 자작나무의 속성들과 관련된 믿음 은 거의 동일하다. 다알이 수집한 러시아의 속담들에 따르면 자작나무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역할을 한다. 즉, 자작나무는 세상에 빚을 주고, 분쟁을 중재하며, 병자들을 치유하고, 마지막으로는 더러움을 제거한다. 이는 자 작나무의 네 가지 주된 용도와도 일치한다. 

한때 신으로 숭앙 받던 존재들은 중세에도 여전히 숲 속에 숨어살았다. 교회는 한번도 그들 모두를 몰아내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분명 교회가 그들 중일부를 기독교로 개종시켜 성인으로 만들고, 또 일부는 "그리스도교적 후광"
을 씌워 모호한 모습으로 바꾸긴 했지만, 그들은 살아남았다. 그 수는 엄청나게 많았으며 이들 중 몇몇은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였다. 발은 염소처럼 생기고, 몸에는 털이 박혀 있었으며, 머리에 뿔이 있는 사바의 사탄은 바로 위대한 신 판Pan 이었다. 

사탄이 된 판 신은 그리스도교 시대에 매우 위험한 존재로 여겨졌다. 판의영역에 침입한 은둔자들은 판의 술책과 ‘계략embúches‘ 에 걸려들기 쉬운 조건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첫 번째 위협 대상이었다. 계략이라는 용어는 악마의 함정과 간교한 수작을 지칭하기 위해 종종 사용되던 종교적인 어휘로서,
지금의 논의에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매복embuscade‘ 이라는 말이, 나무를 뜻하는 bosco에서 파생한 이탈리아어 imboscare에서 유래한 것처럼, embuches라는 단어는 나무를 의미하는 ‘장작buche‘ 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고행자들로 하여금 모임을 결성하여 은둔자들의 공동체를구성하게 한 이유들 중의 하나가 있다. 결국 은둔자들은 숲의 거의 대부분을장악했으며, 결코 사라지지 않고 항상 존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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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신화
쟈크 브로스 지음, 주향은 옮김 / 이학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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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한건 산책하다 만난 어르신 때문이다.
아직도 정정하신 어르신은 언덕 위 당수나무아래 앉아 계셨다.
나무는 다치고 말라가고 있었다.
나무가 많이 상했네요. 라고 입을 떼자 어르신이 안타까움 그득한 눈으로 나무를 꼼꼼하게 훑으시며 대답하셨다.
와 아이라. 내 시집 올 때만 해도 무성하고 크다큼한게 훤훤장부 같았니라.
나무가 커서 당수나무가 된건가요?
뭐라카노? 크다꼬 된기 아이라 영험해가 그런기다.
영험하다고요?
니 그 저 골짝에 사는 탁씨 알재?
마을 유지시잖아요.
그래. 그 집이가 우예 그리 잘됐나카믄 다 이 당수낭구 덕이니라. 포항인강? 어데라카드노? 거서 보따리 한나 들고 마을에 와가 사는기 아이었다. 묵는거나 있나 싶게 빼짝 골아가 허청허청 댕깄다. 우야든둥 묵고 살아야카니께네 배를 타야지 우야겠노? 그집 마누라가 아침 저녁으로 당수낭구아래 반듯허니 상을 채리고 백일 치성을 안드맀나?
그랬드이 낭구가 감복했는가 도이 모이고 턱허니 배를 사드만 사흘들이로 고래를 잡아오드라 아이가. 열마리는 족히 잡았을끼라. 그 덕에 저집이 지금이 있는기라.
아..
그 뿐이가? 느그 시어마시도 딸래미 하나 점지해주시라고 치성 드려가 느그 시누 낳은기라. 몰랐재?
정말요?
그람. 지금이사 다들 배때기에 기름칠허고 사니께네 고기 잡으러 나가는 이도 엄꼬 하지만서도 낭구를 이리 섭섭하게 하믄 안되는기라. 태풍에 다 엎어진 배에서 낭구가 살린 목심이 한나 두나가 아닌데..다른동네 사람 다 죽었다고 곡소리가 넘어와도 우리동네는 다 살아오고 그랬니라.
아..

나무와 사람의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사람의 수보다 많은 나무는 사람의 이야기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겠다. 그저 ‘나무‘라고 통칭되는 서로다른 얼굴과 이름과 신화가 다시 궁금해진다.

얼핏 사람들의 일상적인 관심들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탐구는 기원에 있어서 궁극적으로 레비-스트로스와 일치하고 있다. 왜냐하면 "천지 창조로부터 인간을 고립시켰던 서양의 휴머니즘은 인간에게서 보호색을박탈해 버렸다. 그 순간부터 인간은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더 이상 알지 못하게 되고, 스스로를 파괴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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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일반판) 문학동네 시인선 2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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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내 눈은 그곳에 있었고
과거에도 너의 눈은 내 눈 속에 있어서
우리의 여관인 자연은 우리들의 눈으로
땅 밑에 물 밑에 어두운 등불을 켜두었다.
컴컴한 곳에서 아주 작은 빛이 나올 때
너의 눈빛 그 속에 나는 있다.
미약한 약속의 생이었다. 
실핏줄처럼 가는 약속의 등불이었다.

(너의 눈 속에 나는 있다. 중에서)

사막을 건너본 달 같은 바람의 맛
울 수 없었던 나날을 숨죽여 보냈던 파꽃의 맛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을 본 양
나의 눈썹은 파르르 떨렸네

늦은 저녁이었어
꽃다발을 보내기에도
누군가 죽었다는 편지를 받기에도 너무 늦은 저녁
찬 물새가 툭 하늘에서 떨어지던 그 시간

(찬 물새,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것을 본 양. 중에서)

난 존재를 안고 있는 허당이었어요.


너는 중얼거렸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차 소리가 났다 잎새들이 바깥에서 지고 있었다.

너는 중얼거렸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난 존재를 안고 있는 허당이었어요.

단 한 번도 뿌리와 소통을 해보지 않은 나뭇잎

을 수도 없었다 울기에는 너무 낡은 정열이었다

뿌리에서 떠나 다시 뿌리를 덮어주는 나뭇잎

(전문)

웃을 수도 없었다 웃기에는 너무 오랜 정열이었다.

사막에 대해서 아는 바가 조금 있다. 아마도 작열하는 미
래 황폐한 미래를 위해 이곳은 다른 곳보다 망각이 먼저 오
고 가장 오래 머물고 망각의 혀를 사랑하여 느린 태양의 행
진을 즐긴다. 오직 내비게이션만을 믿고 달리는 태양이 지
배하는 사막의 나날을 위해 록커들이 불렀던 노래를 심장에등꽃처럼 단 턴테이블을 소금벽이 있는 동굴에 걸어두고 싶다. 어느 타임머신이 저 노래를 들었으면 한다. 그 노래는
오직 타임머신만의 미래이므로,


(사막에 그린 얼굴 2008. 중에서)

여기는 이국의 수도 비가 온 지 십 년도 넘어 되었다네
이 도시의 연인들은 헤어진 다음에야 결혼하지
이 도시의 제사장은 아들을 의해 물속으로 들어가고
제 시체가 물에 떠오를 때까지 기다린다네
푸른 구역에는 대추야자나무들 거꾸로 서 있고
그들은 무지, 무직, 라고 아비의 시체는 말하네 
아무리 내가 저 몸을 이 생으로 삼고 있지만 저 몸이 죽은 후
 물에 떠오를지 아닐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리하여 
이국의 수도에서 제사장은 언제나 유죄

(여기는 이국의 수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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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방영된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인기가 있었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미실‘이라는 이름이 옮겨다녔다. 그 사극의 마지막회에서 비담이라는 인물이 선덕여왕을 찾아간다. 피투성이가 된 채 생각한다.
‘덕만까지 이십 보‘, 쓰러졌다 일어서며 다시 ‘덕만까지 십 보‘..
그 장면이 뭐라고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 녀가 떠나기 열흘 전.
이라고 말하고 싶었나보다. 이미 그녀는 고대의 폐허 속으로 떠난 걸 알면서도 해마다 그 이름을 부르면 희미하게 웃으며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따끈한 모래처럼 다녀갈 것 같다.
살았다는 흔적을 돌판에 새긴 것도 아니고 언덕에 묻어두지도 않았지만 그녀는 우리에게 (혹은 나에게) 소중한 폐허다.

투병중임에도 발굴의 현장에 있던 그녀는 긴 시간과 사람의 이야기를 찾았을까? 아니면 세상에 미처 이르지 못한 잔소리를 묻었을까?

멀뚱히 달력을 보다. 어? 벌써 일 년이 지나간건가?
열흘이면..
이런 생각 속에 ‘허수경‘을 부른다.
그녀는 신화처럼 슬쩍 다녀가겠지..

문헌학이 증언하는수메르어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셈어 계통의 차용어들, 행정 문서 속에 등장하는 인도게르만어 계통에 속하는 인명들은 성을 넘어 들어와 있던 타인의 자취이다. 이 타인의 자취를 자신의 어머니에 속하는 언어권으로 들어앉히는 일은 고대인들이 그 당시 발견했던, 관용의 정치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계속 이동을 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류를 호모모빌리쿠스ilomomobilicus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인류의 생물학적인 근본 자연 가운데 하나를 고향 떠나기로 간주하기도 한다.
고향을 떠나는 일은 많은 이의 살아남기 위한 전략 가운데 하나이다. 살아남기 위하여 뿌리를 떠나는 고전적이고도 수없이 되풀이된 이 행태는, 그러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단 하나의 행태만은 아니다. 떠나온 쪽을 향하여 계속 눈길을 돌리는 것도 또한 고전적인 행태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나는 참담해졌다. 아무도 나를 데리러 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 나는 언제나 혼자 이 바람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 나는그 순간, 그 여인이 그렇게도 부러웠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 가진 단 하나의 구체적인 느낌이었다.

이 신화 속에서 타인은 외부에서 내부를 위협하는 존재일 뿐 아니라 내부가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가진 존재로 등장한다. 그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는 것, 이 거대한 군사적인 힘이 필요한 정치 행위를 실제로 옮기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타인을 받아들이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타인 이데올로기‘
를 그들의 사회 속에서 생필품으로 삼아야 했다. 

어떤 의미에서, 편견과 사실 사이에 어쩌면 진실이 어슬렁거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진실은 깊숙이 모자를 눌러쓰고 편견의 수관성 앞에도 사실의 객관성 앞에도 얼굴을 잘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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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도시는 누군가가 오래된 잊힘에서 그 도시를 불러내면서 새롭게 태어난다. 도시로서는 아무런 기능을 할 수 없으나 폐허 도시라는 이름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미 그리스 건축을 공부했고 동방 폐허도시 여러 곳을 발굴한 적이 있던 콜데바이는 바빌론이라는 거대한 고대 도시를 폐허에서 이렇게 불러낸다. 발굴을 하는 자에게폐허 도시는 잊힌 도시가 아니다. 자신의 환상 속에서 움직이고자신을 구속하는 살아 있는 현재이다. 

기록자가 절대 화자인 고대인들의 글쓰기는 강력한 위계질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한 기록자가 사실 전부를 지배하고 있는이 태도에는 글쓰기, 라는 것이 주술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고대적인 인식에서 비롯되며 그 주술의 힘을 타인하고 나누지 않으려는 혼자서 말하는 자‘ 를 수없이 태어나게 했다.

 봄빛이 아련한 그 바닷속에는 새 바다풀이 돋아나고있었다. 할머니는 바닷빛을 한없이 들여다보았다. 그러고서 문득나를 바라보았다.
"니 그, 바다 때깔, 보나, 니가 글을 쓸 줄 알게 되몬 그 때깔 이바구 먼저 써다고."
나는 그 순간 할머니가 보던 바닷빛을 내 가슴에 끌어넣은 것같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손으로 기록하지 못하는 아직 고대에 머물러 있던 할머니가 바라보던 바닷빛을, 바닷빛을 그토록 들여다보는 삶의 한순간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고고학적인 사실, 이라는 거창한 말 속에는 발굴의 우연이라는작은 괄호가 언제나 들어 있기 마련이다. 어떤 유적터는 다른 유적터보다 많은 유물을 안고 있으며 또 어떤 유적터는 자신의 과거를 발설하는 아무런 유물을 전해주지 않는다. 아무리 찬란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발견되지 않은 과거는 고고학적인 사실로 들어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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