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미러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영국드라마다.
오래전 방영되었던 환상특급과 비슷한. 특별한 에피소드들이 그 내용을 이룬다.
블랙 미러의 내용을 기반으로 철학적 고찰을 끌어가는 방식이 자연스럽다.
간혹 억지로 꿰어맞추는 듯한 책들도 있었다. 그런 책들을 읽고나면 늘 뒷맛이 썼다. xx로 인문하기. oo로 읽는 철학 같은 이름을 가진 책들이거나 자기계발서라고 분류되는 책들에서 그 빈도는 더 잦았다.
그래서 큰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자연스럽다‘.
매끄럽게 이어지는 서사와 그것으로부터 끌어내는 철학적 사유가 과하지 않고 수긍이 되며 생각에 빠지게 한다.
중고등학생정도의 자녀가 있다면 같이 읽어보는것도 좋겠다.
어쩌면 주타겟이 그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철학이 쉬울 수는 없다. 그래서 쉬운 철학 같은 제목들을 신뢰하지 못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철학적 논지들을 제시하며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그것으로부터 읽을 거리들을 다시 찾아보게한다.
덕분에 플라톤을 다시 읽을 계획을 세운다.

신선한 표지와 ‘자연스럽게‘ 읽힌다는 -가독성이 좋다 라는 말로 대체하기에는 결이 좀 다른- 점에서 이 책은 강점이 있다.

주말에 블랙 미러 몰아보기를 해야겠다.
팝콘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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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9-09-27 2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주일에 한편씩 블랙미러를 보고 있는데, 왠만한 영화보다 훨씬 좋더라구요. 그래서 아껴보고 있어요.^^

나타샤 2019-09-27 22:50   좋아요 0 | URL
그렇죠. 다락에 숨겨둔 알사탕처럼 하나씩 아껴보게 되요.^^
 

사랑-권리-연대라는 세 가지 인정을 통해 각 개인은 비로소한 공동체의 완전한 구성원이 되고 공동체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지요. 반면 사회 갈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개인들이 사랑, 권리, 연대라는 인정을 모두 박탈당한 채 타자에게 무시나 모욕을 당할 때 일어납니다. 인정받지 못할 때 개인은 투쟁에 나섭니다. 자유롭게 욕구를 분출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연대에서 배제당할 때 ‘분노‘는 투쟁을추진하는 동기가 됩니다. 동양에서 맹자는 큰 화(大怒)와 ‘작은화(小怒)를 얘기했는데요, 투쟁으로서의 분노라면 큰 화에 해당하지만 일상의 분노는 작은 화입니다. 작은 화는 이롭지 않지만 큰 화는 내면 낼수록 이롭습니다. 싫음의 감정이 가진 유익한 힘입니다.

혐오 발언을 가르는 핵심은 그 발언이 차별을 재생산하고,상처를 주고, 배제와 고립을 낳느냐에 있습니다

대항 발언을 낳지 않는 혐오 발언은차별을 재생산하고 공고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침묵과 무시가 대안일 수는 없습니다. 

니체는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영원이라고 하더라도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이며, 우리는 이 순간에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우리 운명을 사랑하면서 말이죠.

다시 치료와 향상의 주제로 되돌아갑니다. 치료가 평등주의적 목표였다면 향상은 분명 엘리트주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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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검은 거울은 빛을 반사하는 게 아니라 빨아들여서
머금고 있습니다. 철학사에서 거울이 지니고 있었던 무구한청정성을 〈블랙 미러>는 ‘꺼버립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지 못하고, 빛을 잃어버린 것이죠. 현실을 비춰주며 반성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도리어 악의 기운을 뿜어낸다고 할까요?
실제로 거울 감(鑑)에서 빛을 상징하는 ‘쇠 금(金) 변을 빼면
‘감시할 감(監)이 됩니다. 감시하고, 감시당하는 감옥인 셈이죠. <블랙 미러>는 거울이 가진 좋고 따뜻한 빛(우리가 스스로를돌아볼 수 있게 도와주는 성찰의 빛)을 빼버리고 오로지 응시만이 남아버린 차가운 감옥의 거울을 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최면에 빠지고, 언론은 같은 뉴스만을 계속 확대재생산하죠. 반면 테러범은 그런 총리와 관중을 바라보며 비웃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관중이 환호와 호기심으로 스펙터클의 시간에 갇힌 동안 아무도 ‘리얼타임을 인지하지 못하는상황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시선 고정 효과를 부정적으로 사용하면 ‘음모 이론‘이 됩니다. 

스스로 스펙터클에 갇힌 것을인식하고, 그것이 우리를 바보로 만든다는 것을 안다면 스펙터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죠. 그것을 초인지 (MeCognition)라고 합니다. 선동되거나 휘둘리지 않고 미디어를 이용하는 능력, 즉 ‘미디어 리터러시‘ (media literacy)를 키우는 것이앞으로 더 중요해질 거라 봅니다.

 그런 집단적 현상은 물론 사회 통합의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에밀 뒤르켐은 이를집합적 감격‘(collective effervescence)이라고 지칭했죠.  동양 사상에서‘대동의 의미도 이와 같고요. 하지만 오늘날엔 그역할을 스펙터클‘이 하고 있다고 이 작품은 말하는 것 같습니다. 스펙터클한 시간이 갖는 엄청난 몰입력과 단결력을 국가에 빗대어 설명한 것이죠.

미국 철학자 마사 너스바움은 『혐오와 수치심이란 책에서 "혐오와 수치심은 때론 인간에게 바람직한 역할을 하지만, 인간이 동물적이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배제하려 들기에 위험한 감정"이라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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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기석의 시집 ‘국어선생은 달팽이‘가 복간되어 나왔다. 걷는사람 출판사 의 복간시집시리즈..
시집이 있었다. 누군가 빌려갔는데 돌아오지 않은 채 절판이 되어 아쉬워했었다.
점점 짧아지는 절판/품절. 책의 유통기한이란게 거의 유제품급이다.
태풍이 불던 날.함기석의 시산문을 꺼내 읽다가 생각이 났다.
중고라도 사볼까 싶어 뒤짐질(요즘 뒤짐질이 트랜드다)을 하다보니 복간본이 나와 있다.
그럼 그렇지. 있어야 할 것은 사라졌다가도 다시 나타나는거야.
수학을 전공한것도 아니고 대단한 수학자도 아니지만 수학을 업으로 삼고 있어서 그런가 함기석의 시는 잘 읽히고 재밌고 기발하며 심오하다.
불편할 수 있을만큼 도발적이며 공격적이기도 한 시들도 있지만 타협을 배우지 못한 ‘소년‘의 적극적 항변이라면 한편 수긍이 되기도 한다.
실수임에도 허수를 만난탓에 허수로 분류되는, 다시는 실수의 담장을 넘지 못하게 변이 된 우울은 어떤 색일까 생각한다.
이런 터무니 없는 공상이 비비적대기 좋은 시집.
함기석.

다시 읽을 수 있어 다행이다.
뭔가 횡재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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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고독한 날 시를 써요 천장에 누워 시를 써
요 내 코를 먹으면서 내 눈알을 귤처럼 까먹으며 시
를 써요 면도칼을 먹으며 시를 써요 병든 당신을 생
각하며 시를 써요 항구에서 도시에서 허공에서 쓸
쓸히 죽어가는 짐승들과 인간과 행성들을 생각하며
시를 써요 외롭고 고독한 날 사물들은 언어들은 나
의 무릎쯤에서 죽어가고 나는 무릎으로 시를 써요
무릎에서 쏟아져 나오는 검은 파도 검은 물고기로
시를 써요 검은 새 검은 피로 시를 써요 밤늦도록 방바닥에서 아파하는 나를 내려다보며 시를 써요 검은잉크병 검은 관으로 변해가는 나를 내려다보며 시를 써요 불면에 시달리며 신음하는 시를 써요 천장에누워 시를 써요 아니 천장이 시를 써요 천장이 내무릎으로 시를 써요.

(천장에 누워 시를 써요. 중)

이상한 질문

19시 26분 37초에
지금은 19시 26분 37초다.
라고 써놓고 보니지금은 19시 26분 50초다 그러니
지금은 19시 26분 37초다는 거짓이고
지금은 19시 26분 50초다는 참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지금은 19시 27분 15초다.
그러니 지금은 없다.
지금은 없다고 써놓고 보니
지금은 19시 27분 29초다.
그러니 지금은 있다.
그러니 지금은 있다고 써놓고 보니
지금은 19시 27분 44초다.
그러니 지금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그런데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한 건 없다.
그런데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하다>라는 말은 있다.
지금은 없다( )
지금은 있다( )
틀린 말에 ○표를 하시오

(전문)

거울과 거울이 마주 보고 있다.
나는 거울과 거울 사이로 들어간다.
그에게 하얀 꽃을 내밀며 휴전을 신청한다.
거울 속엔 거울 속의 그가 9인으로 복제되고 있다.
모두 다 등을 돌린 채 나를 모른다고 한다.


거울과의 싸움에 휴전은 없다.

(거울과의 싸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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