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으 성장은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한다.괜히 현대를 플라스틱 시대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플라스틱 제품은 보장나거나 파손 되면(혹은 싫증 나면) 언제든 다른 플라스틱 제품으로 대체할 수 있다. 압도적 범용성! 그래서 역설적으로 플라스틱 자체를 대체할 물질은 아무것도 없다. 설혹 그런 물질이 있다 하더라도 단가가 맞지 않는다.
그야말로 자본주의 정신이다. 자본주의에서는 화려하지만 저렴해야하며, 넘치게 생산하고 금세 바뀌지만 변하지 않아야 한다. 독점이라면 이루 말할 데 없이 완벽하다.

그러니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면 플라스틱의 종류는 무한대다. 광고를 보다 보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신소재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대부분 고분자화합물의 형태를 살짝 바꾼 플라스틱이다.
즉, 플라스틱이라는 용어는 새롭게 만들어지는 다양한 고분자화합물을 구분해주기 귀찮아서 뭉뚱그려 붙인 명칭이다. 물건의 성분표를 탔을 때 앞에 폴리 (Poly- 많은, 복합이라는 뜻)가 붙은 물질이 있다면 모두 플라스틱이다.

유일한 현실적 대안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느 것이지만, 인류는 결코 미래를 위해 현재의 안락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물이 오염되면 생수를 팔지, 공장을 멈추려고 하진 않는다. 

성전환 수술 이전에도 남성과 여성이 아닌 이들이 존재했다. 이들을남성과 여성 사이에 있다는 의미에서 인터섹스Intersex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사이 간間 자를 써서 간성‘으로 번역하는데, 한자보다 영어가 익숙한 요즘 세대에게는 인터섹스가 의미 전달이 더 명확한 것 같다. 최근 젠더 문제가 중요해지면서 양성 평등‘이라는 표현이 자주 보이는데, 양성에는 남성과 여성만 포함되므로 잘못된 표현이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무시하려는 이들이 일부러 양성 평등이란 단어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으니 우리는 ‘성평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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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위를 사용할 때 소문자와 대문자에 유의하자. 단위를 대문자로 쓰는경우는 모두 사람의 이름을 단위로 만든 것이고, 그 외에는 모두 소문자다. 단, 리터(L)는 숫자 1과 헷갈리지 않기 위해 대문자로 표기한다. 

 달력을 바꿈과 동시에 교황은 이전 천 년간의 오차를 바로잡기 위해열흘을 없애버린다. 그래서 1582년 10월 5일부터 10월 14일까지는역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10월 4일 다음 날이 바로 10월 15일이 된 것이다(삭제된 날짜와 기간은 도입된 시점에 따라 국가별로 차이가 있다), 이 달력이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그레고리력이다. 

한국에서도 1920년 에스페란토 협회가 설립됐다. 아나키스트와 공산주의자는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에스페란토를 받아들였다. 1925년 창립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즉 카프(KAPF,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의 이름은 영어가 아니라 에스페란토다. 한국뿐 아니라 자국 언어가 위험에 처한 많은 식민지 국가에서 에스페란토를 지지했다. 

역사적으로 단위는 독재의 도구이기도 했고 해방의 도구이기도 했지만이제는 세계가 돌아가는 필수 조건이 되었다. 설혹 단위에 제국주의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단일화되는 방향성은 돌이킬 수 없다. 단위의 정의는 과학계의 합의에 따라 변하고, 일반인은 이해하기어려울 정도로 엄밀해지고 있다. 물론 표준 과학계에도 권력 다툼이있겠지만, 그것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욕은 아니다.

기술이 빨리 발전할수록 단위의 표준화도 빨라진다. 이 폭풍의 와중에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어떻게 단위를 유용하게 사용할수 있을까를 고민할 뿐이다. 한때 단위는 민중을 억압하는 도구로이용됐지만 결국 민중의 선택이 단위를 정하지 않았던가. 혁명력에서휴가만 쟁취한 인민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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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사호가 인양되면서 진짜 침몰 원인이 밝혀졌다. 바사호는 좌현이 우현보다 목재가 두껍고 길이도 더 길었다. 최첨단 기술을 모두 집약해서 만든 배가 좌우 대칭조차 맞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을까? 당시 좌현은 스웨덴 조선공들이, 우현은 네덜란드 조선공들이 맡아 제작했다. 그런데 스웨덴 조선공들은 스웨덴 인치와 피트를, 네덜란드 조선공들은 네덜란드 인치와 피트를 사용했다. 서로의 단위가 다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설계도에 충실하게 배를 만들었지만, 바사호는 거대한 쓰레기가 됐다.


역사서에서 크게 언급하진 않지만, 이후 다시 중국을 통일하게 되는한나라의 유방도 단위 통합에 큰 역할을 했다. 만약 그가 중국을 통일한 다음 유럽의 다른 왕처럼 자신만의 단위를 만들어 다시 보급했다면단위의 혼란이 계속됐을 것이다. 하지만 우유부단했던 유방은 진나라의 도량형을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도량형이 뿌리내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가끔은 지도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단위가 만들어지면 우리는 복잡한 명령도 수행할 수 있다. 우리가학교에서 교육을 받지 않는다면 사회는 우리를 부리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규정된 단위와 기술을 배우고, 사회가 부리기 좋은 노예가 된다. 우리는 ‘나가 아니라 대체 가능한 존재가 된다. 같은 기술을 가진다른 사람으로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 이게 꼭 기술일 필요도 없다. 사회에 출산이 필요하면 나 대신 다른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된다. 사회에서는 개인도 단위일 뿐이다. 우리는 사회의 도구로서 어떤 목적에이용된다. 그러니 원칙적으로 우리는 그 어떤 획일화도 거절해야 한다.
그럴듯한가? 논리적으로는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나키스트를제외한다면 대부분 사람에게 이 주장은 진공의 무중력 상태를 가정하는 것만큼이나 허무맹랑하게 들릴것이다. 딱 하나의 질문으로 이 주장은 파괴된다.
˝그래서 어쩌라고?˝

혁명의 한 축이었던 계몽주의자들은 시민들에게 이전과는 다른 명확한 과세를 제시할 의무가 있었다. 그렇기에 명확한 단위가 필요했다. 단위는 수탈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수탈을 막는 도구이기도 한 것이다. 계몽주의자들이 기존 기득권보다 현명했던 점은 단위를 엄밀한 기준에 맞춰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특정 권력자가 아닌 자연에 기반한 체계적단위는 누구에게도 거부감을 주지 않았다. 프랑스의 혁명 정신을 거부한 독재자조차 혁명 단위는 자발적으로 받아들였다. 단위가 통일돼 야 경제가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국가를 지배하기도 더 좋을 테니까.
1875년 국제적인 미터조약이 성립되고, 미터법은 최초의 국제 공식 단위가 된다. 2019년 현재, 세계 206개국 중 단 3곳을 제외한 203개국이 미터법을 표준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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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이 일어나 생산력은 이전 시대에 비할 바 없이 늘어나지만, 인구는 그보다 더 빨리 증가해 여전히 사회는 빈곤한 이들로 넘쳐났다. 빈곤 해결을 위해서는 생산력을 더 늘려야 했는데, 생산력이더 늘어나니 그에 따라 인구 역시 더 늘어났고, 결국 사회는 성장과 빈곤만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는 발전이 한계에 봉착하면, 세계는 질병과 폭력, 그리고 전쟁의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라 경고했다. 이를 맬서스 트랩Malthusian Trap 이라고 한다.

인공 비료가 대중화된 지 3년 만에 식량 생산량은 인구 증가량의 2배르 기록한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 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맬서스의 이론은 완전히 붕괴한 것이다. 100년 간 인류를 광기로 몰았던 식량 위기가 사라졌다. 

그는 전쟁과 대량 살상 무기에 대한 확신범이었다.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일이 아니다. 화학 비료도 그에게는 국가의 무기였고, 독가스도 국가의 무기였다. 그래서 그는 어떤 사악한 빌런보다 강력한 빌런이다. 영화 속 최후의 빌런은 악의가 아니라 신념으로무장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완벽한 빌런 덕분에 지구 70억 인구 중에 50억이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인구 증가는 곧 자연 파괴로 이어졌다. 이산화탄소와 메탄의 배출량이 늘어나니 지구 온도가 상승하고, 이는 자연재해와 기후 변화를 불러왔다. 생물 멸종 역시 심각하다. 현재 매년 100만 종의 생명체 가운데 100종 이상이 완전히 멸종하는데, 이는 인류 등장 이전과 비교하면1,000배 빠른 속도로, 대멸종 시기와 맞먹는다. 

1724년 폴란드계 네덜란드 물리학자 다니엘 파렌하이트DanielFahrenheit는 화씨 온도를 고안했다(화씨와 섭씨라는 명칭은 이를 고안한 ‘Mr.
파[화]렌하이트‘와 Mr. 셸[섭] 시우스‘를 중국어로 번안한 표현이다. 이는 트럼프를 트씨, 오바마를 오씨라고 부르는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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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봉순 장편소설 소설문학 소설선
심봉순 지음 / 북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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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의 이야기다. 에밀졸라의 제르미날이 문득 떠올랐다. 그보다 더 절절할 수 있을까?

태백 출신의 작가가 쓴 이야기라고 했다. 본 터. 터에서 담아 올린 이야기는 힘이 있다. 잘 기른 양식 생선보다 좀 작고 상처가 있어도 대양을 넘나든 생선의 맛 차이 같은 것이랄까?

작가의 본 터. 그곳에서 쓰인 이야기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중학교때였다. 내 짝지는 작은 아이였지만 당돌하고 뻔뻔스러울 만큼 당당했다. 아이에게는 묘하게 술 냄새-그게 위스키 냄새란걸 나중에야 알았다-도 나고 달콤한 냄새도 나고 때때로 담배 냄새도 났다. 지각은 하지 않았지만 늘 아슬아슬하게 자리에 앉아 가슴을 쓸어내리던 친구. 학교가 마치면 부리나케 집으로 갔다. 문방구 앞에서 군것질을 할 시간도 없어보였다.

하루는 그 친구가 자기 집에 놀러가지 않겠느냐고 했고 따라나섰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서대문 근처였고 아이의 집은 무려 동두천이었다. 그 먼 길을 새벽 첫 버스를 타고 등교 하고 돌아가곤 했던 것이다.

친구의 집은 골목을 여러번 꺽어 들어간 곳에 있었고 천정도 낮고 어두웠다. 형광등을 켜도 뭔가 뿌연 낮은 조도.

라면을 끓여 먹고 친구가 말했다.

네가 처음이야. 우리집에 온 애는. 영광인줄 알어. 난 왕족이거든.

왕족? 니가?

응. 우리엄마가 양공주야. 그래서 왕족이지.

놀라운 고백이었다. 그 친구의 모든 냄새들의 정체가 확인되고 수긍이 되었다.

늦게라도 집에 돌아갈 참이었지만 너무 멀어서 엄마에게 알리고 하루를 친구와 자고 등교를 했다.

그 밤. 밤 새도록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거기는 그 친구의 본 터 였다. 본 터에서 길어올리는 이야기들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 드라마틱하고 절절하며 삶의 어떤 증거처럼 작용한다는 것을 믿기 시작한 것은 그 때부터였다.

 

진희를 중심으로 친척들과 가족들, 이웃들의 이야기는 이가 잘 맞는 톱니바퀴처럼 이어진다. 정말? 이라는 의문보다 그랬겠네 라는 수긍이 늘 준비되어 나올만큼 .외진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탄광으로 흘러들어가며 가난보다 죽음을 두려워하게 되는 과정은 드라마다 여러 책에서 보았던 것임에도 먹먹하기만 하다.

매일처럼 무덤을 들어가듯 시커먼 아가리로 걸어들어가는 사람들.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간은 더디고 잔인하게 흐른다. 그래도 온통 검은 칠을 해도 틀리지 않을 풍경 속에서 아이들은 자라고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주며 살아간다.

탄광의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바람이 나고 치장을 하고 연애를 하고 술을 마시고,. 이 모든 행위들이 그들이 막되먹은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라 두려워서이고 잔인하게 버텨낸 시간 때문이라는 것. 도망 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시커먼 갱도에 먹히거나.

진득하고 거친 삶들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탄광에서 도망친 줄 알았지만 탄광의 시간은 끝끝내 자신을 증명하려 단단하게 숨통을 막는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아'라는 말을 떠올린다.

단지 탄광이 아닐 뿐. 매 순간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현재를 사는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잔혹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울어주지 못하는 죽음. 금방 잊어버려야 하는 죽음. 산 사람은 살아야겠기에 자꾸 잊혀지려는 죽음.

 

작가는 가족을 위해 날마다 탄광으로 들어갔던 태백의 아버지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막장. 그 막막한 곳으로 들어가는 가장들.

세상이 늘 아슬아슬한 탄광이 되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그랬다더라..라는 말을 뒤에 붙일 만큼 탄광의 이야기는 먼 이야기가 되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내고 싶은 존엄에 대해 다시 묻는다.

 

사람들이 살던 곳. 태백을 생각한다.

사람들은 무열을 통해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상갓집 가서 너무 서럽게 울지 말라는 얘기였다. 너무 서럽게 울면 죽은 사람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그만 같이 데리고 가게 된다고 했다. 저쪽 세계나 이쪽 세계나 질서가 있게 마련이라 가야 하는데 가지 못하게 하는 세력이 있다면 가기 위해 같이 데리고 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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