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동문선 현대신서 102
미셸 슈나이더 지음, 이창실 옮김 / 동문선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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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울한 열정의 피아니스트... 
한순간에 확 타오르는 불꽃처럼 짧은 열정을 쏟아부었가가 금새 사그라드는 연기처럼...
우리에게 어느날 갑자기 나타났다가 불현 듯 사라졌다.
1964년 32세의 젊은 나이에 마지막 연주를 끝으로 죽을 때까지 대중 앞에서의 연주를 완전히 그만두게 된다.
왜 그는 그렇게 무대 뒤로 떠나가야 했을까?
주체못할 만큼 타오르는 천재적인 광기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들 사이에서 괴리감에 빠졌던 것일까?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렸던 괴짜 피아니스트..
그가 내게 남긴 이미지는 부시시한 모습으로 피아노에 빨려들 듯이 깊게 고개를 숙이고 앉아 허밍을 흥얼거리며 연주하는 모습이다. 순수한 피아노의 열정이라고 하기엔 범상치 않은 광기(?)까지 느껴지는... 그의 깊은 내면의 예술세계를 이해하기엔 나 역시 그의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대중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9세의 나이에 처음 무대에 올랐고, 독일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바흐 음악 콩쿨에서 1위에 입상하였으며, 29세의 어린 나이에 7장의 앨범을 발표하였다. 그의 바흐 연주는 너무나 유명하다. ’레가토’를 철저히 배재한 ’스타카토’를 지향하는 피아니스트... 그의 건반위를 날라다니는 손가락 위에 울려퍼지는 바흐의 파르티타들은 독특한 그만의 매력으로 다른 연주자들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그에게 명성을 준 작품은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인데, 동일한 레퍼토리 녹음을 꺼려하는 그가 이 곡만큼은 55년에 녹음하고 81년에 다시 디지탈 녹음을 하였다. 55년도 연주할 때는 엄청난 속도로 그 곡을 38분 17초만에 연주했지만, 81년 연주는 어찌나 느려터지게 표현했는지 51분 14초에 연주했다. 같은 곡을 같은 사람이 이렇게 차이나게 연주할 수 있다니..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그의 이름을 따 <굴드베르그 변주곡>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의 음악성만큼이나 괴벽은 유명하다. 보통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습성들은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일례로 1955년도 골드베르그 음반의 녹음 당시 한여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코트와 머플러, 장갑까지 끼고 녹음실에 나타났다. 뉴욕의 물이 마시기 적당하지 않다고 캐나다에서 물과 다섯병의 약병까지 가지고 왔다. 또 녹음하기 전에 뜨거운 물에 손과 팔꿈치까지 20분이나 담갔다 꺼냈다. 또 그가 직접 가지고 온 매우 낮은 피아노 의자에 앉아 구부정한 자세로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했다. 또한 음악을 연주하면서 몸을 흔들어대고 표정을 쉴 새 없이 바꿔가며, 게다가 흥얼흥얼 거리는 그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우리에게 기묘한 모습으로 각인되었다.

하지만 그는 숨막힐 정도의 열기를 찾으며 감기에 걸릴까봐 강박증적으로 두려워하면서도 북극의 추위를 사랑했고, 청중 앞에서 연주하는 것보다 녹음 기술을 신뢰했던 그였지만, 녹음 기술로 제거될 수 있는 몸 동작의 자취, 잡음, 삐걱거리는 의자소리를 그대로 남겨두었다. 그가 피아노를 연주하며 입으로 따라부르는 허밍은 음반 녹음을 하는 데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그의 독특한 음반은 지금까지 우리 귀에 그만의 매력이자 트레이드 마크로 우리에게 기억된다.


이 책은 작가 미셸 슈나이더가 글렌 굴드의 인생과 음악과 영혼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기록이다. 그의 일대기를 보통 전기문처럼 사실과 시간의 흐름에 입각하여 써나갔다기보다 예술가의 독특한 정신세계와 열정을 쫓아가는 기록이었다. 그의 글 속에는 굴드에 대한 애정과 그의 음악에 대한 동경들이 묻어나 있으며, 미셸 슈나이더 본인의 음악에 대한 열정도 느낄 수 있었다. 예술과 미학이라는 다소 난해한  철학적 서술이 많아서 읽기 쉬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굴드와 그의 음악에 대한 나의 관심과 열정으로 개인적으로는 매우 즐겁게 읽은 책이었다.

대중을 꺼려하고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살았던 그의 인생은 다소 어둡게 보이지만, 그의 음악을 통해 내가 느꼈던 첫 인상은 경쾌함과 즐거움이었다. 역시 그에겐 스타카토의 빠른 선율이 잘 어울린다. 그의 선율로 오후의 나름함을 날려버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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