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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일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본문화가 완전히 개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작으로 화제가 된 1997년 작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조차 2003년에야 정식으로 극장에서 개봉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 사람들은 다 봤다고 하는 것이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었다. 나 역시도 1997년 당시 <모노노케 히메>를 정말 보고 싶어서 영어판 비디오를 구했다. 영어도 일어도 짧아 주인공 이름 외에는 거의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몇 번씩 보고 또 보았다. 지금도 내게 있어 미야자키 감독 최고의 작품은 <모노노케 히메>이다.


비록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온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은 나의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적잖이 아쉽지만, 그래도 그의 이름이 가지는 무게는 절대 가벼워지지 않았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도 띠지 속에서 자신이 만든 캐릭터 '토토로'와 똑 닮은 얼굴로 지그시 미소짓고 있는 수염 할아버지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가 소개한 50권의 책은 우리나라에도 대부분 번역서가 나와있는 것으로 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만 읽는 것이라는 편견과 미야자키 하야오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은 잠시 덮어두고, 그저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이 책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고른 이와나미 소년문고 50권에 대한 짤막한 소개로 이루어진 제1부와 책과 그림, 자신의 일에 대한 그의 에세이로 이루어진 제2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50권 중 첫번째 책으로 <어린 왕자>를 꼽았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 처음 읽은 후로 2~3년에 한 번씩 다시 읽는 책이라서 무척 반가웠다. 그의 말대로 '한 번은 읽어야' 할 책이다. 소개된 책 중 가장 읽어보고 싶은 책은 미야자와 겐지의 <주문 많은 요리점>. 이미 유명한 책이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소개글을 보면 지금 당장 이 책을 읽어야만 할 것 같다. <파를 심은 사람>이라는 한국 민화 모음집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웃 나라 사람에 의해 우리나라의 책을 알게 되는 기분은 무척 기묘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작품 속에서 한결같이 평화와 자연의 소중함을 이야기해 온 감독이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서도 눈을 돌리지 않은 예술인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예전만 못하다는 비판과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애니메이션을 꿋꿋이 만들어 온 장인이다. 그래서 그의 창조 기반에 어린이책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책은 읽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그가 책 읽기를 정말 즐길 수 있게 된 계기가 어린이책이었던 것도 그리 놀랍지는 않다. 그의 말처럼 '살아남는 것은 재미있'는 것이니까. 그는 자신에게 재미있는 책을 읽었고, 다른 사람들이 재미있어 할 작품을 만들었다. 


애니메이션 감독답게 그는 책의 표지와 일러스트에도 관심이 많다. 어린이책에 실린 유럽 작가들의 정교한 일러스트에 감탄하는 것을 보면 그의 지독한 장인정신과 순수한 예술혼이 느껴진다. 아름답고 섬세한 배경으로 유명한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바탕이 그의 이런 성격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책에 대한 그의 생각에 나는 대체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가 바라는 '단 한 권만 있으면' 되는 책을 나는 바라지 않는다. 세상에 책이 너무 많아서 평생 다 읽지 못한다는 것이 꼭 안타깝지는 않다. 죽는 순간까지 내게는 열리지 않은 책의 내용을 상상하며 설레는 기대감을 가지는 것도 무척 낭만적일 거라 생각한다. 좋은 책이 많은 곳에 사는 것은 축복이다. 그래도 '나만의 책 한 권'은 가지고 싶다. 누가 뭐래도 내게는 최고인 책, 마치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애인 같은 책 한 권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스스로 책 읽는 법을 깨닫고, 좋아하는 책을 찾고, 자신만의 책 한 권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자라서 기억에 남는 책이 수학 참고서나 영어사전이 되는 세상은 상상하기조차 싫다. 


아무도 현실을 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현 시대에서 '종말'을 보고 있지만 어린이들에게서 '미래'를 보고 있다. 빠르고 쉽게 소비하며 금방 잊어버리고, 왜곡된 현실과 진짜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다시 해볼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 바로 어린이문학이라고 이야기한다.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한때 아이였던 어른들을 위해서도 그가 권하는 50권의 책들은 의미가 있다. 


책 읽기의 즐거움도 잊은 지 오래, 책을 읽어야 할 이유도 잃은 지 오래인 사람들에게 이 책에 소개된 어린이책들로 다시 독서를 시작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뽑은 책이라서가 아니라, 세상에는 재미있는 책이 아주 많다고 말해주며 사람좋게 웃는, 어린이책을 무척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권하는 책이라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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