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평점 :
일시품절


'정원'이라고 하면 베르사유 궁전 정원이나 영화에 나오는 비밀의 정원처럼 화려하고 신비로운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무의식적으로 정원은 부유한 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읽고 나서 정원은 '사람의 보살핌 속에서 풀과 꽃이 자라는 평화와 안식의 장소'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그리고 문득 내가 아주 어릴 때 보았던 외할머니의 꽃밭이 떠올랐다. 시골에 있었던 외갓집의 넓은 마당에 외할머니는 키 큰 꽃들을 많이 심으셨다. 외갓집에 놀러갔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외할머니는 크고 튼튼한 꽃들을 한아름 따서 내 품에 안겨주시곤 했는데, 그 꽃들은 하도 탐스러워 절대 시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결혼 후 힘들게 사셨다는 외할머니는 꽃들을 돌보며 마음의 평화를 찾으셨던 걸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높이 들어라.
한 조각의 하늘, 초록빛 나뭇가지들로 덮인 정원의 담장,
멋진 개 한 마리, 떼를 지어가는 어린아이들, 아름다운 여성의 머리 모양.
그 모든 것들을 놓치지 말자.(51쪽)
독일을 대표하는 대작가 헤르만 헤세가 밀짚모자를 덮어쓴 채 땀을 흘리며 정원을 가꾸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을 쓴 헤르만 헤세가 동명이인 아닐까 잠시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작가이기 이전에 우리 외할머니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이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헤르만 헤세에게 정원은 생명이고, 여유이고, 휴식이며, 마침내 인간이 머물러야 할 곳이었다. 

헤세는 '정원을 가꾸면서 마치 자신이 창조자가 된 듯한 즐거움과 우월감(17쪽)'을 즐겼다. 이것이 바로 정원이 가진 힘이다. 작은 식물 하나라도 키워본 사람이라면 그 기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씨앗에서 싹이 나고, 잎이 하나하나 늘어나고, 키가 커지고, 마침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을 보고 있자면 이런 생명체를 키워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뿌듯하기 그지없다. 

당연하게도 헤세는 공업의 발전에 무척 부정적이었다. 문명은 태고의 견고한 형태를 '어설프며 새로울 뿐 무의미하고 유희적인(27쪽)' 형태로 대체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오랫동안 공들인 것에 애정을 쏟기보다는 빨리빨리 새 것으로 바꾸기에만 열중하는 요즘의 경향을 보고 있자면, 우리는 정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정작 모르고 사는 것 같기도 하다. 


1차 세계대전은 헤세의 마음에 무엇보다 큰 상처를 남겼다. 그에게 전쟁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나게 추악한 짓(115쪽)'이며 '아무에게도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것(115쪽)'이었다. 이는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소설 <어제>에서 묘사한 전쟁의 모습과 맥을 같이 한다. 사람의 인생을 한순간에 왜곡시켜버리는 끔찍한 일 말이다. 

반면 헤세는 '죽음'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다. 그는 '가장 무상한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96쪽)'이라고 말하며, '그래서 죽음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꽃이며 가장 사랑스러운 것일 수 있(96쪽)'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체념이나 삶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정원을 가꾸며 탄생에서 소멸로 이어지는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인 결과로 보인다. 

모든 생명의 단계는 맹아로부터 시작하여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184쪽)
책을 덮을 때쯤에는 나도 나만의 정원을 가지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다. 그냥 작은 화분 하나라도, 아니, 실체가 없이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정원이라도 좋을 것 같다. 자신의 손으로 생명을 탄생시키고 책임진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그 속에서 소소한 기쁨을 느끼는 법을 터득한다면 우리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슬픔에 잠겨 당신이 가진 것들한테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 이따금 좋은 구절을, 한 편의 시를 읽어보라. 아름다운 음악을 기억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당신의 삶에서 느꼈던 순수하고 좋았던 순간을 기억해보라! 만약 그것이 당신에게 진지해진다면 그 시간은 더 밝아지고, 미래는 더 위안이 되며, 삶은 더 사랑할 가치가 있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리라!(157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