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류진운 지음, 김태성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1994년 겨울이었지요. 대학원 준비한다고, 고시 준비를 하던 친구따라 고딩때 다녔었던 독서실에 등록해 공부를 하고 있었을 때였으니까요. 고시 공부하던 제 친구는 2차 준비하느라 그야말로 정신없이 공부를 했었었지만, 그에 비해 시간이 많았던 전, 그렇게 공부만 죽어라 하는 제 친구와 노닥거릴 시간이 많지 않았던 게 불만이라면 불만이었었지요. 그래, CPA 준비한다했던 친구 하나를 꼬셔 그 독서실에 등록을 하게 했는데, 이 친구가... 그때 한창 연애란 걸 하고 있을 때였던겁니다. 제 친구보다 꽤 나이가 어렸던 그 여친은 삐삐를 쳤는데 연락이 없으면 막 화를 낸다고 하더군요. 어느 날, 공부를 하다가 그 친구의 삐삐가 또 울렸고, 전 담배라도 한 대 피려 같이 공중전화 앞으로 나갔었어요. 헌데 이 녀석... 제가 봐도 지나칠정도로 오랫동안 전화를 하더군요. 급기야 그 뒤에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화를 냈고, 그랬는데도 제 친구는 전화부스안에서 연신 쩔쩔 매며 계속 통화를 하는겁니다. 한참 후에 통화를 끊고 나온 친구에게 대체 뭔 이야기를 하느라 뒤에서 빽빽거리는데도 계속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느냐 물었더만 그 녀석 대답이란게 글쎄... : 그 여친에게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끊어야겠다 말하니, "뒤에 있는 사람이 중요해, 내가 중요해?"라고 묻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노라...고. --;; (그 둘은 그 후 오래지 않아 깨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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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의 원래 사용가치는 어느 곳에서나 이동중에도 누군가와 통화할 수 있다는 물리적 속성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용가치가 가져다주는 유용함을 깨닫고 원하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줄 기술이 개발되면서, 휴대폰은 상품이 되었고 가치관계 속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제 휴대폰은 자신의 논리에 따라 진화발전한다. 마침내 가치관계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가치가 있기 때문에 가치관계 속에 들어오는 것인지가 불분명해질 정도가 되었다. …… 흔히 말하는 신자유주의는 결국 '만물의 상품화'를 현실화하면서 그것을 이끌어나가는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 류동민 著, 「프로메테우스의 경제학」 ,p89

경제학자는 이처럼 핸드폰 하나로부터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떠올려내기도 합니다만, 모든 이가 다 이렇게 진지한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닐겁니다. 단 두 권의 소설로 제 마음을 사로잡아버린 중국의 작가 류전윈은 그렇다면 핸드폰으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끌어내고 있을까요?

 

제 방에 따로 전화를 놓았던 날의 흥분을 아직은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제 밤늦도록 부모님의 눈치 받지 않고 여친과 통화를 할 수 있게되었으니 어찌 아니 흥분되겠습니까. 그리고 얼마 후, 별 중요한 통화도 없는 전화기에 자동응답기란 것을 달아놓고는, 이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한국통신'은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되었군!하는 나름 경제학도다운 분석(?)을 하며 저 자신을 스스로 대견스러워했던 때도 기억이 납니다. (안받으면 통화료가 부과되지 않지만, 자동응답기라도 일단 전화를 받게 되면 기본료는 발생하게 되니 한국통신에게는 자동응답기란 것이 그야말로 효자중의 효자인거라는 논리였었었. ^^;;)

 

허나, 여친에게 밤 늦은 시각에 제가 전화를 걸 수는 없었었지요. 혹여라도 부모님이 받으신다면 좀 그렇잖아요. 그렇게 내가 원할 때 여친과 통화하고 싶다!라는 욕망은 어느새 삐삐라는 녀석의 등장이 해결해주었고, 하지만 그 삐삐란 녀석은 금새, 버스안에라도 있을 때면 당장 그 삐삐의 호출에 응답을 할 수 없다는 답답함을 낳게 해주더군요. '재화의 공급은 그 스스로의 수요를 창출한다'라는 세이의 법칙은 예의 1990년대 중반에도 적용되는 것이어, 삐삐의 등장으로 인해 생겨난 답답함은 곧 핸드폰의 등장으로 해결이 되었습니다. '이동중의 통화'라는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낸 핸드폰은 이내 카메라 기능까지를 탑재하게 되었고, 이젠 뭐... 핸드폰 없으면 아침에 기상도 못하는 시절이 되어있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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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화의 공급이 그 스스로의 수요를 창출'해낸 것까지는 생활의 편리함이 증대되었다라는, 좋은 면으로만 받아들여질 수 있었습니다만, 그렇게 창출된 수요가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또 '다른 것의 공급'을 만들어냄으로써 증대된 생활의 편리함은 이제 오히려! 생활의 구속이 되어버리기도 했지요. 핸드폰 말입니다!

 

마을에 해가 높이 뜨고 날이 길어져도 하루 종일 옌씨의 말은 열 마디를 넘지 않았다. 열 마디 가운데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말이 여섯 마디였고 그나마도 전부 단어였다. …… 나머지 네 마디는 전부 감탄사였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겠지만, 핸드폰의 등장 이전 우리의 생활도 어쩌면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반드시 해야할 말이 아니면 굳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소위 말하는 '씨잘데기 없는 소리'를 지껄이지는 않았었으니까요. 하지만 핸드폰의 등장 이후 우리는 그 기계 자체가 신기해서도, 혹은 어찌어찌 없던 이유라도 굳이 만들어 내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일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지요. 류동민 교수님의 표현을 빌자면, '가치관계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가치가 있기 때문에 가치관계 속에 들어오는 것인지가 불분명해질 정도가 되'어 버린거지요. 그렇게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많아지다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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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반드시 해야만 하는 말'을 마친 후, ②'안해도 될 말'까지를 하게 되면, 그러다 결국 ③'하지말았어야 할 말'까지를 내뱉고 나게 되면, 이제 우리에게 남게 되는 건 결국 ④'거짓말'밖엔 없게 됩니다. 류전윈의 이 작품 「핸드폰」은 주인공 옌셔우이, 그의 아버지, 그리고 그의 할머니, 이렇게 3대에 걸친 '말의 역사'를 통해 ①-④의 과정을 보여주며, 결국 가장 마지막 세대인 옌셔우이에 이르러서는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그렇게 연이은 거짓말의 마지막이 어떻게 끝맺음되는가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는 소설입니다. 

 

주인공 옌셔우이는 유명 TV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소위 스타급 대접/환호를 받는, 마흔즈음의 남성입니다. 하루에 열 마디 이상을 하지 않았던 그의 아버지완 달리 그는 말로써 먹고 사는 사람이었던거지요. 암튼! 그런 옌셔우이는 우유에라는, 부인 위원쥐엔과는 180도 다른 스타일의 매력적인 여성과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핸드폰!때문에 그 숨겨왔던 불륜관계가 부인 위원쥐엔에게 들통이 나, 결국 이혼을 당하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사실... 우리들 또한, 누군가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는 수많은 것들을 핸드폰을 통해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말하기도 혹은 문자로 보내기도 하지요. (아... 닌가요? --;;) 그렇게 수많은 '누군가'와 '또다른 누군가'들에게 가려져 있는 비밀들을 모두 다 알고 있는 것 나 자신과 핸드폰! 뿐인겁니다. 소설은 옌셔우이가 그의 핸드폰을 통해 쏟아내었던 수많은 거짓말들이 결국엔 그 핸드폰을 통해 밝혀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말의 역사'라는 것이 핸드폰을 통해 단지 밖으로 쏟아내는 말의 양이 늘었을 뿐 아니라, 그 내용 또한 다양 - 진실에서부터 새빨간 거짓말까지 - 해져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소설의 거의 모든 갈등은 핸드폰을 통해 발생되는데, 핸드폰을 통하지 않는, 즉 직접적인 대면의 관계에서는 정작 말이 없어지게 되었다라는 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다라 작가는 생각하고 있는듯 보입니다.  

 

옌셔우이과 위원쥐엔은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면서 부부간의 대화가 사라져있다라는 걸 알게 됩니다. 단지 서로 할 말이 별로 없었다라는 이유때문이었지요. 이처럼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사람과는 점점 대화가 없어졌지만, 핸드폰은 그러한 물리적 거리가 먼 사람과는 오히려 더 많은 말을 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물리적 거리가 멀다라는 사실은 그만큼 거짓말을 하게 되는 유인/유혹을 더 많이 만들어내게 되었고, 이는 결국 '마음의 병'을 만들어내게 되지요.

 

사람의 마음속에 왜 병이 들까요? 페이모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우리의 삶은 원래 매우 단순한데 우리가 그것을 지나치가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삶이 매우 복잡한데 우리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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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화에서 뒷사람의 눈치를 보아가면서도 선뜻 전화를 끊지 못했었던, 그때의  제 친구에게는 아마 지금의 핸드폰이 매우 필요했었을겁니다. 반면, 너무도 많이 울려대는 핸드폰때문에 주말만이라도 핸드폰을 꺼놓고 싶다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공중전화에서 뒷사람의 눈치를 보아가며 전화를 하곤했었던 그 시절이 하나의 '이상향'으로 자리잡고 있을지 모르지요. 이처럼 원래 단순한 삶을 우리가 복잡하게 만들어버린 것이 우리를 더 괴롭게 하는건지, 아니면 매우 복잡한 삶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때문에 생겨나는 문제가 더 괴로운지... 사실 전 선뜻 판단하지 못하겠습니다. 아마 이 소설을 쓴 작가 류전윈조차도 이에 대한, 누구나 납득할만한 대답을 내놓지 못할지도 모르지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만! 작품 속 등장인물 중 하나인 페이모가 내뱉는 다음의 탄식은, 저/여러분 각자의 그 판단에 관계없이 반드시 한번쯤은 현재 시점 이전에 우리에게 쿵! 하고 다가왔던 적이 있었었지 않을까 싶네요. 비록... 작품 속의 이 탄식이 (어쨌든!) 불륜의 발각이라는, 아름답지 않은 상황 후에 나온 것이긴 하지만 말이죠.

 

그래도 농경사회가 좋았던 것 같아. …… 그때는 걸어 다니는 방법밖에 없었잖아. 그러니 과거 보러 갔다가 몇 년 뒤에 고향에 돌아와서 어떤 핑계를 대도 그대로 다 먹혔지 …… 지금은... 가까워. 너무 가까워. 너무 가까워서 숨을 못 쉬겠어.

이 책이 출판되고, 영화로 만들어져 방영된 이후 중국의 수많은 가정이 파괴되었다고 저자가 밝히고 있더군요. (물론! 그것이 자신이 바라던 바는 아니었다라는 말과, 이 책이 한국에서 출판되더라도 한국의 가정을 파괴하는 일은 절대로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램까지 함께!!!) 이처럼 소설이 비록(?) 불륜관계를 통해 핸드폰이라는 문명의 이기가 발생시키는 폐해를 다루고는 있습니다만, 그런 불륜이란 걸 떠나서라도, 또한 핸드폰이라는 범위를 넘어서까지도 과연 우리에게 '문명의 발전'이란 것이, 우리의 현실, 인간의 본성과 어우러져 최종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남겨주게 될 것인가에 관해 생각해보는 일 계기를 만들어주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강렬한 삽화의 이 책 표지가 상징하고 있듯이, 핸드폰이라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현실과 밀접한, 또한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 '문명의 발전'이겠지요. 

 

P.S. 소설의 주제를 떠나... 역시 작가 류전윈의 글은 저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매력적!이네요. 

 

 

 

(읽어본) 중국 작가의 책들

 

- 류전윈 作 :  「닭털같은 나날」 · 「나는 유약진이다

- 위화 作 :허삼관 매혈기」 · 「제7일」  ·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 · 「인생」 · 「형제 1·2·3

- 모옌 作 :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 옌렌커 作 :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쑤퉁 作 : 「나, 제왕의 생애」 

- Ji Li Jiang 著 :  「Red Scarf Girl

- 장안거 著 : 「붉은 땅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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