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출근의 부담이 없어서인지 새벽부터 눈을 떳다. 그리고 집어 든 책들. 본명 박기평, 노동자 해방이란 이름을 지었던 박노해의 책 3권을 마져 다 읽었다. 그의 시는 조림이나 굽거나 튀기기 않은, 그야말로 날 선 생선처럼 언어는 살아 있는 생물같이 싱싱하다. 역시 저항의 시인이었다 보니 살아 있을 수밖에.


시에는 기교가 없다. 문학적인 기술이 없어도 그의 삶이 말하는 살아 있는 존재론적인 아품이 살아 있다. 긴 옥중 생활에서 나오는 편지에 담긴 시들. 그리고 다시 새롭게 쓴 시들. 그러나 그의 시에서 다른 길은 그야말로 시를 벗어난 사진이라는 다른 길이었음을 알아차린다. 언어에서 알아차린다. 언어에서 이미지로 변화한 그의 삶에 스펙트럼들.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시에서 사진은 존재적인 본질로 천착하는 그의 여정이 곧 사진으로 변함을 의미했다. 혹자는 말한다. 그의 변화는 진보에서는 변절자로, 꼴 보수에게는 여전히 좌빨로 매도당하지만, 그의 사진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순수한 표정과 굵은 눈망울의 모습을 보고서 그는 본질로의 여정이었지 변절이 아니었고, 오히려 인간성 그 본연함에 더 다가서려는 내면의 변화라는 것을 느낀다.


나는 감히 그를 향해 배놔라 감놔라 할 자격은 없다. 펜 대신에 카메라를 들었던, 혹은 카메라를 버리고 펜을 다시 든다 한들, 그의 천착의 여정에 무슨 토를 달고 가타부타 할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믿어야 마음이 조금은 편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가족이 해산되는 7년의 옥고를 치르고 다시 복권이 되어 그동안의 민주화 보상금에 대해 '자신의 과거를 팔지 않겠다'라고 보상금조차 거부하고 버렸다. 대부분은 누구나 억울함에 대해 주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고 나작하게 그리고 강직한 의지로 거절한다. 그러니 변하기는 누가 변했으며 일관성은 누가 일관적이었던가? 그가 권력을 가지고 난도질하는 불한당이라도 되었더라면 변절이라고 말할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진정성을 믿고 싶었다.


그의 사진은 성스러움보다는 인간적인 살가움이 더 크다. 또한 그 역시 자본에 대해 권력에 대해 사람에 대해 상처받고 아주 아파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원망 대신에 카메라로 아이들의 순수함을 찾았던 것이다.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는 오지로 들어가서 바라본 지구의 속살들과 척박함 속에서 피어난 인간의 꽃을 보며 자신의 치유를 원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의 시에서는 아픈 통증이 발병하여 사진에서 희망이라는 "다시"의 가능성 담으려 했던 기도가 차분히 안정시켜 준다. 아픔이 있다면 치유가 있어야 하는 글과 사진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좀 편해졌으면 한다. 자발적 노예 같은 노동자에게, 자본의 승냥이에 하수인이 된 자들에게 더 이상 연민하지 말았으면 한다. 앞으로 자신을 위한 시를, 자연을 위한 시를, 그리고 존재의 본질적인 모순과 삶이라는 근원적인 부조리함에 대해 사진으로 노래했으면 좋겠다.


아직도 가슴 한구석이 뜨끈하다. 약간의 미열 섞인 두통이 밀려오듯이 울렁거린다. 긴 리뷰를 쓰고 싶었지만 오늘만은 불가능하다. 삶은 부질없는 공허가 어떤지 부터 따지면, 자동으로 비워진다는 원리를 서서히 알아차려가야 할 과제가 오늘 따라 더 버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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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특별히 이 책을 선물해주신 김**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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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6-10-02 09: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을은 독서의 계절보다 시읽는 계절이 더 맞는 듯.
요즘 시집을 자주 펼치게 돼요. 바람의 흐름이 시의 흐름과 닮아서 그럴까요...

yureka01 2016-10-02 09:39   좋아요 2 | URL
독서는 계절을 뛰어 넘어서 읽는 재미를 주죠..
전 시집을 순전히 사진 때문에 자주 펼치게 되더라구요 ^^..

물론입니다.바람이 시를 날리웁니다^^.훨훨^^.

가을 바람에 흩어지는 가을 시 한편.캬~~~좋지요~

2016-10-02 15: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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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2 15: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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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2 16: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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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2 2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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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1 22: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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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1 2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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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2 09: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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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2 09: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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