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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치밀하고 친밀한 적에 대하여 - 나를 잃어버리게 하는 가스라이팅의 모든 것
신고은 지음 / 샘터사 / 2022년 1월
평점 :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된 것은 어떤 강의에서 였는데, 우리가 모르는 가스라이팅의 많은 경우가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강의자의 말이 충격이었다. 뭔가 이상하기는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몰라 잘못된것이라는 것도 모르고 내가 이상하다고 여겼던 것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가스라이팅' 이란? 상황이나 심리를 조작해 상대방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행위이다. 여기에서 중요한것은 상황이나 심리를 조작한다는 것과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조작이나 의심이 거창한 것도 아니다. 교묘한 말 몇마디로도 상대를 조종하고 반복해서 세뇌하여 자신을 불신하고 상대만을 믿고 따르게 만든다. 가스라이팅을 크게 알린 모배우의 사건이 있었고, 세자매가 자기의 친모를 죽이고도 그일을 지시했던 자를 옹호했던 사건도 있었다. 알고보니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가스라이팅은 있어왔던 것인데, 우리가 그게 무엇인지 몰랐던 것이였다.
가스라이팅은 영화 속 이야기처럼 특수한 상황이 아닙니다.
일상 곳곳에 자리 잡고 있지요. 들으면 놀랄 만한 범죄행위는 물론이고
가장 믿을만 해야 하는 연인 사이에서 빈번히 나타납니다. (p.9)
책을 읽어갈수록 가스라이팅의 교묘함과 우리 삶 속에 어디든 자리를 잡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자기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는 행동은 친밀한 관계 안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특이 유교문화권에 살고 있으면서 효와 도리를 강조하는 분위기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면 가족 안에서의 가스라이팅을 떠올려봐야 할것 같다. 모든 가족이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엄마가 하는 말이 진리인 시절이 있었고, 청소년이 되어서도 엄마의 말이 옳고 나는 틀리다면, 내가 하는 생각이나 주장을 의심하고 자신을 이기적인 인간으로 여기며 잘못된 것에 대해 자신에게만 책임을 돌린다면, 그것이 가스라이팅은 아닐까? 란 생각이 있었는데, 책 속에서 그에 대한 답을 찾았다.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자기를 부정하게 만들도록
가스라이팅을 시도하는 것이지요. (p57)
부모의 말, 가족의 요구 등에 아니라고 말하는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가족의 일원으로 내 역할, 도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겉으로는 그에 따른다. 마음은 여전히 불편하고 그 불편한 마음은 나를 비난하거나 상대를 향해 불만을 터뜨리고 싶어진다. 기분이 우울해지고 화가 난다. 무기력해진다. 나의 불편함을 표현하기도 힘들다. 어렸을때부터 착한 아이로 살아온 세월이 있어서 아니라는 말을 하기도 힘들다. 어색하고 불편하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며 살다보니 내가 어디로 사라진것 같다. 여성이 힘을 얻어 사회적으로 활발한 세상에 살면서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있냐고 의아해할 사람들도 있을것 같다. 예전과는 달리 세상이 변했다고 하지만, 여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받는 드라마 '며느라기'를 보면 꼭 그런것도 아닌것 같다. 여전히 여자들에게는 요구되는 것들이 많다. 명절 연휴가 끝나고 한의원에 가본적이 있다. 정말 깜짝 놀랐는데, 나이를 불문하고 여자들만 빼곡히 있는 모습은 내가 왜 연휴 끝날 아침부터 한의원에 갔는지를 떠올리며 나만 그런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웃기기도 복잡 미묘한 감정이 느껴졌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자기도 모르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것보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가스라이팅이 더 힘든것 같다. 친구, 직장 동료, 선후배, 가족 등의 가까운 관계에서의 불편함은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게 어쩌면 편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것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자기 일에서는 감정이 엮여 있기에 판단을 제대로 내리기 힘들지만, 남의 일이라고 여기면 감정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이성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것을 '벽에 붙은 파리 효과'라고 하는데, 내가 벽에 붙은 파리가 되었다고 상상을 하고 벽에 붙어서 방에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제3의 시선으로 그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고 감정에서 벗어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이성적인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다. 드라마를 보며 훈수를 두듯 답을 내릴 수 있다. 내 잘못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보자!
벽에 붙은 파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윙윙! 저 인간 아주 나쁜 인간이다! 윙윙윙. (p219)
자신의 삶에 경계선을 두고 나를 보호하자. 적절한 선을 두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존중하며 나의 지지그룹과 함께 나누며 내가 틀렸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자. 나의 불편함을 무시하지 말고 인정하자. 용기를 내어 아니라고 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