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당신에게 - 내 몫이 아닌 비합리적 죄책감과 이별하기
일자 샌드 지음, 정지현 옮김 / 타인의사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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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하게 부풀려진 죄책감은

정당한 이유없이 우리를 괴롭힌다.

합리적 죄책감은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바람직한 반응이다.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당신에게 ( p234)

예전에 종교의 영향으로 "내 탓입니다"라는 말이 자주 등장했었던 적이 있다. 남의 탓을 하는 것보다 내탓을 하는게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연하게 만들며 분노를 줄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유교권 문화이다 보니 바른 도덕적인 양심을 강조하기도 하고, 그렇게 교육을 받다 보니 대부분은 자신에게 높은 사회적 도덕적인 모습을 요구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양심에 털난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우린 자신도 모르게 눈쌀을 찌푸린다) 얼마전 금쪽이를 보면서 MZ세대의 특징이라는 에코이스트 테스트를 해봤는데, 거기에도 자신에게 높은 잣대를 들이대는 항목이 있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린,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당신'이 맞는것 같다.

어렸을때는 바른 양심과 도덕적인 행동에 대한 가르침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였을때 인정도 받고 잘한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렇게 자라서 어른이 되고보니 양심이나 도덕이 없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 어떻게 저럴수 있느냐며 질타를 하기도 한다. 자신에게는 더욱 엄격한 기준을 내세우며 스스로를 자책하고 비난한다. 그런것들로 삶의 모습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자신이 성장하는 기회가 된다면 좋겠지만, 때로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기도 한다. 나에게 너무 과한 짊을 지우고 그것을 해내라고 재촉한다. 결과가 나쁠때도 내가 더 잘하지 못해서라는 자기 비난을 한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때도 최선을 다해 노력한 자신을 인정하기 보다는 해내지 못한 자신에게 책임감을 돌리며 탓을 한다. 그런 것들이 반복되다보니 점점 더 지치고, 의욕이 사라지며, 어디론가 떠나고만 싶어진다.

남을 비난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당신이 아무리 완벽해도

어떻게 해서든지 꼬투리를 잡을 것이다.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당신에게 (p94)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생각과 행동은 타인을 향해 나아간다. 나 자신에게 보다 타인에게 더 친절하다. 그 타인이 가족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을 때는 그에 대한 반응이 더 강조되는것 같다. 다른이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것은 산속에 혼자 들어가 살지 않는 이상은 대부분 가지고 있는 모습일 것 같다. 그런데, 그것에 집중되어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싶다. 자신이 스스로에게 요구하고 있는 모습은 어떤지, 나와 연결된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떤지 살펴봐야 할 때이다.

책을 읽어가면서 <연습하기> 부분이 도움이 되었다. 하나씩 생각나는대로 적어보고 생각해보고 하는 과정들이 나에게 대해 좀 더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연습하기의 질문은 간단한데, 막상 떠올리고 생각하고 적어나가는 과정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생각이 전혀 나지 않을 때도 있었고, 책 속의 사례를 읽는순간 떠오리기도 했었다. 그래도 그냥 '그래, 이런 것들이 있었지.'라고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유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남는것들이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지인과 이야기를 나눌때가 있었는데, 그 지인의 말 속에서 지나친 죄책감을 느낄 수 있었고, 그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책은 우리에게 좋은 스승이 된다는데, 직접적으로 경험한것 같았다. 저자의 다른 책 [나의 수치심에게]도 어떤 이야기들로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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