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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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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간다'와 '온다'를 한 번씩 떠올려봤다. 처음 읽은 날 책 옆에 반듯하게 누워서 천장의 무늬를 셌다일주일이 지나서 다시 읽었고 그때는 옆으로 누워 표지의 안개꽃을 살폈다책은 덮어도 덮히지 않았다. 비명과 개머리판과비스듬히 꺾인 팔과반쯤 썪어 가는 얼굴과흙더미와 마르지 않는 시취가 있었다나는 어쩔 수 없이 책을 포장지로 쌌다

 

소년이 오는 이유는 무엇인가기억이 옛것으로 남아버렸기 때문이다소년이 옴으로써 우리는 소년을 기다리는… 모양이 되버렸다소년은 과연 이쪽으로 올 수 있는가소년의 걸음은 원통한 흙이 되지 않았나바람이라도 불어온다는 것인가움직일 수 없는 사람을 움직인다고 발화하는 사이한곳에 붙박여 기다리는 딱딱하게 살아있는 우리가 보인다. ‘간다 온다의 극명한 차이소년은 자신을 말할 수 있는가, '가는 것'이라고우리는 그 발화에 귀만 기울이면 되는가형체가 없는 이름이 말을 하게 하는 상황에 이르는 것은움직일 수 있는 '우리'가 가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


밀려나온 내장을 밀어 넣듯 책 밖으로 흘러나온 조각을 안으로 밀어 넣는다무용한 내 손이 책 틈에 머물러서 햇빛이 길게 책과 손을 하나의 선으로 지났다연속되지 않은 것을 분명히 하나로 지난다. 해가 지나지 않았던 곳은 없어서 그날도 분명히 아침이, 저녁이 눈에 익을 만치 캄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날들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메칠 전에는 해 질 녙에 까무룩이 그 집 처녀 얼굴이 떠오르더라이. 참 고왔는디… 고운 사람이 없어져버렸어야, 생각함스로 어둑어둑한 마당을 보고 있었다이. 그 고운 처녀가 우리 집에 들어와서 빨래 바구니를 보듬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운동화하고 칫솔을 들고 저 마당을 왔다 갔다 하던 일이 우신 전생의 꿈 같아야. 187p

 

전생의 꿈 같은 무서운 햇살이 아름답게 쏟아진다. 이 빛을 피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죄 받아라. 죄, 죄, 하고 내리는 눈, 아니라 볕 속에 오월은 한 번도 오기를 멈춘 적 없었다. 내일 아침에도 내리는 빛, 눈을 감아도 어른거리는 빛 속에는 쏠 수 없는 총을 갖고 자신이 부서지는 것으로만 양심을 확인할 수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억을 기억하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양심을 건드리기는 커녕 사실을 사실로서 알아야 한다는 것 뿐이다.


이 책을 읽고 생각난 구절이 있어서 옮겨본다.


1970년대 말, 당시 한국에서 영어의 몸으로 고생하고 있던 셋째 형이 "나에게 독서란 도락이 아닌 사명이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일이 있다. 서재나 연구실에서 씌어진 말이 아니었다. 고문이 가해지고, 때로는 '징벌'이라고 부드런, 수개월 간이나 계속된 독서 금지처분을 당하던 상황에서 써 보낸 편지였다.

 나는 곧바로 형의 이 말을 나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으로 받아들였다. 항변의 여지가 없었다.

한 순간 한 순간 삶의 소중함을 인식하면서, 엄숙한 자세로 반드시 읽어야할 책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독서. 타협 없는 자기연찬으로서의 독서. 인류사에 공헌할 수 있는 정신적 투쟁으로서의 독서.

 그 같은 절실함이 내게는 결여돼 있었다. 꼭 읽어야 할 책을 읽지 않은 채, 귀중한 인생의 시간을 시시각각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서경식, 『소년이 온다』, 돌베개, 146p



나는 덮히지 않는 책을 그대로 둔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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