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빅 슬립 ㅣ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1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월
평점 :
한 마디로 기대 이상이었다.
우선 세밀한 묘사와 간결한 문체 그리고 빛나는 비유 - 하루키와 정유정이가 극찬한 이유가 있었다.
처음에는 인물들의 대화들이 잘 연결되지 않고 즉각적이지 않아 낯설었다. 하지만 반복해 읽다보면 의미를 알게 되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하는 즐거움이 있다. 때로 리얼리티를 무너뜨리는 거친 표현은 단번에 써내려가는 챈들러 스타일 때문인 듯.
그 다음은 매력적인 작가의 페르소나 말로. 기본적으로 명석하고 쿨한 느낌인데, 얄밉도록 잘 이죽거리며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때로 얼치기 기사도 흉내를 마다 않는 주인공 말로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위기 상황 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유머는 -난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다이하드 형사의 원조 격이다.
끝으로 치밀한 구성과 뒤통수를 치는 결말. 흔히 추리 소설들 마지막이 사실은 이렇게 된 거거든 하며 서둘러 마무리짓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내게, 한마디 언질도 복선도 없이 돌직구를 던지며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솜씨란. 밀려드는 서늘함이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덧붙인 빅 슬립의 의미까지 너무 좋았다. 이로써 챈들러 말로 시리즈는 단번에 도서 목록 리스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