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에서 방문 예정돼 있는 프라도 미술관 그리고 성 가족 성당. 이뿐만 아니라 마을마다 있는 크고 작은 광장과 주요 도시의 대성당. 이들을 제대로 알기 위한 폭넓은 지식을 얻고자 여행길에 오르면서 책 몇 권을 휴대했다. 여행 전에 책을 읽고 미리 알아 두면 여행 내내 쓸모있는 지식이 되리라는 것을 진작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실제 그러지 못하였고, 부족한 예습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지 못한 채 책들을 여행가방에 주섬주섬 챙겼다. 그러면서 동행이 없는 여행길에서 줄곧 책을 벗삼을 수 있을 줄로 기대했다. 책 두께가 두껍지 않아서 여행 중에 옆구리에 끼고 봐도 되리라고 부담없이 여기기도 했던 것 같다. 전자책을 휴대할까 고민하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전자책을 구하지 못하여 집에 있는 책을 가져갈 수 밖에 없었다.

여행이 시작되고 첫날부터 이런 기대는 나의 큰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여행 중에 볼거리가 얼마나 많은데 책 한 줄 읽겠다는 기대감은 가당한 일인지 반산반의하기는 했었지만 말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책 한 번 펴본 것이 전부였다. 출발 전에 미처 알지 못한다고 해도, 여행 중에 만나고 친해지는 벗들이 많다. 마음을 열기 나름이다. 처음에 없어도 마음이 맞는 동행이 한둘쯤 생기기도 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그랬다. 좋은 벗들과 함께 어울리다보면 낯선 여행지가 좀더 친숙해지고 서투른 행동과 실수조차도 여행의 추억이 되고는 한다. 휴대한 책에 있을 법한 지식을 사전에 알고 있으면 아는 만큼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다지 대수로울 것도 없다. 그보다도, 책을 휴대했음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나한테 책이 있는지조차 무심해지면서 미련을 더이상 가지지 않기로 한다. 억척스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유로움을 이번 여행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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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봄. 2018-02-19 1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드리드여행 준비하면서 저 비슷한 책을 사놓기만 했습니다만.

오거서 2018-02-19 19:34   좋아요 0 | URL
즐거운 여행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