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진 나무의 기억」(경향신문, 2004년 4월 28일) - https://goo.gl/PCD8Tp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

일주일째 조금씩 읽어나가던 슈테판 츠바이크 회고록 『어제의 세계』(곽복록 옮김, 지식공작소, 2014)를 폈다. 이 문장이 가슴에 와 닿았다.

누군가를 자기 혼자서 사랑한다는 것은 언제나 두 배로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양화가 유택렬과 흑백다방』(이월춘 엮음, 도서출판 경남, 2012)

•『사슴』(백석, 안도현 엮음, 민음사, 2016)

백석의 마산길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을까.

1936년 시인 백석은 통영에 사는 난이란 여자를 만나기 위해, 마산역에서 내려 구마산 선창까지 걸어가선 통영행 배에 올랐다. 이 과정이 백석의 「통영統營 2」의 첫머리에 나온다.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갓 갓기도 하다

바람 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북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령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산山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던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馬山객주客主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던데
명정明井골은 산山을 넘어 동백冬柏나무 푸르른 감로甘露같은 물이 솟는 명정明井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 붉게 동백冬柏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女人은 평안도平安道서 오신 듯한데 동백冬柏꽃이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아서 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 한산도閑山島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사슴』(백석, 안도현 엮음, 민음사, 2016)



•『백석의 맛』 (소래섭, 프로네시스, 2009)

•『백석시집』

그 저녁 엄마는 갑자기 두부산적을 만들겠다고 했다. 백석의 시 「고방」에 등장하는 음식이었다. 엄마가 경화동에 장을 보러 간 사이, 나는 엄마가 곳곳에 하얀 간지를 끼워둔 『백석 시집』을 폈다. 그리고 「통영 2」를 찾아 눈으로 훑었다. 엄마는 그 시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 푸른 펜으로 동그라미를 쳐뒀다. 엄마가 종일 길 위에서 말하지 않고, 생각만 한 이유를 비로소 깨달았다.

내 사람을 생각한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으며, 20년 아침 집필을 이어왔다. 클래식에 정통한 작가들도 많지만 내겐 평생 이 곡이면 충분하다 여겼다. 『거짓말이다』를 쓸 때는 첼로 대신 빗소리를 택했다. 선율조차도 문장을 만들 때 부담스러웠던 걸까.


•허수경의 『너 없이 걸었다』

˝내가 가진 기억 속에서 내 고향의 기차역은 가난했다. 겨울 찬바람이 돌 때 기차역 옆에 자리잡은 국밥집에서는 콩나물과 선지가 가득 든 국물이 끓고 있었다. 끓는 것들의 비린내 속에는 울음이 도사리고 있기도 했다. 찐 달걀을 먹다가 가래가 가득한 기침을 하던 한 노인의 목에는 이루지 못한 삶이 꺼억거리면서 잦아져갔다. 드디어 기차가 도착하고 사람들이 봇짐을 이고 여행 가방을 질질 끌며 기차표를 간수에게 보여줌과 동시에 역문을 지나갈 때 나는 부러움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 가난한 역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이 나였다. 그 문을 통과할 수 없었기에 나는 가난하고도 가난했다. 그들이 지나간 역문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이윽고 역문이 닫히고 사람들이 기차에 타서 기차선로가 텅 비면 기차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떠나갔다. 기차표를 혼자서 살 수 있는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은 미래였다. 언젠가 내가 기차표를 살 수 있다면 어디로 가는 기차표를 살까? 내가 자란 도시 진주에서 제일로 먼 강원도에 있는 도시 이름을 떠올렸다.˝

―『너 없이 걸었다』 (허수경, 난다, 2015)

•로맹 가리의 『내 삶의 의미』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인 것도 기막힌 일이지만, 로맹 가리의 엄마가 암에 걸려 죽기 전 2백 통의 편지를 써서 스위스에 있는 친구에게 맡겼고, 엄마가 죽고 나서도 3년 동안이나 전쟁터의 아들 로맹 가리에게 편지가 계속 보내졌다는 사연이 더 가슴을 찌른다. 로맹 가리는 『내 삶의 의미』(백선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5)에서 이렇게 자평했다.

어머니는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탯줄이 계속 작동하게 해두었던 겁니다.

•최윤필의 『함께 가만한 당신』

엄마가 무심한 척 물었다. 예전에도 답을 했었다. 다시 질문을 받은 것이 고마웠다.

“책 내고 그 질문 정말 많이 받았어요. 대답도 나름대로 진지하게 했고, 그 답들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닙니다. 그런데 딱 맞는 정답은 나중에 찾았어요. 『함께 가만한 당신』(최윤필, 마음산책, 2016)이란 책의 발문을 쓰다가 이 문장을 적은 다음, 『거짓말이다』를 쓴 이유가 바로 요거네 하고 깨달은 겁니다.”
“어떤 문장인데?”
“‘한 사람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것은 다른 한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이다.’”

•법정의 『홀로 사는 즐거움』

새벽에 깼다. 엄마의 책꽂이에 눈이 닿았다. 법정 스님 책 세 권이 나란히 꽂혀 있다.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1996), 『산에는 꽃이 피네』(1998), 『홀로 사는 즐거움』(2004). 엄마는 성경과 함께 법정 스님의 책들을 즐겨 읽어왔다. 엄마 역시 홀로 사는 삶에 대해 꾸준히 고민한 것이다. 법정 스님은 「홀로 사는 즐거움」이란 글에서 고독과 고립을 대비시킨다.

고독과 고립은 전혀 다르다. 고독은 옆구리께로 스쳐지나가는 시장기 같은 것, 그리고 고립은 수인처럼 갇혀 있는 상태다. 고독은 때론 사람을 맑고 투명하게 하지만, 고립은 그 출구가 없는 단절이다.

세 권을 제자리에 꽂으려다보니, 그 옆에 박완서 선생님의 산문집이 놓여 있다. 제목이 오늘따라 의미심장하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현대문학,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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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8-08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어머님이 제 독서 취향과 비슷합니다. 저도 백석의 시를 좋아하고, 법정 스님의 책을 가지고 있어요. ^^

오거서 2017-08-08 19:59   좋아요 0 | URL
작가의 어머니도 cyrus 님도 독서 취향 뿐만 아니라 좋은 책과 시를 알아보는 심미안을 가진 분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많이 모자람을 느낍니다. 부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