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각시와 주락시
김기정 지음, 장경혜 그림 / 사계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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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콩밥에 가지냉국의 저녁을 먹고 나서

바가지꽃 하이얀 지붕에 박각시 주락시 붕붕 날아오면

집은 안팎 문을 횅하니 열젖기고

인간들은 모두 뒷등성으로 올라 멍석자리를 하고 바람을 쐬이는데

풀밭에는 어느새 하이얀 대림질감들이 한불 널리고

돌우래며 팟중이 산 옆이 들썩하니 울어댄다

이리하여 한울에 별이 잔콩 마당 같고

강낭밭에 이슬이 비 오듯 하는 밤이 된다.

 

책을 읽고서 책 뒤에 실린 백석의 시 '박각시 오는 저녁'을 읽어보았다

조용히 소리내 읽다보니 해가 지고 어스름해진 저녁 모깃불을 펴고 평상에서 저녁을 먹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쓸어놓은 마당, 가지런히 정리된 마당가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쌔하게 피어오르는 모깃불을 쬐고 있노라면 시간이 그대로 멈추어 영원이 된 듯 했다.

하지만 세월은 여지없이 흘렀고 우리 시골집 마당은 시멘트로 덮이고 어렸던 우리는 객지로 나가 새 살림을 꾸렸다.

시를 읽으며 잠깐 과거 시간으로 돌리었는데 책을 쓴 김기정 작가는 오랫동안 이 시를 가슴에 품었다가 이를 바탕으로 동화를 썼다고 한다.

 

고마의 아빠 구만 씨가 나 자란 시골집은 높은 고층빌딩에 둘러싸인지 오래지만 그동안 할머니가 팔 수 없다하여 그대로였다.

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고마네 가족은 할머니 집을 팔기위해 오랫만에 시골집을 찾는다.

큰풀들이 무성한 집을 둘러보던 고마는 뒤뜰에서 우연히 주락시를 만나 낯선 이들이 모인 숲의 잔치에 가게 된다.

할머니의 손자라며 반갑게 맞이하는 이들 사이에서 고마는 먼저 만났던 박각시를 만나고.. 이들이 지금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들의 조상님께 절을 올리고 그동안 돌봐주신 할머니의 명복을 비는 모습을 보면서 고마는 할머니를 그리워하고 이들에게 애틋한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주락시를 업고 할머니 집으로 돌아오면서 왠지 모를 따뜻한 눈물을 흘린다

 

오래된 할머니집 그리고 수풀이 무성한 뒤뜰은 왠지 신비로운 느낌을 갖게 한다.

거기에 독특한 그림체를 가진 장경혜 화가의 그림은 환상적인 이미지를 보태기에 충분하다.

선명치 않은 선들과 파스텔톤의 색으로 채워진 수풀과 꽃 사람을 닮은 풀벌레들의 형상은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분위기를 이끌어주었다.  

책을 읽고나서 아이들은 제일 먼저 주락시가 왜 앉은뱅이가 되었는지 이야기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들이 개미를 잡아 더듬이를 떼고 잘 날지 못하는 나방을 발로 밟더란 이야기를 하며 그런 행동을 한 아이가 너무 나쁘단다.

전에는 그저 곁에서 신기하게 구경했을 아이들인데..

고마와 풀벌레들의 만남처럼 우리 아이들도 동화를 통해 그 작은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가 깨닫게 된 듯 하다.

작은 풀벌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도 커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사람과 벌레가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우리들에게 어떤 말을 전할까?

우리 귀에 들리는 그들의 이야기가 새삼 가깝게 그리고 애절하게 들리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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