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갚은 꿩 이야기
이상희 지음, 김세현 그림 / 한림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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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적, 손으로 눈을 가리고 덜덜 떨며 보았던 전설의 고향에서 이 이야기를 처음 만났던가요?
깜깜한 밤, 스물스물 기어와 노려보는 구렁이의 눈빛에서 느껴지던 그 원망과 분노 그리고 두려움을 깨우던 종소리!
사람도 아닌 작은 미물이 은혜를  갚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는 장면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극의 말미에 '이 이야기는 ... 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우리에게 ..... 교훈을 남겨 주고 있습니다"하던 것도 생각나는데요..
[은혜 갚은 꿩] 이야기는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치악산 상원사에 얽힌 전설로 이 전설이 전해진 뒤 적악산으로 불리던 산이 치악산이라 불린다고 해요.
그리고 이 책을 쓰신 이상희 작가님은 원주의 치악산 상원사의 스님과 강원도 향토 사학자들을 직넙 만나 취재해 글을 쓰시면서 작품의 정통성을 살렸다고 합니다.



과거를 보러 먼먼 길을 떠나 강원도 적악산 험한 산길에 들어섰을 때 선비는 어디선가 사무치게 울부짖는 꿩소리를 듣습니다. 
소리 나는 곳을 찾은 선비는 구렁이가 막 암꿩 하나를 친친 감고 수꿩이 그 둘레를 빙빙 돌며 울부짖는 것을 보게 되지요.
그것을 본 선비는 측은한 마음에 구렁이를 쫓아내주고 어두운 산길을 걷다가 사람이 없는 절로 들어가 잠을 청합니다.
그리고 잠을 자다가 자기 머리맡에 앉아 있는 노인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낮에 쫓아준 구렁이가 바로 그 노인이고 그 노인은 적악산 상원사의 화주승이었다가 종을 만들면서 쇠붙이를 훔친 죄로 구렁이가 되어 벌을 받는 중이라고요. 며칠째 굶주리다 잡은 먹이를 선비 때문에 놓쳤으니 선비를 잡아 먹겠노라고 그리고 먹이가 되기 싫으면 해가 뜨기 전까지 한 번도 울리지 못한 상원사의 종을 울려야한다는 이야기도요.
이제껏 울리지 않던 종이 저절로 울리지도 않을테고 구렁이한테 휘감긴 자신이 종을 칠 수도 없기에 선비는 죽을 때만 기다릴 수 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그 둘을 살리는 종소리가 고요히 울려퍼집니다.

자신들의 목숨을 구한 선비를 위해 목숨을 바쳐 종을 치고 선비를 위기에서 구하는 '은혜 갚은 꿩'이야기..
이 이야기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옛이야기는 전래동화라는 이름 그대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지역에 따라 그리고 이야기하는 사람에 따라 이야기 속 주인공이나 구조가 조금씩 달라지는데요... 제가 기억하는 이야기도 사실 꿩이 아닌 까치입니다. 
그리고 이야기 내용도 조금 달라 선비가 까치를 해하려던 구렁이를 죽이는 바람에 남은 구렁이 한 마리가 선비를 죽여 복수하려 했던거 같고요.
하지만 꿩이든 그것이 까치이든 그 속에서 우리는 선비의 생명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느낄 수 있고 또 까치나 꿩이 기꺼이 목숨을 내놓으면서 은혜를 갚으려 하는 모습을 아름답고 숭고하게 느끼며 보게 됩니다.

선비를 구하려고 목숨을 내놓는 이야기 뿐만 아니라 이 이야기 책속에서는 긴장되는 다른 이야기를 하나 만납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은 쇠붙이를 욕심내 절반만 가지고 만든 종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지요. 그리고 그런 일을 벌인 노승은 벌로 구렁이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악을 저질렀을 때 벌을 받게 된다는 권선징악의 교훈도 찾게 되는데요..
꿩들은 제 몸을 던져 선비의 목숨 뿐만 아니라 구렁이가 된 노승의 한까지도 풀어 줍니다. 
자신을 잡아 먹으려던 구렁이를 해탈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까지 하다니.. 용서와 이해라는 말도 생각나더군요.
은혜는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면서 되풀이 할 수 있는 아름다운 행위일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덕을 돌려 받기 위해 베푸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일상적으로 베풀 수 있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호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거나 서로 도우려 하는 마음이 살아가면서 가져야할 마음가짐이란 것도요.

이 책의 표지에는 화사하면서도 화려한 모습을 한 구렁이가 그려져 있어요.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구렁이는 크고 무섭고 징그러운 모습이지만 표지 속 구렁이는 검정 바탕에 아름답고 화려한 꽃무늬를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표지엔 책 속의 주인공이 담기기 마련,,
처음 책을 읽기 전, 이 책의 주인공이라면 바로 은혜를 갚은 꿩일텐데 왜 구렁이가 그려져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더군요.
그리고 인상적인 표지 그림도 그렇고 [만년샤쓰], [준치가시], [엄마 까투리], [꽃그늘 환한 물]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김세현 화가가 그리신 거라 해서 책에 대한 기대도 아주 높았습니다. 
한지 그 자체가 바탕그림이 되기도 하고 한지를 그리고 잘라 표현한 시간과 공간, 또 먹물로 그려진 그림은 동양미를 느끼게도 합니다.
우리 한지가 가진 특유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살려 담백하면서도 잔잔히 여러 색으로 채워진 그림은 무섭다기 보다는 환하게 글을 살려주고요.
한지로 보여지는 아름다운 색들과 무늬가 우리나라 옛이야기의 전통적인 아름다움까지 더 담아내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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