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욤 뮈소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읽은 책. 어쨌거나 기욤과는 첫만남인데.., 음..., 느낌상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 같다.(기욤 패트리의 숨막히고도 놀라웠던 플레이가 그립다.)

- 저승사자 그레이스 코스텔로가 처음 나타났을 때는 대략 황당, 그나마 이 여자가 별다른 신통력을 부리지 않아서 점점 적응해나가던 도중이었는데, 병원에 찾아와서 몇 바늘 꿰맬 때만 해도 제법 괜찮다 싶었더랬는데.., 벌집처럼 연발총을 맞고서 죽었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병원으로 찾아오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그저 어안이 벙벙, 그럴려면 뭣땀시 상처는 꿰맸나?  

- 삶의 표면을 겉돌기만 하는 문장들(그렇다고 표면을 탐색하자는 문장도 아니고) 단 한 줄도 건질 것이 없다!

-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가 애니메이션에서 영화적 감각을 확실하게 느끼게 해줬던 것처럼 <구해줘>가 이른바 영상적 감각의 글쓰기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만큼은 수확임. 특히 줄리엣과 샘이 메리어트 호텔에서 나누는 대화시퀀스는 재치있고도 기억할만함!(공중그네의 만화적 글쓰기와도 비교됨) 

- 줄리엣이 테러범으로 오해받는 장면이 왜 필요한 것인지?(작가가 미국에 대해서 비판적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한 알리바이 확보용?) '디 노비'라는 이상한 이름의 악역 예정 수사관은 왜 똥폼만 잡고 소리만 치다가 끝나는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 모르다가도 모를 노릇

- 제목인 구해줘가 나오는 장면이 너무 없어보임. 일부러 그 장면을 잔뜩 과대포장을 해대니까 오히려 <구해줘>라는 말(혹은 시선)이 주는 절실한 느낌이 사라짐. '조디'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절실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지나치게 과장된 설정 때문에 빚어지는 문제임(선정주의). 그런게 아니라 무언가 나즈막하고도 어렴풋한 호소가 담겨 있는 구해줘.., 

- 형편없는 복선과 반전....., 어색하기만 함. 게다가 언제나 날라리 장식품으로 등장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

- 전형적인 너무나 전형적인 인물들, 착한 넘은 더욱 착하게, 나쁜 넘은 더욱 나쁘게(근데 나쁜 넘들은 마약장수들 빼고는 별로 없다.) 저승사자까지 포함해서 판박이 인물들이 뻔하게 움직이는 재미없는 인형극

- 뉴욕에 대한 수박 겉핥기식 묘사, 아무런 애정도 없으면서 애정 만땅인 척 사기치기, 여행가이드에 나올법한 닳고 닳은 문장들

-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 <사랑과 영혼>의 얼렁뚱땅 합체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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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피츠제럴드 케네디

앤디가 메러디스와 헤어지면서(96쪽)
 "다시는 안 만날 거야." 메러디스가 말했다. "다 끝났어, 앤디. 더 이상 이렇게는 안 돼."
 그녀의 얼굴은 절망과 좌절로 물들어 있었다.
 "이해해."
 "넌 어쩜 울지도 않니?"
 "나도 견디고 있는 거야, 메러디스. 널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없어. 언제나 널 사랑할거야."
 그녀는 자기 몸을 부둥켜안고 흐느끼며, 비참하고도 처연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넌 모르는구나, 그렇지?" 그녀가 물었다.
 "널 사랑하는 건 알아. 하지만 우리 앞날을 위해 - ."
 "존 케네디가 총에 맞았단 말이야."

리처드 닉슨

 

 

 

 

 

 

데이비드가 자신의 부모님 댁을 방문하고 나오는 닉슨과 만나면서(229~230쪽)
"11월에 행운을 빌겠습니다." 데이비드가 말했다.
닉슨이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상의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네. 버치 협회와 좀더 의견일치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자네 부친과 로저 스톨츠가 실망하고 있는 건 아네. 나도 마찬가지야."
"그분들은 당신을 지지할 겁니다."
"그렇지가 않아."
데이비드는 전 부통령의 얼굴에 지나가는 어두운 그림자를 보았다. 이 사람은 항상 불안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비틀즈 & 엘비스 프레슬리

 

 

 

 






1968년 10월 3일에 죽은 자넬 폰이 1965년 11월 19일 언니 리네트에게 보낸 편지(283쪽)

   9월에 '설리반 쇼'에서 비틀스 나오는 거 봤어? 너무너무 멋있어. 엘비스도 봤는데 지금도 좋아하는 건 맞지만, 그 사람은 자기 행동이 점점 더 지겨워지는 모양이야. 웃을 때보다 비웃을 때가 많잖아. 하지만 그 사람이 왜 그러겠어? 잘 생긴 남자가 비웃을 이유가 어디 있겠어? 

빌리 그레이엄












데이비드가 젊은 목사 휫브렌드를 만나면서(321쪽)


   데이비드는 그 젊은 목사를 살펴보았다. 휫브렌드의 이력서에는 '빌리 그레이엄의 전통적인 믿음에 기초한, 종파를 뛰어넘는 복음 전도자'라고 적혀 있었다. 나이 스물둘. 하지만 그에게선 불꽃이 보이지 않았다. 빌리 그레이엄은 텍사스 주에 번지는 대화재처럼 불을 지필 수 있었다. 주위 사람들도 그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휫브렌드는 그저 지적인 청년같아 보였다. 고집도 보통이 아닐 듯했다. '그로브 드라이브인 하느님의 교회' 이곳 셜고단에 서서 자신도 모르게 교인들을 - '자신'의 교인들을 - 지루하고 화나게 만드는 이 젊은 목사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믿음은 기쁨이어야 한다. 하느님은 기쁨이다. 예수님은 기쁨이다. 그런데 휫브렌드는 루터 식으로 교육받은 재치 없는 항명자일 뿐이었다.

찰스 맨슨


 











앤디가 리네트 폰이 일하는 '베어'에서 찰스 맨슨의 공연을 보며(440~441쪽)
   10분 후에 그 왜소한 남자가 일어나서 인사했다. 박수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무대조명을 받고 선 그의 눈에 거친 광채가 번득였다. 그러고는 기타를 어깨에 걸쳐메고서 관객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내밀었다.
   그가 활기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비치 보이스와 녹음하고 LA에서 돌아온 찰스 맨슨의 노래를 한 번 더 들어봅시다!"
   두 명이 야유를 보냈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의자를 긁으며 찍찍 소리를 냈다.
   "개똥같은 오렌지 카운티!" 그 가수가 고함쳤다. "100킬로 밖에서도 버치 당 냄새가 나."
   "네 암내나 맡아." 누군가 소리쳤다.
   그 왜소한 남자가 기타를 가지고 무대 뒤로 물러나자 야유소리가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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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8-06-19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테고리 보고 혹시나 했는데, 이 책이 맞네요. 혹평이 많았던 책인데, 전 참 좋더군요. ^^ 이렇게 열심히 읽을 생각은 안 해봤지만, 아끼는 책 중 하나에요-

셀프커피 2008-06-20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하이드님께서! 반가, 감사. 열심히 읽는 건 아니구요, 열심히 읽어보려구 했는데 먹구 사는게 바빠서리.., 하이드님 리뷰만큼은 열심히 보는 편이랍니다.
 
고스트 라이터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3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고스트 라이터를 읽고서 토니 블레어와 박헌영을 생각한다. 
블레어의 이야기는 로버트 해리스의 픽션인 까닭에  '설마 그럴리야..,'라는 생각이 든다.
박헌영은 엄연한 역사이긴 하지만 '설마 그랬을리야..,'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픽션 속의 블레어는 좀더 현실에 가까워보이고 
역사 속의 박헌영은 도무지 픽션처럼만 느껴진다.
박헌영은 8월 테제로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었고
블레어는 제 3의 길로 영국좌파의 희망을 말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둘 다 전쟁을 했다.
게다가, 미국과의 내통의혹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블레어가 미국의 똘마니이자 이라크 전쟁의 공모자라는 것이 상식에 속한다면 
오히려, 박헌영은 미국의 첩자가 아니라는 점(북쪽을 제외하고)이 상식에 속할 것이다.
그렇지만.., 
블레어는 내통은 했지만 스파이가 아니고 
박헌영은 내통은 안 했지만 스파이가 되어버렸다. 

이상하게도 '제3의 길'과 같은 화려한 언사에도 불구하고
블레어의 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오줌'뿐이다.
수상 재직 당시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과 함께 남자들의 오줌싸기 습관에 대한 캠페인을 벌였다.
말인즉슨, 남자들의 소변은 비행거리가 길기 때문에 공기와의 접촉이 많아져서
여성에 비해 화장실 냄새가 심하게 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자들도 '서서 싸는' 습관을 버리고 여성들처럼 '앉아 쏴' 습관을 몸에 익히면
화장실 냄새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영국남자들이 블레어의 이 말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원제가 유령(The Ghost)이다.
애당초 대필작가의 일상적 이야기쯤으로 생각했던 내게 뜻밖에 다가온 정치스릴러다.
하지만 단순한 유령작가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정치적 권력 속에 내재하는 유령과 그 주위를 배회하는 꼭두각시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공포소설 쪽에 더 가까워보인다. 
따라서 마지막 반전이 끝난 후에도
권력 속에 존재하는 유령이라는 진공지대가 주는 꺼림직함이 남는다.
그리고 한국현대사의 아픈 기억인 박헌영이라는 잊혀진 인물까지 덤으로 떠오른다.



 

 

 

 

 



* 언젠가 TV에서 박헌영과 주세죽 사이에서 낳은 딸이 나온 적이 있었다.
  (아마도 위의 사진의 인물인 듯???)
  아직도 러시아에 남아 있는 그녀는
  스탈린 시대의 고려인 강제이주와 처형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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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피 & 플라워 칠드런

" 마르크주의자, 볼셰비키, 무정부주의자, 시위하는 놈들, 성조기 태우는 인간, 무신론자, 신을 증오하는 인간, 반전주의자, 히피, 이피, 마약하는 놈들, 플라워칠드런, 동성연애하는 놈들은 안 깔린 데가 없을 정도고," - 176쪽

Yippie :
  히피와 비슷하지만 좀 더 전투적이고 정치적인 미국의 반체제 청년집단. 1968년 베트남전 반대시위를 계기로 발생. 히피와 뉴 레프트의 중간을 자처
Flower Children : 히피의 다른 용어. 평화의 상징으로 꽃을 달았다고 해서 유래. 러브 제너레이션이라고도 부름











오르테가 버거 & 뉴욕컷




 

 

 

 

 

 

"스테이크 값이 비싸서 닉은 칠리소스를 듬뿍 얹은 오르테가 버거를 시켰다. 롭델은 런치 스페셜 뉴욕컷을 주문했다." - 179쪽

오르테가 버거(Ortega Burger) : 오르테가 칠리가 들어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뉴욕 컷(New York Cut) :  소 등심 중 기름기가 제일 적은 가운데를 자르면 뉴욕주와 비슷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스테이크.

- 라켈 웰치 공룡 백만년(One Million Years B.C.) 영화포스터

"라켈 웰치가 포즈를 취한 '공룡 백만년' 포스터가 욕실 문에 붙어 있었다. 저 몸매에 털가죽 비키니라니! 죽여준다고 닉은 생각했다." -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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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1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 중국식 화장실 낙서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다. 나이 많은 사단장이 젊은 싸모님을 당번병에게 맡기고 두 달씩이나 출장을 간다. 게다가 싸모님의 나이는 설흔 둘에 당번병의 나이는 스물 여덟. 사정이 이 모양이니 무슨 일이 안 벌어지면 오히려 이상할 노릇이다. 작가 스스로도 전체적인 얼개가 거의 화장실의 낙서 수준(나는 어제 친구네 집에 갔다. 그런데 친구는 없고 누나 혼자 자고 있었다...,)임을 아는 탓에 두 사람의 첫 합궁이 끝난 대목에서 다음과 같은 쑥스러우면서도 서사적인 고백을 남기고 있다. 

   "이쯤 되면 이 이야기에서는 이미 뜻밖의 즐거움을 찾을 수 없게 된다. 이야기의 시작과 전개, 절정은 모두 독자들의 총명한 상상과 예측 안에 존재하게 된다." - 102쪽

사실, 작가의 친절한 소개말이 아니더라도, 그리고 굳이 102쪽까지 가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뻔할 뻔자의 스토리전개보다는 노골적인 묘사와 파괴적인 섹스행각에 대한 염치없는 기대를 진작부터 품고 있었을 것이다. 여주인공 또한 이러한 독자들의 기대를 모르지 않는다는 듯 사단장이 떠나자마자 별다른 준비동작 없이 곧바로 노골적인 유혹에 돌입하는 스트레이트한 자세를 보여준다.  싸모님 화이륑!

2. 그런데 사단장은 누구인가? 

 

 

 

 

  

싸모님과 당번병의 금지된(혹은 예정된) 욕망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이 소설의 제목임과 동시에 마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혁명슬로건이 새겨진 팻말이다. 사단장의 출장 이후 싸모님은 팻말이 애당초 있어야 할 자리에서 다른 곳으로(주로 부뚜막으로) 옮겨놓는 것이 유혹의 사인임을 알린다.    

   " 팻말이 식탁 위에 없으면 내가 시킬 일이 있으니 위층으로 올라오라는 뜻이라는 걸 잊지 마." 

   결국 마오의 위대한 슬로건을 혁명의 언어체계에서 욕망의 언어체계로 탈바꿈시킨 것이 이 작품의 골자이자 소설을 읽는 기본적인 독법이 될 터인데.., 그런데 문제는 팻말이 놓여있는 자리이다. 싸모님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팻말은 원래 식탁 위에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왜 반드시 팻말이 있어야만 하는 자리가 밥을 먹는 식탁이어야 하는 것일까? 아무리 혁명의 시대라고 하고 이념이 종교의 수준까지 도달했던 시대라고 하더라도 밥을 먹는 자리를 혁명구호가 차지하고 있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이를 식욕이라는 인간의 가장 생물학적인 기본욕구마저도 정치가 지배하려는 노골적인 책략이라고 풀이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과잉이라는 느낌은 살아남는다. 밥과 반찬과 대화 속에 존재하는 지나치게 어색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따라서 혁명에의 과잉욕망은 자연스럽게 섹스에 대한 과잉욕망으로 자신의 무대를 옮긴다. 싸모님이 이 과잉욕망된 팻말의 자리를 식탁의 모서리나 부뚜막 등으로 옮기는 순간, 정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체제의 욕망으로 불붙어서 이글거린다. 그래서 싸모님과 당번병의 욕망은 순수한 둘 사이의 욕망이라기보다는(사실, 순수한 욕망이 어디 있겠는가?) 과잉정치에 의해 촉발된 과잉조작된 욕망에 다름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과잉촉발된 욕망은 파멸과 죽음의 향기를 수반하는 향락의 소용돌이로 치닫게 된다. 

    그런데 두 사람의 욕망을 환기시킨 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다름아닌 사단장이다. 그는 팻말을 가져온 사람이다. 게다가 그것을 식탁에 배치함으로써 불필요한 과잉을 유도한다.

   "어느날 사단장은 어디서 났는지 하얀 칠에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고 ....(중략).... 나무팻말을 들고 집으로 돌아와서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당번병에게 나무팻말에 담긴 의미(!)를 알겠느냐고 묻는다. 성실하지만 그저 그렇고 그런 답변에 그쳤을 것이 뻔한 당번병의 이야기를 듣고서 사단장은 환한 얼굴로 말한다.

   "훌륭하군, 아주 훌륭해. 우리 집 공무원 겸 취사원이 그들보다 깨달음의 수준이 훨씬 높군."

  여기서 그들이 누구인지 깨달음의 수준이 무엇인지는 수수께끼로 남는다. 하지만 흰색 바탕에 붉은 글씨라는 혁명슬로건은 싸모님의 최초의 유혹에서 동일한 색채를 반복함으로써 그 의미를 더해간다. 혁명이 유혹이 되고 유혹에의 응대가 인민을 위한 복무가 된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어둠 속에 있는 싸모님 앞에서 당번병은 제법 당돌한 요구를 한다. "누님,불 좀 켜주세요." 잠시동안의 신경전이 끝난 후 마침내 싸모님은 불을 켜는데 이 때의 모습이 혁명슬로건과 동일한 반복이 된다.

  "(싸모님은) 마치 옥을 조각해놓은 것처럼 열린 모기장 안에 몸을 웅크린 채 붉은색 담요 한 쪽 끝을 잡아당겨 허벅지에서 두 다리 사이의 중요한 부분만 살짝 가리고 있었다."    

  소설에서 사단장의 대사는 딱 두번뿐인데 위의 첫번째에 이은 두번째 대사가 더 가관이다. 당번병이 처음 사단장의 집으로 출근하던 날 사단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내 아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한, 위층에는 한발짝도 올라가지 말게."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반대로 해석하자면 아내가 말을 하면 언제라도 올라가도 된다는 뜻이 아니던가? 그런데 밉살스러운 싸모님은 말없이 팻말의 자리만 이동시킨다. 이것은 사단장의 금지명령에 해당하는가? 아니면 금지를 위반해도 좋은 특별단서조항에 해당하는가?   

   결국, 이 소설은 우연한 기회에 사단장이 자리를 비움으로써 이 둘의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사단장이 자리를 비워줌으로써 이 둘의 사랑이 비로소 시작되는 것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성기능에 문제가 있어서 첫째 부인에게 버림받고 젊은 싸모님을 얻은 사단장의 출장 사유 또한 의미심장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공공부문 구조조정(군대까지 포함한)쯤에 해당할 법한 <편제 축소 개편운동>에의 참가가 그것인데 놀랍게도 사단장은 이 회의에 참석해서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전 부대원을 시범케이스로 해산하겠다고 말한다. 오직 거세된 자만이 거세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소설의 결말에서 살신성인의 자세를 보여준 사단장이 군구사령관으로 승진하는 것도, 당번병과의 뜨거운 연애질 끝에 아이까지 밴 싸모님이 아무 탈이 없는 것도(당연한 말이지만 아이는 혁명이라는 구질서와 욕망이라는 새로운 질서의 혼혈아이다.) 모든 부대원이 일자리를 잃지만 당번병만이 특별대우를 받고 먹고 살만해지는 것도 전혀 이상한 결론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단장이 대타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혁명의 이름으로 금지를 말하는(팻말의 위치) 대타자임과 동시에 끊임없는 향락에의 참여(장기출장)를 유도하는 초자아이다. 이러한 사단장의 이중구속의 명령은 오늘날의 중국자본주의의 모습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십오년 후, 아직도 인민을 위한 복무에 고착된 상태인 당번병은 싸모님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러나 싸모님은 얼굴을 마주하는 대신 간단한 쪽지만을 남긴다.

   "돈이 필요한 거면 정확한 액수와 우편물을 받을 수 있는 주소를 적어줘."

  이제 <인민을 위한 복무>의 추억은 끝났다. 오로지 <자본을 위한 복무>만 있을 뿐...,

3. 다른 나라의 표지들

   중국표지가 나온 김에 다른 나라의 표지도 모아보았다. 사대주의인지는 몰라도 역시 프랑스라는 생각이 든다. 캬! 모택동과 씹하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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