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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3권 합본 개역판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14년 12월
평점 :
열 살 전후의 어린 나이로 추정되는 쌍둥이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대도시를 떠나 국경 근처 소도시 외곽에 있는 외할머니의 집에 맡겨집니다. 전쟁이 시작되어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인데 할머니는 탐탁지 않은 결혼을 하고 10년 만에 아이들을 맡기러 온 딸을 그리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엄마는 쌍둥이를 맡기고 떠나고 쌍둥이는 할머니의 멸시와 천대를 견디며 나름의 생존 전략을 터득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몸과 마음을 고통으로부터 단련하겠다며 서로 매질을 하거나 욕을 주고받기도 하고 심지어는 장님과 귀머거리 연습을 하거나 단식 연습을 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행동이라고 하기에는 끔찍합니다. 할머니가 시키는 일들을 하면서 살아가던 어느 날 아이들은 숲에서 죽은 군인의 사체를 발견하고 총과 수류탄 등 무기를 습득해 할머니 몰래 집 근처에 감춰두죠. 그러면서도 그들은 종이와 연필을 구해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글을 쓰기도 하면서 지냅니다.
우리가 ‘잘했음’이나 ‘잘못했음’을 결정하는 데에는 아주 간단한 기준이 있다. 그 작문이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것둘, 우리가 본 것들, 우리가 들은 것들, 우리가 한 일들만을 적어야 한다. ---P.35 비밀노트
그들은 살인을 하고, 복권을 시키고, 사과를 하고 있어. 토마스는 이미 죽었는데! 그들이 그를 되상려 낼 수 있을까? 그들이 백발이 된 내 머리를 다시 까맣게 만들 수 있을까? 미처버릴 것 같은 불면의 밤들을 지워버릴 수 있을까?---P.291 타인의 증거
세월은 조금씩 흘러가고 어느 날 아이들은 도시의 신부가 한 여자 아이를 성추행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신부를 찾아가 이를 공개하겠다고 협박하죠. 신부들은 아이들의 입을 막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용돈을 주어 입막음을 하는데 그러면서도 신부의 하녀와 친분을 쌓게 됩니다. 한편 할머니의 집에는 외국 군대의 장교가 하숙울 하는데 그는 쌍둥이들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장교의 만행과 상관없이 그들이 구사하는 외국어에 관심을 가지고 당번병을 통해서 외국어를 습득하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쌍둥이는 신부가 사는 사제관의 장작 더미에 예전에 얻었던 폭발물을 넣고 아무것도 모르는 하녀가 이를 아궁이에 넣었다가 폭발해 큰 부상을 입습니다. 장작을 패서 사제관에 납품하곤 했던 쌍둥이가 용의선상에 오르고....
이 소설은 모두 3부로 구성되었는데 주인공인 루카스와 클라우스의 존재에 대해 다소 혼란스러웠습니다. 1부에서는 주인공이 쌍둥이인지 아니면 동일 인물인지에 대해 게속 의심하게 만들고 2부에서는 중심 인물이 루카스인지 클라우스인지 또 혼동스럽습니다. 어쨌든 루카스와 클라우스라는 이름의 쌍둥이는 소설 속에서 실존했는데 이들은 시대적 배경과 무관치 않은 상징적인 존재인 것 같습니다. 작가는 헝가리 출신의 작가이고 20세기 초중반 그 시대 동유럽 국가들이 겪었던 혼란스러운 정국을 몸으로 체험한 사람들 중 한명입니다.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되었다가 나중에는 소련에 의해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되는 등 갈등과 혼란이 연속되던 시대에 살았던 겁니다. 이 소설은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였기 때문에 루카스와 클라우스가 소설 속에서 보여주는 행보는 헝가리의 모습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이 작품은 거짓으로 점철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품에서 생각해볼 만한 것은 거짓의 내용 자체보다는 거짓을 지어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누군가가 거짓을 지어내는 이유는 그 의도가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간에 타인을 속이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의 등장 인물들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을 속이기 위해서 거짓을 지어내고 있다는 점이 독특했습니다. 현실의 고통과 비참함을 이겨내는 수단으로서 거짓을 택할 수밖에 없는 시대의 아픔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갖게 하는 좋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