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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라면 10월에 쓰여져야 할 글이지만 10월은 너무나 바쁜 달이기에 미리 이렇게 글을 남긴다.
얽힘의 시대.
이 책은 9월 신간 중 정말 최고의 책이다. 서점에서 어떤 신간이 나왔나, 그 내용은 무엇인가, 얼핏 살펴보고 지나가려던 나의 발을 붙잡아 한 구석에 주저앉히고, 끝내 마지막장까지 읽게 만든 책이다. 다시 말하지만 9월에 출간 된 책들 중 가장 뛰어나리라고 본다. 물론 이런 표현은 주관적이다. 또한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감정을 다른 사람이 그대로 느끼리라고는 생각못하겠다. 그 이유는 이 책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다. 어렵기로만 따진다면 아마 레너드 서스킨드의 블랙홀, 과 같은 책이 더 어려울 것이고, 동일한 주제를 다룬 책들 중에서는 일전에 출간된 양자역학의 철학과 역사, 라는 책이 훨씬 심도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취향의 문제일 것이다. 과학에 관심이 있는가, 양자역학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가, 와 같은. 하지만 이 책은 한 가지 지점에서 다른 양자역학을 다룬 책들과 차별점을 가진다. 그것은 바로 '대화의 재구성' 이다. 아인슈타인과 보어 사이의, 보어와 파울리 등 양자 역학의 기초를 다지며 초창기를 빛냈던 물리학자들의 서간과 실제 있었던 대화를 생생하게 살려낸다. 저자는 이 책이 첫 책으로 보여지는데, 첫 책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재구성 능력을 보인다. 책을 읽고 나면 물리학자들이 서로 나눈 대화가 머릿속에 떠올라서 울려올 정도로 말이다. 특히나 고독한 방랑자 아인슈타인, 교황 보어 등과 같이, 실제 사실에 근거하여 물리학자들의 이미지를 잘 그려내며 그들 사이의 치열한 논쟁을 그려내고 있다. 너무 전문적인 내용만 다루면 독자들의 흥미를 잃는다. 이 책은 사적인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그들의 대화를 그려낸다. 이단의 물리학자, 라고 불리는 경우도 있는 데이비드 봄에 대하여 한 장을 할애하였다는 것도 특기할만 하다. 다만 단점이라면 너무 보어를 악당처럼 그려낸 점인데, 음.. 보어가 정말 그런지는 나로서는 파악하기 어렵다. 제목인 얽힘Entanglement은 한 싱글렛Siglet상태, 스핀이 반대를 향하는 두 양자쌍, 에 있는 두 양자를 따로 떼어놓았을때 한 양자에 가해지는 조작에 따라 다른 양자의 상태가 정해지는 양상을 뜻하는 용어이다. 마치 빛보다 정보가 빠르게 전달되는 듯한 모습을 보여 논란이 되어왔고, 논란이 되는 문제이다. 물론 해석에 따라 빛보다 빠르게 '의미있는' 정보가 전달되지는 않는다, 라고 되어 상대성의 원리를 위배하지는 않는다.
양자 불가사의
위 책과 더불어 이 책도 함께 읽으면 매우 좋은 책이다. 양자역학에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차지하는 위상은 좀 특이하다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막스 플랑크의 뒤를 이어 광양자론으로 양자를 처음으로 그 통찰력으로 떠올린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의 문을 활짝 연 사람이다. 하지만 통상적으로는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반대했다, 라는 말이 많이 알려져있다. 유명한 말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라고 했던가, 이는 보어에 대하여 아인슈타인이 한 말로 양자역학에 대한 그의 반감을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사람들에게는 알려져있다. 하지만 만약에 정말 그렇다면 도대체 그는 왜 양자역학에 그렇게 신경을 많이 썼을까? 보통 반감이 있다면 그냥 무시하는 쪽을 택하지 않을까? 왜 EPR역설과 같은 논문을 쓰면서 그토록 양자역학을 신경썼을까? 아인슈타인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정작 상대성 이론에 신경 쓴 것 보다 양자역학에 관심을 더 많이 기울였었다. 여기서 추론할 수 있는 결론은 하나다. 그렇다. 통상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역학이라는 말을 떠올릴때 가장 먼저 드는 것은 뉴턴의 운동의 법칙들이다. 뉴턴은 자신의 이론이 현실을 가장 잘 그려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지우지 않았다. 이를 두고 우리가 역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역학은 현실을 잘 그려내고 설명해낸다. 하지만 당시 아인슈타인이 반감을 드러내고 역설을 찾아내려고 했던 양자역학은 '역학' 이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은 그 너머의 진리를 바라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현실을 관통하는 하나의 원리를. 이 책은 그런 그와 함께 양자역학에 대한 탐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천재의 탄생.
천재들은 어떤 창조력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 어떤 창조력을 가지고 있으면 천재가 될 수 있을까? 후자의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동안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인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 그렇기에 천재, 라는 인물들에 관한 책들도 많이 나왔었기도 하다. 이 책도 그런 류의 책 들 중 하나이다. 먼저 천재들의 창조성의 요소를 밝히고 각 인물에 어떻게 적용되는가 보이고 있는데, 아인슈타인의 경우에는 그의 업적과 자라온 환경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의 창조성의 요인을 토론과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성격에서 가져온다. 아마 다른 인물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윈의 경우에는 토론과 끈기가 해당할지도 모르겠다. 본인의 진화론을 성숙시킬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인내와 끈기가 말이다. 하지만 본문에서 다루는 인물들이 과연 이렇게 다루어질 만큼 천재성을 지니고 있는가, 라는 의문에 이르게 되면 사실 거기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예술과 과학의 도약, 이라는 부제가 붙은 2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이야 정말 뛰어난 천재성을 보여주었지만..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보자. 그 또한 뛰어난 천재이지만 인류의 인식을 완전히 뒤바꾸어놓았다, 라고 말하기에는 어렵다. 그는 말하자면, 찰스 벤 도렌의 지식의 역사, 에서 잠깐 표현을 빌리자면, 실패한 르네상스인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정말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싶어했지만, 끝끝내 미완으로 남긴. 예술사가 최후의 만찬 이전과 최후의 만찬 이후로 나눌 수 있는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혹시 미리 만들어둔 틀에 맞추기 위해서 인물들을 고른 것은 아닐까? 그런 의문에 이 책은 답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그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를 매혹시킬 것이다.
칸트 미학.
위에서 말한 책처럼 인간의 의식에 어떤 도약이 있다면, 그 도약을 소개하는데 칸트를 빠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칸트는 그의 철학에 대한 지대한 영향으로도 유명하지만, 그리고 그의 세 권의 책으로도 유명하지만, 미학이론에서도 유명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은 미학에 대한 그의 관점을 잘 풀이해주는 책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쉬운 책은 아닐 것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은 쉽지 않았기에 많은 오해를 낳았고, 결국 칸트 그 자신으로 하여금 형이상학 서설, 을 쓰게 만들었다. 실천이성비판, 과 판단력비판 또한 결코 쉬운 책이 아니다. 그런데 칸트의 미학이 시작하는 지점은 바로 판단력비판, 이다. 무엇때문에 어떤 대상이 추하고 아름다운 것을 알 수 있을까, 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 이 아닌 우리가 할 수 있는 판단에 의식을 모으면 바로 그 순간 우리의 생각은 넓게 뻗칠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지점에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마하바라따.
사실 마하바라타(여기서는 마하바라따라고 번역되었지만 나 스스로는 마하바라타, 가 더 익숙하기에 이렇게 쓴다)를 추천하려면 바가바드 기타가 있는 6장을 소개하는 것이 가장 좋을 테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지금껏 번역된 5권까지에는 6장이 실려있지 않다. 내 기억으로는 3장까지만 번역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던데.. 아마 차분히 나오리라 여기진다. 마하바라타, 는 이 서재에서도 두 세번 언급했지만 라마야나와 함께 인도의 2대 서사시 중 하나이다. 내부에는 사상의 정수, 라고 불리는 바가바드 기타가 실려있는것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물론 후대의 연구를 통해서 바가바드 기타는 아마 덧붙혀진 장이 아닐까, 생각되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인도인들의 상상력과 의식, 그리고 우리가 인도에서 볼 수 있었던 카스트같은 부조리의 그 근원적 뿌리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는 것이 좋다. 물론 이 책은 인도인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다른 신화들이 그렇든 인간 본성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시간동안 갈고 벼려온 성찰이 담겨져있다. 여기서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마하바라타의 악당 세력에 대한 이야기인데, 판다바 형제와 카우라바 형제의 싸움을 다루는 마하바라타에서 악역은 카우라바 형제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야말로 주인공들보다 더 주인공다운 모습들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말하는 선악의 구분은 신에게 바쳐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마하바라타를 읽던 사람들이 주인공들을 따라서 읽어내려갔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도리어 악역에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 이는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이 되리라 생각된다.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스스로가 생기가 도는 것을 느낀다.. 아무래도 하는 일이 과학계통이다보니 훨씬 익숙하다. 사실 내가 있는 분야는 생물학 계통이지만.. 솔직히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냥 맨날 바쁘고 바쁜 일이다.
이제 신간평가단도 끝나가는 것 같다. 아마 나로서는 이번이 마지막 신간평가단 활동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기분이 좀 묘해진다. 딱 잘라서 이야기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번 이후에 연속해서 바로 또 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쯤해서 과학책이 하나쯤 선정되면 좋겠지만.. 뭐, 언제나 그렇듯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