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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 피터 버거의 지적 모험담
피터 L. 버거 지음, 노상미 옮김 / 책세상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1994년도에 나온 영화 레옹의 OST로 쓰인 Shape of my heart를 부른 것으로 유명한 스팅은 그 외에도 숱한 히트곡들을 불렀는데, 그 중에 유명한 곡이 바로 Englishman in New York입니다. 뉴욕에 따로 떨어져 입에 맞지 않는 뉴욕음식을 먹고, 눈에 익지 않은 뉴욕풍경을 보며 그 거리를 걸어가는 영국신사의 모습을 서정적인 음률로 잘 그려낸 수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곡이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만약에 뉴욕이 아니라 다른 도시였다면 그 영국신사가 그만큼이나 헤맸을까요? 뉴욕이 그만큼이나 다양한 사람이 섞이고, 발전이 빠른 도시였기에 더욱 대비효과를 준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 책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저 스팅의 노래와 마찬가지로 뉴욕에서 방황하는 한 젊은이의 모습이었습니다. 책의 서두는 갓 열여덟이 된 저자, 피터 버거가 오스트리아에서 (스팅의 노래와는 다르게 영국신사는 아니었지만) ‘뉴욕’ 으로 건너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갓 열여덟이 된 피터 버거는 ‘종교적 열정에 불타고’ 있었기에 목사를 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야간에 학업을 진행할 수 있는 곳을 골라야만 했었고, 결국 사회 조사 뉴스쿨, 이라는 곳에 등록하여 강의를 듣게 되지요. 그때부터 그의 좌충우돌 사회탐방기가 시작됩니다. 그는 나중에 자신이 ‘미국 사회학’ 을 배우는 줄 알았다고 푸념하는데, 사실 그의 푸념이 완전히 틀린 것이 아닌 것이, 뉴욕은 당시에 미국은 미국이었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진) 매우 ‘독특한 세계시민주의’ 를 습득할 수 있는 장소였고 일종의 근대화의 성소와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었지요. 그의 초기 지적 여정에서 이 ‘뉴욕’ 과 ‘뉴욕식 교육’ 이 미친 영향은 그의 반생을 걸쳐 지속됩니다.

 

이 뉴욕, 이라는 도시와 함께 피터 버거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뉴스쿨에서 배운 강의였습니다. 당시 뉴스쿨에서는 일종의 삼총사, 라고 불릴만한 세 명의 교수가 있었는데, 알베르트 잘로몬, 알프레트 쉬츠, 카를 마이어가 바로 그들이었지요. 그들로부터 그가 영향을 특히 받은 것은 ‘일상생활에서 지식으로 통하는 모든 것을 다루어야 지식사회학이다’ 와 같은 명제와, ‘일상생활이라는 일차적 현실에서 다른 현실로 넘어가는 복수 현실’ 의 개념과 같은 것이었고, 무엇보다도 깊게 영향을 받은 것은 ‘막스 베버’ 적 관점으로 사회를 관찰하는 것이었지요. 그가 베버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던 사람은 위의 세 교수들 중에서도 특히 카를 마이어였는데, 카를 마이어는 전적으로 ‘베버의 관점’에서 종교를 분석하며 현재에도 잘 알려진 카리스마의 일상화와 같은 개념을 그에게 알려줍니다.

 

뉴욕과 막스 베버. 자서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사회학자로서의 이력의 궤적을 쫓아가는 이 책의 근원에는 위의 두 존재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런데 여기서 피터 버거의 지적 이력에 마지막으로 영향을 끼친 존재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바로 ‘종교’ 이지요. 앞서 피터 버거는 미국으로 건너올 때 ‘종교적 열정에 불타있었다’ 고 했었지요. 원래 그는 루터교 목사를 하고 싶었고 신학대학원까지 진학하기도 했었지만 결국 그만두고 사회학자가 되고 말았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가 사회학자가 된 것을 후회하거나 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 곳곳에서는 종교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잘 드러납니다. 당장 이 책의 원제에 쓰인 Accidental Sociologist라는 단어만 보아도 그가 사회학자와 목사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느낄 수 있지요. Accidental, 곧 어쩌다가 사회학자가 되었다는 말은 사회학자가 되지 않았다면, 혹은 삶의 정상적인 궤도를 밟아나갔다면 자신은 신학에 종사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할테니 말입니다.

 

 

 

결국 그의 지적 이력은 위의 그림과 같이 세 부분의 교집합들로 표현되어질 수 있겠습니다. 한 사람의 생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를 알아낸다면, 그 사람이 지금껏 거쳐 온 여정과 앞으로의 행로는 그 기본적인 요소들의 응축이거나 분리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물론 한사람의 삶이 꼭 그렇게 수학적으로 딱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이 책에서도 몇 번이고 ‘갑자기 어떤 일이 생겼다’ 혹은 ‘미국이라서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와 같은 언급을 통하여 자신의 생의 불확정요소들을 털어놓지요. 그러나 그런 불확정적인 요소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한 사람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아무리 삶의 풍랑이 거치더라도 등대의 불빛을 목표로 하는 (나아갈 곳이 있는) 배는 항상 희망을 품고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 피터 버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서, 위의 세 개의 구성요소들로 인하여 발생한 목표들, 그의 사회학적인 관심이 그의 지적 여로를 이끌게 됩니다. 위의 다이어그램을 봅시다. A에는 어떤 말이 적절할까요? 종교와 뉴욕의 교집합을 살펴보면, 뉴욕의 다양한 종교들, 오순절파나 루터교 등에 대한 관심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는 더 나아가 뉴욕이라는 도시의 다원성과 맞물려 뒤에 피터 버거가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것의 기초를 제공합니다. 그의 종교에 대한 관심은 (그 뉴욕이라는 도시의 다원성 때문에) 크리스트교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슬람교 등 셈족 계통의 종교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게 되었지요. 이는 이후 상대주의와 근본주의의 이분법의 폐해를 살피게 된 것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B는 막스 베버의 관점에서 종교를 분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는 앞서도 말했다시피 카를 마이어, 의 관점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그가 다양한 종교를 접할 때 항상 기본적으로 자신의 비판 준거로 삼는 것은 바로 막스 베버였습니다. 막스 베버 본인도 종교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었는데, 여기에서 더 나아가 종파와 교회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지요. 그 뿐만 아니라 ‘종교는 우연성을 필연성으로 전환시킨다’ 라는 명제 아래에 종교가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C에는 뉴욕의 다원성과 막스 베버와의 공통점에 어울릴만한 내용이 들어갈 것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거듭해서 주장하듯이, 뉴욕 한 곳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멕시코에서부터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그리고 중국과 유럽 여러 나라들, 그리고 다시 미국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지요. 물론 그의 여행에 한계점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행을 갈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진 곳을 들르는 경우가 많지요. 결국 다녀본 곳만 가게 되는 경우가 많고, 정말 내밀한 곳을 들르기란 쉽지 않지요. 하지만 사회학자란 책에서도 언급하듯이 ‘가장 가까운 유곽을 찾아가는 데 백만 달러 기부금이 필요한 사람’ 이기에 (이 말은 곧, 기부금이 있다면 소홀히 넘길만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평소라면 사회적 체면 때문에 들르지 못했을 유곽까지도 찾아간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구석구석까지는 훑지 못했더라도 대략적 그림을 잡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렇기에 그런 다원적인 모습을 막스 베버와 통합시켜서 근대화에 대한 이론을 체계화시킵니다. 그는 수많은 나라들의 정치체제와 사회적 구조를 살펴본 결과 민주주의적 자본주의가 그나마 적합한, 그리고 지속적으로 발전 가능한 모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지요. 그렇다면 그의 궁극적인 목표, 세 개의 원이 동시에 만나는 가장 한 가운데의 빈칸에는 어떤 것이 들어가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입니다. 책의 말미에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불가침’ 이라고 말이지요. 사회학은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하며,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가 어린 시절 선물로 받은 장난감 기차에서 가상의 승객들과 잡담을 나누었듯이 말이지요. 거기엔 사람들이 없잖아, 라고 생각하고 눈을 감아버린다면 우리는 우리 주위의 수많은 문제들과 부조리들에 대해서도 동시에 눈을 감게 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지하고, 함부로 눈감지 않고 그들을 지켜보는 것, 그들의 소리를 듣는 것.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에서부터 시작하며, 그 결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되는 것이지요. 책 군데군데 드러난 유머러스한 문체는 이것에 대한 반증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읽기를 방해하는 부분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저자 스스로가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모두 잘라내고, 자신이 어떤 대학을 다녔고, 어떤 기관에서 연구를 했느냐, 와 같은 딱딱하게 들릴 수 있는 부분만을 쫓아갑니다. 독자들이 궁금해할만한 사항을 ‘언급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라는 말과 함께 그대로 생략해버리는 일도 종종 저지르는 것이지요. 특히나, 그가 왜 사회학자를 택했는가, 에 대한 이유는 자세하게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예의 여기에서 언급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같은 말과 함께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갑자기 다른 곳으로 대화주제가 옮겨지듯, 이 책도 마찬가지라서 군데군데 자신의 지적 이력과는 크게 상관없는 부분으로 옮겨가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고는 다시금 적절하지 않다는 말과 함께 끊어버립니다. 지적 모험담, 이라는 부제가 붙듯 자신의 연구 결과를 이야기하기에 딱딱한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독자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부분마저 (그것도 앞서 언급해두고) 생략한다는 것은 몰입에 방해를 줄 수도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이런 부분뿐만이 아니라, 지식을 전달하는데 있어 좀 불친절한 면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의 연구결과를 모두 다 알고 이 책을 읽을 수는 없습니다. 이 책에서 자신의 책들을 정말 많이 언급하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맛만 보는 수준으로 끝나고 말지요. 그러고는 그 내용을 적용한 사회 현상을 언급합니다. 지적 여력을 되돌아보는 책으로는 맛만 보는 수준에서 책 내용을 언급하는 것이 옳지만, 그 바로 뒤에 그 내용을 적용하는 모습이 보인다면, 적어도 독자가 그 내용을 따라갈 정도로는 설명을 했어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저자 피터 버거는 사회학으로의 초대, 성스러운 천개, 신앙의 문제, 자본주의 혁명, 의심에 대한 옹호 등 수많은 책을 썼지만, 그 책들을 다 읽어본 독자는 사회학을 깊이 전공하거나, 개인적인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드물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막스 베버의 이론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모습을 책 전반적으로 보여주는데, 정작 그 막스 베버의 이론과 개념들, ‘카리스마의 일상화’ 등과 같은 개념이 어떤 의미인지 적절하게 언급이 되어있지 않다는 점을 단점으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자의 이념에의 편향,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에 대한 주장도 문제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책 중반부부터 나오는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옹호는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따라 읽어가는 입장에서는 충분한 설명이 없이 제시되어 갑작스럽지요. 그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비행기를 타는데 조종사가 아프리카의 시간 개념으로 비행기를 조종한다면 비행기가 추락할 것이다.’ 이 말은 아프리카의 시간개념과 서구의 시간개념을 비교하면서, 아프리카의 시간개념이 훨씬 느슨하고 덜 정밀하다는 주장을 하면서 도출된 말인데, 책에서는 여기에 대해 뒷받침할만한 근거는 제시되어있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는 저런 형태의 주장을 바탕으로 근대화 논리를 이끌어내고, 그 근대화 논리를 바탕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끌어내지만, 이는 근본 명제가 엄밀하지 않다는 약점을 가집니다. 실제로 저자가 자본주의에 대한 편향을 가지게 된 원인은 다르게 존재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책만으로 볼 때에는 그 이상 다른 원인을 이끌어내기는 힘들지요.

 

하지만 이런 문제점들을 제쳐두고라도, 그의 ‘지적’ 편력들에 대하여 한 쪽 눈을 감고 읽는다면, 그의 발자취를 훑어가는 일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인문학의 경계 안에 있는 어느 학문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사회과학은 인간을 살피는 학문이라고 무방할 테고, 사회현상을 살피고 분석하는 것에 앞서서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학문일 테니 말입니다. 조사를 하던 연구를 하던 그 기저에는 이 집단의 이 사람의 삶의 환경과 여정을 살피는 것이 깔려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절대 항구적이지 않고, 도리어 변덕스러우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런 것들이지요. 저자는 그런 ‘인간 세상에 대한 매혹’을 느꼈고 우리에게 그 매혹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기에 이 책을 쓴 것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책 자체도 저자 자신의 사회학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내려진 결과물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미국 뉴욕으로 건너와 낯설음을 뒤로 하고 연구에 뛰어든 이래 아직도 ‘팔팔한’ 그의 학문적 여정이,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한 시민으로서의 그의 삶이 어디로 향하여 어디에서 끝을 맺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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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미 2012-07-24 21:48   좋아요 0 | URL
저 세개의 원이 이 책을 너무나 함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연 2012-07-24 22:13   좋아요 0 | URL
어이쿠..ㅠㅠ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하죠. 일개님의 리뷰도 잘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