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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죽음을 뜻하는 한자 '사(死)'는 '부서진뼈 알(歹)' 자와 '사람 인(人)'자를 합쳐 만든 글자이다. 백골이 된 시신 앞에서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형상이다. 죽는 이 옆에는 사람이 있다.
p.16
죽음이란 가깝고도 멀다. 말은 늘 가까이 있었고 실감은 언제나 느리게 다가온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빠르게 확산되는 동안 실제로 죽음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영혼의 존재나 사후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남아있는 자들의 '죽음 다음'의 이야기. '나의' 죽음보다는 '타인'의 죽음 뒤를 이토록 많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읽는 내내 새롭고 슬펐다. 이제 슬슬 나도 내가 아는 자들을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하므로, 상상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없다'와 '있었다' 사이의 시차와 간극을 메우는 일이 슬픔이라는데, 저자가 그 슬픔의 모양이 어떤 형태여야 할지를 궁금해한 데에서 이 여정이 출발했다. 사람마다 슬픔의 모양은 다르겠지만 나도 저 질문을 가장 꼭대기에 둔 채로 책을 읽어나갔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떠났을 때 저 간극을 어떤 모양으로 메울 수 있을까 떠올려가며.
저자는 장례 산업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실제로 그 현장에 뛰어들어 피부로 느낀 장례 문화를, 고인의 사후 남겨진 자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책에 싣고 있다. 사람은 죽으면 끝이 아니다. 장례식장에서 곡을 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남겨진 자들은 고인의 죽음을 '법대로', 절차대로 정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온전히 고인을 기리고 남겨진 자들의 감정을 도닥이던 장례 문화는 산업화되어 간다. 왜 그런 의식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 말 그대로 허례허식처럼 남아 모든 순간에 금액이 산정된다. 장례를 치르는 데 천만 원 단위의 돈이 든다니 요즘은 준비 없으면 죽는 것도 쉽지 않다.
뭐 어쨌든, 간 사람은 갔고 정리해야 하는 사람은 정리해야 하는데 사실 닥치지 않으면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어디에서 사람의 장례 절차를 알려주겠는가. 사망진단서는 얼마나 뽑아야 하는지, 장례식장과 상조 회사의 차이는 무엇인지, 빈소 대여비니 안치실 요금이니 각종 요금은 어디에 지불해야 하는지... 기대하지 않던 가이드라인이 여기에 있었다. 죽음을 이야기한다면 사실 빠질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타인의 죽음에 늘 엄숙해야 함을 내재적으로 습득하게 만드는 문화에서 죽음과 돈 문제는 말하기 쉬운 문제는 아니다. 특히 남겨진 자들은 늘 감정 문제에 초점이 맞춰지기 마련이니까. 저자는 죽음에 필요한 이야기를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현장에서 느낀 말들을 균형감 있게 적은 글들은 죽음 자체보다 그 이후 사람들의 삶을 새롭게 보여준다. 장례 문화에 대해 이토록 종합적이고 현장에 뛰어든 사람이 전할 수 있는 생생함이 전달되는 르포를 이 책 외에서 또 찾을 수 있을까.
어떤 소설들을 읽으며 나의 죽음 뒤를 그려본 적이 있었다. 항상 바라는 바는 비슷했다. 내가 간 뒤에 나를 아는 사람이 많이 슬퍼하지 않기를, 내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기를, 그리하여 나의 흔적을 깨끗하게 지우고 정돈한 뒤에 떠날 수 있기를. 이승의 연이 '죽음'이라는 이벤트로 끊어질 수 있기를 바랐다.
어디엔가는 죽음이 삶의 모든 것을 털고 훌훌 떠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히려 죽음 그 너머에까지 생의 연은 지속된다. 나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사람이 있고, 타인의 죽음을 곁에서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죽음' 그 한 장면에 무수한 삶이 별빛처럼 반짝이고 얽힌다. 그저 슬픔과 상실의 죽음이 아니라 그 사건을 맞는 사람들과 노동, 각종 절차 그리고 다양한 위치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애도하는 마음으로 맞이하는 '죽음'은 읽는 이의 감정에 하나의 단어로 정의되지 않는 파문을 일으킨다. 그저 죽음을 삶의 끝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이다. 죽은 이의 가는 길과 남은 것들을 산 자들이 정리해야 하므로. 결국 이 모든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역설적으로 사(死)가 생(生)을 이야기한다. 어쩐지 모르게 밀려오는 북받치는 감정을 꾹 참고 읽게 되는 묵직함이 책을 덮은 후에도 형태 없이 남아 긴 여운을 남긴다.
살아갈수록 ‘나’라는 명칭이 1인칭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님을 알게 된다. 나는 나를 만들어온 토대와 관계 속에서 규정되고, 장례는 우리가 생전 만들어온 유대와 관계, 정치와 가치관을 드러내고 재생산하는 장이다. 그러니 나를 나로서 만들어온 것들을 살펴 이별할 준비를 하고 싶다. 그 준비를 완수하고 싶다.
p.375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