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 어느 30대 캥거루족의 가족과 나 사이 길 찾기
구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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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캥거루족이다. 서른이 넘었고 직업이 있지만 부모님과 함께 산다. 글쎄, 서울에서 독립하면 잃을 것이 너무 많아 보인다. 나는 과연 독립된 개체가 될 수 있을까? / p.11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재되어 있는 시간 제한부 퀘스트가 있다. 10대는 공부, 20대는 취직, 30대는 결혼, 40대는 자녀 양육 뭐 이런. 본래 천성이 급하거나 주위의 속도에 조급함을 느끼는 타입이 아니라서 이게 내 속도겠거니 하고 나무늘보 마냥 느릿하게 살고 있고, 완전히 독립이라고 하기에도 뭐한게 본가와 걸어서 10분 거리에 따로 나와 살면서 시도 때도 없이 엄마 앞에서 뒹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어릴 때 따로 잘 살아놓고 이제와서 바득바득 끌어안고 놓지 않으려는 꼴이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 뉴스에서 나이가 들었는데도 집에서 나가지 않은 청년들을 캥거루족이라고 한다. 아니 나 아직도 아기 캥거루 할 수 있는거야? 나이스. 그런데 캥거루족이 비단 지금 청년 개인의 문제는 아니잖아, 물가와 집값이 미쳐돌아가는데 거 좀 같이 살 수도 있지. 이전 세대의 평범한 속도를 꿈꾸기에는 세상은 너무 차고 가혹해요 ;ㅅ;



'영원할 줄 알았던 네버랜드의 시간이 흘러간다. 당연했던 나의 세계가 흔들린다.'는 부분에서 사실 조금 울었다. 나는 여전히 지금의 가족을 너무 좋아하는데,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부모님은 나날이 약해진다. 알고는 있는데 솔직히 외면하고 있었던 일이었지만, 얼마전에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하신 후에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내 세계에 분명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고. 주말이면 다 같이 거실에 모여 앉아 있는 장면이 나 혼자 앉아 있는 장면으로 곧 바뀔 수도 있겠다는 구체적인 슬픔.

아마 내 속도겠거니 했던 그 느릿함의 일부분은 두려움이었을 지도 모른다고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집을 떠나 홀로 설 수 없을 것 같아서, 진짜 혼자가 될 때의 공허함을 견딜 수 있을까 싶어서. 나는 여전히 이 네버랜드에 있고 싶었으니까.



이미 정해져 많은 이들이 밟고 지나간 길을 굳이 걷지 않더라도, 나만이 갈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어도 결국 나는 혼자 서야한다. 오롯이 자립하지 못하고 의존하게 된다면 기댄 곳의 흔들림에 나 역시 흔들리게 된다. 타인이 제공하는 안락함이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내 것이 아니므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독립 (獨立)'보다는 나 스스로 서는 '자립 (自立)'의 상태가 되었을 때 진실로 연결될 수 있다. 홀로 있는 상태가 아니라 나는 나의 위치에서, 상대는 상대의 위치에서 서로를 마주할 수 있는 의미로 나아갈 때 평온한 마음으로 맞는 얼굴들을 통해 개인의 세계는 더 넓어진다. 자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좁은 나만의 세계가 이 책을 통해 서서히 열리고 있는 것 같다. 막연한 불안함이 밀려올 때 이정표 삼아 가보지 않았던 세계로 한 발씩 딛어보게 만드는, 두려움을 한 번 삼켜볼까 하는 다짐을 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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