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 철학은 이래요. 타자인 여성이 철학 개념과 이론에 명시적이고 또 암시적으로 배어 있는 여성 평가절하의 논리를 추적하고 비판하는 건데, 여기에 철학의 도구를이용한다는 거죠. 기존의 철학을 겹쳐 쓰고 같이 쓰면서, 뿌리 깊은 기성 철학의 입장에서 벗어나 어디서든지 살아낼 수 있는 다양한 사유들의 목초들, 풀들을 자라나게 하는 일인 거예요. 지워버리고 없애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계속 겹쳐 쓰다보면 새로운모양이 될 수 있잖아요. 다 지우고 새로운 흰 종이에서 다시 시작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방식 안에서새로운 운동을 발명하면서 살아가는 것들, 이게 저는 페미니즘철학인 것 같아요 - P53
앙시앵레짐ancien regime인 봉건신분제의 왕정국가를 철폐했던 프랑스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 이념을 지탱하는논리도 인간의 이성능력이 평등하고 보편적이라는 데서 출발합니다. 이로부터 인간이라면 모두 이성적이고, 평등하다는 사고가도출됩니다. 이에 따르면, 여성과 남성 모두 이성적이죠. 그런데문제는 뭐예요? 남성만 이성적인 존재인 것처럼 권리와 의무를 주고 여성들에게는 주지 않았죠 - P59
페미니즘은 오랫동안 ‘웨이브wave‘, 즉 물결이나 파도로 은유되어왔죠. 많은대중운동이 고양되고, 가장 큰 파도를 일으킨 시기는 서프러제트>(2015) 같은 영화를 통해서 볼 수 있는 20세기 참정권 운동의시기인데, 이 시기를 페미니즘 운동에서 제1물결의 시기라 칭하고요. 인간으로서 투표할 권리와 자유롭게 존재할 권리를 쟁취하는 운동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자유주의 페미니즘 시기라고도 보통 이야기합니다. - P59
남성에게는 남성의 성적 특징을 부과하지않는데, 여성에게만 여성의 성적인 특징들, 여성의 외모적 특징들을 여성성이나, 여성이라면 지녀야 할 굉장한 덕성인 것처럼이야기하는 게 틀렸다는 거예요. 남자들에게는 인간적인 특성을두고 말하는데 여자들에게는 인간적인 특징이 아니라 여성의 성적 특징을 부과하는 것들이 부당하다는 거고, 여성도 똑같이 인간으로 대하라는 거죠. 그러니까 스테레오타입으로 대우하지 말라는 거예요. - P64
울스턴크래프트는 이런 걸 거부하는 게 중요하다고 해요.왜냐하면 스테레오타입으로 누군가를 취급하면, 인간으로서 그누군가가 자기 개성을 만들 수가 없다는 거예요. - P65
울스턴크래프트는 세상은 진보한다는 강한 확신을 했던 사람이에요. 그 누구보다 계몽주의자였고 이성주의자였죠. 그래서 계몽의 빛을 남성만 독점하지 말고 여성에게도 나누라는 거고, 그때 제일 중요한 건 교육이니까 교육의 권리를 쟁취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여권의 옹호》에 선거권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아요. 여자도 사람인데 왜 교육의 권리를 주지 않느냐는 게 기본적인 주장입니다. - P66
여남이 동등한 인간이라는 울스턴크래프트의 주장은 몇백 년 전에 제기되었지만 여전히 진행 중인 주장입니다. 성별 임금격차, 고위직 공무원, 선출직, 행정직의 불균형한 성비들을 보면 그렇죠. 그리고 대부분 여성의 직무 지위가 낮잖아요. 교수 사회만 봐도 그렇지 않나요? 종교 집단도 그렇죠. 목사나 사제 중에여성이 있어요? 기독교 같은 경우에는 몇몇 종단에는 있지만, 여성 목사나 사제가 없는 걸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 P67
한국 사회는 제1물결의 목표도 지금 쟁취가 안 됐죠. 그러니까 페미니즘을 학교 교육에 넣자고 하면 질색하잖아요. 그런데저는 그렇게 질색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글을 보면서 그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충분히 이해할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울스턴크래프트는 이성주의자, 계몽주의자예요. 이성주의자, 계몽주의자로서 봤을 때 남녀가 불평등하고, 이 불평등이 바뀌지 않는다면 페미니즘 이론으로 인간의 평등성을 쟁취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성과가 있다고생각해요. 그리고 이걸 바탕으로, 우리가 민주주의를 옹호한다면당연히 페미니즘을 옹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시켜야 한다고 봐요.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이 휴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겠죠. - P69
제가 예전에 힐러리클린턴 Hillary Clinton 자서전을 읽는데 힐러리 클린턴이 자기 개인의 신용카드를 발급을 못 받았다는 내용이 나와요. 둘이 똑같이공부하고 로스쿨 나와서 변호사 개업을 했는데, 남편인 빌 클린턴Bill Clinton의 보증이 있어야만 힐리리 클린턴의 신용이 발생하는거죠. 경제적 능력의 유무 문제가 아닌 거예요. 너무 이상하잖아요. - P71
울스턴크래프트가 《여권의 옹호》를 쓰게 된 이유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 후 프랑스 의회에 제출된 탈레랑 교육 법안에대해 반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교육 법안의 주요 내용이 공화국의 모든 소년에게만 국민교육을 시행한다는 것이었고요, 울스턴크래프트가 바로 그 점에 분개해서 6주 만에 반론을 쓴 거예요. 이 사람 자체가 민주주의자였어요. 페미니즘 교육이 민주주의랑접목되어야 하는 이유를 아시겠죠? 지금의 사회가 남녀 간에 어떤 성차별을 야기하는 사회라면 그걸 교정하는 게 교육 안에 들어가야 되고 그게 민주주의 교육의 실행이라는 생각을 했던 거잖아요. 그가 봤을 때는 아예 교육의 권리가 여성에게 없으니까, 거기에 굉장히 반발하면서 이 책을 쓴 거죠. - P80
울스턴크래프트는 마치 비꼬듯 영혼에는 성별이 없다고도 말하죠. 신이 구원을 하실 때, ‘너는 남자이니 천국에 가고 너는 여자이니 지옥에 가라‘ 이런 게 아니라는 거죠. ‘인간은 모두이성을 갖고 있고 평등하다. 지금 보면 굉장히 소박한 신념이에요. 뭐라고 하느냐면 남녀가 서로 다른 미덕을 추구해야 한다는건 신에 대한 모욕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똑같이 인간에게 불멸의 영혼을 줬으니까요. 그러니까 여자들도 남자들이 하는 거똑같이 하게 해달라고 하는 거죠. 이렇게 강하게 이야기를 해요. - P81
이 책에는 이후의 페미니스트들한테 많은 영감을 준 이야기가 많아요. 가정의 절대적 지배자로 구는 남편을 비판할 뿐 아니라, 아내와 자녀 위에 군림하는 당시의 중산층의 결혼생활은합법화된 매춘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결혼을하는 건 일종의 성매매다, 즉 법적으로 공인된 성매매라는 거죠. 이런 이야기들은 《성의 정치학》을 쓴 케이트 밀렛Kate Millett의 논의와 일맥상통하기도 해요. 부부가 동등한 위치일 수 없는 가정안에서 여자들은 번식을 위한 동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거죠. - P81
요새 SNS에서 여성들이 이런 말을 하죠. "우리는 꽃이 아니고 불꽃이다." 울스턴크래프트도 아마 크게 동의했으리라 생각합니다. - P84
울스턴크래프트는 루소만이 아니라 많은 남성 계몽 사상가들이 쓴 글을 조목조목 비판합니다. 이들은 여성을 나약하고사회에 무익한 존재로 그려내요. 특히 《실락원》을 쓴 존 밀턴JohnMilton을 언급하고 있는데요. 밀턴이 최초의 어머니라 불리는 이브를 부드러움과 매력적 우아함을 지닌 존재, 즉 남성의 시선과 감각에 즐거움을 주는 존재로 그려냈다는 거예요. 밀턴의 이야기에따르면,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관능적인 즐거움, 섹슈얼한 즐거움을 주는 존재, 그래서 매력적인 우아함과 유순하고 맹목적인 순종만을 타고난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 P90
여러분 어린이날 아시죠? 그런데 어린이날이 있다는 건 뭘 의미하는 걸까요? 왜 어른의 날은 없고 어린이날은 있을까요? 왜냐면 나머지364일이 다 어른의 날이기 때문이죠. - P91
실존철학의 기본 개념은 자유예요. ‘인간이 어떤 식으로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이게 실존철학이 던지는 질문이에요. 아주 간단히 이야기하면, 자신이 타자의 위치에 놓여 있을 때는 자유롭지 못하고, 주체의 입장에 섰을 때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게정말로 보부아르가 이야기하고 싶어 했던 자유의 개념입니다. 그자유란 주어진 게 아니라 실존을 통해 참여를 해서 쟁취하는 거라고 했죠. 그리고 이 자유의 문제를 직접적인 사회적 문제, 특히여성이라는 문제에서 시작했어요. - P103
시몬 드 보부아르는 철학이 굉장히 구체적인우리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서술을 하고 있는 거예요. ‘실존‘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가 가진 시간과 공간이라는 맥락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대한 탐구이고, 이러한 현상으로부터 철학적 성찰을 시작합니다. 보부아르는 그걸 직접 이 책을 통해 생생하게 저술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 P106
만약에 남자 교사가 단란주점으로 2차, 3차를 간 다음에 사라졌다고 해봐요. 어디를 갔을지는 미스테리지만 우리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그걸 보고 문란하다‘고 하지 않잖아요. ‘부적절했다‘고 하지 ‘문란하다‘고 하지 않아요.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런 걸 두고 사회생활이라고 하죠 - P110
요샛말로 ‘인싸 (인사이더)‘, ‘아싸(아웃사이더)‘ 같은 이야기로 알 수 있어요. 누군가를 타자로 딱 배척하는 거죠. 우리는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면 하나가 되잖아요. 바로 보부아르가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어떤 집단이 하나가 되려면 나와대척점에 있는 타자, 나와 다른 존재를 세워놓으면 된다는 거예요. 실은 동일성이란 우리가 가진 본질 때문이 아니라, 외부의 타자를 배척함으로써 획득되어왔다는 거죠. 그게 되게 중요하다는거예요 - P111
어떤 의미에서 남성은 성적인 존재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거예요. 이런 걸 특권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남자들은 자기가 남자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죠. ‘있잖아, 나는 남잔데…..‘ 이러지 않잖아요. 뭔가를 의식한다는 건 주로 이런 거죠. 예를 들면 면접을 보러 갈 때 자기 면접관을 의식하잖아요. 면접관을 의식한다는 건 그들한테 내가 잘 보일지 외부의 눈을 의식한다는 거죠. 그건 나를 언제나 판단의 대상이라는 위치에 놓는거예요. 그러니까 그들이 언제나 주체이고 나는 그들이 판단해야될 일종의 대상이에요. 뭔가를 의식한다는 건 나를 대상으로서의식하는 거예요. 내가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나 스스로 결정이 안 된다는 거죠. 외부에서 결정해준다는 거잖아요. 면접이라는 게 딱 그렇듯이. - P112
남성은 자신의 남성성이 열등한 것이라는 방식으로 자기를 의식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뭐냐면, 남성은 자기 자신을 섹슈얼한, 성적인 존재 혹은 젠‘ 더화된 존재로 자기를 이해해본 적이 거의 없다는 거예요.
남자라는 존재는 언제나 인간이었을 뿐, 자기를 성을 가진 존재로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거죠. ‘인간‘이라고 하면 그건 언제나 남성이었잖아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인체비례도> 같은 거 생각해보면 인간이 누구죠? 남자잖아요.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성은 언제나 이러한 인간인 남성, 자기 자신을 성적인 존재로 사유할 필요도 없는 제1의 성에 속해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인 타자이자 제2의 성의 자리에 있다고 설명해요.
제2의 성인여성 타자는 제1의 성을 언제나 동일한 인간으로 확인하게 하는역할을 담당해온 거죠
⭐⭐⭐ - P113
여성성이라고 하는 건 없는데 사회에서 만들었다는 거예요. 왜? 남성이 자기 힘을 더 유지하기 위해서. - P116
우리가 양성평등‘을 다룰 때, 여성과 남성을 대칭적인 상태로 보면서 ‘양성평등‘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큰 문제가 있다고생각해요. 그건 페미니즘의 기초가 안 된 상태예요. 양성평등이라는 말은 두 성이 평등하다라는 전제를 내포한 말이죠. 하지만지금껏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제2의 성인 여성은 제1의 성인 남성과 결코 평등하지 않아요. 남성은 인간인 반면 여성은 남성의 반대항인 비인간일 뿐이니까요. - P122
실존철학에서 타자의 위치에 놓여 있다는 건 자유의 성취를 이룰 수 없다는 걸 의미해요. 그런데 실존주의에서 인간에게중요한 건 자유거든요.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자유. 그런데 여성이 언제나 타자의 위치에 있고 자유를 성취할 수 없다면 부당한거잖아요.
보부아르는 여성의 위치가 타자의 입장에 있다고 하면서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끌어오는 거죠. 실존주의에서 타자성은인간을 억압하고 자유를 억압하고 인간이 가져야 될 고귀한 어떤것들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것인데, 지금 여성이 타자의 위치, 비자유의 위치에 있다면 이것을 내버려둬야 되느냐는 거예요. - P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