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목에서 칸트의 매우 유명한 구분, 곧 존엄과 가치 사 이의 구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칸트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은 가격을 가지든지, 아니면 존엄을 가진다. 가격을 가진 것은 다른 등가물로 교체될 수 있다. 반면에 어떤가격보다 숭고erhaben 하며 따라서 등가물을 허용하지 않는것은 존엄을 가진다. 일반적인 인간적 성향 및 욕구와 관련이 있는 것은 시장 가격을 가진다. (……) 반면에 오직 어떤조건 아래에서만 무언가가 목적 그 자체일 수 있을 때, 그조건은 한낱 상대적 가치 곧 가격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 가치 곧 존엄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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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서술의 요소와 혼동금지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나》로 간주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을의식적으로 또 자기의식적으로 체험할 수 있고, 무언가를알고 전달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위해 특정한 유기체가 필요함을 통찰하더라도, 이 모든 것이 완전히 설명되지는않는다. 그러나 그 통찰로 이 모든 것이 설명된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우리가 정신적 생물이기 위한 생물학적 혹은 자연적 필요조건들을 역사적으로 성장한 우리의 자기서술의 요소들과 혼동하는 것이다. 이 혼동이 이데올로기의 근본 형식이다. 이데올로기의 배후에는 자유를 모면하고 마침내 사물로 되어, 자기서술이라는 휘청거리는 다리, 타인들이 시비 걸 수 있는 그 휘청거리는 다리로 서야 하는 부담을 벗으려는 시도가 매번 새롭게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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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부터의 도피처들

오늘날 인류는 과연 누가 조감 관점을 차지할지를 놓고 싸우는 중이다. 바꿔 말하면, 누구를 혹은 무엇을 신으로 간주할 것인지를 놓고 싸우는 중이다. 과학을, 또는 기술 을, 또는 진보를, 또는 구글을, 또는 더할 나위 없이 고전적으로 신 자체를 신으로 간주할 것인지가 우리 시대의 쟁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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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하게 터무니없을 권리

인간은 합리적 동물이기만 한 것도 아니고<호모 이라티오날리스 homo irrationalis(불합리한 인간)에불과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오류가 끼어들기 쉬운자화상을 제작하고 그 자화상을 타인들과 함께 장엄하게실행하고, 발전시키고, 그 자화상의 폐해가 드러나면, 변경하는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교하게 터무니없을 권리, 반어적일 권리, 어떤 타인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 는 한에서 환상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어쩌면 그 타인 역시 나름의 환상을 추구할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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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걸 부정하기가 더 쉬운가

예를 들어 사랑은 실은 특정한 신경 전달
물질들의 칵테일과 동일하다는 주장, 혹은 사회적 일상에서 우리의 관계 맺기 행태는 까마득한 선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우리의 선조들이 익힌 행동 패턴이 오늘날에 도 우리의 행태를 규정한다는 주장을 생각해 보라.
 내가 보기에 이런 주장들의 배후에는 부담 벗기의 환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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