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수학을 사랑한 이유 - 불가능한 꿈을 실현한 29명의 여성 수학자 이야기 내 멋대로 읽고 십대 6
전혜진 지음, 다드래기 그림, 이기정 감수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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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도서를 접하기 이전의 나에게 수학은 실용적인 측면에서의 산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간혹 문학에서 수학을 접한 것은 밀레니엄 시리즈에서 언급된 페르마의 정리나 용의자 X의 헌신 속 4색 정리와 리만가설 등의 수학 천재들이 증명을 하며 스치듯 지나간 것이 대부분이었기에 수학이라는 과목은 나와는 접점이 없는 과목으로 치부했었다.

그러나 이 책은 낯설기만 했던 수학의 영역에 심지어 그곳에 금기시된 여성이 쌓아올린 업적을 한데 모아 그러낸 여성 수학자의 삶이었다.

하여 처음 책을 받아들 당시 제목만으로는 낯설고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지며 내가 감당해 낼 수 있는 책일까?라는 의문이 앞섰던 도서였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서야 여성의 접근이 허용되었다 해도 무방할 만큼 수학계에서 여성 수학자가 드물었다는 이야기들로 시작된 본문에는 수학 공부를 하기 위해 남성의 이름을 빌리고 밀항을 한다는 이야기들과 스스로 마차를 몰고 제국 여러 곳을 다니며 강의를 하다 습격을 당해 잔혹하게 살해된 히파티아나 뛰어난 여성 수학자에게 중세였다면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했을 재능이라는 발언마저 서슴지 않는 온상이 고스란히 드러나 여성 수학자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독자를 치열한 여성 수학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 영수합 서씨, 에니악 시연으로 수많은 디버깅을 해 온 여성들의 사진과 이름이 실리지 않거나 결혼 전의 이름이 소개되지 않은 부조리함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으며 여자가 공부를 많이 하면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궤변마저 자연스러웠던 시대에서도 끝내 수학적인 업적을 이룬 그녀들의 고군분투를 읽다 보면 영화나 소설 속 너드미 넘치는 주인공들이 왜 그렇게나 수학의 매력에 빠져 매일 매시간을 골몰하는지 이해가 될 만큼 흥미롭고 매력적이었다.

바스키아가 교통사고로 인해 입원하자 어머니가 사주신 해부학 도서를 읽고 미술의 세계로 뛰어들거나 마티스가 수술 후 더 이상 작품 활동을 하기 어려워 누워서 가위질을 시작하며 새로운 작품의 세계를 열어가듯 프랑스혁명으로 밖에 나갈 수 없어 수학사를 읽게 된다는 마리 소피 제르맹의 일화나 벽지가 부족해 미적분 강의록을 뜯어 붙인다는 이야기들은 수학에 전념하게 된 계기는 수학 또한 미술과같이 몰입하고 몰두할 수 있는 예술적인 한 영역이라는 사고의 전환이 되었고 이에 수학에 대한 이미지도 바뀌게 해주며 기묘한 수학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시간이었다.

미술 작품의 위작을 가리는 데에도 필요한 수학.
붓질의 주저함을 찾아내기까지 하는 이 엄청난 학문은 이번 도서로 하여금 수학이라는 학문에 다가가 흥미로움과 멋진 여성학자들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하는 시간이었다.

또한 중간중간 소개된 남성 수학자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는데 그 중 이임학의 사연은 여권을 빼앗기며 중앙정보부로 끌고 갔다는 일화마저 등장했기에 탄압을 받았던 다른 수학자의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읽는 동안 어쩌면 우리가 수학이라는 과목에 대하여 낯설고 어려워하는 까닭은 수학이 갖고 있는 흥미로움과 그 매력이 입시만을 위한 잘못된 교육 방식으로 인해 접근마저 두려워 그 매력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닐까, 우리를 수포자로 변모시켜 멀어저버린 게 아닐까라는 안타까운 이유들이 떠오르게 만드는, 프레임을 벗겨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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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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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얀마텔이 얀마텔했다.👏👏👏

현대 작품 가운데 그야말로 손에 꼽을 만큼 기발하며 환상적이었던 바로 그 작품 파이 이야기.
여기에 담겨있던 기묘함과 반전 그리고 특색 있던 요소들을 모조리 뽑아 넣었는데 거기에 추가로 조미료까지 듬뿍 넣어 최고의 작품을 넣었달까!

1부에서 등장하는 토마스는 부모를 잃고 연인, 아들까지 잃고 떠나 이후 집마저 잃었다고 생각하며 자동차를 조가비 속에 숨은 바다 생물처럼 집으로 여긴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향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모습에 마치 콜럼버스를 연상시키듯 적확하고 확실한 정보 없이 정처 없이 떠나는 모호한 방향의 의지와 상실로 인해 뒤로 걷기를 실행하는 그의 입장은 더욱 처연하고 적나라하게 그려져 몰입도가 높았다.

또한 2부에서는 의사 에우제바우의 시점에서 배우자를 잃고 망상인지 꿈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경계 이후 성경 속의 예수와 애거서 크리스티의 공통점의 제시로 죄에 대하여, 익명성에 대하여 언급하며 마리아를 혼돈과 깨달음의 공존 속에서 그려냈다.
이 표현력에 놀라움을 느끼기도 전에 그는 더욱 환각과도 같은, 파이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는 비유와 사실의 인지의 오류와 혼란 속의 적나라한 해부가 이어진다.

아이는 곰으로서 라파엘이 안에 동면하고 있다니. 새끼 곰으로 일컫는 엄청난 상상력에 경이로움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마지막 3부의 피터 역시 배우자의 상실 이후 오도를 통해 느끼는 향수.
그리고 인간에게서 외려 회의감을 느끼고 고요에 적응하게 되며 간결한 수단과 목적에 매력을 느끼는 주인공이 그려진다. 그리고 그 생활에서 나오는 스스로의 인간다움에 이끌린다.

각기 다른 단편인듯하지만 면밀히 따져보면 소멸과 상실, 포르투갈과 침팬지. 뒤로 걷기, 소멸된 코뿔소와 같은 공통적인 소재를 가진 이야기들이 펼쳐졌고 해변의 카프카가 생각나기도 하는 구성에 페이지터너의 흡인력 있는 엄청난 매력의 작품이었다.

등장인물과 소재의 그로테스크함이 주는 마력과 조금은 불친절한듯싶다가도 역시나 무릎을 치고 번뜩이게하는 전개는 독자의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진정으로 얀마텔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되었다.

얀마텔의 작품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심해 저변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
쉬이 보이지 않지만 그를 탐구하자면 엄청난 스케일에 마주하며 압도적인 경이로움에 주눅 들고 존재의 이유라는 원초적인 질문에서부터 고찰하게끔 만드는 매력을 지닌 독특한 소설이라고 사료된다.
그 차별성과 오묘함에 파이 이야기 다음으로 다시금 새로운 차원을 경험하고 나온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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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는 동안에 부에나도 지꺼져도
오설자 지음 / 푸른향기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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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우리 언어인 제주어를 지키고자 하는 부에나도 지꺼져도(화가 나도 기뻐도)를 톺아가며 읽다 보면 제주어 특유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하여 이번 서평에서는 제주어를 뜻과 함께 차용하려 한다.

서문에서 사라져가는 제주 언어를 언급하며 시작되는 페이지를 베옥이면(조심스럽게 열면) 아름다운 제주어에 대한 뜻과 설명, 저자의 추억들이 펼쳐진다.

읽는 동안 내내 곱닥헌(예쁜) 제주 풍경이 눈에 선하기도 하고 어린 시절 추억들을 고스란히 담아 펼쳐내는 모습들에 마음이 몰랑몰랑(말랑말랑)해지는 경험이었다.

제주어로 써 내려간 시와 이야기들에 이어 표준어로 풀어쓴 이야기들을 대조해 보자면 오히려 제주어로 쓰인 시가 짙은 향토색으로 하여금 따스함과 정겨움이 시를 더욱 매력을 배가시킨다.

이어 여러 제주 토속 음식들이 등장한다.
줄지어 나오는 음식들의 향연은 군침을 돌게 하는데 그 가운데 특히 제주에 여행을 가면 항상 빼먹지 않고 먹는 음식이 몸국(모자반국)의 등장이 무척 반가웠다.

음식들의 이름이 헷갈려 메모까지 해가며 읽었는데 지슬(감자)과 감저(고구마)와 빼데기(고구마를 얇게 썰어 말린 것)도 헷갈렸고 페마농(파)은 마치 프랑스어를 읽는 것만 같아 흥미로움도 있었다.

반면 가슴 아픈 4•3사건이나 세상을 떠난 이들의 이야기는 제주어로 듣게 되니 더욱더 안타깝고 처참하게 느껴졌다.

저자가 부영케(바삐) 살아가며 겪은 여러 이야기들에 지깍(가득) 채워진 깨달음을 함께 공유할 수 있어 행복했고 떠나간 부모님께서 거념해주시던(돌보아주시던) 기억들과 허물어져간 추억이 깃든 건물, 잊혀졌던 향수를 곱씹어가며 신선하면서도 정겨운 제주어와 함께 그린 저자의 회고가 눈앞에 보이듯 선연했다.

마지막 나가는 글에 “힘들었지예, 글 읽젱 허난”(힘들었지요, 글 읽느라) 이라는 저자의 친근한 안부에 벵삭이며(방긋이 웃으며) 제주어를 지켜 고유어를 보존하는데 동참하게 되었다는 뿌듯함까지 안겨주는 감사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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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길어 올리기 - 그 설핏한 기억들을 위하여
이경재 지음 / 샘터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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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도 언급된 “추억을 향수처럼 병에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영화 레베카의 대사처럼 시간 길어올리기는 저자가 세상을 살아가다 기억나는 것들을 모아 모아 써 내려간 이야기이다.
이야기 다음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이어지지만 연관성이나 정해진 순서의 규칙조차 없이 그야말로 시간 길어 올리기식으로 나열되었다.

하지만 그 비연속성이 오히려 좋았다.
알쓸신잡을 떠오르게 하는 박학다식한 이야기들은 7,80년대 배경은 기본이고 신라시대나 고려 시대 이야기까지 차용되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서양을 넘나든다.
종교적 이야기까지 등장하는 엄청난 스펙트럼의 주제로 쓰인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어쩌면 이 책은 저자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써 내려간 글이 아닌가 싶다.😄

오히려 이런 매력으로 놀라움과 감동을 주기도, 우울과 비탄에 잠기기도 하며 방대한 양의 지식들을 채울 수 있는 감사한 경험을 만끽했다.

곳곳에 삽입된 qr코드는 주제와 관련된 아름다운 음악들을 제공하기에 여유를 갖고 읽으며 고단한 하루도, 지리멸렬한 각박함의 생활도 틀에 갇혀있다 해방된 기분을 선사했고 음악을 통해 밑바닥까지 감정이 추락하기도, 황홀경에 빠져 현실을 잊기도 했다.

어찌 취향의 공통점이 이리 다양한지 학창 시절부터 매료되어 지금도 뮤지컬을 보러 다니곤 하는 백석 시인도 반가웠고 최근 알게 되었던 전혜린 작가나 이번 기회에 처음 마주하게 된 로자 룩셈부르크도 흥미로웠다.
이 감흥은 특히 생전에도 너무나 사랑해 마지않았던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음악을 들을 때 감정이 극에 달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저자는 시린 대로 아픈 대로 두는 것이 오히려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말한다.

저자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회상하며 함께 지식을 함양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분위기에 취해 낭만에 취해 향수에 취해 몽롱한 기분으로 즐기다 온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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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파괴
김민수 지음 / 달꽃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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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행성 B612와 같은 느낌을 주는 유전자 DRD4-7R은 여행 유전자, 모험 유전자 또는 호기심 유전자, 방랑 유전자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마 나에게도 저 유전자는 빼곡히 들어차있을 것 같았다.

저자 역시 본인에게 포함되었을법한 유전자와 사주에서도 역마살이 나타난다는 본인을 언급하며 본격적으로 떠날 예고를 한다.

강렬한 도입부로 독자에게 충격을 주는 소재는 바로 유명을 달리한 아내와의 4년 전 추억을 회상하며 떠난 쿠바 여행이었다.

4년 전 그들은 친구로서 23일간 쿠바에서 여행을 함께 했고, 4년이 지난 현재, 화자는 홀로 쿠바 땅을 밟았다.
두 사람이 함께 했던 기억들과 현재를 교차 시점으로 그려내어 함께 했던 추억들이 그대로 남아있기도, 빛바랜 추억이 되어 사라지기도 한 모습에 남아있어 사무치는 그리움에 괴로워하기도 하고 사라져 추억의 소멸에 서글퍼하는 심경을 무미건조한 담백한 어투로 고백한다.

누구나 늘 그렇듯 상대방을 대할 때에 익숙함으로, 이해해 줄 거라는 기대감으로 소홀히 대했던 처사를 곱씹고 다시금 고통과 인고의 시간과 마주하는 화자.

시간이 약이라지만 일상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오는 먹먹함에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워하는 인간적인 모습의 화자가 그려진다.

눈물을 쏟아내며 흑백의 사진들이 컬러로 변모하는 후반부에 이르러 마지막 에필로그를 읽다 떠올랐다.

이 이야기는 허구가 가미된 이야기였다는 것을.

깊은 자괴감과 허탈함, 공허함은 물론 둘의 결혼 생활 속에서도 흔히 겪는 생경한 충돌들을 잘 묘사해 무지몽매함 속 저지른 과오를 회한 가득한 심경의 어투로 잘 표현해 내어 호접지몽인가 싶을 정도로 저자의 필력에 과몰입해 문득 잠에서 깨어 숨을 돌리듯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쿠바의 풍경이 선연히 그려지고 화자의 심경이 섬세하게 그려져 완벽에 가까운, 치밀하게 짜인 매혹적인 이야기에 흠뻑 적셔져 나는 책의 첫 장을 펼쳐 다시 한번 더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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