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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장서의 괴로움>은 오자자키 다케시의 2007년 고분샤 신서에서 출간한 <독서의 기술>에 이은 책 이야기 제2탄이다. 이 책은 1장 책이 집을 파괴한다, 2장 장서는 건전하고 현명하게, 3장 장서 매입의 이면, 4장 책장이 서재를 타락시킨다, 5장 책장 없는 장서 풍경, 6장 다니자와 에이치의 서재 편력, 7장 장서가 불타버린 사람들, 8장 책이 사는 집을 짓다, 9장 트렁크 룸은 도움이 될까?, 10장 적당한 장서량은 5백 권, 11장 남자는 수집하는 동물, 12장 '자취'는 장서 문제를 해결할까?, 13장 도서관이 있으면 장서는 필요 없다?, 14장 장서를 처분하는 최후 수단이라는 1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책이 집을 파괴하는 장서의 괴로움을 이야기한다. 나의 방도 책의 범람으로 가득차 있으니,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나 자신의 이야기를 보는듯하다.​

"책이 아무리 많더라도 책장에 꽂아주는 한 언제든 검색할 수 있는 듬직한 '지적 조력자'다. 하지만 책장에서 비어져 나와 바닥이며 계단에 쌓이는 순간 융통성 없는 '방해꾼'이 된다. 그러다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범람은 결국 '재해'로 치닫는다. 아직은 책의 범람이 지하에 머물로 다행이지만, 이윽고 1층을 잠식하고도 성이 차지 않아 계단을 따라 2층까지 밀로 올라오면 정말이지 '대참사'가 따로 없다."​

저자는 책이 너무 많이 쌓이면 그만큼 지적 생산의 유통이 정체된다고 말한다. 사람 몸으로 치면 혈액순환이 나빠진다. 저자는 피가 막힘없이 흐르도록 하려면 현재 자신에게 있어 신선도가 떨어지는 책은 일단 손에서 놓으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장서를 엄선하고 응축하는 데 마음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도 역시 책은 팔아야 한다. 공간이나 돈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꼭 필요한 책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해 원활한 신진대사를 꾀해야 한다. 그것이 나를 지혜롭게 만든다. 건전하고 현명한 장서술이 필요한 이유다."​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다양한 작가들의 책에 관한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오사다 히로시의 대담집 <대화의 시간>에서 해부학자이자 사상가 요로 다케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책을 읽으면 장서가 늘어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명창정궤(햇빛 잘 드는 창 아래 깨끗한 책상. 송나라 학자 구양수의 <시필>에 나오는 말) 위에 책이 한 권 놓여 있고, 그걸 손에 들고 읽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독서입니다. 읽고 난 책은 없어도 될 텐데, 그렇지도 않으니 재미있는 일이지요. 장서와 독서의 관계에는 모순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시다와 함께 잡지 <비평>을 만든 동료이자 영문학자인 니시무라 고지는 <쉬는 시간에 읽는 영문학>에서 요시다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요시다의 장서는 필요한 5백 권, 피와 살이 되는 5백 권만 가지고 있었다. 시노다는 '필요할 때마다 자유자재로 열어볼 수 있는 책이 책장에 5백, 6백 권 있으면 충분하고, 그 내역이 조금씩 바뀌어야 이른바 진정한 독서가'라고 썼다. 올바른 독서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노다 하지메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책 5백 권이란 칠칠치 못하다거나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과는 다르다. 어지간한 금욕과 단념이 없으면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를 실행하려면 보통 정신력으로는 안 된다. 세상 사람들은 하루에 세 권쯤 책을 읽으면 독서가라고 말하는 듯하나, 실은 세 번, 네 번 반족해 읽을 수 있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가진 사람이야말로 올바른 독서가다."

​저자는 책장 없는 장서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며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소개한다. 영화 속에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 <한달 후, 일 년 후>가 몇 번이나 화면에 잡히는데, 그 책의 주인공 이름이 조제다. 그녀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들어 자신을 그렇게 불렀다. 책을 좋아하는 고독한 소녀에게 책장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제라 불리는 소녀가 그 많은 장서를 어떻게 보관했는지 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조제의 방엔 책장이 없다. 모든 책이 다다미 위나 옷장 속에 쌓여 있다. 살풍경한 방 안 여기저기에 책더미만 쌓여 있어 책의 성에 갇힌 공주와 같은 이미지라고나 할까. 조제에게 책장이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가난한 가정환경에서 책장을 살 금전적 여유가 없다. 또 자기 힘으로 일어설 수 없는 조제는 책장 위쪽 단에 손이 닿지 않는다. 제 앉은키 높이쯤까지 책을 쌓는 편이 훨씬 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구분해서 쌓아올리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어디에 무슨 책이 있는지 다 알고 있지 않을까. 책을 좋아하는 이 고독한 소녀에게 책장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저자는 전자서적에 대한 곱지 않은 이선을 이야기한다. 책갑에서 책을 꺼내 읽기 전에 먼저 만지고, 책장을 펼치는 동작에 독서의 자세가 있다는 저자에 말에 공감한다. 저자는 전자서적은 전자 콘텐츠이지, 책은 아니라고 말한다. 전자서적은 책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완전히 새로운 미디어라고 말하는 종이책을 향한 저자의 애착은 나와 생각이 같다.​

"책은 내용물만으로 구성되는 건 아니다. 종이질부터 판형, 제본, 장정 그리고 손에 들었을 때 느껴지는 촉감까지 제각각 다른 모양과 감각을 종합해 '책'이라 불리는 게 아닐까."​

장서를 한꺼번에 처분하기 위해 '1인 자택 헌책시장'을 추진한 저자의 노력이 인상적이다. ​'1인 자택 헌책시장'은 집에 책이 많은 나도 한번쯤 실천해보고 싶다. <장서의 괴로움>은 책으로 넘쳐나는 장서의 괴로움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종이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저자의 마음이 엿보이는 책이 아닐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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