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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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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은 <7년의 밤>, <28>의 소설가 정유정의 히말라야 여행기이다. 특히 <7년의 밤>을 인상깊게 읽었기 때문에 정유정 작가의 에세이라는 점에서 기대되었던 책이다. 이 책은 김혜나 작가와 함께 떠난 히말라야 여행에서 정유정 작가의 유쾌한 입담을 만나볼 수 있었다. 히말라야의 어원은 '눈의 거처'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어로 눈을 뜻하는 히마와 집을 뜻하는 알라야의 합성어. 태어나 대한민국을 떠나본 적이 없다는 정유정 작가는 소설 <28>을 끝낸 직후 엔진에 이상이 생겼음을 감지했다. 6년 전에 썼던 <내 심장을 쏴라>의 플롯노트를 찾아보니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가 등장했다. 정유정 작가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고 이야기하며 히말라야 여행길에 오른다. 특히 이 책에서는 정유정 작가가 히말라야를 여행하는 장면보다는 작가로서의 고뇌와 정유정이라는 개인의 인생을 풀어놓은 부분들이 더 인상적으로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은 정유정 작가가 티베트 전통 옷을 입은 여자아이를 보고 마치 환상방황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을 이야기한듯하다.

"낡은 나무대문들이 달린 돌집을 10여 채쯤 지났을까. 나는 흠칫해서 길을 멈췄다. 티베트 전통 옷을 입은 여자아이가 대문 앞에 선 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방 골목과 나무대분 사이에 괴상한 미로가 설치된 것 같았다. 나는 안나푸르나 산골마을에서 주문에 걸린 쥐처럼 환상방황을 하고 있는 것이고."


 

 

 

 

정유정 작가가 스무두 살,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마치 나의 단면을 보는 듯한 정유정 작가의 모습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스물두 살은 내 생의 랜드마크였다. 어머니가 투병을 시작한 해였고 질주하듯 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내 등에는 세 동생이 업혀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아버지마저 내게 기댔다. 나는 싸움꾼이 돼야 했다. 어머니가 가르친 대로, 죽는시늉하지 않고 살아남아야 했으므로. 어머니의 유언대로, 어머니를 대신해 엄마의 임무를 수행애햐 했으므로.

필요해 의해 선택한 성격과 달리, 나는 태생적인 겁쟁이다. 낯선 일을 싫어하고, 노상 허둥대고, 곧잘 상처받고, 넌더리나게 망설인다. 혼자 욱하고, 혼자 부끄러워한다. 사소한 일을 두고두고 곱씹으며 졸렬하게 군다.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한다. 이토록 후진 자질로, 극단적인 두 성질의 충돌을 끊임없이 겪으면서 그 기나긴 어둠을 어찌 통과했는지 스스로 신통할 지경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때가 있어 인간으로서 성숙해지고 삶이 단단해지지 않았겠느냐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 어둠은 없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인생과 싸우는 법보다는 인생을 즐기는 법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링이 아닌 놀이터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전의를 불태울 대상이 필요하지도 않았을 테다. 나는 노는 일마저 훈련해서 노는 인간이 되었다. 그것이 몸과 마음을 정전 상태에 빠뜨린 원인이었다. 내 판단에는 그랬다.

안나푸르나에 오면서, 링이 아닌 놀이터에 나를 부려놓으리라, 결심했다. 죽기 살기로 몰아붙이는 습성을 버리고 가겠노라, 마음먹었다. 싸음꾼의 투지와는 다른 힘을 얻을 수 있겠지, 기대했다. 그 힘으로 내 인생을 상대하고 싶었다. 뜬눈으로 맞은 네 번째 새벽녘에 와서야,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 목적은 잊어버린 채 안나푸르나를 상대로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고산병 증세와 일치하는 일련의 징후를 감기라고 우기면서."​

이 책에는 히말라야를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이 등장하여 여행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빙하가 흘러내려 생겼다는 강가푸르나 호수의 수면이 유백색인 사진이 독특하다.

 

 

 

 

정유정 작가는 책 속에서 남동생이 만성신부전 진단을 받자 막내동생이 형에게 콩팥을 주겠다고 수술을 한 이야기도 꺼낸다. 다행히 수술을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정유정 작가는 자신의 용기가 늘 절박함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청소년 작가로 불리던 정유정 작가가 자신의 벽을 깨기 위해서 노력해왔는지가 엿보였다.

"내 용기는 늘 절박함에서 나온다. 절박해지기 위해 나를 벼랑으로 내몬다. 당시 나는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로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받고 등단한 신인이었다. 청소년작가로 불리고 그 분야에서만 청탁이 오던 시절이었다. '소년, 남자가 되다' 유의 성장소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소년의 이야기만 주야장천 하가ㅗ 싶지는 않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원하는 방식으로 하고 싶었다. 그 이야기가 세상을 홀렸으면 했다. 그러려면 이야기할 능력이 있다는 걸 증명해 보여야 했다. 어렵사리 얻은 걸 미련 없이 버려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들어오는 청탁을 모조리 거절해버렸다. 등단하고도, 재등단에 도전해야 하는 상황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내 심장을 쏴라>는 내게 벼랑이었다."

정유정 작가는 자신을 지치게 한 건 삶이 아니었고 안나푸르나를 통해서 죽을때까지 삶을 향해서 덤벼들겠다는 다짐을 얻었다. 나도 지금 내 인생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어떤 이는 여행에서 평화를 얻는다고 했다. 어떤 이는 삶의 행복을 느꼈고, 어떤 이는 사랑을 깨닫고, 어떤 이는 자신과 화해하기도 한다. 드물게 피안에 이르는 이도 있다. 나로 말하면 확신 하나를 얻었다. 나를 지치게 한 건 삶이 아니었다. 나는 태생적으로 링을 좋아하는 싸움닭이요, 시끄러운 뻐꾸기였다. 안나푸르나의 대답은 결국 내 본성의 대답이었다. 죽을 때까지, 죽도록 덤벼들겠다는 다짐이었다. 결론적으로 떠나온 나와 돌아갈 나는 다르지 않았다. 달갑잖은 확신을 얻었고, 힘이 남아돌아 미칠 지경이라는 게 그때와 다를 뿐. 몇 년 후, 어쩌면 몇 달 후, 가까스로 얻은 힘을 전력질주로 써버리고 다시 히말라야를 찾아 올테지. 아니라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책 끝부분에 등장하는 '우리는 죽을때까지 아이인 동시에 어른인 셈이다. 삶을 배우면서 죽음을 체득해 가는 존재. 나는 안나푸르나에서 비로소, 혹은 운 좋게 어른의 문턱을 넘었다.'라고 말하는 정유정 작가의 글귀에 공감한다. 결국 인생이라는 곳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 죽음을 향해가는 어른의 몫이 아닐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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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4 1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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