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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 박범신 논산일기
박범신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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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박범신 작가가 2011년 7월 논산으로 떠난후 페이스북에 쓴 일기를 모은 것이다. 그가 논산 조정리집으로 떠나온 겨울 꼭 해보자 생각한 것이 바로 기본적인 고전읽기와 일기쓰기였다.

 

그는 순례자는 순례하는 동안이라도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길을 떠나고, 작가는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 비로소 머물 수 있어 글을 쓴다고 말한다. 글을 쓰는 작가로서, 인간과 자신에 대한 내면적 고독과 우울감을 안고 있는 그의 모습을 일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요즘, 나를 끌고 어디로 가려고 길을 나선 것일까. 길 끝은 아스라하고 어둑신해 여전히 분간할 수 없다. 너무 성급히 떠나왔는지도 모른다. 고백건대, 우울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어린애가 되거나 백 살이 되면 좋으련만. 계속 나 자신에게 자비심을 발휘할 수는 없다. 삶에 대한 어떤, 인식의 깊고도 혁명적인 전환을 갈망한다. 너무도, 너무도. 그런데 내게 그런 축복이 부여되겠는가."

"톨스토이는 말년에 자신의 작품을 다 불태우고 싶다면서 먼 변방의 간이역에서 죽었는데, 이제 그 마음 알 것 같다. 삶의 족적을 깊이 남기고 싶은 것도 욕망이고 그 흔적을 물새처럼, 아무것도 없이 다 지우고 싶은 것도 욕망이다. 이 저녁, 혼자 앉아서, 내 몸은 왜 새처럼 가볍지 않을까를 생각한다. 나는 무슨 꿈을 좇아 여기 왔을까."

 

그의 일기에서는 욕망이라는 다양한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이기에 욕망은 사그러들수 없는 존재의 이유가 아닐까.

"끝없이 사람 사이로 가고 싶은 욕망과 끝없이 사람을 등지고 가고 싶은 욕망의 간극 사이에 내가 서 있다. 그 두 가지 욕망은 마치 찰나의 영광과 불멸의 꿈처럼 멀다. 하나의 길은 현실에 있고 다른 하나의 길은 초월에 닿아 있다. 이 근원적 모순을 극복하려는 지난한 도정인지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박범신 작가의 작가로서의 고민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종교적 이상을 좇아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면 더 쓸 일도 이유도 없다는 그의 생각에 공감이 간다.

"아내는 오수에 잠기고 나는 <티베트의 지혜>를 읽는다. 최고의 수행 방법으로 제시되는 전통적 방법의 세 가지는 첫째 정견, 둘째 명상, 셋째 행위라고 이 책은 가르친다. 존재의 근원을 똑바로 꿰뚫어보는 정견도 어렵지만, 정견을 다져 끊임없이 체험으로 만드는 명상은 더 어렵고, 그것들을 삶의 일상에서 더불어 합일시키는 행위는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나의 입장에서 일상과 글쓰기와 종교적 이상을 합치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일 터이다. 종교적 이상을 좇아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면 더 쓸 일도 이유도 없을테니까."

 

박범신 작가는 인간은 생애 전 과정을 통해 늙기 때문에 어떻게 시간과 맞부딪쳐 나갈 것인가 하는 명제에서 진실로 자유로운 존재는 없다고 말한다. 그가 말한것처럼, 내 안의 내적분열은 생생한 삶과 자기억제 사이를 선택해야 한다. 박범신 작가는 자신 안에 수많은 자신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했는데 아마도 다양한 자신을 만들어내고 억제해가는 것은 쉽지 않을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이기에 그 선택의 몫은 자기에게 있을 것이다.

"나이든 사람들이 '점잖게 앉아 있는 모습은 내가 보기엔 가짜 모습이다. 그는 일상적인 추락과 상승을 거듭하는 불연속선에 항시적으로 걸쳐져 있다. 내가 그러하니 내 안의 그들도 그러하리라고 나는 상상한다. 화석화 과정을 겪는 것은 바깥의 얼굴뿐이다. 나의 문학적 에너지도 알고 보면 그 위험한 내부 분열에서 나온다. 삶의 유한성이 주는 슬픔을 지혜롭게 넘으려면 창조적인 작업에 열중하는 게 좋다. 전문가가 꼭 될 필요는 없다. 중년에 준비하고 시작해야 할 일의 하나로, 늙어가면서 어떤 창조적인 작업을 연마할 것인가, 어떻게 창조적인 자아를 위로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딜레마가 있다. 창조적인 작업은 내 안의 나를 더 극적으로 분리해서 저희끼리 싸움을 시키는 게 좋은데, 내 안에서 그런 내적 분열이 상시로 일어나면 개인적 일상은 매우 위태롭고 불안한 상태에 놓일 수 있다는 것. 내적 분열은 방부제와 같아 우리 삶을 매순간 생생하게 만들지만, 대신 일상을 가지런히 유지하려면 자기억제의 고단함을 견디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 들면서, 정신과 육체의 일체화된 화석화를 통해 가지런하고 심심한 일상을 살 것인가, 아니면 내적으로 조금 위험해지더라고 그 분열을 수고롭게 감당하며 생생히 살 것인가. 선택은 전적으로 자기 몫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이 문제의 본질은 구태여 나이 먹은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박범신 작가가 논산 조정리집에서 고향으로 떠나온 이유를 설명한다. 오직 고향이라는 이유 때문에 떠나온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작가, 하지만 그가 고향을 사랑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는듯하다.

"나는 왜 이곳으로 왔는가.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이곳이 고향'이라는 것이지만, 그러나 오직 고향이기 때문에 이곳으로 온것만은 아닐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주술적인 다른 이유가 있다고 느낀다. 아직은 어스레한 길을 흘러다니는 기분이다. 조정리 이곳은 그런 점에서 잠시 신틀메를 고쳐 신으려고 들른 빈 주막 같다. 가득 찬듯하면서 동시에 텅 빈 곳. 저 홀로 가득 차고, 수시로 따뜻이 비어 있는 집. 여기, 그리고 이 시간."

 

책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박범신 작가의 내면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한 책이여서 공감가는 부분도 많았고, 작가라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에세이이다.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리우는 박범신 작가의 깊은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는 듯한 책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해도, 나 자신을 변화시켜 보다 높은 지점으로 삶을 계속해서 들어 올릴 수 없다면, 왜 살아야 하는가, 라는 고통스러운 문제와 다시 직면한다. 고향을 떠날 때로부터 얼마나 멀리, 혹은 높이 걸어 나왔는지를 따져보니 잠이 더 안 온다. 나는 본래 참을성이 부족한데다 엄살이 많았고, 곧잘 뗴를 쓰거나 이퉁을 부려 나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려 들었으며, 사랑의 중심에서 밀려나면 항상 분노를 느꼈다.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깊은 밤, 곰곰 들여다본바 나는 그 자리 그대로 있다. 껍데기는 늙었는데 알맹이는 아직도 무명 속, 비명만 지르면서 누가 달려오기를 바라고 있다. 놀빛 서리는 걸 보면서도 여전히 내겐 확고한 영적 전망이 없다. 자신이 허울뿐인 거울 속 그림자 같다. 두렵다. 인생은 정말 '속이 빈 것처럼' 애당초 본질이라고 부를만한 그 무엇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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