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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한 사람의 인생을 두고 그것이 성공이었네, 실패였네 라고 따지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지만, 그래도 문득 궁금했다. 딱 평균치의 인생을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대단한 성공도 없이, 밑바닥 까지 떨어지는 실패도 없이 그저 평탄하게 딱 평균치의 삶을 살다 가는 사람들 말이다. 어떤 잣대를 들이대야 근접한 답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예측컨대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
대단한 성공이든 무참한 실패든 간에 한 사람의 생에 그런 일이 닥친다면 그것은 똑같이 재앙일 거라고 누구 씨가 말했다. 야망이 없는 나는 부디 내 생에 재앙이 드리우지 않기를 기도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재앙이란 것은 본디 불가항력적인 것이 아니던가? 우리네의 삶에 대고 본다면 운명이랄까, 팔자랄까 뭐 그런 게 되겠다. 어느 날 문득 재앙이 휩쓸고 간 내 삶의 자취를 되돌아보게 되는 날이 온다면(부디 그럴 일이 없길 바라지만), 그 비참한 현장에서 피하기 위해 어디로 도망해야 할까?
인생의 패배자. 우리는 집으로 갑니다.
답은 집이다. 집이 어디냐고 하면, 엄마가 있는 곳이다. 초대형 쓰나미에 울트라 메가톤급 허리케인까지 휩쓸고 지나가 아무것도 남지 않는 마흔여덟 살, 관객을 우롱하고 제작자의 뒤통수를 친 배신자 오인모는 엄마에게 간다. 인생이 쭉 사하라 사막보다 더한 불모지라서 아무것도 일구지 못하고 오물만 뒤집어 쓴 채 뻔뻔하게 엄마에게 얹혀사는 깡패, 형 오한모가 있는 곳으로. 거기에 두 형제에 비교해도 덜하지만은 않은 험한 인생을 살아온 동생 미연과 싸가지 없는 조카 민경까지 엄마의 집으로 들어오면서 평균나이 49세의 찌질이들이 가족으로 다시 뭉친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런데, 참. 이보다 더한 뜨악! 한 가족은 일찍이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없지 싶다.
재앙이라고 했었다. 이 가족의 경우는 ‘실패’의 재앙이다. 아직까지는 딱 평균치의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는 아침 드라마보다도 독한 재앙 속에 있는 이 가족이 정말로 ‘뜨악’스러웠다. 읽는 내내 낡은 가죽쇼파에 앉아 시간을 죽이는 노인네들과 같은 눈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저 302호네 아들이 말이야’하면서 입으로는 웃고 눈으로는 흘기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가족관계부터가 복잡한 이놈의 콩가루 집안이, 하나같이 ‘뜨악’ 한 인물들이 모여 과연 공생(?)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그물은 생각보다 촘촘했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촘촘했다.
결국은 또 가족 이야기. 그런데 참 독특한 가족 이야기.
‘가족’을 다룬 소설책들이 요즘 들어 눈에 띄는 기분이다. 나는 많이 읽히는 소문난 작품을 주로 보는 편이니 ‘가족’이라는 소재로 재미를 본 작가들이 꽤 있었다고 해석해도 무방하겠다. 하기사, 가족 이야기만큼 적절한 감동과 재미가 보장된 소재가 또 있을까? 많은 사람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 내기 용이한 소재이고, 공감과 지지를 받는 글에는 힘이 실리는 법이니 이야기에서 ‘가족’이라는 테마는 참 흥미로운 소재일 것이다.
결국은 또 가족이야기다. 제목에서도 이미 대놓고 가족 이야기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식상한 기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가족 구성원 누군가의 부재와 그로 인해 재발견되는 가족의 참모습. 뭐 이런 레퍼토리는 흔하디흔하고 이전에 누군가가 써먹은 것이나 여기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올까? 했더니 나왔다. 근데, 묘하게 식상하지가 않다. 작가의 비범한 필력 때문인가? 힘 있는 스토리의 힘인가? 뭐 둘 다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요인은 다른 가족 이야기와는 다른 과감한(이라고 쓰고 ‘막장’이라고 읽는다) 설정 때문이리라.
이것을 언급하는 것은 스토리가 큰 힘을 내는 이 소설을 먼저 읽은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스포일러 같지만, 살짝 맛보기만 뵈자면 말이다. 이 가족이 관계도 그리기가 애매할 정도로 복잡하다는 거다. 이런 설정이 뭐 종종 문학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간에 등장을 하긴 했었지만 이렇게도 대놓고 쏟아내지는 않는데 말이다. 참 완급조절이란게 어느 분야에서든 중요한 건데, 이 책에는 그게 없다. 그래서 그런지 막장이 막장 같지가 않고, 흉악한 게 흉악하지가 않다. 도처에서 웃음이 비져나올 뿐이니 신기하기까지 하다.
엄마를 중심으로 뭉쳐 있는 이 가족은, 사실상 엄마를 제외하면 서로 반쪽이 가족이고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제는 남이네요, 안녕~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관계다. 하지만 참 끈끈하다. 부끄럽고 유치하고 한심하게 굴어도, 경멸하는 것처럼 말하고 흘겨봐도 의지한다. 사랑하고 기대고 때로는 어려워하고, 때로는 의리를 지킨다. 왜, ‘내놓은 자식’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어지간하면 내놓았겠느냐마는, 이 가족은 내놓을 만한데도 한사코 끌어안는다. 그런 모습이 문장 속에 너무나도 교묘하게 녹아있어, 시종일관 웃길 것만 같은데 때로 기습이라도 하듯 가슴에 감동을 꽂아 넣는다.
이런 가족이야기. 일전에 있었던 듯 하지만 없었고, 생소한 듯 하지만 친숙하다. 그래서 웃음이 나고 코끝이 찡해진다. 이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왜 그리도 절절하게 ‘가족이구나!’하고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작가의 교묘한 계산일지도, 혹은 순수한 이야기의 힘일지도.
고령화 가족, 진짜 가족을 말하다.
가족은 단순히 의식주를 함께 하는 ‘닮은 사람’이 아니다. 이 세상 마지막까지 응원해 줄 든든한 지원군이며, 상식이나 규칙을 벗어나는 일이라도 ‘가족의 정’이란 것으로 모든 걸 용서할 수 있는 이들이다. 걸진 욕 한마디에 사랑한다. 백 마디를 담을 수 있는 유일한 타인이며, 격한 매초리에 눈물 백방울을 실을 수 있는 사람이다. 세상에 좌초되어 실패하더라도 ‘너는 아직 실패하지 않았어. 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은 찌질한 인생이었어도 반전을 꿈꾸게 하는 박카스 같은 존재다. 사람은 가족에게 힘을 얻고, 세상으로 나간다. 실패하더라도 가족이 있어 그들은 다시 도전할 것이다. 가족이 있는 한 실패자는 없다. 실패의 재앙도 없을 지어다.
웃음과 감동과 막장과 약간의 뻔뻔한 음담패설이 범벅된 한권의 책에서 가족은 ‘가족’이 된다. 평범하게 살지 못해 도태된 이들에게도 편은 있다. 모두가 그들의 실패를 손가락질해도 등을 돌려도 그들에게는 ‘가족’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가족’에게 돌아가 다시 힘을 얻고 반전의 기회를 엿본다. 놓지 못해 끌어안은 이 가족이, 위대하지만 자기 인생을 알차게 살아낸 억척 엄마에게 안겨 그런 ‘가족’이 되었다. 드라마틱하게, 혹은 그네들답게 재기에 성공한 그들에게 다시 재앙은 없을 지어다. 가족은, 특히 그들의 가족은 위대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