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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한 다스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문화인류학, 개정판 ㅣ 지식여행자 7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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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은 완결된 것처럼 보이는 세계에 바람구멍을 내어준다. 늘 보아온 풍경을 달리 보게 하고, 신선한 측면을 보게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의 혹은 상식으로 여겨져 온 것을 뒤집는 위협도 숨기고 있다 - p.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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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달에는 뭐가 사는 겨?
허연 머리 곱게 쪽진 우리 할매는 유난히도 나를 예뻐하셨다. 나의 유년시절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우리 할매의 무릎위에서 보냈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다. 할매는 여름밤이면 모깃불 피워놓은 들마루에 나를 뉘이고 한손으로는 연신 부채질하며, 한손으로는 내 배를 쓰다듬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셨더랬다. 훤한 보름달이 뜬 날에는 꼭 달에 산다는 옥토끼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때마다, 아가 저 보거라, 방아 찧고 있는 토끼의 모습이 보이지 않니? 하시곤 했었다. 아무리 봐도 토끼 모양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할매가 그렇다니 그런 줄 알았다.
우리 엄마의 무한한 교육열과 사랑의 몽둥이찜질로 학교 전 어설프게나마 한글을 깨친 나는 아버지 빵구난 런닝구 같이 오래된 전래동화집을 읽으며 하루를 보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을 읽다 문득 혼란에 휩싸였다. 달에는 옥토끼가 산다는 할매 말씀을 콩떡같이 듣고 찰떡같이 믿고 있었는데 책에서 보니 어느 이야기에서는 달에서는 두꺼비가 산다고 하고, 어느 이야기에서는 달에서 아름다운 아가씨가 산다고 나와 있었던 것이다. 책이 잘못 됐을 리 없고 우리 할매가 거짓말을 할리도 없는데 그럼 대체 달에는 뭐가 사는 걸까? 이 의혹은 내가 학교에 들어가 지구와 달의 공전과 자전의 개념을 배우게 됨으로써 풀리게 된다. 달에는 할매 말대로 옥토끼가 산다. 다만 내가 사는 곳에선 보이지 않는 달 반대편에는 두꺼비를 키우는 아름다운 처녀가 살고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바깥에 서서 이단을 외치다!
한번 습득한 ‘상식’이라 불리는 단편적인 지식들을 전복시킨다는 것은 사실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사람의 뇌는 꽤 유연하지만 습득과 납득이 반복되어 굳어진 생각에 대해서는 꽤 보수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자극이 주어지지 않고 반복적으로 학습된 기억에 대해서는 그것이 ‘진실’인양, ‘진리’인양 착각하고 단단한 의식의 갑옷을 둘러준다. 후에 그것에 반하는 사실을 마주치게 되면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은 익숙하게 학습된 사실로 포커스가 맞춰지고 새롭게 받아들이는 사실에 대해서는 선입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자아를 찾겠다는 사람들이 먼저 하는 일이 바로 집을 떠나는 일이듯이, 사실 납득하지 못할 진실, 알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시야를 넓혀야 한다. 내가 집에서 다 떨어진 동화책을 붙들고 고민하다가 학교에 가서 빳빳한 교과서를 통해 어린 날의 의혹을 해맑은 상상력으로 해소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안에서 나와 바깥에 설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편견이 걸러진 날몸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요네하라 마리는 그런 의미로 진정 바깥에 서 본 사람이다. 역자가 말미에 소개한 것처럼 요네하라 마리의 아버지는 공산주의자였고, 요네하라 마리 자신도 공산주의가 쇠퇴하던 1960년대 동유럽 체코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영어가 주류가 되는 시절 러시아어를 공부했고, 결혼과 출산이 당연시 되는 때를 독신으로 살아냈다. 다수결로 주류와 비주류를 나눈다고 한다면 요네하라 마리의 삶은 주류 보다는 비주류에 걸쳐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그녀의 직업은 동시통역가다. 그야말로 중심과 또 다른 중심이 부딪치는 경계에 서는 사람이다. 다른 상식, 발상법, 견해가 서로 충돌, 보완, 조화하려고 부글부글 끓고 있는 전쟁터 혹은 희극무대와 같은 그곳(p.263)에서 그녀는 어쩌면 중심에서 살짝 비껴난 곳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이런 책을 써 낼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그야 말로 상식과 상식이 충돌하는 최전방 같은 곳에서 그녀만은 무른 머리를 가지고 ‘절대’가 아닌 ‘상대’를 생각할 수 있었다. 특유의 익살로 그 ‘상대’를 풀어놓은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인 것이다.
검은 점이 빽빽한 화면에 한 칸 비워진 듯 찍힌 하얀 점처럼, 다른 문화 속에 이단인양 떨어진 누군가의 일화는 대게가 동시통역가로서 활동한 그녀와 지인들의 실제 경험담이다. 이 이야기들은 유머러스하고 재기발랄한 문체로 책속에서 춤을 추고 있지만 사실은 상당히 냉소적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그녀의 시선은 꽤 중립적이라는 것이 흥미로웠다.
러일전쟁의 잔재로 우리나라와 일본 만큼이나 관계가 껄끄러운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서 통역을 했던 일을 떠올리며 적어 내려간 그녀의 문체가 퍽 객관적이어서 조금 놀랬었다. 조선인 김 씨와 전후 분단국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깨달은 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런 그녀의 흥미로운 시각은 동시통역사로 활동하면서 겪은 일화뿐만 아니라 각국의 이해관계 충돌로 인한 분쟁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드러나는데, 이런 그녀의 쿨함이 신선함을 너머 충격으로 다가온다는 것이 이 책을 덮고 나서 더욱 충격이었다.
앞서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 이야기 한바 있다. 하지만 이 ‘상식’이라는 범주에 민족의식 같은 것도 포함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해본 것이다. 자국과 타국의 이해관계나 과거지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아무래도 자국을 옹호하게 되는 그런 것이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서양에서 개고기 식용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유의 편견 또는 아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녀가 한편으로 통렬히 일침을 가했던 좁은 시야, 오만한 강요, 무지하고 자만에 가득 찬 독선, 다른 문화나 역사적 배경에 대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결여된 상상력(p.145), 그런 골치 아픈 것들을 가진 사람들이 주류가 되는 것이 그것이 얼마나 큰 비극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나름 뜨끔했던 것이다. 국수주의니 사대주의니 하는 것은 극단적인 일례들로 설명되는 것이지만 실상 그리 극단적인 일례가 아니더라도, 나는, 어떻게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섬뜩하기 까지 했던 것이다. 인간으로 인한 모든 비극과 참사는 대게 이런 의식에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문화가 교차하는 순간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이문화가 교차하는 순간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저자가 존경해 마지않는 미하일 바흐친 선생이 남긴 말이 뇌리에 강하게 남는다.
‘이단’과의 만남이야 말로 애매했던 낱말의 의미를 명확히 해준다. 상대 혹은 우리 자신의 뜻과 처지도 자각하게 해준다. 또한 우리 자신을 보다 풍요롭게 해준다.(p.271) 그녀의 말처럼 ‘이단’은 낯설기만 하거나 배척하고 거부할 것이 아니라 대상에서 멀어져 당사자도 상대방도 아닌 제 3자의 눈으로 바라보려고 시도(p.180)해야 하는 대상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럼으로써 발생하는 의미를, 감동을, 유머를 그녀는 알았는데 우리는 다만 긴장한 체 외면하고만 있지 않았나,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아쉬움을 느꼈다.
저자가 받아든 『악마와 마녀의 사전』에는 13이 악마와 마녀의 세계에서 한 다스에 해당한다고 적혀 있었다. 저자는 이것에 꽤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저자 자신은 정작 13이 마녀의 한 다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다. 저자의 유연한 사고에서 10개 혹은 12개 혹은 13개 모두가 한 다스 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저자의 생각을과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아주 유쾌한 문화인류학 서적 혹은 동시통역가의 에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