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검이 말해주는 죽음 - 법의학자의 죽음에 관한 고찰 Moon's Forensic Thanatology 1
문국진 지음 / 오픈하우스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재미있는 책이다. 한편의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라고 까지 하면 과장이지만 반전이 있는 소설만큼 때로는 충격적이고 때로는 신선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인상적이었던 것은, 철학적이면서도 이지적인 작가의 필치였다. 저명한 법의학자인 작가는 매우 박식하면서도 대단한 달필이라, 한줄 한줄 부드럽게 읽히면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저자의 말처럼, 성과 죽음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도덕과 금기의 주요대상이었다. 사회를 구성하고 공동체의 삶을 지탱하는 이 두가지 성분을 규제하는 것이야말로 공동체 유지의 사활이 걸린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고로 이것들은 묶어두고 감시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두가지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없었으며 그러한 시도조차 보편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속된 것, 말해서는 안되는 것 이라는 전통적인 금기가 의식 깊은 곳에 뿌리박힌 것이다.

특히, 죽음에 관한 문제는 더욱 그렇다. 죽음 이라는 것은 실상 우리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이며 매 순간 우리 몸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의식하지 않으려 하고 장기사(심박정지, 호흡정지로 의학에서 정의하는 인간의 사망. 심폐기능설에 입각한 죽음의 정의는 오래 전부터 지배적인 설이었으며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에 의한 죽음만을 인간의 죽음으로 인식하고 있다. 죽음에 대한 지식이 얕은 탓에 죽음을 과히 두려워 하기도 하고 또는 경시하기도 하며 고단한 현실의 도피처로 여기기까지 한다.

죽음은 어느 생명체에게나 벗어날 수 없는 절대적인 순간이다. 생물에게 주어진 오직 유일한 평등을 사람들은 막연히 두려워 하고 혐오하기 까지 한다. 이것은 분명 잘 모르기 때문이다. 소위 존엄사로 명명되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 - 저자는 책에서 안락사와 존엄사를 구분하고 있다. 안락사는 의사가 환자의 임종에 개입하는 것, 존엄사는 환자가 존엄하게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환자측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구분된다. 고로 환자측의 요구로 인한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은 존엄사이다.)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장생하고자 하는 의지는 오랜 역사 속에서 의학을 발전시킨 원동력이었고, 생물로써의 인간이 가진 강한 욕구이자 본능일 것이다. 그것을 어그러뜨리고 고통스러우나마 남은 생명을 의도적으로 중지시키는 행위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명백한 살인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혐오로 인간이 마지막까지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의지를 꺽는 것 또한 옳은 일은 아니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안락사(안락사가 큰 개념이고 그 안에 존엄사가 포함된다.)에 대한 정의나 유형등은 꽤 세부적이며 다양했다. 존엄사(혹은 안락사)에 대한 의견과 논리는 분분하지만 정작 그것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 책은 적어도 그것에 대해 (조금 미묘한 부분도 있지만)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나로서는 모르던 것이었고, 그것이 존엄사 문제에 대해서 어떤 의식을 갖게 하는 계기는 되었다.

이 책은 존엄사와 안락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다루고 있을뿐더러 죽음 전반에 대한 폭넓은 접근을 시도한다. 총 5장에 걸쳐서 죽음의 본질과 고대의 죽음에 대한 인식, 예술작품에 나타난 죽음의 상징으로 알아본 죽음에 대한 의식변화, 죽음에 대한 의학적 접근으로 바라본 죽음의 정의나 판정, 존엄사나 안락사 같은 문제에 대한 이야기, 법의학적 지식들이 풍부하게 곁들여진 사후현상 소개와 임사체험 이야기, 시체 방부보존이나 인체 냉동보존술 같은 죽음 이후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개인적으로는 궁금하지만 알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죽음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도 장기사, 세포사, 뇌사 등 다양한 설이 있으며 보편적인 설이 있을 뿐 여전히 다양한 논의가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 존엄사와 안락사에 대한 문제도 옳고 그르다는 입장인 일단 배제하고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룬 장을 읽으며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유익했다. 법의학적 지식들이 망라된 장과 시체 방부보존, 냉동보존술을 다룬 장은 흥미로웠으며, 고대인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 부분도 나름 충격적이었다. 특히 내세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언젠가 찾아올 죽음의 순간을 받아들이고 삶에 충실하고자 했다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의식은 오늘날에 견주어도 참 진보적이어서 놀라웠다.

저자가 책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생명은 물이 흘려가는 것과 갔다. 뒤에서 오는 물이 앞서가는 물을 뒤따르는 것인지, 뒤의 것이 앞의 물을 미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물은 끊임없이 흐름을 만들어 낸다. 생명도 분명 하나의 흐름이며 과정이고 그 끝과 처음을 규정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생명의 시작과 끝을 두고 죽음을 그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마 남들도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생명의 흐름에서 시작과 끝이란 애매한 것이며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이고 인간의 죽음은 그 커다란 흐름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죽음은 막연하지만은 아닌 것이 된다. 생물의 죽음은 막을 수 없고 인간도 마찬가지다. 죽음을 막연히 두려워 하지만 말고 받아들이고 준비해야 한다. 잘 사는 것 만큼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250여 페이지가 너무 안타까운 책이다. 더 두툼했어도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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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24-11-12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死生有命 富貴在天 (論語 顏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