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왕이 온다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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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공포물이라면 질색을 하는 나는 공포영화는 물론이거니와 지나가다 붙어져 있는 공포물 포스터만 봐도 자지러지는 편인데, 하필이면 이번 아르테에서 온 책 수집가 선정도서가 <보기왕이 온다>라는 일본 호러소설이었다. 표지를 둘러싼 보라색 띠지에는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선정된 일본 호러소설 대상 대상 수상작이라는 말이 쓰여 있었고, 그 짧은 소개는 으스스한 책 표지와 함께 나를 더 겁먹게 만들었다. 하지만 처음에 주저했던 것과는 달리 첫 장을 넘기고 다음 장을 넘기면서 나는 이 책이 끌어당기는 마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적막 속 작은 소리에도 흠칫 놀라면서, 옆을 봤다가 뒤도 돌아봤다 불안하게 주변을 살펴보면서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나갔다.

 

이 책은 서술자에 따라 챕터가 총 3장으로 이루어져있다. 1<방문자>는 다하라 히데키의 목소리, 2<소유자>는 다하라 히데키의 아내인 가나의 목소리, 그리고 마지막 제3<제삼자>는 마코토의 남자친구인 노자키의 목소리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덕분에 동일한 사건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어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반전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 서로에 대한 생각이나 입장차이는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보고 겪는 문제들이어서 자연스레 공감이 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더욱더 혼자만의 생각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자기 식대로 행동하기만 한 남편 히데키자신의 생각 하나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참고 또 참으며 모든 걸 남편에게 맞추기에 급급했던 아내 가나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계속 참기만 하면 마음속에 나쁜 게 쌓이는 법이지. 오랜 세월이 지나면 그 대가가 온단다. 계속 참는 게 좋은 일은 아니야. 나는 참았어, 그러니까 용서해줄 거야.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란다. 세상은…… 이 세상은.” (31p)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말한다. 서로 간의 대화가 아닌 혼자만의 생각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그런 독선으로 누군가를 위하려 하는 것은 더 이상 배려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을. 참기만 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이 책이 호러라는 장르의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으면서도, ‘소설의 맥락을 끝까지 잘 유지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긴장과 공포 속에서도 끝까지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스토리가 갖는 흡입력과 더불어 일종의 괴담에서 나온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허황된 것으로만 치부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이 책엔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옛날부터 생각했지. 자신과 똑같이 생긴 건 무섭다고. 봐서는 안 된다, 보면 죽는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왜일까?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어. 적어도 알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군.” 잠시 숨을 돌리고 나서 말을 이었다. “자신의 추악함과 교활함, 나약함, 어리석음을 자기 눈으로 보는 건 견디기 힘들 만큼 괴롭기 때문이지.” (267p)

 

보기왕은 부르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은 저주를 불러일으키고 그 저주의 끝엔 보기왕이 오게 될 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를 소중히 대하지 않는다면 다음에 초인종 소리와 함께 보기왕이 찾아올 이는 우리가 될 지도 모른다. 이미 누군가가 불렀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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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 혼자여서 즐거운 밤의 밑줄사용법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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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시작하는 책 수집가 1가을에 어울리는 예쁜 에코백과 함께 기다리던 첫 책이 도착했다. 에세이인 만큼 작가 개인의 생각과 경험은 물론 그동안 작가가 보고 들었던 책의 문장, 드라마 대사, 영화의 장면이 각각 수록되어 있어 읽는 내내 작가가 받은 위안과 위로가 오롯이 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챕터가 짧은 분량으로 나눠져 있어 평소 책을 읽기 어려워하던 이들이나 시간에 쫓겨 독서시간을 갖기 어려운 분들이 읽기에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나온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이나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캐스트 어웨이> 등은 내게도 여전히 여운이 짙은 작품이어서 오랜만에 그때의 다이어리와 노트를 찾아보기도 하며 감상에 젖기도 했다.

 

가치 있는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늦었다는 건 없다. 하고 싶은 것을 시작하는 데 시간의 제약은 없단다. 너를 자극하는 뭔가를 발견해내기를 바란단다. 전에는 미처 느껴보지 못했던 것들을 느껴보길 바란다.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많은 사람을 만나보기 바란단다. 네가 자랑스러워하는 인생을 살기를 바란단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강인함을 갖기를 바란단다. (224p)

 

살아남기 위해 난 끝까지 버텼어. 그러던 어느 날 파도가 밀려왔고 바람이 뗏목을 밀어줬어. 난 계속 살아갈 거야. 파도에 또 뭐가 실려 올지 모르니까.” (250p)

 

이 책의 저자처럼 누구에게나 각자의 밑줄은 존재한다. 읽고 쓰는 걸 좋아하는 나는 매일 쓰는 다이어리 외에도 필사용 노트,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나서 쓰는 감상용 노트가 따로 존재하는데, 그런 문장과 장면들은 처음 만난 그 순간뿐만 아니라 세월이 지나도 계속해서 내게 남아 건강한 힘을 주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준다.

 

제가 그어온 책 속 밑줄 중 단 하나라도 당신의 상처에 가닿아 연고처럼 스민다면 그것으로 저는 정말 기쁠 거예요. (9p)

 

이 책은 감기에 걸린 환자들이 약봉지를 하나씩 뜯듯, 추위에 떠는 사람들이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듯 그렇게 마음 아픈 이들에게 단단한 밑줄이 되어줄 것만 같은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꺼번에 읽기 보다는 한 두 챕터씩 조금씩 나눠 보는 걸 추천한다. 비스킷도 한꺼번에 먹는 것보단 조금씩 감질나게 먹는 게 더 맛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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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9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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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는 해, <사양>을 읽으며 그 당시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종전을 맞이한 후 혼란스러운 격변 속에 각각의 이유로 괴로워했을 그들을. 오직 사랑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던 가즈코와 천박해지고 난폭해지고자 했지만 정작 민중에도 상류 계급에도 속하지 못한 채 괴로워했던 나오지, 자상하고 기품 있는 귀부인이지만 경제력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졌던 그들의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예술을 계속 하면서도 현실이 여전히 비참하고 슬프기만 한 소설가 우에하라까지. 누구는 술과 약에 취해 현실을 외면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구는 사랑과 혁명으로 그런 현실에 맞서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우에하라에게 기대어 함께 기요틴 기요틴 슈르슈르슈건배 노래를 부르던 취한 사람들과 남편의 외도를 알고도 제자리서 끝까지 자신의 본분을 다하던 우에하라의 아내. 그들은 모두 서로의 행동이 옳지 않다는 걸 잘 알면서도 이 시대의 혼란 속에서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명분을 찾고 서로에게 공감을 한다. 여기엔 용서를 비는 사람도 용서를 하는 사람도 없다. 그저 혼란을 대하는 서로의 방식을 묵묵히 인정할 뿐이다.

 

나는 우에하라를 향한 가즈코의 사랑, 가족을 책임지지 않고 자신의 길만 걸어가던 우에하라의 삶, 자신이 괴롭다하여 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힘들게 했던 나오지의 행동과 선택 모두 쉬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는 가즈코의 사랑이 여전히 불편했고 그렇게 남을 상처 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게 마냥 긍정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마찬가지로 방탕하고 책임 없던 우에하라와 나오지 역시 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격변 속에 있던 사람이 아니니 지금의 이곳에서 함부로 그들을 판단할 순 없으리라. 그들 또한 지금의 우리들을 그들의 기준으로 함부로 판단할 순 없듯이. 단지 그 당시와는 다른 이유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또 다른 격변과 혼란 속에 괴로워할 뿐이다. 지금 이곳에도 사양은 엄연히 존재하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괴로워하고 힘들어한다. 여전히 취한 채 현실을 외면하려 하는 이들이 있고 사랑이나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사람들이 있으며, 어떻게든 제대로 문제를 인지하고 앞으로 나아가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나오지와 같은 선택을 하는 슬픈 이들도 있다.

 

가즈코가 나긋나긋하게 말해주던 옛 추억들이 듣기 좋았고, 우에하라에게 보낸 그녀의 진심어린 편지들과 나오지가 죽기 전 누나에게 남긴 유서를 여러 번 읽어보는 게 좋았다.

이 세상의 공기와 햇볕 속에서 살기에 자신은 너무나 허약한 풀이었다고 말하는 나오지. 그는 지금 그곳에서 조금은 평안할까.  

 

나는 전등을 껐다. 여름 달빛이 홍수처럼 모기장 안에 흘러 넘쳤다. (60p)

‘불량하지 않은 인간이 있을까?’ 라고 그 공책에 쓰여 있었는데, 그러고 보면 나도 불량, 삼촌도 불량, 어머니조차 불량하게 여겨진다. 불량하다는 건 상냥하다는 뜻이 아닐까. (76p)

"전, 지금 행복해요. 사방의 벽에서 탄식하는 소리가 들려와도, 지금 제 행복감은 포화점이에요. 재채기가 날 만큼 행복해요." (144~1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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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 제인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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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 있던 9, 뭉클에게서 생일선물을 받았다. 개브리얼 제빈의 책 <비바, 제인>이었다.

<비바, 제인>은 정치 지망생이었던 20대 여자 아비바 그로스먼이 하원의원 에런 레빈 밑에서 인턴을 하다 저지른 실수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책의 목차는 총 5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장마다 서술자가 달라 여러 명의 시선에서 볼 수 있단 점이 흥미로웠다. 아비바의 엄마인 레이철과 아비바 본인의 목소리는 물론이고, 새로운 곳에서 새 인생을 살게 된 제인과 그녀의 딸 루비의 목소리, 그리고 하원의원 에런 레빈의 아내 엠베스의 목소리까지. 이처럼 많은 이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사건, 사고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과정이 전혀 혼란스럽거나 시끄럽지가 않다. 스토리의 전개가 빠르고 흥미진진해서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정말 빨리 읽히는 소설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실수를 한다. 어떤 이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실수가 누군가에겐 다시는 되돌리기 어려운 치명적인 실수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이에겐 쉽게 잊히는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로 남기도 한다. 한 번의 실수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인생을 망가뜨릴 때 우리는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여기 나오는 20대의 어린 아비바는 한 번의 실수로 인해 자신이 쌓아온 모든 커리어를 무너뜨리게 된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인터넷에 끈질기고 지독한 자취를 남긴 채 그녀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마저 차단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그녀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비가 오는 날 도착한 소설이었다. 신기하게도 책과 함께 온 축하카드에는 <비와 나의 이야기>라는 시가 담겨져 있었다. 따뜻한 생일선물을 보내준 뭉클에게 감사드린다.

 

 

 

"아니 그게 맞는다고 쳐도, 레이철, 넌 앞으로 살 날 중에 지금이 제일 젊잖아." (11p)

타인의 껍질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추측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149~150p)

과거는 절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162p)

진정한 신념은, 어떤 것이 옳다는 것을 자신에게 불리해진 뒤에도 믿는 것입니다. (2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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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플라이트 오늘의 젊은 작가 20
박민정 지음 / 민음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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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가 죽었다. 정근과 지숙에게는 딸이었고, 철용에게는 친구였으며, 주한에게는 여자친구, 영훈과 혜진에게는 과거의 한 파편이었을 그녀가. 자신의 소리가 담긴 일기 하나 남긴 채 자살해버렸다. 그녀를 그렇게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렇게 그녀를 힘들게 했던 걸까.

 

이 소설의 시간과 화자는 끊임없이 변한다. 과거의 유나 목소리에서 현재의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로, 그리고 다시 유나 목소리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화자가 바뀌어 소설의 앞부분에선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이 모든 관계와 시간들이 자연스레 맞춰지며 유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주변 사람의 눈으로 유나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이 책에 빠져드는 순간, 책의 마지막장까지 다다르는 건 순식간이었다.

 

어릴 때부터 유나는 다른 또래 아이들에 비해 조숙했으며, 또래 아이들이 자기 자신에 중점을 두는 반면, 유나는 주변 사람들을 돌아볼 줄 아는 아이였다.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았으며 상대를 배려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랬기에 유나는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더 크게 상처받아야 했다. 항상 미안한 마음을 지녀야 했고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아빠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미안해야 했으며, 시간이 지나도 자신의 잘못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럴 의지조차 없는 아빠를 늘 가까이에서 생각해야만 했다. 진실을 마주하고 사과를 하기에 유나의 아빠 정근은 비겁했으므로, 그는 늘 자기 입장을 고려한 생각 속에 고립된 채 억울해했고 그 억울한 마음은 변명으로 이어졌다. 오히려 그는 아빠인 자신을 하나밖에 없는 딸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생각했고, 자신을 잘못했다 말하는 딸을 때리기까지 했다. 딸을 때리는 순간에도, 그리고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도 정근은 계속 억울하고 분하기만 했다. 딸이 죽기 전까지는.

 

하지만 딸을 잃고 나서 억울함과 분함은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돌아온다. 딸이 봐왔던 자신은 무엇이었을까. 과거에 자신이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 유나는 죽지 않고 살아있었을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유나를 위해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딸이 죽고 나서야 딸의 20대와 그 일상을 알아가는 정근.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고 옛날의 자신으로 물러서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소설 내내 아프고 힘들었을 영훈과 혜진이 책장 밖으로 이어지는 곳에선 진심으로 행복해지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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