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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고양이 1~2 세트- 전2권 ㅣ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5월
평점 :
고양이의 시선에서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소설이다. 배경은 테러가 일상화되고 내전이 시작된 파리. 그곳에서 암컷 고양이 바스테트는 집사 나탈리와 함께 살아가다, 옆집에 사는 신비한 수컷 고양이 피타고라스를 만나게 된다. 샴고양이 종의 피타고라스는 세련된 외모에 무언가 무심한, 그래서 어떻게 보면 거만해 보이는 것 같은 고양이로, 그의 두 눈 사이에는 연보라색 USB단자가 위치해 있다. 그는 이를 자신의 ‘제3의 눈’이라고 말하며, 이를 이용하면 컴퓨터에 접속해 인간들과 소통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인간과 그들의 세상에 대한 지식을 많이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바스테트를 만날 때마다 그의 지식을 그녀에게 전달해준다. 덕분에 바스테트는 그동안 자신이 궁금해 했던 사물의 이름과 기능, 현재 집밖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인간들의 행동, 나아가 그 전에 있었던 길고 긴 ‘인간과 고양이들의 역사’와 ‘관계’까지 하나씩 차례대로 배워나가기 시작한다. (피타고라스의 짧은 강의는 독자인 내가 봐도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는 다른 종과의 양방향 소통을 꿈꿔왔던, 그래서 종국에는 자신의 집사와 진정한 대화를 하기를 원했던 주인공 바스테트에겐 자신의 세상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훌륭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이 둘의 대화를 듣고 있자면, 어느새 나도 고양이의 일원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이들이 고양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마치 같은 인간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매력이 한없이 발산되는 지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이야기는 테러로 인해 서로 죽이고 죽이는 인간들이 어느새 커진 쥐들의 힘에 압도당해, 멸종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쥐들이 옮기는 페스트로 인해 많은 인간들이 죽고, 어느새 서로 죽이기에만 바빴던 인간들이 쥐들의 위험 앞에선 서로 뭉쳐 함께 도망치게 된다. 후반에 이르러서는 바스테트와 피타고라스, 그리고 한 샤면의 소통으로 인간과 고양이, 나아가 개와 사자를 비롯한 여러 종들이 함께 힘을 합쳐 쥐들에 대항해 싸우게 되지만, 이들이 마지막까지 함께 살아남을 수 있을지, 또 인간과 고양이의 소통이 앞으로의 상황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끝까지 읽고 생각해볼 문제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또 다른 이야기는 인간이 다른 종(동물)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무엇보다 신랄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바스테트는 그 누구보다 집사 나탈리를 믿고 사랑했다. 그런데 그녀는 세상에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바스테트의 자식들(새끼고양이들)을 바스테트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이유와 판단만으로 토마와 함께 죽여버린다. 처음 바스테트가 새끼고양이들을 낳은 걸 알게 되었을 때 하나하나 품에 안아가며 귀여워했으면서.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그들의 사진을 찍어가며 그 모습을 담기도 했으면서. 어떻게 나탈리는 이런 일을 시킬 수가 있었을까. 그런 나탈리를 보며, 자신의 눈앞에서 새끼들이 죽어가는데도 방문을 긁고 소리지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바스테트의 마음은 또 얼마나 찢어졌을까.
마지막으로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아프게 떠났을 수컷 고양이 펠릭스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펠렉스의 최후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며 세상과 주변의 일에 무심할 때, 우리도 펠릭스와 같은 결말을 맞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왜 그토록 큰 고통을 받아야만 했는지는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토록 큰 고통을 받을 만큼 그가 잘못한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말이다.
[2권] 236~237p. (작가의 말)
추신 6. 마지막으로 아주 간단한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만약 여러분보다 덩치가 다섯 배는 크고 소통도 불가능한 존재가 여러분을 마음대로 다룬다면, 문손잡이가 닿지 않는 방에 여러분을 가두고 재료를 알 수도 없는 음식을 기분 내키는 대로 준다면, 어떤 심정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