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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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오래전 떠나보낸 사람을 단 한 번이라도 만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이뤄질 수 없는 소망을 간직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하는 그 사람의 영혼을 불러낼 수 있다는 말이 얼마나 유혹적으로 들릴까

과학이 발전한 지금 시대에 들으면 시대착오적인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19세기 즈음 심령 술사를 중심으로 심령회라는 게 엄청난 붐을 이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 심령술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꼽는 게 바로 이 책에 나오는 폭스 자매다.

책을 읽기 전 이 자매들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는데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심령들이 내는 소리라 주장하는 `딱` 하는 소리의 수수께끼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자매 중 한 사람이 고백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걸 안다.

그렇게 유명한 실화 인물을 중심으로 가상의 인물을 넣어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그만큼 철저한 고증과 조사가 뒤따라야 하고 사실과 사실 사이의 작은 틈을 비집어서 이야기의 소재를 섞어놓아야 할 뿐 아니라 널리 알려진 사실을 바꾸는 것 역시 쉽지 않기에 처음부터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거리의 마술사인 제니에게 폭스 자매의 비밀을 밝혀내는 임무를 맡긴 사람인 로버트 펑커튼의 탐정 회사 펑커튼 역시 실제로 존재했으며 당시 이런저런 사건에서 맹활약을 펼치다 현재에 와서 다른 보안업체와 합병되었다는 사실 역시 소개 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심령회와 과학적 근거와 증거를 가지고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회사 사이는 서로 극과 극일 수밖에 없고 이런 둘 사이에서 오가며 서로의 주장을 듣고 허점을 찾는 사람이 바로 주인공이자 마술사인 제니였다.

제니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실의에 빠지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현혹해서 그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심령 술사들을 사기꾼이라 생각했기에 폭스 자매에게 접근해 그들의 비밀을 파헤치는 자신의 임무를 부당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아슬아슬한 순간에 재치를 발휘하는 대담함까지 보여 자매 중 한 사람에게 호의를 얻는다.

하지만 폭스 자매에게 접근해 그들 곁에서 그들이 하는 행위를 지켜보면서 점점 자신의 생각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녀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을 뿐 아니라 큰 언니이자 이 심령술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노아를 제외한 두 여자에게서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함과 언니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심약함만이 보일 뿐이었다.

게다가 맨 처음 이 자매들에게서 심령현상이 발견된 곳 즉 그녀들이 살던 집 지하실에서 아무도 찾지 못했던 유골을 발견했지만 당연히 이 사실을 경찰들에게 알릴 것이라 믿었던 로버트의 배신은 그녀의 모든 믿음을 흔드는 결과가 된다.

이제 누구의 편에서가 아닌 그녀 스스로가 이 수수께끼의 비밀을 찾고 싶어진 제니는 모든 거짓을 버리고 마술사 제니의 모습으로 그녀들에게 가고 그녀들의 입으로 직접 진실을 듣는다.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던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통해 언니에게 속박된 삶을 살았던 두 자매와 자신이 하는 마술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던 제니 그리고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았지만 서로 뜻이 다른 형제는 각자가 원하는 바 즉 온전한 자신의 선택에 따른 자신의 길을 걷게 되는 과정이 그려져있다.

심령술사라는 실질 인물과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그들의 비밀을 밝히는 과정을 미스터리적 요소로 풀어 흥미로운 이야기가 탄생했다.

가독성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몰입해서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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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속의 나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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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범죄이긴 하지만 범죄 행위의 묘사보다 범인의 악마성과 악의에 더 초점을 맞추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취약점을 건드려 근원적인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걸로 유명한 도나토 카리시

그의 대표작인 속삭이는 자를 비롯해 전작들 대부분의 그렇듯이 이번 작품 역시 실제 일어났던 여러 편의 실화를 바탕으로 새롭게 각색해서 매력적인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이번 작품 심연 속의 나 역시 잔혹하게 피해를 본 범죄의 흔적은 있지만 잔인한 범행 장면의 묘사보다 범인의 행동과 그 이면에 깔린 심리묘사에 더 치중해 책을 읽는 사람 역시 범인의 시각으로 사건을 재구성하게 했다.

일단 심연 속의 나에는 두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 사람은 범인인 청소하는 자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남자들로부터 폭력에 시달리는 여자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일명 사냥하는 여자

청소하는 자는 누군가를 오랫동안 지켜보고 그 사람의 쓰레기통을 뒤져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지만 아무도 그런 그를 눈여겨보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스스로를 투명 인간이라 생각하는 그가 평소의 자신과 달리 호수에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소녀를 구한다.

평소라면 신경조차 쓰지 않는 일을 한 건 어쩌면 소녀에게서 어린 시절 폭력에 시달리던 자신의 모습을 본 탓이 아닐까 싶지만 어쨌든 그의 이런 행위는 스스로를 노출시킬 수 있는 위험에 처하게 한다.

게다가 소녀는 유명하고 부유한 부모를 가졌고 이 사건을 언론에서 다루게 되면서 소녀를 위험에서 구한 뒤 말없이 사라진 그를 사람들은 이름 없는 영웅으로 칭송한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같은 호수에서 여자의 오른팔 하나가 발견되면서 사냥하는 여자의 관심을 끌게 된다.

사람들은 팔의 상처를 보고 모두 자살한 사람의 팔이라 생각하지만 사냥하는 여자는 여자의 손에서 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의 일부분이 부러진 걸 발견하고 소녀가 구출된 사건과 연관성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작은 단서 하나를 바탕으로 서서히 아무도 그 이름조차 몰랐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던 청소하는 자의 근처까지 좁혀가는 과정이 아주 흥미롭게 그려졌다.

게다가 화자인 두 사람의 이력 역시 평범하지 않다.

범인과 추적자라는 위치를 떠나서 청소하는 자는 사람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연쇄살인마이면서 물에 빠진 소녀를 자신이 신분이 노출된 위험을 감수하고서 구출하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사냥하는 여자 역시 폭력에 시달리는 여자를 구출하지만 그녀 역시 잔인한 범죄로 인해 가정이 붕괴된 과거가 있다.

작가는 단순히 범인과 그를 쫓는 사람과의 이분법적인 관계가 아닌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이중적인 모습을 비롯해 악의는 태어나는 것인지 폭력적인 과거로부터 배운 것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복잡하지 않은 스토리에 군더더기 없는 필체는 이야기의 몰입성을 높여줬고 단순에 읽어내려갈 만큼 이야기 자체가 가진 흡인력도 대단하다.

속삭이는 자를 비롯해 이름 없는 자 미로 속의 나보다 좀 더 대중적인 요소가 더 많이 가미된 작품인 것도 그렇고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의 반전까지!!!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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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들이 신경 쓰입니다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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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간단한 글과 삽화로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마스다 미리

삽화 집은 삽화 집대로 에세이는 또 에세이대로 많은 사랑을 받는 데 그 이유는 아마도 살면서 사람과의 관계나 직장에서의 일을 비롯해 살면서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작은 부분을 세심하게 캐치해 내 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마스다 미리의 이번 작품 역시 이제까지의 작품들과 비슷한 결을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제나 성공을 향해 혹은 미래를 위해 앞으로 앞으로 나가는 것만 생각하기에 곁에 있는 사소한 것들은 신경을 안 쓰거나 쓴다 해도 그저 가볍게 생각할 뿐이지만 그중의 일부의 사람은 이런 작은 것에도 예민하게 받아들이거나 많은 신경을 쓰는 사람 역시 존재한다.

작가 스스로 사소한 이런 것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자신을 어처구니없다 생각하면서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런 사소한 것들을 신경 쓰며 들여다보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 자신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몇 해 전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엄청 유행한 적이 있는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게 그 소확행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책에는 특히 음식에 관한 이야기도 많은데 그중에서도 디저트에 관한 글은 읽으면서 나 역시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달콤한 초콜릿으로 덮인 몽 블랑... 편의점에 들렀을 때 살 마음도 없으면서 언제나 신제품이 들어왔는지 신경 써서 찾아보게 된다는 아이스크림... 그리고 샌드위치 중 달걀이 들어간 샌드위치는 반드시 달걀 프라이로 된 것만 찾게 된다는 작가의 취향까지...

어쩌면 우리의 일상과 별다를 것 없는 모습이지만 이런 사소한 일상에서도 그걸 가지고 글을 쓰고 그 글을 보면서 공감하는 수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는 작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글을 쓰는 작가가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얼핏 보면 책 한 권이 다 이런 식으로 일상에서 자신이 간 곳 자신이 좋아하는 간식 자신이 즐겨 보는 tv프로그램에 관이 이야기처럼 사소한 이야기로 가득한 데 이야기를 가만히 읽고 들여다보면 늘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한 번쯤 주변을 돌아보고 관찰도 해보는 여유를 가지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잠시 한숨 돌려 늘 가는 마트의 진열된 상품도 들여다보고 오가는 거리에 핀 꽃도 들여다보고 창밖으로 보이는 계절의 변화도 느껴볼 수 있도록 잠깐의 여유를 갖는 것

그런 사소한 것들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도록 한다.

언제나 슬며시 미소짓게 하는 마스다 미리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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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레이디가가
미치오 슈스케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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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순서에 따라 해피엔딩이 될 수도 있고 새드앤딩이 될수도 있다니...작가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일지 궁금합니다.어떤 느낌의 책일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데 믿고보는 작가 미치오 슈스케의 새로운 시도가 담긴 책이라 더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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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피, 열
단시엘 W. 모니즈 지음, 박경선 옮김 / 모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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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르의 책일지 짐작하기 어려운 제목과 책 설명 때문에 무슨 내용일지 아무것도 모른 채 첫 문장을 읽었다.

어린 두 소녀가 서로의 손바닥을 그어 피를 나누고 그 피가 섞인 우유를 마시며 서로에게 속하게 되었다 느끼는 부분을 보면서 소녀들의 우정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했었지만 뒤이어 나오는 이야기는 강렬한 충격을 안겨준다.

어떤 징조도 없이 돌연 뛰어내려버리는 소녀의 모습은 충격과 함께 의문을 던지지만 더 놀라운 건 이렇게 이야기가 끝나버린다는 것이다.소녀가 왜 그런 선택을 한 건지에 대한 의문만 남겨두고...

그때부터 이 책이 도대체 어떤 책인지 그리고 작가의 의도는 뭔지가 책 내용과 상관없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나온 이야기는 뱃속의 아이를 잃은 여자의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자신이 낳지 않은 남편의 아이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는 향연이었다.

이 작품은 첫 작품과 달리 그녀의 심정이 이해가 가고 왜 그런 마음을 느끼는지 공감이 가면서 더더욱 이 책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중년 남자가 매주 아내가 아닌 젊은 여자와 시시덕거리면서 자신의 남자로서의 존재감을 확인받고자 하는 이야기가 담긴 천국을 잃다는 곁에 있는 아내의 나이 듦을 보면서 자신 역시 늙어가고 있음을 인정하기 싫어 매주 바를 찾아가 돈을 쓰지만 아내가 떠나버리면서 결국 모든 것이 헛짓이었음을 깨닫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데 그 과정에서의 허무함과 허탈함이 진득하게 그려졌다.

혀들에서도 그렇고 적들의 심장에서도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자의 모습이 아닌 그 자체로서 자유와 존엄성을 갖고자 하는 여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비판의 모습을 담고 있다.

혀들에 나오는 여자는 심지어 믿고 의지했던 종교에서부터 강한 배신을 당한다.

목사에게 반항적인 시선을 보내고 굴종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모에게서도 냉대를 받는 모습이 나오지만 자신을 핑계로 동생을 괴롭히는 아이에게 찾아가 강력한 한방을 날리면서 사회가 여자에게 요구하는 관습과 권위를 비웃는다.

물에 빠진 순간 생사를 넘나드는 긴박한 순간에 소녀가 한 행동과 그 아이가 느꼈던 감정을 그리고 있는 배의 바깥에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나는 사람들의 민낯을 아주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한순간의 고백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경원시당하고 부도덕한 여자로 낙인찍힌 엄마를 곁에서 지켜보며 엄마가 한 부정한 행위보다 이후 사람들에게 맞서지 못하고 스스로 자책하며 눈치를 보는 엄마의 모습에 더 분노하고 화를 내는 딸의 이야기가 그려진 적들의 심장은 자라나는 딸과 엄마 사이에서의 그 미묘함을 잘 포착했다.

거부하고 화를 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엄마가 당당하게 맞서기를 응원하는 딸의 심리와 점점 성숙해지는 딸의 곁에 맴도는 독수리같은 남자들로 부터 딸을 보호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엄마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잇다.

열세 편의 이야기의 공통점은 모두 여자이며 백인이 아닌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점이었고 변화의 순간 혹은 어떤 일을 두고 그녀들이 느끼는 감정의 이미지를 강렬하면서도 세심하게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약자의 입장에 있는 여자들이 자신이 처한 위치와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생각하면서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해 생생하게 전달하는 작가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답게 글이 감각적이며 군더더기가 없다.

그래서 한 번에 이해가 가지 않아 다시 한번 문장을 읽어봐야 할 때도 있었지만 분명한 건 작가는 사람들에게 아주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단편집이었지만 작가가 쓴 장편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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