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처음 그 말을 한 사람은 의사선생님이었다. 하루에도 수 십명의 아이들 울음소리를 들어야했던 그가 반색했다. 울기는 커녕 보채거나 겁먹지도 않은 내 모습에 다소 기쁜듯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눈물이 없다고 말했다. 그때 그 말은 분명 칭찬이었고 눈물이 없다는 건 내게 약간의 자랑이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의사선생님은 아닌 법. 넌 눈물이 없구나, 넌 울지도 않는구나. 그 말은 때로 칭찬이었고 때로는 놀라움이었으며 때때는 비아냥이거나 비난이었다. 정말 그런걸까?  

 

언젠가 말했듯이 나는 슬플 때 울기보단 화를 내는 쪽이다. 누군가 우는 모습을 보면 같이 우는 게 아니라 이를 악 무는 편이다. 냉장고 앞에 주저앉아 우는 일이 생겨도 남 앞에서는 희한하게 눈물이 나지 않기도 하고. 대체 나는 언제 우는걸까?

 

 

 

 

  도서관에 갔다 우연히 최근 입고된 코너에 영화와 동명의 제목이 있길래 그냥 집어들었다.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시놉시스는 알고 있지. 앨버트와 조이. 분명 영화도 그런 이름이었다. 내가 또 이런 머리는 좋아요. 내용은 단순하다. 조이라는 어린 말이 앨버트라는 소년과 만나고 원치 않게 앨버트와 헤어져 참전하게 되고 전쟁 속에서 겪게 되는 참혹함과 혹독함... 아, 또 슬퍼지려 한다. 뻔하디 뻔한 이야기지만 이것이 말의 시점으로 전개된다면 그 여파는 상당하다. 나는 『워 호스』의 처음부터(!) 끝까지(!!) 울었다(!!!). 엉엉 운 건 아니지만 길을 걷다 코끝이 찡해서 코를 붙잡고 서 있어 지나가는 여자가 쳐다볼 정도는 됐다. 왜 좋은 사람들은 다 죽는건지, 전쟁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휴머니즘부터 시작해서 조이는 성인군자야, 라는 감탄과 앨버트와 재회하는 장면은... 말만 했는데도 시큰하다. 맙소사, 말이 사람 잡는다.

 

뻔하디 뻔한 영화를 보고 한숨을 쉬거나 졸거나 냉소하는 쪽이다. 신파와 멜로따윈 질색이라고 내심 투덜댄다. 하지만 신파도 멜로도 동물이 연기를 하면 별 수 없다. <각설탕>도 <드리머>도 <마음이>와 <하치 이야기>도. 이건 연기야, 연기, 상술이라고. 하다가도 눈물이 나는 걸 어째. 워낙 연기 잘 하는 동물들이 많아서 가끔은 배우(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들도 반성 좀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좋아서 세 번, 네 번 보게 되는 것들이 있고 너무 좋았기에 딱 한 번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해피 투게더>와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후자다. <해피 투게더>가 불쑥 누군가의 너무 깊은 곳을 무심코 침범해버린 듯한 불편함과 억울함 위에 감츨 수 없는 처연함 때문에 떨렸다면(처음 봤을 때조차 화면에서 눈을 뗄 수도 없으면서도 지독하게 후회했다, 보지 말 것을)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아프고 가려워서 슬프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 따윈 개나 주라지. 시작이 반이라는 훈화적인 이야기도 그만. 작은 식당에서 남들이 먹고 남긴 음식을 싸가고 몇 푼 안 되는 팁을 세어보며 창문도 없는 방에서 서른살을 넘겨버린 메기에게 그건 팔아서 엿 바꿔먹을 거리도 안 되는 이야기일 뿐. 늦은 건 늦은 거고 시작은 반이지 뭐. 그걸 모를리가 없는데, 누구보다 잘 알텐데. 메기는 한다. 기어이 한다. 거기서 그녀는 프랭크를 만난다. 31살이라는 나이가 너무 많은 거라면 나한테 남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던 그 뜨겁고 차가운 눈빛.

 

그때 거기서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의자를 치웠어야 하고, 그 경기를 하지 말았어야 하고, 어쩌면 권투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 모든 찰나보다 짧은 것들이 지금 이곳으로 나를 이끌고 왔다는 것을 그녀는 침대에 누워서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의 눈빛에 처음과 똑같다. 찢기고 조각나고 멍들고 뭉그러트려진 것들만 남았는데도. 내 인생이란 어쩌면 이렇게도 빌어먹고 엿같은지 통곡하기도 벅찰텐데. 모든 것이 그럴만했기에 어쩔 수 없다는 듯한 그 강함은 어디서 오는걸까. 비록 모든 것을 후회한다해도 당신이 거기 있었기에, 내가 그 일을 했기에 모든 일은 어쩌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일이라고. 돌이켜도 돌아오지도 않을 뿐 아니라 나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그 눈빛은.

 

그 때 그 손수건, 머플러, 캔커피를 떠올렸다. 강해서 의연한 게 아니라 약함을 알기에 따뜻할 수 있는 사람, 희망의 찬가가 아닌 절망의 읊조림 옆에 등대가 되어줄 사람이 되고 싶었다. 힘내라고 말하는 사람보단 힘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 때 난 너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너에게 그런 사람이었을까, 그런 사람일 수 있었을까.

 

 

 

 

  간신히 참아왔던 허약한 감정이 또 다시 날 사로잡았죠
  의미로 가득했던 인생이 손에 쥔 휴지조각 마냥 성가셔질 때

  나는 어린이도 아니오 늙은이도 아니오
  누구도 지금 나의 모습을 가벼이 탓할 순 없소

 

  갑자기 친구가 가만히 내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 손수건을 내민다. 그제서야 울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의 목소리는 북금곰을 부르는 귀여운 노래로 넘어간 지 오래고 조명마저 밝아졌고 사람들은 웃고 있는데, 나는 소리도 내지 않고 주룩주룩 울고 있었단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좋겠다 했을 때 꽈당 하는 타이밍이랄까. 이미 알고 있는 노래였고 수십 번 들어본 노래인데 그 일이 있고 난 후라 정신없이 휘청이고 말았다.

 

여기서 주저 앉아 울만큼 어리거나 약하지 않다고 할 테면 해보라고 길가에 가로수를 노려보곤 했다. 그들이 나를 두고 킬킬대도 우악스럽게 내 팔을 잡아 채 벼랑 위에서 흔들어도 상관없다고. 괜찮냐고 묻는 이에겐 괜찮지 않지만 어쩌겠냐고 희미하게 웃었다. 아프면 안 된다고 열심히 밥을 먹고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하도 앙 물어서 터진 입술과 손바닥에 박힌 손톱자국이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고개를 주억거렸는데. 40도의 열을 바로 코앞에 둔 상태에서도 해야 할 일은 기어코 끝내고 말았는데. 그 시간을 모두 합쳐 단 한 번도 울거나 아프지 않았는데 단 몇 마디, 누군가의 목소리에 이렇게 눈물이 나다니. 타이밍은 모든 것이라 했던가, 슬핏 바보같이 웃음도 난다.

 

 

 

 

운다고, 울었던 이야기를 한다고 내가 약해진다거나 약점을 드러냈다고 생각함은 아니나 울었던 이야기를 쓰려니 머쓱하긴 하다. 이것은 위로가 필요해서도 아니요, 내가 이렇게 힘들었다고 보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초등학생 때 방학숙제로 하던) 식물관찰 일지를 기록하듯, 한 달 치 일기를 몰아 쓰며 손가락을 곱으며 날씨를 떠올리듯 남의 일처럼 쓴 글이다.  

 

『상실의 시대』의 미도리가 병원에 와서 밥을 남기는 이들을 보며 결국 병간호를 할 사람은 자기라고 분개하고,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기어코 울지 않았다는 마음을 알고 있다, 고 생각한다. 남들이 모두 내가 울 거라고 생각했을 때, 뒤에서 수군거리든 말든 울지 않았다. 누군가는 기특하고 대견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강해서 좋겠다고 할 때마다 이게 뭔 소린가 싶었다. 이건 기특하고 대견해서도, 강해서도 아닌데. 어른들이 그런 것도 몰라? 눈을 치켜떴다. 그래서 더더욱. 어차피 타인일 뿐인 사람들의 동정과 연민을 받고 싶은 마음도 없을 뿐더러 그네들의 예상(혹은 기대)을 충족시켜주고 싶지 않아서 울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도무지 여기서 인정할 수가 없었다. 울어버린다면 마치 이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승인하는 것 같아서. 게다가 울어서 될 일은 없으니까. 만약 사흘 밤낮을 울어 해결 될 일이라면 살을 꼬집어서라도 울겠지만 지금 내게는 위기 타파와 상황 복구의 과제가 주어졌는데 여기서 힘 뺄 수는 없으니까. 힘을 아껴서 어떻게든 헤집고 나가야하니까. 

 

 

전경린의 『풀밭 위의 식사』로 기억한다(책이 없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내용이다). 한 남자가 어느 날 어떤 선물을 받게 된다. 남자가 눈물을 흘리면 그 눈물이 진주가 된다는, 선물. 남자는 눈물을 흘리기 위해 매일 조금씩 더 슬픈 일을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남자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자신의 부인을 죽이기에 이르렀다. 이 이야기를 들은 한 소년이 묻는다. 왜 남자는 양파를 쓰지 않았을까요?

 

그렇구나. 세상에는 눈물을 흘리기 위해 양파를 쓰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있다. 양파를 쓰지 않아도 울 수 있는 사람과 양파가 있어야만 울 줄 아는 사람도 있었다. 내 양파는 책이나 영화, 때론 음악이나 미술이었나보다. 나는 양파를 쓰는 사람이다. 양파를 쓰지 않는 한 웬만해선 울지 않는다. 독하다고 비난받고 냉정하다고 자각해도 생각해보면 그 냉정함과 독함이 지금까지 버티게 해주지 않았는가. 나는 그런 스스로를 자주 다행스럽게 여긴다. 동시에 크고 작은 양파들에게도 시시때때 고마움을 느낀다.

 

 

 

 

 

 

 



 
 
소이진 2012-05-16 17:47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세상에. 한 달 만이에요 샤이닝님!
오랜만에 샤이닝님 글을 읽으니까 참 좋아요.
오늘 문체는 왠지 저와 비슷하다는 느낌, 을 받았어요. 뭔가 내용을 설명하는 부분이 많아서 그랬나?
<워 호스>는 한 번 보고싶네요. 연기 잘하는 동물은 화면으로 달려가 꼭 껴안아주고 싶어요.
그네들도 어찌보면 강제적인 연기일 수도 있잖아요. 응...? 내용이 틀어진다.
저도 엊즈게 영화 한 편 봤는데 페이퍼 써야지, 하고 마음은 먹고 있는데 안써지네요.
오늘 체력장했는데, 피곤해요. 몸이 으스러질 거 같아요.

Shining 2012-05-17 11:25   URL
정말이네; 한 달만이에요, 이진님!>_<
잘 지냈어요? 라고 물어보려 했는데 체력장해서 으스러질 것 같다니;;
체력장.. 정말 오만년만에 들어보는 말입니다ㅎ 저는 한 종목을 빼고도 1등급을 받았던..
체력장 1등급과 체육 A는 놓쳐본 적이 없는...사람이었는데(자랑한다ㅋㅋ)
이진님께도 제 운을 좀 나눠드렸음 좋았을텐데요ㅠ
어서 푹 쉬셔야지 또 알라딘에 들어오신거에요? 이 알라딘쟁이-_-*

티티카카 2012-05-16 22:26   댓글달기 | URL
와우... 샤이닝님 저 기억하시려나 모르겠네 허허
정말 오랜만의 글이시군요. 타이밍이 기가 막히네요. 제가 오늘 울고 왔는데...
헛헛한 마음을 누군가를 통해 달래보고 싶기도 하지만 그냥 노래만 듣고 있습니다.
저는 너무 쉽게 잘 울어 버려서 남들이 당황해 할 때가 많아요.
우는 것으로 상황을 종료시켜 버리는 게 얼마나 꼴사나운지 알기에
바보처럼 안 울려고 노력해보는데 그게 쉽지 않네요. 그 냉정함이 부러워요!!

Shining 2012-05-17 11:29   URL
당연히 기억하죠, 티티카카님^^ 반가워요 :-)
이진님 댓글보고 알았는데 정말 한 달여 만에 쓴 글이네요;

밋밋한 사람들은 상처가 많아서 구르고 깨져서 밋밋해진거라고 어떤 만화에서 그러더군요.
저도 많은 시간과 사건들이 지나고야 밋밋해진 걸지도 몰라요.
하지만 눈물의 여부를 차치하고 이렇게 생각하고 마는 점이 냉정한 거라고, 친구가 그러네요(웃음).

마녀고양이 2012-05-17 14:16   댓글달기 | URL
<해피 투게더>를 보면서 느낀 느낌을 샤이닝님이 그대로 적어주셨어요....
바로 같은 느낌, 같은 단어예요.

누군가 앞에서 운다는 것, 누군가 우는 것을 지켜본다는 것, 저는 그게 능력이라는 생각을 요즘 해요.
왜냐하면 저는 누군가 앞에서 우는 것을 너무나 창피해하고, 누군가 제 앞에서 우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굉장히 어려워하며, 우는 것은 문제 해결을 해야할 일이 산적해있다는 의미야 라는 조급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제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어요. 저는... 우는 것을 지켜보지 못 하는거죠, 저나 남이나... 이후로 뚝뚝 잘 우는 사람을 부러워해요... 아하하.

샤이닝님 페이퍼를 읽다가 생각이 좀 많았어요, 즐거운 날 되셔염~~~

Shining 2012-05-18 11:35   URL
제 두서없는 설명도 공감해주시다니, 그렇다면 <해피 투게더>는 그런 감정을 양산해내는 영화인가봐요.
정말 자주 떠올리는 영화인데, 그래서 한 번 더 본 적이 없어요. 다시 보고 싶기도 하고 다시 보기
두렵기도 한 그런 영화^^; 다시 보기엔 용기가 필요해요ㅠ

능력,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전 누군가가 제 앞에서 울면 울음이 나오려다가도 들어가요ㅎㅎ
길 한복판에서 운 적은 있어도 아는 사람 앞에선 울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상하죠?

생각이, 좋은 생각이었어야 할텐데^^; 우울한 페이퍼라 마고님도 함께 우울해하시진 않았나
걱정이 되네요ㅠ 마고님도 날씨만큼 좋은 하루 보내세요 :-)

맥거핀 2012-05-18 01:36   댓글달기 | URL
글은 낮에 스맛폰으로 읽었는데, 댓글은 이제서야 다는군요. <밀리언 달러 베이비> 보고 처음에 든 생각은 "참 노인네..만들어도 이렇게 만드냐.."였어요. 영화 중간중간에 보면 뭔가 위험한 암시들이 있잖아요. 그 상대방 여자복서의 어떤 위험성을 미리 얘기하기도 하고..그러면서 관객들은 제발 그것만은 안돼..하고 조마조마하게 되는데, 기어이 이스트우드는 그것을 실행시키죠. 그리고 한단계 더 나아가 버립니다. 지독한 영화죠. 이 영화를 보면서도 울지않는 사람을 보면 왠지 무서울 것 같아요.

Shining 2012-05-18 11:38   URL
맞아요, 징글징글한 노인네_-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전 이 영화보다 사실 <그랜 토리노> 보고 입이 딱 벌어졌어요. 머릿속이 멍하면서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혼자 가만히 앉아있었어요(<블랙 스완>과는 다른 이유로). 나이가 들면서 더 멋져질수도 있다는 것, 변하면서도 그 변함이 닫혀있지 않다는 것.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보면 늘 그런 종류의 외경심이 들어요.
 

 

  

 

왠지 모를 허탈함과 열패감, 자유를 빙자한 방종. 그렇게 대학 입학을 맞았다. 일주일만에 지겨워졌다. 번뜩이는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도, 피곤할정도로 예쁘게 하고 다니는 모습도, 수업을 빼먹을 줄은 알면서 대출에 목숨거는 진부함도, 고작 몇 살 많은 정도로 어른인 척 하는 선배들도(나는야 비뚤어진 신입생). 그래서 도서관을 갔고 그래도 동아리에 들었다. 영화동아리. 내게는 영화광들에게 으레 있는 에피소드 -여섯살 때 본 주말의 명화를 잊지 못한다든지, 학교를 빼먹고 극장으로 갔다든지 등의- 가 없었다. 그때가 시작이었고 지금껏 본 거의 모든 영화를 그 시절에 봤다. 언젠가 말했듯이 알아먹으면 먹는대로 못 알아들으면 모르는대로 봤다. 유치한 B급 영화, 잘난척하는 정치 영화, 감정 과잉인 다큐멘터리, 말도 안 되게 실험적인 단편영화, 그리고 거장의 것들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남는 시간인 줄 알았는데 점점 모자랐다. 이 영화를 본 후 저 영화가 보고 싶어졌고, 이 사람의 것을 봤으니 저 사람의 것도 봐야 했다.  

 

하지만 그건 나뿐이었다. 3,4살 이상 차이 나는 선배들만 해도 그야말로 '시네필'이었지만 내 위로 두어살부터 동기들, 후배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동아리방에 비치된 DVD를 이용하는 것도 영화이론서를 읽는 것도 나뿐이었다. 코엔 형제의 전작을 보는 것도, 기타노 타케시가 코미디언 출신(?)이라는 것을 아는 것도. 가장 최악은 2주에 한 번 내던 영화감상문이었는데 한눈에 봐도 차이나는 상태(?) 때문에 나는 늘 마지막에 내곤 했다. 동기들이 내 페이퍼를 돌려 보는 것도 그때 그네들의 눈에 얽히던 그 눈빛도 싫어서(그 뭐라 하기 어려운 그러나 반드시 불편하게 느껴지는 그 시선들). 동기들과 나는 '인간적으로' 친했지만 영화에 관한 한 우리는 하늘에서 바다만큼 멀었다. 그래서 영화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 신기하지 우리는 영화동아리에서 만난 사이인데.  

 

선배들은 어쩔 수 없지 않냐며 후배들 담당을 내게 맡겼지만 그러면 뭐할까. 아무도 내 얘기를 알아듣지는 못했다. 어떤 배우를 설명하기 위해 영화를 대여섯편을 거쳐야 했고 한 감독을 말하기 위해 이십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내가 뭐하는 짓이지, 싶었다. 어떻게 이 아이들은 좋아하는 영화가 단 한 편도 없지? 진심으로 신기했다. 그러면서 왜 영화동아리에 가입할 생각을 했지? 이건 그 때 내가 하던 최고 난제의 하나였다. 단 하나라도, 단 한가지라도 궁금한 점이 있으니까 혹은 기다리거나 기대하는 게 있으니까 아까운 시간을 쏟아가며 동아리에 나오는게 아닌가? 라고 고지식하게 믿었으니. 정말 궁금했다. 대외용 대답이 아니라 정말 좋아하는 것. 스무살이라면 적어도 스무편의 영화는 봤을테고 어떤 이유든 뇌리에 남는 영화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물었을 때 후배는 나를 말하는 강아지를 쳐다보는 것처럼 바라봤다. 다 때려치고 싶었다.

 

그때 알았다. 이 시대에 얼마나 영화가 가벼워졌는지. 영화를 더 이상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지. 좋아하는 것이 같다고 해도 그 감정의 방향이 다르다면 차라리 함께 좋아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것과 결핍이 있는 자만이 무언가를 갈구한다는 것도.

 

  

 

 

알라딘에 머물면 가끔 그때 생각이 난다. 나는 여태껏 친분이 두터운 사람 중에 책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거의 없다. 때문에 어느 정도는 체념(?)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어떤 영화의 배우를 설명하려면 네 편쯤을 언급해야 하고(그렇게 해서 찾으면 다행이다), 어떤 책의 작가를 말할 때 베스트셀러가 아니라면 매치시키기 어려웠던 것들에 대해.

 

알라딘에 들르던 첫 이유는 아마 반가움이었을게다. 우연히 다른 사람의 글을 읽다 어! 나도 이 책 좋아, 나도 이 부분 밑줄 치며 읽었는데! 그런 묘한 뿌듯함과 은근한 공감. 그리고 시기와 질투. 아,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읽은거지. 참을 수 없어서 댓글을 달면 이제 핑퐁이 시작된다. 각각의 알라디너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라이벌이자 동료가 아닐까. 나는 이 감독의 이 영화가 좋아요, 라고 말하면 누군가가 어, 저도 그 감독의 그 영화, 그리고 이 영화가 좋았어요. 라고 말한다. 나는 그가 누구라고 어떤 영화를 만들었고 어떤 배우가 나왔는지 말하지 않아도 된다. 저는 이 책의 이 부분이 좋았어요, 라고 하면 누군가가 다시 그렇군요, 저는 그 책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런이런 책을 떠올렸어요, 제가 그 책을 참 아끼거든요, 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그 책을 찾아 읽는다. 읽지 않아도 기억해둔다. 이미 가진 것을 비교하거나 대조해보고 앞으로 가질 것을 소개하거나 긍정한다. 그 이야기의 흐름이, 절망하지 않아도 되고, 끼리끼리 얽히던 그 눈빛을 읽지 않아도 되는 그 편함이, 나도 더 많이 또는 깊게 읽고 보고 듣고 싶다고 생각할때의 흥분이, 하릴없이 맘이 놓인다.

 

내가 여태 받아온 편견들은 그런 것이었다. 책을 좋아한다면 문학소녀 내지는 공부벌레, 알 수 없는 영화감독들 이름을 줄줄 외운다면 오타쿠에 가까운 까다롭고 어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하지만 그냥 꾸준한 애서가지만 하늘하늘한 문학소녀나 모범생은 아니었고 시네필이길 자부하지만 그냥 들쑥날쑥한 영화취향을 가진 나, 를 드러내도 괜찮다는 것. 다행이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토요일 11시 EBS. 우연히 인터넷에서 보고 만세를 불렀다. 다행히 나는 늦은 약속이 없고 과히 늦은 시간도 아니고(가끔 이 시간에 방영해주는 것은 정말 보라는 건가 말라는 건가 싶은 시간도 있다, 그 영화를 기다리다 결국 잠드는...) EBS면 자막에다 중간광고도 없다. EBS여 영원하라. 

 

간만에 실로 놀라운 영화를 만났다. 가장 특수한 이야기를 하면서 가장 보편적인 모습으로 등장하고, 사건의 흐름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모든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균등하고 덤덤하며 부부의 문제로 시작해 남녀의 차이, 부모의 입장, 종교의 문제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거의 퍼레이드로 보일 정도다. 어떻게 이렇게 작은 이야기로 시작해 이렇게 크게 끝날수가 있지. 어떻게 이렇게 개인적인 일들이 보편적인 일들로 종결되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자파르 파나히 이후 이란을 대표할 또 다른 이란감독이 나왔다.  

   

덧)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과 자파르 파나히가 이란을 대표하는 감독, 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아닌가? 재밌는 것은 이 영화의 영화적 기법이나 편집은 상당히 서구적(혹은 유럽적)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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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찮게 지금 쿡티비 <무비스토커>라는 코너에서 소개하는 영화도 이 영화더라(김태훈, 이동진 씨가 진행한다). 이동진 씨는 이 영화를 보고 연계할 수 있는 영화로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추천하시던데. 맞아, <레볼루셔너리 로드>도 굉장히 멋진 영화다.

 

아마 두 배우는 서로에게 특별한 사이가 아닐까. 친분이야 나야 모르지만 어쨌든 <타이타닉>이란 대작을 함께했고 서로의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니까. 아마 이 영화의 캐스팅은 거기서 시작했을게다. 둘이면 어떨까, 가 아니라 반드시 이 둘이어야 해, 라고. <타이타닉>의 그들이 해피엔드를 맞았다면 정말 그들은 행복했을까? 운명같이 만난 그들도 세월을 거치며 서로를 선택해서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까? 당신은 그것을 믿을 수 있는가? 라고 조롱하는 것 같으니까.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분명 이렇게 썼다. 너무 하얀 집, 모든 물건이 있을만한 자리에 있는 집, 그것이 문제는 아니었을까. 연극을 하던 에이프릴과 그리워하지만 파리로 가지 못하던 프랭크는 정말 서로 다른 사람일까. 그나저나 무슨 거리 이름이 그따구야. 혁명의 길이라니. 

   

덧) 개인적으로는 케이트 윈슬렛은 <더 리더>보다 이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래전에 어떤 잡지(아마 GQ였을것이다)에서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프랑수와 트뤼포의 유명한 그 말. 영화를 사랑하는 첫번째 길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고 두번째는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며 세번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라는 명제가 정말 사실이라고 한다면 나는 결국 이류인 것이다. 라고 정성일 또는 김영진 평론가가 말했다고. 정윤철 감독이 평론가들과 인터뷰 후 쓰는 칼럼이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아니 거의 자주 그 말을 생각한다.  

 

평론가로서는 일류이지만 그들은 결국 자신들이 이류일 뿐이라고 조소했다, 는 사실. 그렇다면 졸작은 만드는 영화감독이 최고의 글을 쓰는 평론가보다 나은 것이냐는 자문. 나는 영화와 관련 된 글을 쓸 때 면접에서 그 말을 인용했었고 사실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영화에 대한 모든 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어떤 영화, 예컨대 <시>를 보며 나는 절망한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설사 이창동 감독과 같은 삶을 살고 같은 나이를 먹어도 저런 영화는 못 만들거야.  내가 아무리 해도 나는 결국 두 번째 길,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 밖에 못할거야. 그, 그래. 하지만 나는 동종업계(?)가 아니잖아, 라고 곧바로 안일하게 자위한다. 혹은 도망친다.

 

가끔씩 그 후배가 생각난다. 이 갈증, 갈데없는 궁금증, 스토킹에 가까운 집념, 무엇보다 절망. 저런 영화를 대체 어떻게 만들지? 와 나는 죽었다 깨나도 할 수 없을 거야, 싶은 이중의 절망. 어떻게 후배는 나와 수편의 영화를 함께 보면서도 한 번도 그것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떤 책망이나 비난을 담지 않고 순수하게 궁금하다.

 

결핍을 느끼는 자만이 무언가를 갈구한다. 길을 걷다가도 그 말의 위용에 휘청인다.

 

 

 

 

 

 

 



 
 
Forgettable. 2012-04-24 14:23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비에스에서 하는거 보고 엄청 신나라 하며 봤어요. 게다가 우연히 보게 됐는데 마침 첫장면부터 봄 ㅠㅠ 아 로또 행운은 없어도 이런 행운이 있나봐요 ㅎㅎ

Shining 2012-04-24 15:26   URL
오랜만이에요, Forgettable님^^ 우리는 다른 장소지만 같은 일을 하고 있었군요ㅋ
그럴때는 뭔가 으쓱해지고 괜히 몰래 이득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죠ㅋㅋ 이 영화 멋지죠? :-)

아이리시스 2012-04-24 16:43   댓글달기 | URL
제가 글쓰기 전에 이 글 있었던 건데 저는 요즘 뭔 정신인지 스무개남짓한 서재마실도 제때 못다니고..
오호호, 뽀님하고 샤이닝님이 갑자기 신기해보인다, ebs 토요일 11시. 뭔가 막 대단한 사람들 같아요..

저는 옛날에 앞부분을 좀 보다가 뭔가 대단하다 하면서 여튼 끝까지는 못보고 껐다가 이후로 못 본 영화인데, 잊고 있었어요. 그래서 '말'이 통하는 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신경숙이나 김애란 애기하면서 <엄마를 부탁해>나 <달려라, 아비>를 언급해야 하는 상황이 저도 좀 절망적으로 느껴진 적 있거든요.

Shining 2012-04-24 17:51   URL
앗, 아니에요. 아이님^^ 저 이 글 어제 비공개로 저장해뒀다가 오늘 아침에 수정해서 공개로 게재한거에요ㅎ 그렇게 해도 알라딘은 최초 시간으로 입력되더라구요ㅎㅎ 아이님이 정신을 놓고 오신게 아니랍니다, 돈워리~*-_-*

후후, 뽀님과 저는 토요일 11시에 무려 교양TV 보는 사람들..이런다ㅋ

이 영화 시간 될 때 보세요^^ <바톤 핑크> 이후 유례없이 영화제 주요부문을 휩쓴 영화라는데, 전 개인적으로 작년 꽤 높은 평가를 받던 <그을린 사랑>보다 이 영화가 훨씬 좋았어요.

하하, 하지만 그렇게라도 알아들을 수 있다면 고마워요, 저는^^(많이 체념하고 산 사람이라ㅎㅎ)

노이에자이트 2012-04-24 22:27   댓글달기 | URL
프랑소와 트뤼포가 감독한 '이웃집 여자'를 본 적이 있어요.유명하다 해서...마지막 권총자살 장면이 기억에 남더군요...나머지 줄거리는 가물가물...

Shining 2012-04-25 10:54   URL
저는 제일 유명한 작품 몇 편 봤어요. 어린 마음에 허세 가득한 마음으로ㅋㅋ 이름도 멋있고, 어디가서 자랑도 할 수 있고, 누벨바그의 거장이라니. 네임밸류에 끌려서 봤던, 후후_- 그 중 아마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 건 <400번의 구타>인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12-04-25 15:32   URL
제목이 특이해서 유명한 영화를 보셨군요.

Shining 2012-04-25 23:18   URL
그런가요?^^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좀 그렇고(후후) 그저 어떤 장면장면이 인상에
남는 영화인 것 같아요 :-) 그외의 트뤼포 영화는 희미해서 그런가ㅋ

맥거핀 2012-04-25 00:17   댓글달기 | URL
트뤼포의 말. 그 말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멋있어요. 뭔가를 그렇게 중심에 놓고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이. 암튼 옛날 사람들, 왠만한 멋있는 말은 다 해버렸으니, 후세대 사람들은 어쩌라고.^^

글을 읽다보니 그저 제 옛날이 생각이 나네요. 저도 옛날부터 영화를 좋아하던 과는 아니라서요. 대학 2학년 때의 어떤 사건 이후로 영화를 도피처 삼아 많이 보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좋아졌습니다. 그전까지는 영화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상당히 폄하하는 쪽이었죠. 그깟 영화, 싸구려 취미일 뿐이지, 뭐 그러면서요. 그런거 보면 사람이 어떤 순간에 달라질지 참 알 수가 없는 일이죠...(그러니 저도 고전영화 이야기하는 씨네필이 가끔 겁나요.ㅋ)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작년 개봉영화 중 No.1로 과감히 밀어봅니다만, 뭐 저혼자 밀어봤자..ㅎㅎ

Shining 2012-04-25 11:16   URL
그러게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미 다 어떤 사람들이 했더라구요ㅋㅋ

트뤼포의 말이 어떤 단계는 아니니까, 영화를 지극히 사랑한다면 영화를 찍어야해! 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부분은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딱 한 번 단편영화를 찍은 적이 있는데 그 때 영화를 보는 것과 글을 쓰는 것과 만드는 것의 간극을 아주 어렴풋 느꼈거든요.

역시 인생은 알 수 없는거군요ㅎ 헛, 그렇다면 맥거핀님의 그 넓은 시야와 내공은 어디서부터 나온겁니까! 대단하시네요ㅠ

저도 같이 밀어드릴게요, 혼자보다는 둘이 낫겠죠?^^

가연 2012-04-25 13:45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는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보고 돌아오면서 정말 찜찜한 기분이 들었었습니다.. 그때는 이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찜찜했었다, 라는 기억만 남네요. 사실 다른 내용은 저야 영화에 문외한이라서 잘 모르겠지만
마지막에 남기신 결핍을 느끼는 사람만 뭔가 갈구한다는 말씀에 깊이 동감합니다. 요즘 제가 저렇게 계속 느껴요.

Shining 2012-04-25 23:22   URL
저는 영화 보면서도 나오면서도 찜찜했어요ㅋㅋ 모든 것이 하얗고 정돈된 집,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 같은 가정생활과 미남미녀의 부부. 어쩐지 모든 것이 불온한 모습같다는 생각에 제가 다 위태해보였거든요.

우리는 무언가를 갈구함으로써 결핍감을 느끼고 결핍감을 느끼기에 갈구하는 그런 존재인가봐요, 후후_-

2012-04-28 08:37   댓글달기 | URL
흠 영화동아리셨군요-! 어쩐지 포스가 남달랐습니다.ㅎㅎ / 전 지금 전주영화제 가는 중이랍니다. 일행들이 예매 뭐 해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가고 있어요.. ^^

2012-04-28 2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맥거핀 2012-04-29 00:30   URL
아니..전주에! 부럽습니다...

2012-04-30 23:12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위풍당당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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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때 국어선생님은 인기교사였다. 이상하지. 유부남에(여고니까) 잘생긴 얼굴도 딱히 다정한 성격도 아니었다. 키는 크지만 볼품 없을만큼 말랐고 머리도 옷차림도 성격도 대충대충이었는데. 거의 모두가 선생님을 좋아해서, 아마 그 반감으로(!)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나는야 청개구리). 하지만 그 분에 대해 확실히 아는 점이 하나 있다면 그 분이 소설가 성석제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것이다. 수능을 앞둔 푸석푸석한 고3 학생들을 데리고 태연하게 소설의 한 부분을 낭송해주는 그런, 분이었는데 특히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엄청나게 좋아해 여러 번의 인용도 모자라 수능이 끝나고 드라마화 된 영상을 구해오기도 하셨다. 그 분의 세계는 마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가 아니라 성석제는 이렇게 말했다, 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면 말 다 했을까.

 

그 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 것처럼 아마 성석제 작가에 대해서도 열성적인 팬이었던 적은 없다. 그런데도 왜 매번 신작 앞에서 지나치지 못할까.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하다 이 책을 읽고나서 그 연원을 짐작한다. 

 

『위풍당당』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나름의 첩첩산중(?)에 사는 수상한 사람들이 있다. 나이대를 보면 가족같지만 실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어딘가 특이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살아있는 것을 살리는 할머니와 배를 타며 오페라를 부르는 할아버지와 불을 갖고 노는 소년을 어디가서 찾는단 말인가!). 문제는 항상 미녀로부터 일어난다고 했던가. 새미라는 예쁜 여자아이로 인해 강마을 사람들과 얽힌 전국구 조폭들, 정묵의 패밀리. 어딜보나 어려울 것 없을 것 같았던 힘대결은 의외의 결과에 결과를 낳고... 라고 할까. 다시 말해 공동체와 공동체, 더 자세히는 식구(가족)과 식구(패밀리)의 대결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이미 여러번 그렇게 말했다. 할 수 있다면 때로는 갖다 버리고 싶은 게 가족이라고. 피가 통한다는 것, 그 끊을 수 없는 묵직함이 사람을 때론 절망하게 한다고. 강마을의 구성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외려 제 식구에게 상처를 받고 박해를 받은 사람들이다. 헌데 그들이 바로 여기서, '강'마을에서 여산에 의해 거둬질 때 그들은 진정한 가족을 찾는다. 연이 닿고 피가 통하고 세상이 규정해놓은 굴레만이 가족이 아님을 그들은 애쓰지 않고 그저 보여준다. 여산, 참으로 진기한 남자가 아닌가.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어떤 것도 받지 않되 자연의 모든 것을 흡수하는 남자(그는 먹는 것으로, 자신의 안으로 자연스럽게 집어넣는 것으로 체현을 택한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도 같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도 같은 남자. 이 기묘한 사내의 손 아래 그들은 인간으로, 가족으로 피어난다. 여산은 그들의 아들이고 남편이고 형이며 아버지였다. 그리고 바로 우리의 자연, 근원이다. 나의 산(余山), 너의 산(汝山), 여산.

 

그렇다면 두 집단의 갈등은 공동체간의 혹은 가족간의 대결일텐데 왜 정묵의 집단은 강마을 사람들을 이기지 못했는가. 아마 두 가지 이유가 아닐까. 강마을 사람들이 유대관계, 믿음과 평화로 이뤄진 가족이라면 정묵의 것은 힘이라는 미명 아래 세워진 폭력집단이다. 그 뿐인가. 정묵이 자신의 부하(?)들을 하나씩 되짚어보는 모습을 보면 이것은 체스판의 여왕이 자신의 부하들을 가늠해보는 것과 같다. 정묵의 패밀리는 분명 가족이고 식구이나 사리 아래 모여든 벌들의 임시집합소이며 의심을 근거로 한 집단이다. 게다가 그들의 전장(戰場)은 어디인가. 만약 그들이 도심 한복판에서 마주했더라면 강마을 가족들은 절대 그들을 이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그들의 영역이다. 바로, 자연. 휴대폰도 터지지 않고 땡볕이 내리쬐는 뚜껑 열리는 깡촌. 사건의 시작, 새미와 준호를 대신해 그들을 응징한 것이 가시덤불이었던 것처럼 자연은 그들의 무기이자 방패이며 든든한 지원군이다. 모든 것이 그들의 터전이고 버팀목이고 근원이고 전부이다. 실제로 이 책은 강으로 시작해 강으로 끝난다. 그야말로 물 흐르듯 이야기가 흐르고, '강'이라는 단어로 시작해 '강'의 문장으로 끝난다. 굽이굽이 돌아 상류에서 하류로, 강에서 또 다른 강으로, 강에서 어쩌면 바다로 흐르는 이야기. 그러니 강마을에서, 자연 안에서, 정묵의 패밀리가 여산의 식구들을 이긴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의 말로가 추락, 변폭탄, 남근의 손상이라는 점에서 볼 때 그 대가는 얼마나 처절하고 자연스러운지.

 

이렇게 딱딱한 말로, 부족한 언어실력으로 설명하기에 이 책은 너무나 아깝다. 팔딱팔딱 뛰는 잉어처럼, 싱그럽게 자라난 산나물처럼 이 소설은 살아있는 생물같다. 아마 그것은 재기발랄한(아, 이런 상투적인 표현밖에 못 쓰는 나) 작가의 입담과 재치, 무엇보다 흉내낼 수 없는 유머에 있겠지. 내가 바로 성석제다! 그렇게 소리쳐도 됩니다, 선생님. 암요. 선생님, 그래 이제 생각난다. 나의 국어선생님도 냉소적인 유머쟁이였다. 무심한 얼굴로 툭툭 내뱉는듯한 그 유머가 아이들을 웃게 만들곤 했었다. 그래, 생각해보니 나도 분명 웃었다. 나도 분명 좋아했었던 것이다, 쳇.

 

유머. 유머란 얼마나 어려운가.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날카롭고 영민하고 재빨라야 하는 바로 그 유머. 이 책은 바로 그 진수를 보여준다. 아아, 강마을 사람들에게 작가에게 그리고 내게 강 같은 평화가 있기를!

 

 

   

 

 

 

 

 



 
 
소이진 2012-04-16 23:38   댓글달기 | URL
하, 저는 왜 이런 좋고 싱싱하고 유쾌한 작가를 어려워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성석제의 에세이라서 그런것일까요. 아니, 다른분들은 이마저도 재밌다고 하시던데...
저는 왜이럴까요 ㅠㅠㅠㅠ

Shining 2012-04-16 23:49   URL
하하^^ 소이진님 저도 그래요. 사실 재기발랄, 유쾌상쾌통쾌, 우리 시대 최고의 입담꾼 블라블라 이런거 저도 그다지 먹히는 편이 아니거든요^^; 커트 보네거트나 존 어빙, 폴 오스터 등등. 그런데 이 책은 재밌네요, 아니 웃겨요. 엄청 진지한 얼굴로 농담을 건네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았어요. 저 이거 읽다가 아파트 옆라인으로 들어가서 다른 집 문 열 뻔 했다니까요ㅋㅋ (비밀 지켜주세요...)

소이진 2012-04-17 23:14   URL
후후... 그렇게나 재밌단 말입니까?
성석제의 이미지도 한 번 바꿔볼겸 읽어보고 싶군요.
어디선가 적립금이 날아온다면 주저없이 선택해봐야겠습니다 ㅎㅎㅎ

아이리시스 2012-04-22 21:29   댓글달기 | URL
아..그땐 그랬어요. 여고니까. 저 수학 진짜 못했는데 수학쌤이 좋아서(하지만 그 분은 저를 모르고) 부끄러웠어요. 모르니까 엄청 다행이었지요. 알았으면 많이 민망했을텐데. 그러나 샤이닝님은 안 좋아하신거구나;; 그건 나랑 달라..

황만근 아저씨 저도 별로여서 작가님께 무관심하지만 저도 소이진님22222222222222

Shining 2012-04-24 15:24   URL
아마 저는 되레 특별해지고 싶어서 그분을 안 좋아한걸지도 몰라요. 모두가 선생님을 좋아해도 나는 안 좋아하는... 이러면서 말이죠ㅋㅋ 지금도 황만근 아저씨도, 작가님도 실은 좋아한다고 할 순 없는데 음, 어쨌든 이 책은 재밌었어요ㅋ
 

 

 

 

 

<트랜스포머>가 개봉했을 때 내심 속으로 불만을 품었다. 뭐 몇초 단위로 화면이 바뀐다느니, 그래픽이 엄청나다느니.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정도면 내가 흥분되기에 쾌감을 느끼는 건지, 흥분을 느끼도록 만들어낸건지 헷갈릴 거라고 투덜댔다. 재밌게 만들어졌기에 재밌다니. 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라고 말해놓고 정작 <트랜스포머>를 본 날 눈이 하트가 되어 나왔다. 그래, 이 정도면 속아줘도 돼! <아이언맨>을 봤을 때도 그랬지. 이 정도로 재밌게 만들어내면 나를 속이려고 만든거라 해도 그까잇꺼 속아주겠다고(여기서 말하는 두 영화는 모두 1뿐이다. 후속은 놀랄만큼 지루하고 신기하지도 않았다.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

 

주말동안 대중적인 영화들만 봤다. <리얼 스틸>까지 보고 쓰려고 했는데 에너지가 동났다.

 

 

 

                

 

  

* 톰 크루즈는 언제나 굉장한 미남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미션 임파서블>의 그가 제일 멋진 것 같다(<탑건>은 빼자, 그건 레전드야). <7월 4일>이나 <매그놀리아>, <제리 맥과이어>를 보면 그도 연기를 잘 하는, 자신이 잘 할 줄 아는 것을 잘 하는 배우라는 것을 알지만 역시 그는 이단 헌트일 때 가장 날렵하고 섹시하다. 그러니, 톰 크루즈의 이야기 보다는 이 시리즈의 감독들을 비교하는 쪽이 차라리 흥미롭다.

 

1은 브라이언 드 팔마, 2는 오우삼, 3는 J.J.에이브람스, 4는 브래드 버드.

 

자신만의 장기를 가진 유명한 감독들이고 자신들이 잘하는 것을 잘하는, 그래서 분명 시리즈이지만 색깔이 구분되는 장점을 갖고 있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시작이 TV시리즈의 훌륭한 영화화, 였다면 오우삼의 것은 <페이스오프>의 변주 같아서 불편했다. 토끼발로 끝까지 사람을 낚는 에이브람스의 시리즈는 그다웠고 브래드 버드는 그가 애니메이션이 아니어도 대단한 감독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많은 이들이 말했듯 나 역시 2를 가장 저평가하며, 3와 4 모두 1만큼 훌륭하지만 3는 이단 헌트를, 4는 팀원끼리의 콤비플레이에 점수를 주고 싶다. 3의 명장면은 초반부 헬기신, 4는 모래바람과 -예고편만큼 놀라운- 두바이 빌딩신을 꼽아야지.

 

 

 

* <블라인드>가 크랭크인 했을 때 동명의 네덜란드 영화를 떠올렸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앞이 안 보이는 신경질적인 소년, 안데르센의 동화에 나올법한 끝없는 눈과 저택. 그곳을 찾은 한 명의 여자. 영화의 내용은 예상할 수 있는 바로 흘러가지만 영화의 결말은 강렬하고 섬뜩하다. 아직도 그 소년이 마지막으로 마주하던 장면들이 눈앞에 선할 정도로. 네덜란드영화 <블라인드>가 몽상과 현실이 마주했을 때의 자세를 보여준다면 한국영화 <블라인드>는 눈을 제외한 오감을 이용한 영리한 스릴러영화다. 영화 자체의 설정, 수아(김하늘 분)의 사고와 기섭(유승호 분)의 처지를 쉽게 엮으려는 태도나 예상할 수 있는 시점에 생기는 예상가능한 사고 등은 고루하지만 수아가 기섭의 목소리에만 의지해 지하철을 헤맬 때, 알면서도 '어떡해 어떡해'를 연발하게 된달까.

 

유승호는 나이에 비해 너무 빨리 '남자' 연기에 집착하는 것 같고 김하늘의 맹인 연기가 타 배우들에 비해 발군은 아니지만 사랑이(개)는 귀엽고 안타깝고 악역은 치떨리게 나쁜 놈이고. 그렇게 분명 괜찮은 스릴러가 나온 것이겠지.

 

 

 

* 이 이야기가 실화가 아니었다면 아마 이 영화는 분명 설득력이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든 이가 카메론 크로우가 아니었어도 마찬가지. <제리 맥과이어>나 <올모스트 페이머스>만큼 극적이진 않아도 카메론 크로우답게 따뜻하고 다정하고 무엇보다 과장됨이 없다. 지치고 상처입은 맷 데이먼의 가장으로서 모습도(그가 이렇게 나이 들었다니! <본>시리즈보다 다크서클만 사라졌지 지쳐보인다) 까칠한 아들과 귀여운 딸도(요 꼬마 정말정말 귀엽다) 소년의 첫사랑 아이콘이 되어버릴 듯한 엘르 페닝도(오히려 언니보다 차근히 나이를 밟아가는 느낌). 있을 수 있는 갈등, 가능한 상냥함. 예상가능하긴해도 보고 있으면 훈훈해진다. 탁 트인 풍광과 그리도 좋아하는 동물들, 따뜻하고 착한 사람들이 만드는 이 동물원. 귀엽다 귀여워. 개인적으로 꼽는 명장면의 버스터(곰)의 시내 구경.

 

 

 

야간개장을 하는 동물원을 다녀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이 지역에 산 지 십 년이 넘었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사람 많은 것, 시끄러운 것, 이벤트에 질색하는 나로서는 최악의 조합이 아닌가! 그래도, 올해는 갔다. 다음주는 떨어지는 꽃을 볼 것이라는 합리적인 계산과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할 때 한 번쯤은 해봐도 좋을 것, 이라는 감상적인 착오 때문에. 벚꽃이 만개하는 며칠동안만 이뤄지는 -무려 시민을 위한- 이벤트, 라고는 하지만 돈을 위한 상술이라고 확신한다. 꽃나무에 달린 꽃송이만큼이나 많은 사람이라니! 사람은 무지막지하게 많았고 여기저기서 터지는 플래시 때문에 파파라치에 쫓기는 연예인이 된 것만 같았지만(그들이 선글래스를 끼는 이유는 멋이 아니라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어_- 정작 나는 사진 한 장 안 찍었는데 눈이 멍멍하다) 맥주가 있고 동물이 있고 꽃이 있고 친하고 편하고 믿는 사람이 있어서 배부른 코알라마냥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상술이라 해도, 나는 속지 않는다 해도 기어이 이렇게 한 번은 가는구나. 꽃놀이, 불꽃놀이, 단풍놀이, 눈꽃축제 등등. 다들 알면서도 가는 건 아마 그래서겠지. 영화도 마찬가지. 다 알고 만든 거라 해도, 우리의 눈과 귀를 속이기 위한 행위라 해도 그것이 멋지다면 때로는 속아줘도 된다. 상업영화는 그러기 위해 있는거니까.

 

그런데 야간개장으로 돈을 많이 벌면 동물들에게도 특식이나 간식을 줄까? 그랬으면 좋겠다. 인간들이 우글우글와서 밤잠을 방해하고 스트레스를 줄텐데, 이런 너무 미안하잖아.

 

 

 

 

 

 

 



 
 
말없는수다쟁이 2012-04-16 12:44   댓글달기 | URL
기꺼이 속아주지! 이거 괜찮은 태도인데요? ㅎㅎ 한 번쯤은 속이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삶의 즐거움이네요. 저는 위에 소개된 영화를 한 편도 안 봤답니다. 심지어 미션 임파서블도 안 봤어요(!) 꽃이 만발하고 시간이 더 느리게 흘러가면 저도 한 번 기꺼이 속아주러 영화관에 들려야겠어요. 기회가 된다면 동물원도요 :)

Shining 2012-04-16 23:33   URL
가끔은 상업영화가 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물론 아주 잘 만든 상업영화를요(웃음). 저들이 나를 울리려, 웃기려, 흥분시키려 한다고 해도 때로는 괜찮다 싶은 그런 영화를 만날 때 저는 그까잇꺼 내가 속아주지_- 관대한 척 한답니다ㅋㅋ 꽃이 만발할 때는 바깥으로 가요, 수다쟁이님. 영화는 좀 더 더워지면, 후훗. 올해는 하반기 기대작이 많잖아요 :-)

2012-04-16 13:59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16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2-04-16 18:13   댓글달기 | URL
전 어젯밤에 대공원 근처에 있는 황소 곱창집에 곱창을 먹으러 갔었다는~ㅠ.ㅠ
벚꽃을 보러 갔었는지, 황소 곱창을 먹으러 갔었는지 확실히 경계를 나누긴 애매모호하지만 암튼...
저도 야간개장으로 돈을 많이 벌면 동물들에게도 특식이나 간식을 줬으면 좋겠다,에 한표요~^^

Shining 2012-04-16 23:38   URL
양철나무꾼님은 실속파~ 그건 일석이조잖아요ㅋㅋ
그러게요,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얘들한테 너무 민폐 끼치는 것 같아 제가 다 미안했어요ㅠ
맛있는 걸로라도 보상해주겠죠?ㅠ 그래야할텐데~

소이진 2012-04-16 23:17   댓글달기 | URL
갇혀 지낸다는 것 자체가 동물들에게는 크나큰 고통일 것입니다. 저는 커서 동물 보호 단체에 가입할거에요. 수의사가 정말정말정말 되고싶지만 수학은 눈뜨고 쳐다봐도 보이지 않기에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라도...(응?)
하, 샤이닝님. 저는 요새 무지 슬프답니다. 영화를 볼 시간이 없어요. 슬프다는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내 첫사랑을 너에게 바친다>가 외장하드에서 저를 부르고 있는데 도무지 파일 클릭해서, 눈 크게 귀 크게 열고 집중만 하면 되는 걸, 할 시간이 없군요. ㅠㅠㅠㅠㅠ

Shining 2012-04-16 23:40   URL
맞아요, 그래서 동물을 엄청 좋아하는 저도 동물원 갈 때마다 기분이 오묘해요. 하지만 캥거루도 보고 기린도 보고 하다보면 정신줄을 놓고 다시 헤벌레해진다는_- 이거 어쩌죠ㅋㅋ
정말요? 영화 볼 시간도 없다니, 우리나라 고등학생 너무 힘들잖아요!소이진님이 슬프다니까 저도 슬퍼지네요ㅠㅠ 제 시간 쪼개서 선물해주면 좋을텐데ㅠ
 

 

 

 

 

 

설레는 마음 같이 나눠 마시자 우리 지난 겨울은 너무 힘들었었지

그래 어디라도 그대와 함께면 좋을테니

다가올 계절 이제 걸어가 보자

힘이 들면 얘기해 서둘 필요 없으니

우리 소중했던 지난 봄의 기억 잊진말자

때로 스쳐 지난 많은 말들에 홀로 아파한다거나

혹시 외롭거나 서러웠던 마음 괜히 담아 두지는 마

봄으로 가자 우리 봄에게로 가자

지난 겨울 밤 흘렸던 눈물을 마저 씻고

다시 그대와 날 뜨겁게 반기던 봄에 가자

봄으로 가자 우리 봄에게로 가자

지난 겨울 밤 흘렸던 눈물을 마저 씻고

이제 따뜻하게 우릴 안아주던 봄에 가자    - 에피톤 프로젝트, 손편지

 

 

날카로운 바람과 변덕스러운 기온이 며칠을 이루더니 마침내 봄이 왔다. 봄. 완연한 봄. 주말에 날씨가 이렇게 좋으니 연인들도 가족들도 친구들도 모두 야외로 나갔겠구나. 그러나 나는 볕이 잘 드는 내 방에 앉아 밀린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다. 세탁기가 탈탈거리며 돌아가고 놀이터에선 꼬마들이 함성 섞인 웃음소리가 들리고 키우고 있는 미니 화분은 광합성을 하며 잎을 흔들어대고. 볕 좋은 햇살에 도마며 수세미를 말리고 빨래가 수분을 뱉어내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안 어울리게도 나는 살림꾼이다). 이것 또한 완벽한 봄의 주말이 아니겠는가.

 

그나저나, 어째서 봄은 치유의 이미지일까. 하긴 나도 분명 그렇게 이야기했다. Y가 아침이 오지 않는 밤은 없다고 했을 때, 나는 그래,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니까 라고 답했다. 아마도 봄에는 꽃이 피니까, 추운 겨울을 이기고 따뜻한 계절이 오니까. 이렇게 기분좋은 날이라면 무엇도 노래할 수 있을 것 같고, 무엇이든 안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어떤 추운 마음도 사라질 것 같아서, 그래서 아닐까. 노래 제목도 있지 않은가, 너는 나의 봄이다.

 

 

 

 

  어제 자기 전 이 영화를 봤다. 그리고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삶이 삼 일 밖에 남지 않은 사람이었다. 사람이 많은 파티였다. 나는 여유로웠고 사람들 또한 배려심이 넘쳤다. 마치 생일을 축하하는 것처럼 모두 나를 아름다운 얼굴로 바라봤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어떤 어떤 일을 해야했고, 그러나 나는 나가야했다. 뭘 하라고 했던건지, 어딜 나가는 건지는 생각나지 않는데, 정말정말 하기 싫었고 어서어서 나가고 싶은 마음만 기억이 난다. 모두 나를 바라봤다. 그걸 하지 않으면 나가지 못한다며 눙을 치며 나를 놀렸다. 애정 섞인 놀림이란 걸 알고 있는데도. 갑자기 머리가 빙글빙글 돌면서 그 자리에 앉아 울었다. "나한텐 삼일 밖에 없다구요. 당신들은 아니잖아요."  우리에 갇힌 야수가 탈출하듯 섧게 울었다.

 

장진 감독의 <아는 여자>에 그런 대사가 나온다. "3개월 밖에 남지 않은 사람에게 가장 힘든 사실은 그 삼개월을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그때 거기서 죽기를 바랐다, 아마 그랬던 것 같다. 내 장례식 따위 남은 사람들이 알아서 하라지, 어차피 나는 그 자리에 없을 거라는 생각에 북받쳐 울었다. 내게 남은 시간이 삼일이라 것, 그 삼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그 삼일이 기어코 온다는 것이 두려웠다. 어차피 끝날거라면 어서 끝나라고.

 

그랬다. 죽음의 주인공은 본인일지라도 장례식의 주인은 그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죽은 자는 아무 힘이 없으니 모든 것은 살아있는 자의 몫이라고. 과거의 영광도 채우지 못할 죄악감과 부채 의식과 돌이킬 수 없는 순간에 대한 치명적인 그리움도. 살아있는 자가 누리고 갖고 견디고 나아갈 것이라고. 가장 최근에 장례식, 너무나 지쳤고 두려웠고 안도했다. 안도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구석에 앉아 잠을 버텼다. 입맛은 1%도 없었지만 잠은 왔다. 재가 되어 나오길 기다리는 그 순간도 누군가는 태어날 것이라는 생각에 전율했다.

 

그런데 어떻게 애나벨과 에녹은 그럴 수 있었을까. 나는 영화를 보고 난 후, 단지 꿈인데도 치밀어오르는 초조함을 감출 수가 없었는데. 어떻게 자신의 추모식에 색색깔 사탕과 보기만 해도 녹을 것 같은 초콜릿과 바삭바삭한 크래커를 대접할 생각을 했을까. 헤어짐을 내정하고 기한을 두고 사랑을 감내할 생각을 했을까. 아무리 하지 않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고 해도, 만나고 헤어진 쪽이 만나지 못한 것보다 옳다고 해도. 그래도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아니 난 못할거야. 하지 않고 후회하고 만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쪽이었을 거야.

 

그래서 이 영화는 아름답다. 평범하고 조용하고 못 견디게 아름답다. 터져나오는 눈물이 둑이 무너지는 감정의 홍수라면, 이 영화의 눈물은 멀리멀리 깊게 물수제비를 뜨는 돌멩이같다.

 

 

 

 

   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친구는 조언했다. 그러면 정말 안 좋아한다고 생각해 애인에게 꽃선물을 받을 수 없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물을 받지 못할까봐 입을 다무는 것보단 차라리 저는 이쪽이 좋거든요,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사실 꽃은 좋아하지만 꽃향기를 못견디는 쪽이다. 원래 냄새에 민감하고 향수나 화장품 냄새가 진한 사람 옆에 있는 것도 싫어해서 장미나 향이 강한 류는 싫어진다. 꽃향기를 맡으면서 으음~ 하는 부드러운 표정은 난 못할거야_- 대신 나리류나 수선화라면 환영한다. 특별한 날 받는 꽃은 재미없다. 화이트데이, 크리스마스 같은 무슨무슨 날이 아니라(이벤트에 무심한 나로선 당연한 말인가) 아무날에 받는 꽃이 좋다. 그냥 날이 좋아서, 지나가다 예쁜 꽃을 봐서, 며칠 전 책에서 읽은 꽃이 궁금해서 그렇게 주고 받고 사는 쪽이 훨씬 좋다. 화려한 다발이나 포장도 필요없다. 길에서 꺾어온 것처럼 그냥 한 번 쓱 두른 꽃이면 된다(아니면 신문지여도 괜찮고). 친구집에 놀러갈 때 사가면 처음엔 당황해해도 반응이 좋다. 가끔은 은근히 기대한다니까. 십년지기 친구 어머니께 선물해드렸더니 어머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들 딸 다 합친 것보다 내가 더 예쁘다고. 하하.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그때 생각이 난다. 꽃 선물은 분명 유용하지도 가치있지도 않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거라고. 며칠이면 사라진다 해도 그 때 그 마음까지 사라지진 않는다고. 꽃말을 알고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캐서린과 엘리자베스가 그랬듯, 그래서 그랜트와 빅토리아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처럼 꽃말을 알았으면 더 좋았을텐데. 꽃이 얼마나 의미있는 선물이 될 수 있는지 찬찬히 알았으면 좋았을텐데.

 

 

 

 

일요일 밤은 싫다. 차라리 월요일 밤이 낫지. 날씨가 아무리 좋았어도 일요일 밤은 싫다. 그래도, 오늘만은 괜찮다. 일찍 밥을 먹고 늦은 저녁 산책을 한다. mp3에는 에피톤 프로젝트(유실물 보관소), 버스커버스커 1집, 이지형(봄의 기적) 이 들어있다. 한 편의 영화와 한 권의 책을 생각하고 있다. 영화와 책 모두 아름다웠고 슬펐다. 영화와 책 모두 더 치밀하게 아름답거나 혹독하게 슬플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담담하고 무연하게. 그냥 거기 있는 죽음과 거기 있었던 사건을 알아보거나 기억했다. 특히 그들의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레스트리스> 애나벨에게 에녹은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을 것이다. 에녹에게 애나벨은 그를 동굴에서 꺼내준 사람이었다. 그들의 버드키스는 짧고 귀엽고 애틋했다. 기한을 두고 사랑하는 것, 다시 못 볼 줄 알면서도 사랑하는 것. 애나벨에게 에녹은 오지 않을 겨울과 봄, 지나가버린 할로윈이었다. 『꽃으로 말해줘』의 빅토리아는 그랜트의 사랑을 믿지 못한다. 그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사랑이 온다는 것, 자신이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그녀의 사랑은 죄책감과 오해 위에 똬리를 틀고 있어 그녀를 아프게 한다. 어떻게 그랜트는 이 어렵고 까다롭고 상처투성이인 여자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그녀에게 요리를 해주던 그랜트, 재회하던 날 그녀가 허겁지겁 삼키는 닭고기를 보던 그랜트. 그녀가 자신의 집 담을 넘는 것을 보고 오븐의 불을 켜던 그랜트. 누군가에게 요리를 해주는 사람은 이렇게 따뜻하구나.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들은 사랑을 한다. 거기에는 분명 두려움이 있고 그 사랑은 언젠가 끝날 것이라 짐작하면서도 그 손을 놓지 않는다. <레스트리스>의 그들은 직진을 하고 『꽃으로 말해줘』의 그들은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 만난다. 그들은 헤어진다, 아니 만난다. 그녀에게 그는, 그에게 그녀는, 그들에게 그 사랑은 봄이니까. 아마 애나벨에게 에녹은, 더 오랜 시간 에녹에게 애나벨은 봄일 것이다. 빅토리아가 헤이즐과 엘리자베스, 그랜트에게 돌아올 때 그들은 진정한 봄이 될 것이다. 사랑은 봄처럼 다가온다.

 

 괜찮다, 그대가 나의 봄이니까. 나는 나의 봄에게 페투니아를 선물하고 싶어졌다.  

  

 

정말 고맙습니다. 힘든 시간 함께했던

겨우내 갈라진 틈 사이로 작은 숨을 내 쉬는 그대
나도 언젠가부터 창가의 아지랑일 볼 때면 온기로 가

득히 퍼져가는 봄 향기에 마음이 떨려
냇물이 흐르고 꽃이 피어나면 그대도 나처럼 웃어
긴 잠에서 깨어 새가 노래하듯 다시 난 살아 갈 수 있다고
눈물이 날 지 몰랐던 걸까 아픔을 견뎌온 날들

이제야 천천히 웃으며 말하네 다시 찾아온 봄의 기적을 믿어

정말 고맙습니다. 나른한 햇빛의 물결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면 슬픔도 모두 아스라이 겨울이 머물던

그 자리에 앉아 찬 그늘을 녹여내고
얼어붙어버린 내 맘을 만져줘 다시 나 사랑할 수 있게
눈물이 날지 몰랐던 걸까 아픔을 견뎌온 날들

이제야 천천히 눈 녹듯 말하네 다시 찾아온 봄의 기적을 믿어

눈물이 날지 몰랐던 걸까 아픔을 견뎌온 날들
계절은 언제나 이렇게 멀고 먼 길을 돌아 다시 내게로 온다고
가슴에 남겨두었던 말들 굽어진 저 언덕에 올라
이제야 천천히 눈 녹듯 말 하네 나는 너의 여린 숨결을 믿어
다시 찾아온 봄의 기적을 믿어 정말 고맙습니다.  
- 이지형, 봄의 기적

  

 

 

  

 

 * 페투니아 꽃말 : 당신의 존재가 내게 위안을 줍니다.   

 

 

 

 

 

 

덧) 당연한 말이지만 헨리 호퍼의 얼굴에서 아버지인 데니스 호퍼가 보인다. 설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지, 유전의 힘이란. 그나저나 카세 료는 왜 이리 귀여운거지. 부드러운 발음을 가진 당신에겐 영어도 어울리는구려.

 

『노르웨이의 숲』(내가 가진 판본은 상,하로 나뉜 노르웨이의 숲이다)의 와타나베에게 첫호감을 느낀 것은 그 이유였다. 애인이(도) 아닌 여자의 집에 갈 때 꽃을 사가는 것, 그것도 수선화를 고른 것, 그래놓고 역 앞 길가에서 뽑아왔다고 천연덕스럽게 농담을 하는 것. 갓 스무살의 남자아이 중 이런 아이가 정말 있다니.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 들을 때마다 여수 밤바다가 보고 싶다. 모두가 나처럼 생각하고 여수에 갈까. 여수 홍보대사 하셔도 되겠소.

 

 

 

 

 



 
 
아이리시스 2012-04-09 00:08   댓글달기 | URL
샤이닝님, 맨날 좋다고만 하고 제가 이 말을 안했었나봐요.
샤이닝님 너무 예뻐요. 이 페이퍼도 사랑스러워요. ^______________^

Shining 2012-04-09 20:19   URL
칭찬쟁이 아이리시스님! 매번매번 얘기해주셨어요^^
아이리시스님한테도 몇 번씩 해주고 싶었는데, 저는 쑥스러워서 좀체로 그런 말을 잘 못해요ㅠ
하지만 제 마음은 아시죠?ㅎㅎ 아이리시스님 칭찬 먹고 꽃처럼 쑥쑥 자랍니다*-_-*

양철나무꾼 2012-04-16 18:19   댓글달기 | URL
에피톤프로젝트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이쁜 노래가 있는 걸 잊고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꾸벅~.

이 페이퍼가, 그리고 Shining님이 제게는 페투니아 같은 거...아실까요?^^

Shining 2012-04-16 23:44   URL
잊어버리셨던 곡을 떠올리게 해드렸다니 왠지 흐뭇하네요ㅎ
저는 봄냄새가 나면 에피톤프로젝트의 <손편지>랑 <유채꽃>이 꼭 듣고 싶어지더라구요^^

헛... 저 지금 정말로 무한감동 받고 있어요. 고마워요, 양철나무꾼님.
양철나무꾼은 제게 글라디올러스 같은 분이세요^^*

(글라디올러스 : 당신이 나의 가슴을 관통합니다) 어멋 쑥스러워라*-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