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하 The Six Finger, 장재현, 2019

 

 

(우선은) 근래 양산형의 한국영화 틈바구니에서 만나서 반가운 영화. 기독교와 불교(그 중에서도 밀교)가 섞이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비슷한 소재를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한다는 걸 잊지 않는다면 모든 퍼즐이 쉽다. 때문에 떡밥회수율은 상당히 높으나 대신에 미스테리 부문에선 아쉬움이 남는다. 허나 물음을 던지고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는 것만으로도 '영화답다는' (특히나 요즘 제작된 영화에서 갈수록 찾기 어려워지는)기본 자격을 갖췄다고 느낀다. 오컬트와 종교의 외피를 입었으나 실은 믿음과 욕망과 타락에 대해 성찰케하는, 철학적이고 쓸쓸한 정조의 영화. 믿지 않는 자에겐 배신당할 마음조차 없으리니, 결국 신은 없다는 단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이시여, 탄식하게 되는 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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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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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이다그러나 새삼스레 한 해를 돌아보며 열정적인 후회를 하거나 미래에 대한 불투명하고 민망한 결심을 하지 않는다나이를 곱씹으며 과장한 공포를 느끼지 않으려 한다아마도 진짜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런 태도의 변화에서 오는 걸지도 모른다그러니 마찬가지로 한 해를 보내며 읽어야 할 마지막 책이라며 호들갑 또한 떨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며칠 전 터미널 앞 카페통유리로 된 창가에 앉아서 이 책을 읽었다부러 장소를 선정하거나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아니나 읽다보니 이보다 더 적합한 순간이 있을까 낯선 감탄이 일었다. 12스산하고 날카로운 바람이 간헐적으로 열리고 닫히는 출입문으로 새어들어오고 먼지처럼 내리는 눈발을 간간이 내다보며 읽은 책은 소설가 손흥규의 산문집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이었다. 

 

첫 챕터를 읽은 후 책의 앞날개로 돌아가 작가의 나이를 돌아본다. 1975년 생한참 젊은 나이다이문구와 오정희. 처음 떠올린 것은 둘이었고 그 다음엔 지금은 신축으로 공사한 옛날 큰아버지 댁이었다소와 여물이 있고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던, 그래서 언니가 가기 싫어했던 집이었다기껏해야 우리가 그 집에 가는 것은 일 년에 두 번 많으면 세 번이었음에도 그 냄새와 마당의 진흙과 예쁜 눈을 가졌던 소의 눈은 여전히 기억이 된다외갓집은 그보다 나았다꽃이 있고 털이 하얀 강아지가 있었고 할아버지의 자전거와 호미 같은 것들이 널려 있는 곳엔 어린 사촌동생이 타던 낮은 장난감 자전거도 있었다. 어떤 것들은 아주 사소하지만 매우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그리고 문득 어떤 냄새공기날씨를 보며 그 날을 떠올리게 된다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은 아스라한 향수정확히는 거기 있었던 지도 몰랐던 어린 날의 어떤 지점을 떠올리게 하는 에세이다


우르슬라에 비유한 고모의 죽음이나 그녀들의 아들들과 딸할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와 함께 소의 궁둥이를 밀어 트럭으로 싣고 장에 나갔다가 소머리국밥을 먹고 온 일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이견과 그 사이에서 시소를 타야 하는 자식으로서의 태도와 외동의 난감함 같은 것건봉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산수유와 감옥에 갔던 일과 하다못해 이스탄불에 체류하던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작가에겐 오래된, 빛 바랜 냄새가 났다. 이는 기묘한 경험이었다. 도시에 대해 쓰는 작가들은 차고 넘치고 특히 젊은 작가들은 대부분 도시의 삶과 그 진절머리에 천착한 이야기를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허나 마흔 다섯(내일이 새해라는 것을 감안, 한 살을 높임을 사과한다)의 작가가 이야기하는 어린시절과 자신의 삶에는 갖은 냄새와 촉감과 추억인지 향수인지 모를 것들이 가득했다. 그게 낯설었고 동시에 신선했으며 조금 부끄럽게도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아마도 넛할아버지는 아직도 캄캄했을 새벽에 집을 나섰을테고 초겨울 짧은 해가 지고도 밤이 이슥해질 무렵에야 그 집으로 돌아갔을 테다오가는 데 꼬박 하루가 걸리는 길을 오직 누이의 얼굴 한 번 보고 손등 한 번 쓸어보기 위해 다니는 이 없어 쌓인 눈에 발목이 푹푹 빠지는 산길을 누이가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곶감을 지게에 지고 걸어왔을 넛할아버지.


혈통처럼 세월이 흐르고 꽃잎이 분분히 떨어져 사연처럼 쌓이고 해가 저문다삶이 이슥해지는 시간들사소하고 비범한 우리의 노년이 자박자박 발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그러나 문학은 서로 다른 언어로 쓰인 공통의 기억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글을 읽는 내내 외할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아니, 사실 겨울은 그를 떠올리게 하는 계절이기도 했다. 평생을 기척도 없이 살다 가신 분인지라 강렬한 기억이 생전 마지막 모습이라는 것이 문득문득 미안하다. 가까이 가서 보지 않으면 숨을 쉬는게 느껴지지 않았던, 그 분의 삶의 태도같았던 날숨과 뻣뻣하게 자란 하얀 머리와 막내딸과 손녀를 구분하지 못하는 순간이 잠시 흐른 뒤 춥지 않느냐, 밥은 먹었느냐 묻던. 그리고 이제는 외할머니를 생각한다. 가족들 중 누구도 보지 못한 저 먼 곳에 걸린 현수막도 읽을 수 있는 시력으로 굳어가는 다리 때문에 집 밖으로는 혼자 나가지 못하는 분. 옆에 놓인 고무나무 화분처럼 해가 있는 곳에서 늘 바깥만 바라보는. 거기까지 생각하다보니 비죽 눈물이 나온다. 나이를 먹으면서 생긴 신기한 일 중 하나는 어떤 일에 대해선 한없이 메말라있는데 어떤 부분에선 믿을 수 없게 눈물이 쉽게 나온다는 것이다. 

 

죽음을 생각할 때 무엇보다 안타까운 일 가운데 하나는 내가 미처 읽지 못한 책들이다. 그 책들을 두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필멸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못내 서럽다.

 

문학은 언제나 가망이 없었을 따름이며 문학을 죽음 직전에서 일으켜세우는 건 언제나 인간의 몫이다. 나의 환멸은 뿌리가 깊다. 어쩌면 그해를 지나쳐 더 머나먼 과거로 거슬러올라가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문학이 무언지 모르던 시절까지 혹은 문학이 생겨나기 전에까지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학이 없는 그곳에 이르면 아마도 누군가는 기어이 그곳에서 문학을 만들어내고야 말 것이다. 그들은 어딘가에 묵새기고 앉아 문학을 이야기할 것이며 설령 벽도 천장도 없는 벌판 한가운데라 할지라도 혹은 오르지 별과 달만이 머리 위에 빛나고 있을지라도 그 별과 달을 쓰기 위해 기꺼이 고독해질 것이다. 그리고 아마 알게 될 것이다. 문학이란 문학에 환멸을 느낀 자가 가까스로 참고 견디며 하는 일임을.

 

글을 쓰는 사람은 흔히 남김없이 쓴다 해도 결코 완전하게 쓸 수 없으리라는, 아무리 적게 쓴다 해도 너무 많이 쓰게 되리라는 불안을 느낀다. 이 불안이 글쓰기를 절대적으로 가로막지 못하는 이유는 글을 읽는 이들 역시 글을 쓰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글쓰기의 불완전성을 알고 있으리라 간주하기 때문이다. 만약 한 편의 글이 완전하다면 그 이유는 글 자체가 흠잡을 데 없이 정교해서가 아니라 글의 틈이나 군더더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채우고 소거하며 읽어주는 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고작 나쁜 사람이 아닌 것, 그것으로 충분하겠냐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그 수동적인 행위로 너는 무엇을 할 수 있냐고 힐난도 해보고 적당히 구슬려도 윽박지르기도 했지만 도무지 나는 대답이 없었다. 자주 그러했다. 더 완벽한 때를 기다린다는 신중함을 방패 삼아 게으름을 정당화했고 어차피 안 되었을거란 불분명한 절망을 근거로 스스로를 보호했다. 허나 열심히, 꾸준히 쓰는 사람들 앞에서 늘 똑같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더 많은 책을 읽지 못하고 죽는 것이 서러울 것 같다고 말하는, 자신에게 터키는 (비교적 널리 알려진) 오르한 파묵이 아니라 아지즈 네신이라고 말하는 작가를 앞에 두고 어찌할 바 없이 12월에 멈춰서 지난 시간을 돌이켜 생각해본다. 무척 불편했던 영화를 만든 작품의 신작 포스터를 보고서 나쁜 작품을 쓰는 것보다는 나쁜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계절이 있었다. 그 때부터 작게나마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했던것도 아니고 등단을 하고 싶었던게 아니라 그저,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시간을 견디는게 어렵기 때문이었다. 올해는 그런 해였다. 여전히 문장은 헤지고 형편없지만, 쓰고자 하는 욕심의 절반도 쓰지 못했지만 그래도 절룩거리면서도 무언가를 썼다는, 도마뱀의 꼬리보다도 짧은 안도감. 작가가 쓰는 소설가의 일, 문학의 자격, 쓴다는 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가만히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이렇게 좋은 문장을 쓰는, 이처럼 편안하게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는 것 같은 글을 쓰는 사람도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그렇다면 내 고민 따위는 너무도 당연하다.


기꺼이 나이를 떠올리지 않고 지난 해를 후회하고 앞날을 희망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실은, 부끄럽기 때문이다. 이제야 그것을 가까스로 인정하면서 어쩌면 작위적인 태도보다도 지금 이 인정이 나이를 먹는다는 진짜 물증일수도 있겠다. 그래 12월은 어쩔 수 없이 향수와 서글픔과 울음의 계절인가보다. 그리고 겨울을 관통하는 이 시기에, 따뜻한 차 한잔과 조금의 눈물과 함께 이 책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12월 31일이다. 또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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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8-12-31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hinin님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Shining 2019-01-03 09:41   좋아요 0 | URL
제가 너무 늦었죠ㅠㅠ 카스피님도 새해 복 많이!많이 많이 받으세요^^ 늘 건강하시고요 :D

2019-02-02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자서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지수 옮김 / 바다출판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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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해야 할, 반드시 필독해야 하는, 한 번은 봐야 할 등등의 표현을 싫어한다. 강요를 하면 더 하기 싫어지는 청개구리 성격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가끔 영화나 책을 읽으며 특정 타깃층을 겨냥해 쓸 때가 있다. 이런 식이다. 영화학도라면 혹은 시네필이라면 아마도 좋아할 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쓴 영화자서전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이다.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거나 아니면 그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물론 만족스러울 것 같지만 특히 영상연출을 다루는 사람들에겐 -좀 더 강하게 이야기해- 일독을 권하고 싶다. ‘영화자서전이라는 표현이 돋보이는데 이름에 걸맞게 자신의 개인사 등은 배제하고 자신이 만든 영화(와 영상)의 이야기만을 다룬 게 인상적이다. 아마도 원고는 과거의 기록을 토대로 기억을 기반하여 현재에 썼을텐데도 정말 1995년이나 2005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드는 것이다. 때문에 더 진심으로 담은, 귀한 느낌이 들고 무엇보다 영화의 집필 시기가 달라지는 만큼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데(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결혼을 하고 딸이 태어나는 등의 이야기가 가끔 더해질 때) 그의 영화가 그러하고 (많은 이들이 언급하는) 오스 야스지로의 영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사사로운 이야기는 배제했지만 돈과 투자영화제와 시상은 물론 자국의 상황과 비판도 빼곡이 들어있기에 영화 바깥에 이야기에 주목해도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처음엔 자신 역시 서툴렀고 어렸지만(그런데 허오 샤오시엔과 이미 알았던 사이... 지아장커와 사진 찍으신 분...) 영화제란 마켓이기 때문에 에이전트와 단합해서 공략을 해야 한다는 것과 3대 영화제 등의 장점과 특징에 대해서도 서술해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그 중에서 한국의 이야기도 몇 번 등장하는데 부산국제영화제의 역사와 연혁은 물론 외압으로 인한 문제까지도 이미 알고 있는데다 심지어 지지성명도 보낸 적이 있다고 한다게다가 한국의 영화학교나 영화아카데미외국으로 진출한 감독 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고 영화산업을 꽤 중요시하며 착실히 발달하고 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는 점도 놀랍다.

 

한국영화의 위기론은 언제고 대두되고 개인적으론 근래 2,3년 간 절실히 느끼지만 그런 우리나라의 실정도 일본 앞에선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애니메이션 아니면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만이 남아서 일본배우들은 영화에 출연할 수 있다면 한국영화 출연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도 나고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지칭하며 현재 일본에서 유일하게 영화다운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고 하는 평도 들었었다단순히 영화제에 진출하고 상을 받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일본에서 영화가 얼마나 사양길에 들었는지를 들었었지만 이렇게 일본의 감독에게서 들으니 또 남다르다(하긴나만 해도 한 때는 구로사와 아키라미조구치 겐지오즈 야스지로오시마 나기사이마무라 쇼헤이구로사와 기요시미이케 다카시이와이 슌지 등의 영화를 봤지만 요샌 ......정말로 고레에다 히로카즈만 봤다그를 제외하고는 그나마 오기가미 나오코와 나카시마 테츠야 정도였나). 


이를테면 제 어머니가 추억으로 이야기하는 전쟁은 도쿄 대공습뿐이었습니다. “욕심 부리지 말고 타이완과 한국만으로 그쳤다면 좋았을걸그랬다면 지금쯤은......” 하고 주눅 들지도 않고 말하는 어머니에게는 명백히 피해 감정밖에 없습니다.

이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아버지는 식민지 타이완에서 나고 자랐는데타이완 시절의 행복했던 청춘가 이야기와 중국에서 패전을 맞이하며 시베리아로 억류되어 강제노동을 한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습니다그 사이에 중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본인이 무엇을 했는지)는 결국 말하지 않았습니다개인의 수준이 이러니 당연히 일본사 자체도 그런 형태를 취하겠지요. ‘가해의 기억은 없던 셈 치거나 다들 그렇게 했으니까라고 정색하거나 불문에 부칩니다즉 나라 전체가 잊는 방향으로 향하는 것입니다작품 제목으로 붙인 망각은 그런 점을 가리킵니다헌법 제9조는 대담하게 말하면 성서에서의 원죄가 아닐까요요컨대 가해를 망각하기 쉬운 국민성에 대한 일종의 쐐기로우리가 항상 죄의식을 자각하며 전후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게 아닐까요(중략그러니 야스쿠니 신사에서 두 손을 모으는 것은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애도라고 아무리 말한들 국제적으로 이해받기 어렵습니다적어도 어쩌면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졌을지도 모를 중국인과 한국인은 당사자로서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2011 동일본대지진 당시의 일이며 일본의 역사 문제에 대한 비판 등을 담은 부분도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정말로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이야기들에 집중하고 있다. 어떤 영화를 무슨 생각에서 생각에서부터 시작했고 어떻게 살을 더했는지. 투자를 받은 곳과 어째서 제작이 늦어졌는지. 캐스팅은 누구를 만나 누구를 소개받고 어디에서 보고 누구를 원했는지 등등. <환상의 빛>을 시작으로 해, 책을 쓴 시점에선 아직 영화화 되지 않은 <세 번째 살인><어느 가족>을 제외한 모든 영화의 비하인드가 꼼꼼하게 담겨있다. 뿐만 아니라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도중 더해진 사건이나 시간으로 인해 바뀐 설정은 물론 장소 섭외와 콘티까지 빼놓지 않았다. 특히 아이들이 중심이 되는 <아무도 모른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의 경우에 아이들의 어떤 모습이 캐스팅과 시나리오로 이어졌는지도 꽤 상세히 써놓았다.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전공으로 삼았던 사람인지라 픽션을 연출할 때 어느 정도의 간섭과 작위가 허용되는지는 물론 피사체에 대한 예의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곱씹게 만들기도 하고 그 영화는 실패했지만 그 때 느꼈던 것들을 다음 영화에 좀 더 담을 수 있었기 때문에 성취가 있었다는 단단한 소감도 읽을 수 있다(ㅇㅇ작품은 실패했습니다, 라고 본인은 느꼈지만 주변에서 조언하길 ㅇㅇ영화를 함께한 배우, 스탭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건 실례가 된다는 말을 듣고 수긍했다는 것도 재밌다. 그러더니 20년이 지난 영화이니 이제는 말해도 되겠지요?라고 하는 것 또한). 이쯤 되면 거의 영업 비밀을 다 담은 셈인데 이걸 읽는다 해도 그만큼 영화를 찍을 수 없기 때문에 밝힐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당연하게도 감독의 팬이라거나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면 이 책이 즐겁겠지만 만약 전작을 다 보지 못했다고 해도 걱정할 것은 없지 않을까. 내 경우에도 감독이 다큐멘터리 PD출신이라는 것은 전혀 몰랐던데다 <디스턴스>와 <태풍이 지나가고>는 아직 보지 못했고 <공기인형>과 <하나>역시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때문에 아직 보지 않은 두 영화의 챕터는 읽지 않았고 보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인지 텍스트만으로 화면을 전달받기 어려워서인지 TV드라마의 에피소드도 상대적으로 가볍게 읽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장, 그 외의 이야기들, 어쩌면 몇 개의 챕터만으로도 분명 마음에 남는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처음에 말했듯 반드시 읽어야 할 책, 꼭 봐야 할 영화 같은 건 없지만 그래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라면 한 번쯤 봐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고 영화를 봤다면 이 책 역시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지리라 지레 짐작해본다. 


이 영화에서 그리고 싶었던 건 누가 옳고 그르다든가, 어른은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한다든가, 아이를 둘러싼 법률을 이렇게 바꾸어야 한다는 등의 비판이나 교훈이나 제언이 아닙니다. 정말로 거기서 사는 듯이 아이들의 일상을 그리는 것, 그리고 그 풍경을 그들 곁에서 가만히 바라보는 것, 그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이를 통해 그들의 말을 독백(모놀로그)이 아닌 대화(다이얼로그)로 만드는 것. 그들 눈에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어 보이는 것. 제가 원했던 건 이러했습니다. 이와 같은 태도는 통상적인 픽션 연출에서는 드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제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현장에서 발견한 대상과의 거리를 잡는 방법이자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방법이고, 취재자로서의 윤리적 자세입니다. (중략) 그 시도는 마지막까 제대로 관철했다고 생각합니다.   - <아무도 모른다> 챕터 중 

 

자잘한 디테일은 그다음에 채워 나갔습니다. 가령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가 나온다면 어머니가 심술궂게 트는 것일 테니 아버지가 바람을 피웠겠지...... 라든가, 식사를 한다면 모처럼이니 내가 좋아했던 옥수수튀김으로 할까 등등. , 먹는 장면은 밤의 장어 요리로 한정하고 나머지는 대체로 요리를 하거나 치우는 장면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는 편이 등장인물이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식사 장면에서는 먹는 것보다 준비와 정리가 중요하단느 점은 무코다 구니코 씨의 흠드라마에서 배웠습니다.     - <걸어도 걸어도> 챕터 중 

 

이처럼 저의 경우, 주제는 찍기 전에 아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자잘한 디테일을 채워 나가는 가운데 생기는 경향이 강합니다. 하지만 주제나 메시지는 저 자신이 의식하고 있을 뿐이라서 인터뷰할 때도 되도록 말하지 않으려 합니다. 작품에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나 생각하는 게 반영되어 있을 테니 구태여 말로 표현함으로써 제가 파악하고 있는 부분 외의 주제나 메시지가 버려지는 것을 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부재는 채워지는가. 채워지지 않는가.

 

제 영화는 전반적으로 상실을 그린다는 말을 듣지만. 저 자신은 남겨진 사람들을 그린다고 생각합니다.

 

 












덧) 좋아하는 영화이야기를 듣는 것도 즐겁지만 그 화자가 창작자 본인인데다 불편한 자만심이나 공허한 자기혐오, 공연한 자기연민이 배어있지 않은 어조라 인상적인 한편 읽는데 부담이 적었다. 게다가 읽고 나면 필연적으로 영화가 궁금해진다. 궁극의 셀프 세일즈이자 영화자서전이란 말이 딱이다. 혹 이 글을 읽고 한 명이라도 더 영화가 보고 싶어질까 싶어 열심히 스틸컷을 업어왔다. 나는 팔게 없어 나 대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팔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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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2 0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9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올해는 조금 늦었다. <로마>를 보려고 기다리고 있던 탓이다. 다행히 근처 극장에서 간헐적 상영을 하곤 있으나 현재로선 시간이 영 맞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서야 부지런히 정산했다. 개봉영화 37편을 봤고 놓쳐서 아쉬운 영화는 <델마>, <어느 가족>, <툴리><로마>다. 늘 그렇듯이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취향대로며 영화 순서는 국내 개봉순이다.    
 

     

 

코코Coco, 리 언크리치

    

픽사를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들은 한층 더 점프한다.


 

 


패딩턴 2 Paddington 2, 폴 킹 

 

가족의 진정한 의미라는 흔하디 흔한 주제를 포장한 흔하지 않은 방식


 

 


더 포스트 The Post, 스티븐 스필버그

 

이들이 업계 최고인 이유.


 

 


팬텀 스레드Phanton Thread, 폴 토마스 앤더슨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전복시키는 데에는 역시 폴 토마스 앤더슨이 최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Avengers: Infinity War, 앤서니 루소, 조 루소  

 

이 영화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 인물, 이 정도 스케일을 이 시간 안에 해냈다면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과감한 반전으로도, 마블의 10주년 작품으로도 기념비적이다.


 


 

보리vs매켄로 Borg/McEnroe, 야누스 메츠

 

승리의 기쁨도 패배의 굴욕도 당신 삶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

- 영화의 장면 중

 

 

 

    

앤트맨과 와스프Ant-man and the Wasp, 페이튼 리드   

 

성공한 영화도 후속작에선 딜레마를 겪고 초심을 잃으며 정체성에 흔들린다. <앤트맨과 와스프>는 다른 무엇보다도 이 점에서 특히 훌륭하다. 더 욕심 부리지 않고 오버하지 않으면서도 자기가 왜 사랑받았는지를 아주 잘 안다.   

 

 

 

 


인크레더블 2 Incredible 2, 브래드 버드 

 

히어로의 삶의 고충에 대해 말하는 건 <다크나이트><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 앞서 <인크레더블>이 훨씬 먼저였다. 공적 에고와 사적 생활의 병립, 히어로의 양과 음, 부모 노릇의 고단함과 육아의 고충, 성평등까지. 거기에 드라마와 액션까지 끝내준다. 심지어 이 모든 것을 다 담고도 잘난 척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인크레더블하다.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Mission: Impossible- Fallout, 크리스토퍼 맥쿼리

 

이단 헌트의 놀라움 대신 그의 인간미를. 여전히 훌륭한 크루들과 감독, 그리고 톰 크루즈.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Spider-Man: Into the Spider-Verse, 밥 퍼시게티, 피터 램지, 로드니 로스맨 

 

어째서 히어로 인기투표 1위는 늘 스파이더맨인지, 이 영화를 보고나면 전혀 의아하지 않다.    

 

 

올해의 실망스러운 영화는 <데드풀2><맘마미아!2>였다. 이른바 예술영화 라인보다 상업영화들, 특히 애니메이션 부분에서 정말 좋은 영화가 많았고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솔직히 이 리스트에 넣게 될 줄 몰랐던 복병이었다(소니가 이런 것도 할 줄 알았다니?!). 2D일땐 이상하지 않지만 그게 영화로 표현하면 작위적이고 유치해지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경계의 선을 아주 잘 넘는다. 코믹스적이면서도 영화답다. 멀티버스라는 개념도, 히어로의 삶의 어려움도 놓치지 않으면서 무엇보다 활강액션이 아주 예술이다. 아 스파이더맨? 귀엽지. 하던 정도의 나였으나 영화 보고 나오면서 스파이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한국영화는 <소공녀>와 <국가 부도의 날>두 편을 봤다. 리스트에서 아쉽게 밀려난 영화는 <유전>. 그 외엔 <바네사가 사랑한 얼굴들>, <서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쓰리 빌보드>도 인상적이었으나 여전히 마틴 맥도나보다는 코엔 형제가 훨씬 더 좋은데다 이 영화가 시상식을 휩쓸 정도인지는 (개인적으로) 의아한 부분이 있다. OST는 <팬텀 스레드>와 <부탁 하나만 들어줘>를 꼽고 싶고 -생각지 못했는데- 인상적으로 좋았던 연기는 <팬텀 스레드>의 빅키 크리앱스와 <보리vs매켄로>의 스베리드 구드나손이었고 개봉이 연기되어 아쉬운 영화는 아담 맥케이의 <바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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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8-12-17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hining님 안녕안녕?☺😚 여전해서 고맙고, 반갑고, 전 요새 영화 통 못봐서 너무 좋은 리스트예요🧡

2018-12-17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8-12-17 14:06   좋아요 0 | URL
맥거핀님 안녕? 정말 많이 반가워요😄 여기도 자주 오고 싶은데 예전만큼 안되는 게 사실이에요. 말도 너무너무 걸고 싶지만 서로 뜸하니 괜히 부담일까봐 댓글을 아꼈어요. 맥거핀님도 잘 지내고 계시죠? 한해가 끝나가긴 하지만 인사할 수 있어 다행이에요. 글로 뭔가 좀 남기고 싶은데 머리가 텅 비었어요🙄😅 자주 봅시다 자주 봐욥🤭

맥거핀 2018-12-17 17:02   좋아요 0 | URL
그래요. 자주 봐요. 자주 봤으면 좋겠어요(물론 나에게 하는 이야기이도 합니다).

Shining 2018-12-19 14:39   좋아요 0 | URL
와 이게 얼마만이에요! 아이리시스님 반가워요!! 아무래도 생활 환경이 바뀌면 영화 보기 힘들죠ㅠㅠ 잘 지내고 있어요? 감기는 안 걸리고요? 묻고 싶은게 진짜 많은데 자주 좀 봐요 우리!!ヽ(´∇´)ノ (∇´ノ) ヽ( )ノ (ヽ´∇)

맥거핀 2018-12-17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영화가 하나도 없는게 인상적이네요. 저는 영화관에서는 거의 못보고 IPTV로 몇 편의 한국영화를 보기는 했는데, 거의 기억에 남는 게 없어요. 올려주신 영화 중에 히어로물이 많은 것도 재미있네요.

Shining 2018-12-19 14:44   좋아요 0 | URL
저도 작년보다 VOD로 보는 편수가 늘었어요ㅎㅎ 특히 왓챠플레이랑 넷플릭스 같이 쓰면 지나간 영화랑 미드 보느라 개봉영화를 놓치기도 하더라구요ㅠㅠ 여기엔 안 썼는데 그렇잖아도 한국영화를 너무 안 봤다는 생각이 들어서 남은 올해 동안엔 언급되었던 독립영화들을 좀 챙겨볼까 합니다. 헌데 요새 한국영화 자체에 굉장한 피로감을 갖고 있나봐요 제가. 특히 상업영화들은 기대작도 없고 관심도 없고... 굳이 안 보게 되네요ㅠㅠ 그러네요, 히어로 영화가 많았네요, 근데 다들 정말 재밌게 봤어요 ㅎㅎ 저 혼자 쓸때는 생각 못 한 점들을 이렇게 알려주시니 좋네요. 페이퍼 자주 좀 써야겠어요(히히).
 



작가들이 쓰는 글쓰기에 대한 책들은 대부분 재밌있다. 사실 재밌을 수 밖에 없다. 일단 이런 책을 썼다는 것부터 저자가 유명작가라는 방증이고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나 '글쓰기에 관한 책을 쓸 정도의 유명한 작가'들은 대개 좋은 문장가이기 때문이다. 고로 어떤 논지의 글이든 대체로 재밌고 유익하며 대체로 이런 생각을 하게 한다. 창작자란 근본적으로 깊이 없는 자기혐오와 근거 없는 자기애 사이에서 널을 뛸 수 밖에 없다는 설득과 마법의 묘약은 없다고 저자가 말함에도 불구하고 눈에 불을 키고 그 책 안의 마법의 묘약을 찾는 내 자신에 대한 저열함, 어쨌든 그들은 삼십 말의 구슬을 꿰고 꿰어 훌륭한 진주목걸이를 만들었다는 걸 알기에 내가 그들에게 동질감을 가져봐야 삼성회장이나 나나 똑같은 갤럭시 폰을 쓴다는 것 정도의 위안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자괴감 말이다. 게다가 온갖 작법서를 뒤적여봐야 좋은 캐릭터를 만들어라, 첫 챕터를 잘 써라, 초고는 원래 10%밖에 남지 않는다 등등 모두가 알지만 아무나 흉내내기 힘든 맛집 같은 이야기를 하니 어째 좌절감만 심해지고 이렇다 할 도움은 되지 않는다.  


 

  먼저 두 종류의 스케치북이 필요하다큰 것작은 것큰 것은 댐 전체의 조감도마을지도도로와 주변 지형 등 큰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하다큰 그림이 완성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반복해서 그리면서 수정을 하고수정이 끝나면 그림 속 동네가 우리 동네처럼 익숙해져야 했기 때문이다. ‘마을 진료소를 생각하면그곳이 어디에 있는 어떤 건물인지 자동으로 떠올릴 수 있도록작은 스케치북은 세밀화를 그리는 데 쓴다집 안 구조나방 구조장면이나 상황인물의 동선 등소설을 끝낼 때까지 그려야 하는 그림이기도 하다예를 들어현수가 세령을 차로 친 후호수에 유기하는 장면을 쓴다고 하자주변 사물의 상태자동차의 깨진 유리창전조등의 각도 등을 하나하나 그려가며 세령과 현수의 동선을 순서대로 정리해둔다.


의도하건의도치 않건소설에는 작가의 일부가 녹아 있을 수 밖에 없다과거든현재든사고방식이든성격이든이는 독자가 알고 있고 독자가 안다는 걸 나도 안다때문에 주인공을 미화하거나 허세를 떨고 싶은 때가 있다나를 무식쟁이로 볼까봐폭력적인 성격으로 단정할까봐비겁한 찌질이로 여길까봐그럴 때마다 생각한다작가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성인이 아니라고세상 모든 것에 대해 답을 가지고 있는 진지한 존재도 아니고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일 뿐이다이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위선을 떨게 된다독자는 작가의 위선을 예민하게 알아차린다위선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차라리 악당을 좋아할지언정누구나 그렇지만특히 작가에게는 솔직함이 중요한 미덕이다.


단어 선택과 문단 구성에도 몇 가지 원칙이 있다. 동사는 수식어의 도움 없이 스스로 땅을 딛고 설 수 있을 만큼 튼튼한 걸 고른다. ‘뛰다보다 속도나 모양새의 속성을 담은 내닫다’‘치닫다’‘쇄도하다같은 동사를 선호한다. 이런 동사를 쓰면, ‘빨리뛰었다, 라고 쓰지 않아도 된다. 형용사는 아껴 써야 한다. 남용하면, 독자에게 작가가 원하는 느낌을 받도록 강요하는 꼴이 된다. 패션도 포인트가 지나치면 보는 이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나. ‘아름다운 꽃이라고 쓰는 대신 꽃의 모양이나 색깔, 주변과의 조화를 묘사하는게 낫다. 아름다움은 독자가 알아서 느끼도록 남겨두시고.(중략) 부사는 항생제 같은 거다. 한두 번은 확실한 효과가 있지만 자주 쓰면 내성이 생긴다. 가령 너무라는 부사를 습관처럼 쓰면 정말로 너무한 일에 썼음에도 전혀 안 너무한 일처럼 느껴진다. 문장이 야단스러워지는 면도 있고.


그런 면에서 정유정 작가의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는 꽤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을 근거로 추정컨대 작가는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 별다른 과장을 하지 않는 편이다문학의 숭고함을 강요하지도 그것의 지난함을 과용하지도 않는다자신의 경험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지도 않으면서도 은근한 웃음으로 영업비밀을 숨기는 맛집처럼 굴지도 않는다허황된 예를 늘어놓는 대신 본인의 작품 속 본인의 문장을 인용해서 말하기 때문에 다른 이를 경탄하거나 힐난할 필요도 없으며 막연한 예시가 아니라 사실적인 이해를 돕도록 한다.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어떤 곳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시치미를 떼는 대신 스티븐 킹요시다 슈이치켄 키지레이먼드 챈들러 등 감흥을 받은 작가들을 가리지 않는다자신이 썼던 책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완성했는지를 샅샅이 밝히고 그러면서도 인칭이나 묘사문장의 구조 등 모든 작법서에 등장하는 부분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소재를 얻는 방법, 소재를 얻은 후 플롯을 구성하는 방식, 인터뷰를 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 등에 대해서 대부분의 작가 혹은 작법서에서 -고의이든 아니든- 빠뜨리는 부분을 꼼꼼히 기록한다. 어쩌면 작가가 말하는 과정을 따라 봐야 동등한 글을 반드시 쓸 수 있지 않음을 알고 있는, 냉담하고 예리한 태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의 위치는 좀 애매한 편이다. 작가 혼자 일방적으로 원고를 써낸 구조가 아니라 인터뷰 형식인지라 상대적으로 덜 지루하며 이야기의 논조를 바꾸긴 쉬운데 대신 진짜 이런 대화를 문어체로 주고받았나? 너무 작위적인 대화가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는 부분도 있다. 그 점에 대해선 내가 작가와 저자편집자가 아니니 뭐라 할 순 없지만 약간 불편한불안한 부분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어디서 이렇게 자세하고 세밀하게 글쓰기의 과정에 대해 들을 수가 있을까. 태반의 강의와 작법서, 작가들의 글쓰기 노트에선 볼 수 없었던 내용이 이 책 안에 담겨져있다. 그런 면에서 작가가 되거나 혹은 글을 더 잘 다루고 싶은 사람이라면 어느 부분이든 유효한 면이 있을테니 한 번쯤은 읽기를 권하는 바다. 


자, 하지만 이렇게 친절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친절하기에 더더욱- 우리는 위축되고 주눅이 든다. 플롯을 다루고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주어와 동사, 형용사와 부사와 목적어를 붙이는 방법을 알고 백 날 스티븐 킹의 글을 필사해봐야(심지어 그의 책들을 길다... 너무... 길다......) 작가는 커녕 의미있는 글조차 쓰지 못할거란 겁을 먹는다. 자기애나 자신감 대신 자기혐오와 자기비하에 시달리고 결국엔 쓰고 싶었던 내용조차, 주제나 문장은 커녕 소재의 끄트머리조차 붙잡기가 힘들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읽기나 할까? 읽히지 않을 글을 대체 무엇 때문에 쓰려고 하는가? 달음박질 친 영감을 따라잡긴커녕 제 자리에 서서도 밭은 숨을 쉬게 된다. 

 

 

  나는 당신이 글쓰기는 시간 낭비가 아니라고 확신하게 하고 싶다느낌과 상상력과 지성을 사용해야 하는 다른 창조적인 일도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다당신이 쓰는 문장 하나하나에서 당신은 무언가를 배운다글쓰기는 당신에게 유익함을 주고당신의 이해를 확장시킨다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설령 내 글이 앞으로 다시는 출판되지 않을 것이며그것으로 단돈 한 푼도 벌지 못하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나는 기꺼이 계속 글을 쓰겠다.


영감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영감은 매우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온다. 당신이 글쓰기를 시도한다고 해보자. 아마 첫날에는 그다지 많은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아무것도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은 타자기나 종이 앞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며, 한두 시간쯤 아무 생각 없이 머리카락만 쓸어 넘길 것이다. 전혀 걱정하지 말라. 그것은 좋은 일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다만 당신은 줄곧 타자기 앞에 앉아있어야 하며 공상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조만간 무언가를 이야기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기만 하면 된다. 또한 당신은 내일도 잠깐 틈을 낼 것이고, 또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 영원히 언제나 그렇게 앉아 있으리라는 것을 깨닫기만 하면 된다.

 

모든 사람은 재능이 있고 독창적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오랫동안 뚫고 나오지를 못한다. 사람들은 너무 겁을 내고 너무 자의식적이고 너무 자존심이 세며 너무 부끄러워한다. 그들을 구성, 줄거리, 통일성, 전체, 일관성 등에 관해 지나치게 많이 배운 것이다.

 

만약 당신이 스스로 쓴 글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좋은 징조이다. 그건 도달하기 어려운 먼 곳까지를 볼 수 있는 시야를 당신이 갖고 있다는 뜻이다.

 

앞서 말했듯 글을 쓰라고 다독이는 작가들은 대개 유명하고 성공했으며 대단한 문장가들이다. 마크 트웨인, 스티븐 킹, 레이먼드 챈들러, 조지 오웰, 무라카미 하루키 등이 쓴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를 읽어봐야 한숨밖에 터지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브렌다 유디트의 『글을 쓰고 싶다면』은 부담을 훨씬 덜어주는 책이다(그렇다고 저자가 덜 유명하거나 문장이 덜 훌륭하다고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앞서 말한 작가들이 쓴 글들이 대개 '내가'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지, 나는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지 등에 대해서 개인적인 관점에서 마치 회고록처럼 접근하는 것과 다르게 이 책은 나와 너, 얘와 쟤가 가진 모든 불안에 대해 보편적으로 접근한다. 영감을 얻을 수 없다고 믿는 잘못된 괴로움의 어리석음이나 내 문장이 읽히지 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누군가 비웃을 수도 있다는 망설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씩 내딛는 용기를 이해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대부분은 실패자이며 앞으로도 실패자이니 그 실패가 모두 의미없는 것은 아니라는, 자기계발서에 나올 법한 뻔한 말들을 믿게 하는 묘한 진솔한 힘이 이 책 안에 있다. 물론 허황된 일반론적인 이야기만 하는게 아니라 실존인물과 주변인이 쓴 글과 본인의 글을 인용하는 등의 예시를 통해서 힘을 보태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읽다보면 이상하게도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뭐라도 쓰고 싶고 느끼고 싶고 기록하고 싶다는 열망.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그 소망을 충동질한다는 면에서 이 책은 꽤 소중하다.


물론 이 두 권의 책을 읽는다고 갑자기 놀라운 문장가가 될 수는 없다. 그런 기적은 이 두 권 뿐 아니라 어떤 책을 읽는다고 해도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들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길 바라고 그 마음이 실현으로 옮겨질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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