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마음 같이 나눠 마시자 우리 지난 겨울은 너무 힘들었었지
그래 어디라도 그대와 함께면 좋을테니
다가올 계절 이제 걸어가 보자
힘이 들면 얘기해 서둘 필요 없으니
우리 소중했던 지난 봄의 기억 잊진말자
때로 스쳐 지난 많은 말들에 홀로 아파한다거나
혹시 외롭거나 서러웠던 마음 괜히 담아 두지는 마
봄으로 가자 우리 봄에게로 가자
지난 겨울 밤 흘렸던 눈물을 마저 씻고
다시 그대와 날 뜨겁게 반기던 봄에 가자
봄으로 가자 우리 봄에게로 가자
지난 겨울 밤 흘렸던 눈물을 마저 씻고
이제 따뜻하게 우릴 안아주던 봄에 가자 - 에피톤 프로젝트, 손편지
날카로운 바람과 변덕스러운 기온이 며칠을 이루더니 마침내 봄이 왔다. 봄. 완연한 봄. 주말에 날씨가 이렇게 좋으니 연인들도 가족들도 친구들도 모두 야외로 나갔겠구나. 그러나 나는 볕이 잘 드는 내 방에 앉아 밀린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다. 세탁기가 탈탈거리며 돌아가고 놀이터에선 꼬마들이 함성 섞인 웃음소리가 들리고 키우고 있는 미니 화분은 광합성을 하며 잎을 흔들어대고. 볕 좋은 햇살에 도마며 수세미를 말리고 빨래가 수분을 뱉어내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안 어울리게도 나는 살림꾼이다). 이것 또한 완벽한 봄의 주말이 아니겠는가.
그나저나, 어째서 봄은 치유의 이미지일까. 하긴 나도 분명 그렇게 이야기했다. Y가 아침이 오지 않는 밤은 없다고 했을 때, 나는 그래,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니까 라고 답했다. 아마도 봄에는 꽃이 피니까, 추운 겨울을 이기고 따뜻한 계절이 오니까. 이렇게 기분좋은 날이라면 무엇도 노래할 수 있을 것 같고, 무엇이든 안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어떤 추운 마음도 사라질 것 같아서, 그래서 아닐까. 노래 제목도 있지 않은가, 너는 나의 봄이다.
어제 자기 전 이 영화를 봤다. 그리고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삶이 삼 일 밖에 남지 않은 사람이었다. 사람이 많은 파티였다. 나는 여유로웠고 사람들 또한 배려심이 넘쳤다. 마치 생일을 축하하는 것처럼 모두 나를 아름다운 얼굴로 바라봤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어떤 어떤 일을 해야했고, 그러나 나는 나가야했다. 뭘 하라고 했던건지, 어딜 나가는 건지는 생각나지 않는데, 정말정말 하기 싫었고 어서어서 나가고 싶은 마음만 기억이 난다. 모두 나를 바라봤다. 그걸 하지 않으면 나가지 못한다며 눙을 치며 나를 놀렸다. 애정 섞인 놀림이란 걸 알고 있는데도. 갑자기 머리가 빙글빙글 돌면서 그 자리에 앉아 울었다. "나한텐 삼일 밖에 없다구요. 당신들은 아니잖아요." 우리에 갇힌 야수가 탈출하듯 섧게 울었다.
장진 감독의 <아는 여자>에 그런 대사가 나온다. "3개월 밖에 남지 않은 사람에게 가장 힘든 사실은 그 삼개월을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그때 거기서 죽기를 바랐다, 아마 그랬던 것 같다. 내 장례식 따위 남은 사람들이 알아서 하라지, 어차피 나는 그 자리에 없을 거라는 생각에 북받쳐 울었다. 내게 남은 시간이 삼일이라 것, 그 삼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그 삼일이 기어코 온다는 것이 두려웠다. 어차피 끝날거라면 어서 끝나라고.
그랬다. 죽음의 주인공은 본인일지라도 장례식의 주인은 그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죽은 자는 아무 힘이 없으니 모든 것은 살아있는 자의 몫이라고. 과거의 영광도 채우지 못할 죄악감과 부채 의식과 돌이킬 수 없는 순간에 대한 치명적인 그리움도. 살아있는 자가 누리고 갖고 견디고 나아갈 것이라고. 가장 최근에 장례식, 너무나 지쳤고 두려웠고 안도했다. 안도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구석에 앉아 잠을 버텼다. 입맛은 1%도 없었지만 잠은 왔다. 재가 되어 나오길 기다리는 그 순간도 누군가는 태어날 것이라는 생각에 전율했다.
그런데 어떻게 애나벨과 에녹은 그럴 수 있었을까. 나는 영화를 보고 난 후, 단지 꿈인데도 치밀어오르는 초조함을 감출 수가 없었는데. 어떻게 자신의 추모식에 색색깔 사탕과 보기만 해도 녹을 것 같은 초콜릿과 바삭바삭한 크래커를 대접할 생각을 했을까. 헤어짐을 내정하고 기한을 두고 사랑을 감내할 생각을 했을까. 아무리 하지 않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고 해도, 만나고 헤어진 쪽이 만나지 못한 것보다 옳다고 해도. 그래도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아니 난 못할거야. 하지 않고 후회하고 만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쪽이었을 거야.
그래서 이 영화는 아름답다. 평범하고 조용하고 못 견디게 아름답다. 터져나오는 눈물이 둑이 무너지는 감정의 홍수라면, 이 영화의 눈물은 멀리멀리 깊게 물수제비를 뜨는 돌멩이같다.
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친구는 조언했다. 그러면 정말 안 좋아한다고 생각해 애인에게 꽃선물을 받을 수 없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물을 받지 못할까봐 입을 다무는 것보단 차라리 저는 이쪽이 좋거든요,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사실 꽃은 좋아하지만 꽃향기를 못견디는 쪽이다. 원래 냄새에 민감하고 향수나 화장품 냄새가 진한 사람 옆에 있는 것도 싫어해서 장미나 향이 강한 류는 싫어진다. 꽃향기를 맡으면서 으음~ 하는 부드러운 표정은 난 못할거야_- 대신 나리류나 수선화라면 환영한다. 특별한 날 받는 꽃은 재미없다. 화이트데이, 크리스마스 같은 무슨무슨 날이 아니라(이벤트에 무심한 나로선 당연한 말인가) 아무날에 받는 꽃이 좋다. 그냥 날이 좋아서, 지나가다 예쁜 꽃을 봐서, 며칠 전 책에서 읽은 꽃이 궁금해서 그렇게 주고 받고 사는 쪽이 훨씬 좋다. 화려한 다발이나 포장도 필요없다. 길에서 꺾어온 것처럼 그냥 한 번 쓱 두른 꽃이면 된다(아니면 신문지여도 괜찮고). 친구집에 놀러갈 때 사가면 처음엔 당황해해도 반응이 좋다. 가끔은 은근히 기대한다니까. 십년지기 친구 어머니께 선물해드렸더니 어머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들 딸 다 합친 것보다 내가 더 예쁘다고. 하하.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그때 생각이 난다. 꽃 선물은 분명 유용하지도 가치있지도 않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거라고. 며칠이면 사라진다 해도 그 때 그 마음까지 사라지진 않는다고. 꽃말을 알고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캐서린과 엘리자베스가 그랬듯, 그래서 그랜트와 빅토리아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처럼 꽃말을 알았으면 더 좋았을텐데. 꽃이 얼마나 의미있는 선물이 될 수 있는지 찬찬히 알았으면 좋았을텐데.
일요일 밤은 싫다. 차라리 월요일 밤이 낫지. 날씨가 아무리 좋았어도 일요일 밤은 싫다. 그래도, 오늘만은 괜찮다. 일찍 밥을 먹고 늦은 저녁 산책을 한다. mp3에는 에피톤 프로젝트(유실물 보관소), 버스커버스커 1집, 이지형(봄의 기적) 이 들어있다. 한 편의 영화와 한 권의 책을 생각하고 있다. 영화와 책 모두 아름다웠고 슬펐다. 영화와 책 모두 더 치밀하게 아름답거나 혹독하게 슬플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담담하고 무연하게. 그냥 거기 있는 죽음과 거기 있었던 사건을 알아보거나 기억했다. 특히 그들의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레스트리스> 애나벨에게 에녹은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을 것이다. 에녹에게 애나벨은 그를 동굴에서 꺼내준 사람이었다. 그들의 버드키스는 짧고 귀엽고 애틋했다. 기한을 두고 사랑하는 것, 다시 못 볼 줄 알면서도 사랑하는 것. 애나벨에게 에녹은 오지 않을 겨울과 봄, 지나가버린 할로윈이었다. 『꽃으로 말해줘』의 빅토리아는 그랜트의 사랑을 믿지 못한다. 그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사랑이 온다는 것, 자신이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그녀의 사랑은 죄책감과 오해 위에 똬리를 틀고 있어 그녀를 아프게 한다. 어떻게 그랜트는 이 어렵고 까다롭고 상처투성이인 여자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그녀에게 요리를 해주던 그랜트, 재회하던 날 그녀가 허겁지겁 삼키는 닭고기를 보던 그랜트. 그녀가 자신의 집 담을 넘는 것을 보고 오븐의 불을 켜던 그랜트. 누군가에게 요리를 해주는 사람은 이렇게 따뜻하구나.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들은 사랑을 한다. 거기에는 분명 두려움이 있고 그 사랑은 언젠가 끝날 것이라 짐작하면서도 그 손을 놓지 않는다. <레스트리스>의 그들은 직진을 하고 『꽃으로 말해줘』의 그들은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 만난다. 그들은 헤어진다, 아니 만난다. 그녀에게 그는, 그에게 그녀는, 그들에게 그 사랑은 봄이니까. 아마 애나벨에게 에녹은, 더 오랜 시간 에녹에게 애나벨은 봄일 것이다. 빅토리아가 헤이즐과 엘리자베스, 그랜트에게 돌아올 때 그들은 진정한 봄이 될 것이다. 사랑은 봄처럼 다가온다.
괜찮다, 그대가 나의 봄이니까. 나는 나의 봄에게 페투니아를 선물하고 싶어졌다.
정말 고맙습니다. 힘든 시간 함께했던
겨우내 갈라진 틈 사이로 작은 숨을 내 쉬는 그대
나도 언젠가부터 창가의 아지랑일 볼 때면 온기로 가
득히 퍼져가는 봄 향기에 마음이 떨려
냇물이 흐르고 꽃이 피어나면 그대도 나처럼 웃어
긴 잠에서 깨어 새가 노래하듯 다시 난 살아 갈 수 있다고
눈물이 날 지 몰랐던 걸까 아픔을 견뎌온 날들
이제야 천천히 웃으며 말하네 다시 찾아온 봄의 기적을 믿어
정말 고맙습니다. 나른한 햇빛의 물결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면 슬픔도 모두 아스라이 겨울이 머물던
그 자리에 앉아 찬 그늘을 녹여내고
얼어붙어버린 내 맘을 만져줘 다시 나 사랑할 수 있게
눈물이 날지 몰랐던 걸까 아픔을 견뎌온 날들
이제야 천천히 눈 녹듯 말하네 다시 찾아온 봄의 기적을 믿어
눈물이 날지 몰랐던 걸까 아픔을 견뎌온 날들
계절은 언제나 이렇게 멀고 먼 길을 돌아 다시 내게로 온다고
가슴에 남겨두었던 말들 굽어진 저 언덕에 올라
이제야 천천히 눈 녹듯 말 하네 나는 너의 여린 숨결을 믿어
다시 찾아온 봄의 기적을 믿어 정말 고맙습니다. - 이지형, 봄의 기적
* 페투니아 꽃말 : 당신의 존재가 내게 위안을 줍니다.
덧) 당연한 말이지만 헨리 호퍼의 얼굴에서 아버지인 데니스 호퍼가 보인다. 설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지, 유전의 힘이란. 그나저나 카세 료는 왜 이리 귀여운거지. 부드러운 발음을 가진 당신에겐 영어도 어울리는구려.
『노르웨이의 숲』(내가 가진 판본은 상,하로 나뉜 노르웨이의 숲이다)의 와타나베에게 첫호감을 느낀 것은 그 이유였다. 애인이(도) 아닌 여자의 집에 갈 때 꽃을 사가는 것, 그것도 수선화를 고른 것, 그래놓고 역 앞 길가에서 뽑아왔다고 천연덕스럽게 농담을 하는 것. 갓 스무살의 남자아이 중 이런 아이가 정말 있다니.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 들을 때마다 여수 밤바다가 보고 싶다. 모두가 나처럼 생각하고 여수에 갈까. 여수 홍보대사 하셔도 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