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상 왼쪽
늘 책탑이 쌓여있다.

읽던 책을 다 읽지 않아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아주 뻔뻔하게 책을 대하는 자세
그렇다고 모른 척 하지도 않는다.

시간을 들이면서 천천히 읽고 싶은 녀석은
아주 오래 내 옆에서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다.
이 책도 그런 책이다.

<융의 영혼의 지도>
요즘 애정을 쏟고 있는 중이다.

프로이드와 함께
정신분석학의 지도자로 불리는 ‘카를 구스타프 융‘

이 책의 저자는 융을 연구하는 ‘머리 스타인‘이다.
서론에서 밝힌 책의 목적은 ‘융이 그려낸 지도에는
공백과 부조화가 있지만 그 속에 훨씬 심오하고 근본적인 통일된 비전을 담고있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융의 새로운 안내서
융의 장대한 비전을 파악하려고 할 때
거대한 작업이 경험적 현실에 맞게 일관성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빠지면 안 된다고 말한다.
머리 스타인은 융이 그린 인간 정신, 영혼의 지도를 펼쳐 우리에게 길을 안내하고 있다.

그 길을 찬찬히 따라가고 있는데
만만한 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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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적어도 몇달은 ‘한나아렌트‘에 빠져 있어야 한다.
그녀의 사유가 너무 깊어
싶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은 아닌지라
반복적 정독을 하고 있는차에 발견한 책,
그래픽노블로 그녀를 만났다.

딱, 2시간만에 그녀의 삶을 대략적으로 이해하고 다시
< 인간의조건>을 넘긴다.
책갈피 해둔 곳을 다시 넘기며 조금씩 그녀의 삶과 사상에 빠져 본다. 그리고 그녀의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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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던져준 숙제


바이러스는 흔적을 남기지만 때가되면 지나간다. 근데, 바이러스가 지나간 곳에 남은 관계들은 어떻게 유지할까.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다.

외부차단,
입국금지라는 문을 닫는 일차원적인 해결책은 불안이라는 나약함에서 내려진 가장 쉬운 답일지 모른다. 단순한 해결책은 결코 옳은것이 아니라고 본다.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이들은 틀리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들은 동요하지 않고 차분히 지켜보는 것도 답이 될 수도 있다. 어차피 바이러스와 티격태격 살아가야 된다면 불안이 답이 아니라 극복이다. 바이러스 퇴치가 결코 쉬운게 아니니 말이다.
많은 변수가 서로 영향을 끼치고 불규칙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관계에선 단순한 인과분석보다는 다원적인 접근법과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오랜시간동안 인간과 질병과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역사 <전염병의 세계사> 요근래 읽고 있는 책이다. 도심의 높은 인구밀도는 숙주간의 전파를 용이하게 하고 바이러스의 생존을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 이미 살기좋은 환경을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이 살기 좋은 곳을 쉽게 떠날이는 별루 없다. 바이러스 또한 마찬가지. 같이 살아가야 한다면 서로의 관계를 깨지 않으면서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컨택트>라는 SF영화에서 정체불명의 외계생명체와의 만남에서 언어학자가 등장한다.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면서 그들의 사고방식으로 조금씩 소통해나가는 시간은 지루할 만큼 시간을 끈다.
소통의 덫, 낯선 존재와의 조우는 시간이 지나야 당혹감도 불안도 줄어든다.
외계정체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막연한 불안감은 혼란으로 이어진다. 그동안 내재되어 있던 두려움이라는 편견에 대한 표출은 아닐지.

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할지는 국가차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다.
국가차원에서 제도적으로 체계적인 관리는 물론이지만 개인의 위생개념과 공공장소의 에티켓은 일상적인 것이다. 또한, 불안을 이용한 선동에서 동요하면 안될 것이다. 당분간은 확산을 막는 최소한의 행동도 개인이 해야 할 일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는 기저질환 환자나 노약자들에게 치명적이 될수도 있다는 코로나바이러스, 이 신종 바이러스와 우리는 이미 낯선 만남을 통해 많은 정보를 공유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
지나간 자리가 덜 아푸게 서로를 향한 깊은 상처는 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온갖 비난과 혐오성 발언으로 보이지 않는 수많은 희생과 노력이 가려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나의 답답함이 누군가에게 쏟아지면서 상처를 내지 말아야 한다.
비종교인이지만, 책을 읽으며 나에게 기도한다.

때아닌 자유, 멈추고 싶어도 쉴 수 없었던 시간들에서 낯선 코로나의 기습은 자의적으로 스스로에게 휴가를 주는 계기를 만들었다.
심란한 시국이지만 갠적으로 책과 함께하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 좋은면도 있다. 그동안 돌보지 않았던 집안 구석구석에서 나를 찾는 손길도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끊임없는 잔소리는 집안이 시끌시끌하다.
따뜻한 집안에서 옹기종기 아웅다웅 보내는 시간이 사람사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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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긴 시간 천천히 읽고 있다.
물론, 시간적 여유가 없는 이유도 있지만
이 책은 빨리 ㅎㅎ
넘길 수가 없다.
정독을 위해 다른 책과 함께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늘 만난 chapter는 미국영어가 서부를 향해가는 중이다.
서부에서 미국영어는 또 어떤 모험과 경험으로 그들의 언어, 영어의 힘를 만들어가는지 궁금하다.

이 궁금증은 내일로
이제 자야 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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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살면서 조금더 일찍 만났더라면...
아쉬움을 토로 할때가 있다.

<죽은 숙녀들의 사회>를 읽고 난 지금의 감정이 그렇다.
조금더 일찍 이러한 책을 만났더라면 적어도 지나간 시간이 답답하진 않았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은 더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내 삶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40대중반 언저리에 도착한 내 시간
 이제야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이제야 주체적으로 삶을 선택하며 능동적인 움직임을 하고 있다.
물론, 늦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지금은 조금더 지나온 시간에 대해 아쉬움이 남아 안타까울 뿐이다.
그리고 
더 아쉬운건 책을 읽으면서 한 번도 발 디뎌보지 못한 여행지에 대해 지리적 위치며 정보를 찾아야 했던 시간이다.
그곳에서 말하는 죽은 숙녀들 (예술가들) 또한 생소한 인물들이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곳을 몰라도 그들을 몰라도 말하고자 하는건 분명 알 것 같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결국, 여성과 남성 이분법적인 구분의 삶이 아닌 ‘사람‘의 삶을 말한다.
자신의 삶에 있어 수동형이 아닌 능동형, 늘 움직이는 ‘동사‘인 삶을 말한다. 그래서 기록되어지는 여자가 아닌 기록하는 여자로 남고 싶고 누군가의 연인이 아닌 그들 자신의 이야기인 주체적 삶을 사는 여자를 말한다.
난 과연, 내 삶은 ...
내가 얼마나  주체적일까 ?능동적일까? 

예나 지금이나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장애물과 어려움이 있다. 사회적 환경 , 문화적으로 너무나 제약이 많아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많이 바뀌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어려움과 달라지지 않은 의식의 문제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분법적 기준으로 스스로를 ‘여성‘이라는 틀 속에 가두어 버리는 자행들 특히 착함 , 여성스러움등 숙녀가 되기 위한 수많은 틀로 스스로를 규정지어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선 그러한걸 말하고  있다.
너무 솔직하고 당당하게 거침없이 자기 감정을 말할땐 내속에서 일어나는 당황스럼,거북함, 불편함, 시원함등 오만가지 감정들을 경험해야 했다. 
난 결코 페미니스트는 아닌가 보다.라는 결론과 함께 피식 웃기도 ..
제사 크리스핀은 외로움과 절망의 끝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이들은 죽은 사람들 예술가였다.
그들이 여자로 어떻게 살아 남았는지 ...어떻게 버텼는지...알고 싶었다.  
맘 둘 집을 찾아 떠난 것이다. 하지만 끝내 집은 찾지 못한다.
그렇지만 여러 여행지와 죽은 숙녀들의 삶에서 세상을 발견한다.

클로드 카엉이 살았던 저지섬에서 ...

‘‘절망과  외로움에서 나를, 또 내가 아닌 누군가를 구해줄 유일한 수단은 공동체와 사회의 감각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를 구하는건, 스스로에게  들려줄 수 있는 다르게 사는 방법의 이야기다. ‘‘ 

그래서‘‘ 글을 쓰는 행위와 인생의 어느 시점에 목숨을 구해준 철학자, 이야기꾼들로 앙상한 가계도를 채우는 행위는 중요하다.‘‘ 말한다.
어쩌면 해법은 스스로를 자기 경험과 생각을 담는 용기로 규정하지 않는 것일지도 ..해법은 자신의 경계를 격렬하게 밖으로 밀어내는 것, 자신의 모순을 찾아내고 자신을 다른 것들과 분리시키는 무언가를 이와 발톱으로 파괴하는 걸지도 모르다고 ...
또 다른 방황을 시작하며 또 다시 시작한다.

이 책을 읽은 지금,  생각해본다.
내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이분법적인 규범들속에서
내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나의 틀을 조금씩 깨고 나가는 자신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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