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 (출간 20주년 특별판)
황선미 지음, 윤예지 그림 / 사계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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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싹은 날개를 벌려서 다 자란 초록머리의 몸을 꼭 안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부둥켜안고 있었다. 초록머리의 부드러운 깃털과 냄새를 느끼며 몸을 어루만졌다. 어쩌면 앞으로 이런 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소중한 것들은 그리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잎싹은 모든 것을 빠뜨리지 않고 기억해야만 했다. 간직할 거라고는 기억밖에 없으니까.

- 황선미 <마당을 나온 암탉> 157p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공간에서, 생각을 하는 것이 더 부자연스럽지 못하게 여겨지는 곳에서 지내는 암탉은 스스로 잎사귀가 지닌 숭고한 아름다움과 잎이 떨어지고 나서도 다시 시작되는 삶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잎싹'이라는 이름을 말이다. 누군가에게 불릴 희망이 있을까 싶었지만 잎싹은 자신이 죽게 될지도 모를 곳에서 구해준 청둥오리 '나그네'에게 자신을 '잎싹'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그렇게나 염원하던 마당에서 살던 동물들에게 정작 그들 고유의 이름은 없었다. 그저 우두머리, 수탉, 암탉, 문지기, 나그네.. 그저 그들이 생각하는 그들의 위치를 간단히 말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잎싹은 자신의 의지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한다. 두렵고 앞을 알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그가 가장 이상적인 곳이라 생각했던 마당과 그곳의 동물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잎싹은 그럼에도 내내 자신은 자유로운 몸이 되어 알을 품고, 자신의 아가를 키워내고 싶다는 마음을 품는다. 마치 우연처럼 발견한 알이 운명처럼 그를 구해 준 청둥오리의 짝이 품을 수 없었던 알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지만 태어난 아기 오리를 사랑으로 품는다.

그리고 다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일들을 청둥오리는 불안함과 두려움으로, 외로움으로 잎싹은 사랑, 사랑, 오로지 사랑으로 날지 못하는 날개와 약한 몸으로 최대한 큰 위협을 가하며 청둥오리를 지켜내고 안아주고 보내준다. 자신이 병아리를 품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미 아주 중요한 것에서 밀려났다. 더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148p)라고

잎싹이 처음 밖을 바라보며 품었던 마음들이 굳은 의지가 되어 잎싹이 세상에 자의든 타의든지 나오게 된 이후까지 되짚어본다. 비록 다시 자신의 한 몸 누일 곳이 있는 것도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알지만 다시 닭장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족제비의 눈을 피하고 춥고 두려움에 떨면서 지내게 될지라도 말이다. 그의 강한 의지는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기를 여러 번 반복하며 마지막 장까지 덮는다. 무용해 보일지 모르는 것에의 끝없는 염원이 의지가 되고 힘없이 스러질지라도 의미있는 삶을 살아냈음을 안다. 슬프기만 하지 않다. 오히려 그 의지와 그 애씀을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대단한 어떤 것으로 남길 수 없을지라도 누군가의 존재에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것에의 의미와 가치를 아는 존재를 그려냈다.

나는 어떤 가치를, 어떤 기억으로 어딘가에 새길 수 있을까를 그의 날 수 없지만 가장 강한 날갯짓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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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6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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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은 히스클리프 씨가 살고 있는 집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폭풍(wuthering)'이라는 말은 비바람이 몰아칠 때 이런 높은 곳이 감당해야 하는 대기의 격동을 가리키는 이 고장의 표현이다. 이렇게 높으니 사시사철 상쾌하고 통풍은 좋겠다. 절벽 위로 불어오는 북풍의 위력은 본채 가까이에 있는 전나무 두어 그루가 미처 못 자라고 심히 기울어져 있는 것과 앙상한 관목 한 무더기가 마치 태양에게 구걸하는 거지처럼 모두 팔을 한쪽으로 뻗은 것으로도 능히 짐작된다.

-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문학동네) 11p

그렇게나 망설이고 망설이던 고전이었다. 내가 읽어낼 수 있을지 용기가 쉽게 생기지 않았고, 함께 읽는 이가 있어서 과감하게 읽어보기로 결정하였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하인인 넬리에게 전해 듣는 이야기이다. 과거의 이야기는 넬리 부인에게서 전해 들으며 현재의 모습은 록 우드가 직접 만나는 그들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이야기의 시간 순으로 보자면 폭풍의 언덕에서 살았던 언쇼 가족의 모습이 제일 먼저 비친다. 언쇼씨가 일을 위해 잠시 집을 떠나있다가 돌아오면서 히스클리프를 데려오면서 모든 이야기는 극적으로 변한다. 어쩌면 '히스클리프'가 원인이 되지 않았을 테지만 그 가정에서 겨우 이어지는 평범하다고 여기는 모습은 와르르 무너진다. 언쇼씨가 히스클리프를 데려오게 된 경위나 그의 과거, 그를 특히 예뻐하게 된 이유들은 밝혀지지 않는다. 이 과거의 모습 역시 하인 넬리의 시선에서 그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든 그 가정에 굴러온 돈으로 지내 온 히스클리프는 무서우리만치 동요하는 표정이나 슬퍼하는 감정을 숨기고 있다. 그것이 오히려 더 이상 하지 않은가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내내 이 시선이 넬리의 시선인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어쩌면 히스클리프 역시 어딘가에는 분풀이를 하지 않았을까?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애정이 끊어낼 수 없는 것으로 되기까지 그들의 감정은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이 주고받았을지 모른다.

지금 같아서는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면 나도 천해지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히스클리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애가 알아서는 안 돼. 넬리, 내가 그 애를 사랑하는 건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야. 그 애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그 애의 영혼과 내 영혼이 뭘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같은 걸로 만들어져 있어. 린턴의 영혼이 우리의 영혼과 다른 것은 달빛이 번개와 다르고, 서리가 불꽃과 다른 것과 마찬가지인걸.

-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문학동네) 130p

넬리, 내가 곧 히스클리프인 거야. 그 애는 내 마음속에 항상, 항상 있는 거야. 기쁨을 주려고 있는 게 아니야. 내가 나 자신에게 항상 기쁨을 주지는 않잖아. 그 애는 기쁨을 주려고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으로 있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헤어진다느니 하는 말은 두 번 다시 하면 안 돼.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어. 이제...

-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문학동네) 133p

그들의 사랑이 허락될 수 없는 것을 캐서린도 히스클리프도 알았고, 어쩌면 캐서린은 너무나 이성적인 결정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히스클리프는 자신을 지탱해 온 모든 것이 끊어진 느낌이었고, 그를 떠나게 하였고 다시 복수만이 자신 안에 가득 채워서 돌아왔다.

너무나 비이성적이고 비뚤어진 성격의 인물들 사이에서 유독 넬리만이 현명한 자세를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곧 그 시선에 갇혀버리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하였다. 사실 넬리가 보는 것이 모든 것의 진실이라고 느끼며 우리가 그들의 삐뚤어진 욕망과 복수심과 애정들을 바라보고 똑같이 마음에 폭풍이 이는 것을 느끼는 것을 쉽게 막을 수가 없다. 하지만 결국 그의 마지막 모습은 희한하게도 우리가 책장을 덮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했지만 도리어 다시 책을 펼쳐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분명히 악인의 모습인 히스클리프가 이사벨라 린튼이 사랑에 빠지게 만들 만큼 매력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캐서린의 행동을, 왜 다시 보고 싶어지는 것인지 이유를 찾기가 힘들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둘러싼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지내는 장소이다. 폭풍의 언덕('워더링 하이츠')와 드레스 크로스 저택, 이 상반된 곳의 사람들은 분위기만큼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다른 이야기로 사람들을 이끌어간다. 드레스 크로스 저택에 살면서 뭔가에 끌린 듯 폭풍의 언덕으로 가고야 마는 캐서린 린튼의 모습은 억눌러져 있을 욕망을 결국 숨길 수 없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휘몰아치는 듯한 감정으로 이 책에 그대로 몰입되게 하는 글에, 적잖게 놀라며 마지막까지 읽은 후 마음을 놓고 책장을 덮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이 책을 읽게 될 것을 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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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복희
김복희 지음 / 봄날의책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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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상하는 평화로운 세상에는 늘 책이 있다. 사자와 양이 한가로이 뛰노는 가운데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의 이미지, 사랑하는 이와 느슨하게 누워 각자 보고 싶은 책을 보다가 누가 먼저 말을 꺼내면,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은 자연스러운 대화를 간헐적으로 주고받는 이미지,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책에 코를 박고 있는 사람의 이미지.

빛과 고요가 책과 사람 곁에서 부드럽게 머무는 이미지.

- 김복희 <노래하는 복희> 147p


완도, 작은 섬에서 태어나 어쩌면 촌스럽다고 말할지 모르는 이름을 지닌 시인의 글을 만났다. 개인적으로 통통 튀고 개성이 강한 글을 끝까지 잘 읽어나가지 않으려는 못된 버릇이 있다. 나이 든 이들의 글을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내가 모르는 삶을 살아온 이들을 향한 존경의 마음이 클 거다.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하고 읽어 나가다가 80년대라는 것에 놀라 뒤늦게 시인의 이름은 포털사이트에 새겨 보았다. 그제서야 내가 알던 동요들이 나오고, 그녀의 글에 나는 어느새 스며들고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매 글마다 동요가 나오고, 동요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하나의 실타래처럼 가늘게 뽑아져 나오지만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듯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노래로만 흥얼거리고 정작 동요의 제목을 물을 때는 대답 못하던 동요들을 만나는 재미 역시 계속되었다.)

글 속의 그녀는, 분명 솔직하고 사려 깊고 사랑스럽고 다정하다. 자신을 누군가가 부른다면 '복희씨'라고 불러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글에 이미 내 마음을 온전해 내려놓기 시작했다. 동요를 노래 부르는 시인. 자신이 사랑하는 모습에는 늘 책이 함께 있고, 돌아가며 목소리로 책을 이야기하는 모임에서도 그 목소리들이 돌고 돌아 다시 자신에게로 오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함께하면서 홀로 일 수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고 말한다. 시를 쓰자고 말하지 않지만 시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다정하게 건네고 있다.

마음과 능력이 부족해 쓰지 못한 노래가 많고, 지운 말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들 노래 뒤의 노래가 되어 저를 따라다니겠지요. 써버린 노래만큼이나 쓰지 못한 노래도 제 노래입니다. 누락과 손실이 제 재산입니다. 평생을 써도 다 못 쓰고 죽을 만큼의 재산입니다. 제가 많은 돈이 되어서, 무척 좋아하고 있습니다.

- '나가며 노래 뒤의 노래들' 중에서

여전히 쓰지 못한 노래들에 미안함을 안고 살겠다고 말하지만 그 노래들이 언젠가 뒤이어 오다가 손잡고 함께 가게 될지도 모르는 거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어떤 노래들을 다시 떠오를 수 있을까. 그녀의 글에서 나는 나의 어린 시절 서점을 매일 드나들던 여중생을 다시 만났고, 시가 다정하다고 느끼기 시작했음을 인정하고 시집 모으기에 여념이 없는 엄마인 나도 다시 만났다.

그것으로도 나에게는 의미로운 책이다.

그리고 시를 만나고 싶은 이들에게도 건네고 싶고, 나와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도 망설임없이 손에 쥐여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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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라스 동화집
실비아 플라스 지음, 오현아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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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손을 다 보고 나자 정장은 마치 맞춘 옷처럼 맥스에게 꼭 맞았어요.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계속 이 옷만 입을 거야." 맥스가 말했어요.

- 실비아 플라스 <실비아 플라스 동화집> 중 동화 '이 옷만 입을 거야'

마음이 무겁고 힘들 때가 되어서야 웃을 수 있는 책을 찾는 사람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아이에게 읽히기 위해 사주는 동화집들을 나는 내가 읽기 위해서 샀고, 주말에 이 책을 읽으면서 웃음을 내내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는 <벨 자>의 작가로 더 알려져 있는 실비아 플라스가 낸 동화집이다. 실제로 자신의 아이들에게 읽혀 주고 싶어 지은 동화들을 엮었고, '이 옷만 입을 거야', '체리 아줌마의 부엌', '침대 이야기' 세 편의 동화와 원문이 실려 있는 두껍지 않은 책이다.

사실 나는 책을 펼치자마자 나온 글부터 다정하게 이 책을 향해 미소를 짓게 되었다.

"아주 멋져!"

"깃털처럼 가벼워!"

"버터처럼 눈부셔!"

"토스트처럼 따뜻하고!"

"정말 끝내준다!"

*

"와, 드디어 우리 세상이다!"

*

난 가끔 이게 혹시 마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니까요.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언제 어디에서든 무엇을 하면서도 늘 입을 수 있는 정장을 갖고 싶었던 맥스는 누군가에게 배달되어 온 정장이 자신에게 오기까지 기다린다. 모두에게 맞는 정장이 되기까지 엄마의 손을 거치면 마치 마법처럼 옷은 '맞춤한 것처럼' 꼭 맞았다. 다들 옷이 멋지다고 좋아하면서도 흔히 보이는 시선과 생각들에 사로잡힌 채 다른 동생에게로 계속 양보하다가 맥스에게 오고 만다. 맥스는 모두가 못하리라고 생각한 것을 옷을 입고도 너무나 즐거이 해내고 모든 이웃들이 맥스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옷이 아주 '맞춤'옷처럼 맥스에게 멋지다고 말한다. 아이의 흐뭇하게 미소 짓는 표정과 당당하게 두 손을 허리에 올린 채 서 있는 모습에 웃음이 지어졌다. 이 그림이 표지의 그림으로 되었다는 걸 실비아 플라스가 알았다면 웃음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 전래 동화의 '아씨의 일곱 동무'가 떠오르게 하는 '체리 아줌마의 부엌'과 침대 하나를 두고도 꿈꾸며 상상하게 하는 시로 이야기를 지어 낸 '침대 이야기'는 어린아이처럼 나를 순간적으로 웃게 만들었다.

맥스의 기쁨은 너무 사랑스러웠다.

자신의 일에 만족 못 했던 존재들이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중요하고 다른 존재들이 또 얼마나 자신의 임무를 잘 해내고 있었는지 깨닫게 했다.

한바탕 침대 이야기로도 구름 위로 여행을 가는 듯하고 유쾌하게 상상을 펼쳐볼 수 있게 하였다.

책을 왜 읽는지, 그리고 내가 앞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그 기본 본질을 이 짧은 동화들에서 또 발견했다.

'즐거움'

그것을 능가하는 것이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지만, 강한 의무감과 필요보다 더 진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 결국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이 절판되었다는데, 다시 나올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나는 오늘 나의 딸과 이 책을 함께 읽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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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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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 두꺼운 한 권의 책을 함께 읽었다. 생소한 용어와 문화적인 것들에 어지러워 하면서도 다시 너무나 진하게 연결되는 '연대'로 가는 길을 발견하게 한 듯하다.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이 부제가 전혀 생소하지 않게 느껴질 만큼 이주민으로써의 삶에서 여전히 토박이, 원주민으로써 지내 온 그들의 부모 세대가 전해 준 지혜를 그리워하고 지켜내고자 하는 식물학자가 전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들이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들에 감사를 표하는 것은 함부로 취하지 않고, 자연 그 자체를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하였다. 객관적인 자료를 보여 주고, 수업을 해야 하는 그녀의 위치에서 그녀가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과 학생들이 비로소 느끼는 것들을 확인해가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이 느껴졌다. 아버지가 의식을 치르며 땅과 모든 것에 감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어린 딸이 자라고 아버지의 작아진 등을 바라보며 회상하게 되는 모습은 마치 내가 그 자리에서 아빠의 등을 바라보는 듯이 느끼게 하였다.

'어머니 대지'라는 이미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잡고 갔고, 내가 이 책을 완독하게 된 힘은 그 대지의 이야기를, 대지에 감사함을 느끼는 나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물론, 함께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더 힘을 내게 하였다.)

이야기는 땅을, 우리와 땅의 관계를 복원하는 가장 효과적인 연장 중 하나다. 우리는 어떤 장소에 살아 있는 옛이야기들을 발굴하고 새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그저 이야기꾼이 아니라 이야기를 짓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는 연결되어 있으며 옛이야기의 실에서 새 이야기가 직조된다.

- <향모를 땋으며> 497P

내가 결국 이 책에서 마지막까지 놓고 싶지 않았던 것은 '이야기의 끈'이었다. 이 책에는 수많은 이야기를 한다. 자연, 대지, 감사, 회복, 치유, 양육, 지혜 ... ! 그것을 왜 이야기의 형식으로 해 나갔을까 생각하였고 작가의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글에서 확신을 했다. 지금 새롭게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 이 글도 1분이 지나면 다시 지난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연결된 그 이야기는 향모를 땋듯이, 직조해 나가듯이 이야기 역시 서로의 끈을 받고 이어가며 직조되고 연결되어 간다.

그렇기에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하고, 그 이야기들을 우리는 계속 읽고 듣고 봐 나가야 한다.

가능한 일일까?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여러 두려움이 들지도 모른다. 어쩌면 세계를 바꾸고 싶은 의지에 타오를지도 모른다.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하지만 일단은 이야기에서 시작되어야 그 의지가 희미해지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모임을 하며 나의 버릇을 갑자기 발견한 것처럼, 문득 내가 의식하지 않은 많은 것들은 결국 내가 나를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나서야 발견되곤 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나의 버릇, 나의 말투, 나의 글, 나의 이야기들 모두가 촘촘하게 땋여져가고 있고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는 것을 느낀다.

연말만 되면 많은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이제는 그저 하나만 남기고도 오히려 더 강하게 나를 세우는 걸 안다. 2022년 나의 단어는, '이야기'이다. "모든 이야기는 연결되어 있으며 옛이야기의 실에서 새 이야기가 직조된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직조해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향모를 두 손으로 천천히 꼼꼼히 땋으면서 그들이 생각했을 감사함, 단단한 믿음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이야기들을 두 손으로, 쓰며 이야기하며 천천히 직조해 나가고 싶다. 그들의 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게 한 명이라도 읽히고 조금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나의 두 손은 가장 큰 의미를 만들어낼 것임을 단단하게 믿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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