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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7
제러미 시프먼 지음, 김형수 옮김 / 포노(PHONO)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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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는 19세기 대표적 낭만주의 음악가로 대중적으로는 발레 음악에 의해 더욱 친숙하다. 특히 <백조의 호수>하면 반사적으로 떠올리는 우아하고 서정적인 멜로디는 너무도 유명해서 음악에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따라 읊조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발레에서는 이 멜로디가 명성에 걸맞는 주요 솔로나 빠드되(Pas de deux, 남녀 2인무)에 사용되지 않고 지극히 서술적인 장면(지그프리드 왕자와 사냥꾼 무리들이 호수를 둘러보는 장면)에서 흐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니, <백조의 호수>는 발레 음악이니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발레 공연과 함께 감상해야 겠다고 작심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이처럼 클래식 음악은 우리에게 친숙한 면이 있다고 해도 대체로 피상적이거나 협소한 범주에 머물 뿐 음악가 한 사람의 세계, 악곡 하나의 세계에 몰입하는 친숙함은 아닌 듯 하다. 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감상자만의 책임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과 친해지기 위해 이런 저런 음악회에도 가보고 입문서를 읽어보기도 하지만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남다르지 않는 이상 혼자만의 힘으로 그 세계에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특히 대중을 위한 클래식 입문서들은 '어떻게 감상을 하는가' 보다 '이런 것들을 감상해 보라'는 방식으로 서술되는 경우가 많아 감상자들은 여전히 홀로 남겨진다.

<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은 조금 독특한 성격을 가진 책이다. 이 책은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의 7번째 책으로 차이콥스키의 생애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 세계, 음악 해설 등까지 아우르고 있어 전기이면서도 평전의 성격이 느껴지며, 무엇보다도 차이콥스키의 초기 작품들과 음악적 성장 및 변화를 찬찬히 짚어갈 수 있어 더없이 소중한 체험이 된다. 또한 이 책은 두 가지의 이야기가 병행되는 구성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큰 틀은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중심으로 음악 이야기를 자연스레 엮어가고 중간 중간 삽입된 '간주곡'에서는 음악을 중심으로 음악가 차이코프스키의 세계에 집중하고 있어 좀 더 깊이 그의 음악에 다가갈 수 있다. 뿐만아니라 실제 음악을 들어볼 수 있도록 제공된 2장의 CD에는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없었던 차이콥스키의 곡들이 의외로 많이 담겨있었고, 그가 살던 19세기의 전반적 배경, 러시아의 문화적 배경, 관련 인물 설명, 각 악곡의 해설 및 비평 등이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어 커다란 차이콥스키 선물세트를 받은 것처럼 풍성했다(그러나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온라인으로 접속하면 차이코프스키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작곡가들의 음악까지 들어볼 수 있다). 사실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조금 촌스럽다 내지는 구태의연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는 과연 '그 삶과 음악'이라 할만하다는데 한 표 던진다. 이쯤되면 클래식 음악의 초보도, 조금 익숙한 사람도 무난히 차이콥스키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세계는 다름아닌 그의 내면의 세계이기에 더욱 신비롭다(악곡마다 그의 내면을 설명해주는 부분들이 무척 인상적이다).

차이콥스키의 생애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극적이었다. 동성연애자였으나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한 차례의 이혼을 겪었으며, 후원자를 자처했던 폰 메크 여사와의 묘연한 관계, 어린 시절부터 따라다녔던 각종 신경증세, 자살 의혹에 이르기까지 꽤나 고단한 인생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어릴적부터 유난하다 싶을 정도로 예민한 아이였으며, 상당히 감성 중심의 인물이었다. 사진 속의 그를 보고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냉철하고 근엄해 보이지만 사실 매우 수줍음을 많이 타고 온화했으며, (저자도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라 밝혔지만)사람 만나기를 힘들어 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사교성이 풍부했다. 한편으로는 상당히 정중하고 자기성찰이 두드러지는 사람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감이 지나친 탓인지 브람스, 바흐, 베토벤 같은 음악의 거장들에 대해 치기 어린 혹평을 가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예술가 기질'이 농후한 다채로운 내면 세계의 인간이었다. 이러한 내면 세계는 동생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보낸 서신들, 자신이 적어 놓은 글들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가 가진 고뇌이건 가식이건 열정이건 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수많은 서신 속에 자신의 생각을 담았던 인물로는 고흐를 쉽게 떠올릴 수 있겠는데, 차이콥스키 역시 못지 않게 많은 글을 남겨 지금도 그의 가슴을 읽어볼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동스럽기도 하다.

다양하면서도 강렬했던 차이콥스키의 내면 세계는 그를 항상 반듯하고 고매한 길로 인도하지는 않았지만 음악에서 만큼은 무척 정직하고 순수하게 자신의 색채를 만들도록 했다. 그래서 차이콥스키가 발레를 비롯 극음악에 뛰어났던 것도 그의 극도로 섬세한 감수성에 비춰보았을 때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그의 내면에서 차고도 넘치는 감정들은 극음악의 인물들을 통해 표출되어야만 진정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다른 음악에서도 극음악과 같은 느낌이 흐른다고 설명해 주었지만 이것은 음악을 들어봐도 확실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좀 '풍만하다'는 느낌이라면 모를까 초보로서 선뜻 공감하란 쉽지 않다. 하지만 <피아노 로만스 바단조 Op.5>에서 나타나는 쇼팽 풍과 동양적인 느낌은 쉽게 알아챌 수 있었고, 전반적으로 차이콥스키가 추구했던 러시아적 음악에 대해서도 희미하게나마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악곡의 해설과 나의 느낌을 대조해 보며 다소 생소한 곡들(물론, 익숙한 곡들도 있다)을 감상해보는 시간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특히 그의 10대, 20대 시절의 초기 곡들과 소품, 가곡 등 처럼 그의 음악 세계의 색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곡들로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 나는 발레를 참 좋아했기에 자연스레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많이 듣게 되었다. 한때는 그의 3대 발레곡을 전막이 담긴 CD로 구해 들으며 그와 무척 친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은 완전히 착각이었다. 이제서야 나는 이 책을 통해 차이콥스키와 정식으로 인사를 했다. 반갑게 손을 내밀며 앞으로 좀 더 친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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