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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볼프강 카이저 지음, 이지혜 옮김 / 아모르문디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현대의 다양한 예술분야를 접하다 보면 '그로테스크(grotesque)'라는 용어와 심심치 않게 마주치게 된다. 그런데 그로테스크하다는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정도 특성을 파악할 수 있어도 막상 느낀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할라치면 조금 난감해지는 게 사실이다. 비록 사전은 '그로테스크'에 대해 '터무니 없는', '기괴한'이라 정의하고 있지만 그로테스크한 작품들을 감상한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정의 역시 충분치 못함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반갑게도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는 그로테스크의 발생에서부터 현대적 의미로의 정착까지 수세기에 걸친 성장 과정을 미술과 문학 작품 속에서 추적하고, 이를 통해 그로테스크가 내포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포착해 그 의미를 구체화해 나가고 있다.
이 책의 목적은 다소 어렴풋하게나마 이어져 온 용어의 역사에 기대어 그로테스크가 과연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p.26)
그로테스크는 15세기말 이탈리아 곳곳에서 발굴된 고대 장식미술을 지칭하던 용어로 이탈리아어 '그로타(grotta, 동굴)'에서 유래했다. 당시 바사리(Vasari)를 위시한 여러 비평가들은 자연의 원리에 어긋난 이 장식물들에 대해 혹평을 했지만 예술가들의 새로움을 향한 의지를 제어할 수 없었으며 이후에도 혹평과 예찬의 대결구조를 유지하면서 어엿한 예술 양식의 하나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로테스크의 기원에서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것이 아름답고 화려한 아라베스크와 뚜렷히 구분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각자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때로는 모호하게 동일한 양식인 것처럼 간주되다가 18세기에 이르러서야 독립된 양식으로 정착되었는데 이즈음 그로테스크를 미학의 범주로 포함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처럼 역사속에서의 그로테스크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그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으며 과격한 것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변화의 과정을 거치며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다듬어졌다.
그로테스크가 미학적 대상으로 탐색되었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고급 예술로 여겨졌던 것은 아니다. 자연을 닮은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15~18세기 사람들, 이후 19세기 헤겔에게는 반인반수나 동물에서 식물로 변이되는 기이한 이미지들이 저급한 예술적 유희로 비춰졌을 법도 하다. 더욱이 그로테스크는 한때 섬뜩함 보다는 '우스꽝스러운'의 뉘앙스를 주는 의미로 사용된 적도 있으며 미학의 범주로 고려된 배경에도 캐리커처의 활성화에 힘입은 바 있어 호응도와 위상에는 큰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그로테스크가 유럽 각국으로 전파되면서 발생한 미세한 사전적 의미와 연극(특히 질풍노도 드라마라 불리는 것)이나 기타 예술영역을 통해 대중과 친숙했던 그로테스크의 일면을 상세히 언급해 나간다. 뿐만아니라 여기서는 저자의 견해와 더불어 다른 학자들의 견해도 함께 들을 수 있어 그로테스크에 대한 지식의 기본을 갖추는데는 더없이 훌륭한 저술이다.
그로테스크는 미술분야의 라파엘로를 필두로 악마숭배주의의 보스, 보스에게서 영향을 받은 브뤼헐 등의 화가들을 거쳐 현대의 데 키리코, 달리 등에 이르기까지 이어져왔고, 문학에서는 괴테, 위고, 포우, 호프만, 뷔히너, 카프카, 토마스 만 등 이른바 대 문호들을 통해 그 맥을 이어왔다. 이렇게 예술의 거장들이 그로테스크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데에는 인간의 힘(상상력)만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려는 욕망이 담겨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16세기 그로테스크를 지칭하던 또 다른 이름이 '화가의 꿈(sogni dei pitton)'인 것을 보면 신이 창조한 자연의 질서를 벗어나 기괴한 이종교배를 시도하고 꿈같은 비현실적 공간을 추구하는 주체가 '화가', 더 나아가서는 인간임이 뚜렷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저자인 볼프강 카이저는 그로테스크의 창작이 "현세에 깃들어 있는 악마적인 무언가를 불러내어 그것을 정복하는 일"(p.309)이라고 정의하고 그로테스크가 공포와 동시에 은밀한 해방감을 맛보게 해준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악마적인 것을 극복하겠다는 용기는 가상하지만 인간의 창조가 삶의 공포에서도 비롯될 수 있다는 서글픈 측면도 발견된다.
공포로 가득한 인간 내면의 모습은 볼프강 카이저가 설명하는 다양한 문학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에는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상 미술분야는 그로테스크의 태동기와 개념의 확장 부분에 집중적으로 언급되며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낭만주의 시대부터는 문학 및 연극 작품들, 그리고 미학이론들을 위주로 하고 미술은 간헐적으로 등장한다. 또한 저자가 문학비평가인 덕에 각 문학작품은 그로테스크의 측면에서 상세히 분석되어지는데 이를 통해 그로테스크 개념의 구체화뿐만 아니라 작품 속에 담긴 인간 본성에 대해서도 심도있는 해설을 들을 수 있어 유익하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만한 작품은 모든 종류의 그로테스크를 작품세계에 담았다는 그로테스크의 대가, 호프만의 작품과 뷔히너의 <보이첵>이다. 특히 뷔히너의 <보이첵>은 그로테스크의 전성기인 낭만주의 시대의 작품으로 현대문학(희곡)과 비교해 손색이 없는 세련미와 비상함을 갖췄는데, 단순히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문학적으로 (외양)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구조, 인물의 성격과 심리에 활용하고 있어 조금은 난해하겠지만(작품 '전체'를 읽으면 난해하다) 저자의 발췌부분만 읽는다면 크게 어려움이 없을 것이며 그로테스크 문학의 백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로테스크는 그 안에 내포된 다양한 요소들이 역사 속에서 축소 또는 확장되는 가운데 유동적으로 존재해 왔지만 이 용어를 하나의 단어로 귀결시키는 것은 합당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현재 대중문화에까지 파고든 그로테스크의 위세를 보면 이것이 또 어떤 의미로 변형되어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통해 그로테스크의 근원과 본질을 이해하고 여기에 반영된 인간의 본성을 파악한다면 향후 미적 체험이 더 깊어지는 것을 느끼리라 확신한다.
그로테스크에 관한 한 매우 밀도 있는 책이었고, 예술가들에게 지적 호기심과 영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소중한 자료들이었다.
- 종교적 색채가 보이는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천년왕국>, 창백하고 영혼이 마취된듯한 느낌이다(좌)
- 그로테스크가 장식미술로 태동할 시기의 작품, 성당의 벽화이다, 루카 시뇨렐리의 <엠페도 클레스>(중상좌)
- 장식미술에서 좀 더 발달한 일명 만곡 그로테스크(중상우)
- 인상파풍으로 그려진 제임스 앙소르의 <음모>, 색채는 밝고 화려하만 우스꽝스러움과 사악함이 결합해 묘연하다(중하)
- 마리오네뜨(꼭둑각시)를 연상시키는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불타는 기린>(우)
* 상기 이미지는 본 도서에서 전체 혹은 부분 발췌하여 재조합하였으므로 원본과는 구성과 사이즈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