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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속의 영화 - 영화 이론 선집 현대의 지성 136
이윤영 엮음.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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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분야가 탄생할 때의 치열함이란 후대인들에게는 조금 당혹스럽고 낯설게 느껴지기 마련인가보다. 공교롭게도 나는 <사유속의 영화>를 읽기 전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를 읽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최초로 사진이 예술성을 인정받아 원화 대(對) 복제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건이 등장한다. 하지만 당시 논쟁의 대상이었던 그 사진을 오늘날의 관점으로 본다면 별로 예술작품 같지가 않다. 또한 원화의 작가가 승소한 까닭도 인물의 포즈를 연출하고, 조명을 적절히 계획했다는 정도의 지극히 당연한(?) 사유이다. 이 사진이 비록 스냅사진의 수준은 아닐지라도 딱히 전시회에 걸릴만한 예술 사진 역시 아닌 듯했다. 그렇지만 사진이 예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에게 사소하고 당연한 그 사실들이 철저히 주장되고 규명되어야 했다. 이것은 기계를 통해 인간의 혼을 불어넣는 예술의 운명이었던 것 같다.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를 예술로 탄생시키고 독립된 한 분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소하고 자명할지도 모르는 수많은 것들이 분석되고 탐구되어 어떠한 의미로서 사람들의 인식속에 자리잡혀야 했다. <사유속의 영화>는 바로 그러한 산고의 과정들을 담고 있다.

영화만의 독자적이고 특수한 가능성은 공간의 역동화 그리고 결과적으로 시간의 공간화란 개념으로 규정될 수 있다. 이 진술은 사소하게 보일 정도로 자명한 것이지만, 이렇게 사소하기 때문에 쉽게 잊혀지고 무시되는 종류의 진실에 속한다. (p.78)

파노프스키는 이렇게 이야기하며 정지된 공간의 연극과 영화를 비교하지만 어떤 이는 사진을, 어떤 이는 라디오극을, 또 다른 이는 회화, 언어학 등을 들어 쉽게 잊혀지고 무시되는 영화의 진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찌보면 신생예술로서의 영화는 비교될 수 있는 모든 기존 예술들과의 차이점을 규명해 나가며 기계복제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극복해 가는 것이 탄생의 과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예술계의 총아로 떠오르고, 다른 분야들이 수세기를 걸쳐 쌓아온 예술이라는 명성을 최단 기간에 획득할 수있었던 것은 아마도 영화가 가지고 있는 대중성, 혹은 대중에게 미칠 수 있는 기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록 그것이 상업성이라는 또다른 공격요소가 된다 할지라도.

영화의 출발은 무성영화로, 사건을 있는 그대로 녹화하며 시작되었다. 그래서인지 초반부의 내용들은 기계로 녹화한 이미지가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설명들이 주를 이루며 1929년 에이젠슈테인이 몽타주에 생명을 불어넣는 <영화의 원리와 표의문자>가 첫 글로 등장한다. 그는 샷이 벽돌처럼 쌓여있는 몽타주의 요소가 아니라 서로 충돌하여 추진력을 일으키는 세포라고 정의하는데, 일본 가부키 극에서 나타나는 영화적 몽타주 기법을 찾아 영화의 예술적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이어 아른하임은 영화와 사진과 현실에서의 이미지를 비교하며 영화 이미지의 특성과 이를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감각에 대해 매우 치밀하면서도 과학적인 이론을 펼쳐나간다. 그가 분석해낸 시각과 인식의 미묘한 차이를 통해 영화는 영화만의 공간적 특성을 확립하며 이에 반응하는 관객과의 공간적 교감에 대해 보다 견고한 의미를 얻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의 후반부로 가면서 영화에 대한 논의는 좀 더 다양해진다. 영화에서의 시공간의 문제, 언어학적 분석과 서사성, 영화와 이데올로기 등이 종종 거론되며, 장-프랑수아 리오타르의 <반(反)영화>에 가서는 라캉의 거울이론으로 영화 스크린을 설명하는, 그래서 보다 리비도에 충실한 새로운 영화를 옹호하는 기류가 나타난다. 드디어 영화 자체 내에서 또 다른 성장(혹은 전복)이 이루어지는 사유가 시작되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사유속의 영화>에 등장하는 논문들은 영화의 예술성, 영화의 영화다움을 설명하며 기계복제의 작품들 속에 인간의 온정을 불어넣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생각해 볼 때, 오늘날 이 논문들이 가지는 가치는 어떤 학문적 설명을 통해 그것(영화의 예술성)을 증명해 냈다는 사실 보다는 향후 영화와 대중과의 관계,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의 갈등에 대해 조명해 보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발터 벤야민도 일찌기 말했지만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기계복제는 예술작품을 제의(祭儀, ritual)에 기생하는 존재에서 해방시킨 것'(p.110)이라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소수의 전유물이였던 예술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계복제 예술 영화.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탐색해야 할 영화의 무한한 가능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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