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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문학에 취하다 - 문학작품으로 본 옛 그림 감상법
고연희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1월
평점 :
요즘들어 난생 처음으로 인터넷 연재소설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최신 트렌드인지 아니면 유명 소설가의 작품이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읽는 연재 소설에는 뜻밖에도 상당한 수준의 일러스트가 삽입되어 있는데, 그림이 어찌나 인상적이면서도 해당 회의 분위기를 적절히 묘사하고 있는지 글 읽는 재미 이상으로 그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러스트 특유의 스타일(그림체)로 주인공의 외모에 선입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림으로 표현된 분위기나 상황 해석이 너무나 인상적이라 오히려 작가와 독자 사이의 교감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그림이 글에 묘사된 이야기 이상의 것을 더할때는 올바른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까?'. 우연히 읽게 된 인터넷 연재소설로 인해 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림, 문학에 취하다>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단순히 시(詩) 한 수 곁들여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그림과 마주하려던 이 책에서 '옛 그림 속에 깃든 문학성, 이것이 '문제'다'라는 문구를 본 순간 어떤 '경지'에 오른 옛 선조들은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갔을까에 온통 관심이 모아지면서 은근히 책을 통한 해답도 기대하게 되었다.
책 속에 소개된 작품들을 그림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우리에게 친숙한 김정희의 <세한도>, 안견의 <몽유도원도>, 전기의 <귀거래도> 를 비롯 김이혁, 김홍도, 김득신, 이인문, 윤제홍 등 19세기초 빼어난 화가들이 함께 참여한 12폭 병풍 <고산구곡시화병>과 같은 대작, 그리고 그 밖에도 기행문을 표현한 <만폭동도>, 유교의 가르침을 담은 <누백포호>, 유일한 민화에 해당하는 <구운몽도>까지 다양한 문학의 장르와 조우하는 그림들이 담겨있다.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문학과 그림과의 만남이 일대일 대응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문학에서도 아름답고 심오한 구절들은 시대를 따라 다른 작품 속에서도 되풀이 되는 경향이 있으며, 비록 그림이 한 편의 글을 택했다 할지라도 이와 관련된 다른 문학작품들을 함께 읽어나가다 보면 그림과 문학이 서로 경쟁하듯 하나의 경지를 향해 달음질쳐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하나의 문학 작품에 대해서도 여러 화가들이 묘사를 시도해 각각의 기교와 개성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웠는데, 비평가들에 따라 견해에 차이는 있겠지만 문학의 절정을 이미지의 절정으로 가장 잘 표현한 그림이 최고의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역시 두 가지 예술이 추구하는 지향점은 동일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래서 짧은 식견으로 결론지어 보건대, 미술이 문학을 취해 그를 좇는다기 보다는 문학과 미술은 궁극의 이상을 향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함께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북의 <공산무인도>와 소식의 <십팔대아라한송>의 구절 '공산무인 수류화개(빈산에 사람 없고, 물 흐르고 꽃이 피네)'은 문학과 그림이 추구한 특별한 정신적 경지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소식의 <십팔대아라한송>은 부처의 덕을 기리는 게송(찬양가)으로 여기서 시적인 극치라 칭송받는 '공산무인 수류화개'는 깨달음 후에 다시 보는 산수와 자아와의 물아합일이 표현된 구절이다. 최북은 이 깨달음의 경지를 축자적인 이미지에 일치하도록 충실하게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가슴이 탁 풀리는 오묘한 기운 마저 담고 있어 그의 평생 득의작 중 하나라 불러도 좋을 만큼 귀하고 아름답다. 한편 강세황의 <괴석>은 육우의 시(詩)를 원작 이상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사실 육우의 시에서 비롯된 <수석유화>라는 그림은 여러 점이 있고 강세황 또한 <수석유화>를 그리기도 했지만 묘하게도 단순히 <괴석>이라 이름붙인(그러나 <수석유화와 동일한 소재인) 이 그림은 당시 꽃을 그리는 코드를 벗어나 색채 없는 국화를 탄생시키면서까지 은자의 미덕을 표현하고 있어 가히 화가의 품성과 발상이 문학을 넘어섰다 이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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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히는 김홍도의 <추성부도>는 중국의 문인 구양수의 <추성부(가을소리)>를 묘사한 그림이다. <추성부도>는 스산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어딘지 모르게 사람을 압도하는 매력이 있어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는 작품이었는데, 아마도 이 그림에 대한 특별한 감동은 스러져갈듯 종이를 스치는 붓결과 붓결이 사라진 싸늘한 여백에서 진정 바람소리가 느껴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저자는 소리를 글로 묘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며 그 소리를 그림으로 묘사한다는 것은 더더욱 난이도가 높은 일이라 말하면서 <추성부도>의 경우도 글이 없었다면 쉽게 가을바람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표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은 소리를 표현한 여타 그림 중에서 최고였다.
- <추성부도>의 좌측 반에 해당하는 일부(상)
- 뭉크의 <절규>와 <추성부도>의 우측 부분의 세부도(하)
이 책에 소개된 많은 그림들이 대부분 시(詩)를 취하고 있는데 비해 정선의 <만폭동도>와 윤제홍의 <한라산도>는 기행문을 취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그 중에서도 윤제홍의 <한라산도>는 그림의 주변에 병풍을 두른 것처럼 빼곡히 글씨를 채워놓은 점이 눈에 뜨이는데, 사실 정철의 <관동별곡>을 묘사한 <만폭동도>에 비해 명성이나 지명도에 뒤질지는 모르겠지만 당시로서는 가보기 어려운 한라산을 최대한 상세히 묘사하려는 정성은 독특한 표현방식과 함께 어우러져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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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행실도> 중 <누백포호(누백이 호랑이를 잡다)>의 판화도는 백성들의 도덕적 교화를 목적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문학과 그림의 만남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그리고 글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방식에서도 가장 고전적이고 기본적인 단계의 방식을 취하고 있어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 역시 문학이 그림과 만나는 다양한 범주에 속하므로 이 책에서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는 점이 무척 반가왔다. 우측 하단으로부터 지그재그로 올라가며 읽어야 하는 이 그림은 시간의 경과 묘사가 오늘날의 관점과 다른 것이 인상깊었으며 그 당시 패륜문화가 만연하고 있었다는 것도 비추어 짐작할 수 있다.
<그림, 문학에 취하다>는 문학을 표현한 그림을 통해 옛 그림을 감상하는 안목에 깊이를 더해줄 뿐만 아니라 문학작품을 한 편 한 편 실제로 읽어나감을 통해 관련된 종교, 사상, 문화, 풍속 등 다양한 범위의 지식을 접하고 이를 통해 오히려 그림의 감동을 더 진하게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사실 그동안 옛 그림 속의 문장들은 읽는다기 보다는 그림의 일부로서 서체와 기교에 관한 평이 더 부각되어 언급되곤 했는데, 이제 그 문장들을 유심히 읽어보고 그림을 바라보니 저자의 말대로 문학 작품을 읽고 그림의 '안'으로 들어가 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어 무척 즐거웠다. 더불어 문학을 취했던 선조들의 그림처럼 텍스트를 취하는 우리의 이미지에도 궁극을 향한 선의의 도전이 계속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