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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슈미트의 이상한 대중문화 읽기 - 당신을 속여왔던 대중문화 속 주인공들의 엉큼한 비밀, 개정판
마크 슈미트 지음, 김지양 옮김 / 인간희극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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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대중문화 안에서 그것을 향유하고 누릴 때 무엇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이는 문화의 소비자로서 영화나 뮤지컬을 관람하고 가요를 따라 부르는 동안 의식이 즐거움에 몰입되고, 어느덧 즐기는 행위로부터 기인한 주체라는 느낌에 사로잡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80년대의 3S(Screen, Sport, Sex)정책을 돌이켜 본다면 대중문화란 우리 손 안에 있는 무엇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에 무언의 압력과 왜곡을 가할 수 있는 큰 힘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대중문화가 범람하고 있는 요즘 시대에는 이를 즐기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때로 대중문화 밖에 서서 내가 속해있던 풍경의 전체 그림을 파악하는 현명함도 필요하게 되었다.

<마크 슈미트의 이상한 대중문화 읽기>라는 작은 책은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이나 해석에 관한 다양한 책들 중 단연 눈에 들어오는 책이었다. 그 이유를 꼽아보자면, 먼저 유년시절의 향수가 배어있는 스머프가 도마위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마르크스의 모습을 하고 있는 파파스머프가 표지에 나서있다니, 어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을까! 두번째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독서가 장정일이 자신의 독서일기에서 이 책을 호평했으며, 그의 독서일기에 소개된 책들 중 드물게 절판되지 않은 책이라는 점이다. 세번째는 호주인인 저자가 우리나라에 장기간 머물며 영어학원 강사를 했던 이력과 우리나라의 영화를 보고 남북관계에 대해 논한 글이 한 꼭지 들어있다는 점이다. 과연 우리나라에 꽤 익숙한 외국인에게 남북관계가 어떻게 비칠지 사뭇 궁금했다.

저자는 <개구장이 스머프>에서 드러나는 사회주의 사상과 페미니즘, 동성애에 대한 글로 네티즌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그것을 계기로 이 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스머프 마을은 사회주의에서 이상적으로 꿈꾸는 공동체 코뮌(commune)의 전형이며, 자급자족, 토지의 공동 소유, 폐쇄적 경제 및 직업의 평등성을 모두 반영하고 있었다. 그저 사이좋게 산딸기를 따며 평화롭게 살고 있다 생각했던 스머프 마을에 이런 원리가 숨겨져 있다니! 이에 더해 스머프 개개인에 담긴 의미를 풀어나간 시각도 매우 흥미롭다. 특히 가슴이 밋밋한 체형의 스머페트는 가부장적 질서에 의한 사회적 표준으로 여성을 통제하려는 사고방식을 나타낸다는 점과 늘 거울만 보는 허영이뿐만 아니라 덩치, 편리 또한 동성애를 표현한 것이라는 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가가멜은 고집스럽게 욕구에만 몰두하는 자본가를, 구박을 받으면서도 가가멜에게 충성을 다하는 어리숙한 아즈라엘은 자유 시장 체제의 노동자를 나타낸다는 점도 상당히 신선한 관점이었다.

스머프 마을을 이색적으로 바라보던 방식은 슈퍼맨과 개인주의, 사우스파크와 동성애 혐오, 해리포터와 운명 대 유전자의 축, 섹스앤더시티와 요리 등에서도 여지없이 이어져 간다. 물론, 동성애나 페미니즘과 같이 평이한 해석도 종종 등장하지만 우리 사회의 관심사와 기저에 존재하는 의식들을 과감하게 짚어내는 솜씨는 비록 이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감탄할만한 수준이다.

저자의 세밀하고 날카로운 분석은 '한국 영화와 햇볕정책'편에도 잘 드러난다. 그는 우리 영화가 조폭을 의리있고 친숙한 인물로 묘사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고 지적하며 한국영화에서의 조폭은 북한을 은유하는 것으로 읽어내고 있다. 따라서 햇볕정책의 흥망과 조폭 영화의 쇠락이 함께 움직였다는 그의 주장은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 봤을 때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편, <쉬리>, <친구>, <태극기를 휘날리며>를 중심으로 외국인(비록 저자가 한국 장기체류자임에도)에게 비춰진 남북관계를 엿볼 수 있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보다 더 높은 벽, 더 깊은 골을 느끼는 것 같아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대중문화에는 우리의 사고방식, 생활양식을 비롯 다양한 가치관과 사회의 일면들이 담겨있는 보고와도 같다.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로부터 나오며, 어떤 것은 증폭되고 어떤 것은 왜곡되기는 가운데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중문화의 힘이 점점 더 커져가는 현실 속에서 그대로 이끌려가지 않고 진정한 대중문화의 주체가 되려면 어느정도 출입이 자유로운 외부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외부인으로서 과감한 시도를 선보인 이 책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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