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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극과 극 - 카피라이터 최현주의 상상충전 사진 읽기
최현주 지음 / 학고재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영화 <트레인 스포팅>을 보면 주인공이 '아일랜드에서 가장 더러운 화장실'을 통해 가장 고결한 세계를 체험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오물이 잔뜩 쌓인 변기 속으로 자신의 몸을 구겨 들어간 그는 결국 오물층 이편에 있는 맑고 푸른 물과 맞닿았는데, 최악의 더러움 직후 만나는 최선의 순수함은 묘한 카타르시스 그 자체였다. 함께 영화를 봤던 이가 이렇게 말했다.  

"극과 극은 통한다."

그때 그의 말이 꽤나 인상 깊었던지 극과 극에 대한 상념은 후일에도 어떤 사건이나 이미지를 통해 간혹 떠오르게 되었고, <사진의 극과 극>을 읽으면서도 이 습관은 여지없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의 극과 극은 영화에서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 영화에서의 극과 극이 어떤 한계를 넘었을 때 만나게 되는 통함이라면 여기서의 극과 극은 상반된 주제의 두 이미지가 서로 교류하는 공유로서의 통함이다. 예를 들어 흐름과 멈춤의 비교에서 소개된 천경우의 <VERSUS #4>(좌)와 이일우의 <Lamb/박제의 초상 시리즈>(우)를 비교해 보면, 장시간 노출과 아웃포커스로 교차된 두 사람의 흔들림을 숨죽여 담은 <VERSUS #4>는 흐름을 표현한 것이지만 너무도 끈끈한 흐름 때문에 멈춤의 요소가 느껴지고, 박제된 양의 상반신이 빛으로 부각된 채 주변은 암흑으로 처리한 <Lamb/박제의 초상 시리즈>의 경우 멈춤을 표현한 것이지만 오히려 영원을 떠올리게 하며 흐름의 요소가 느껴진다.

그렇다면 어째서 극과 극의 이미지에서 서로 공유되는 요소들이 발견되는 것일까? 만일 그 이유를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에게 구한다면 그는 '존재는 다양체이기 때문'이라 답할 것이다. 들뢰즈에 관한 한 입문서를 보면 이 다양체를 음악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어떤 음이건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배음과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이는 우리가 '도'를 듣는다 해도 '도'와 더불어 그 속의 배음까지 듣고 있음을 의미하며 실제로 피아노 건반의 '도'를 누른 상태로 '솔'을 누른다면 잠시 후 두 소리가 겹쳐져 같은 소리로 들리는 현상을 체험할 수 있다. 이미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침묵을 이미지로 표현한다 해도 침묵 이외의 다양한 느낌들이 함께 존재하며, 같은 침묵 내에서 조차 아늑한 침묵, 굳건한 침묵, 더 나아가 반대 속성인 외치는 침묵까지 선택될 수 있는 무한한 특성들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극과 극의 이미지를 바라보며 그 안에 담긴 무수한 느낌들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과정은 우리의 지성과 감성을 확장시키고 세상의 절대적 가치가 부여한 낡은 틀의 외부로 걸어나가는 새로운 모험의 기회로 다가온다.

일찍이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사진가들은 전통적인 촬영기법을 넘어 장면의 연출, 독특한 인화과정, 디지털의 사용 등과 같이 이미지의 숨겨진 속성을 드러내는 실험들을 꾸준히 진행해왔으며, 여기에 풍자, 역설, 폭로와 같은 도발적인 시선을 담아 기존 세상에 대한 무수한 질문들을 불러내 왔다. <사진의 극과 극>에 소개된 사진들 역시 끊임없이 질문들을 생성시키는 가운데 상반된 주제의 이미지가 서로 답하기도 하고, 제 3의 질문이나 감흥이 보충되기도 하면서 절대세상 이면의 가치를 탐닉케하는 풍부한 재료들을 제공한다. 이 책에서 사진가 주도양과 김정연의 작품을 통해 좀 더 설명해 보면, 주도양의 <Root 2>(좌)는 사물을 360도로 나누어 촬영한 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조합해 곤충의 눈을 모방하고, 김정연의 <romantic Package>(우)는 고공에서 저해상도로 디지털 촬영을 한 후 모자이크 처리를 하여 새의 눈을 상징한다. 그런데 가장 낮은 곳에서 본 곤충의 눈이나 가장 높은 곳에서 본 새의 눈에서 인간의 이기심이나 우월감에 대한 비판이 엿보인다. 인간 없는 세상을 360도의 완전 무결한 시각으로 둘러본 곤충과 인간 가득한 세상을 희미한 픽셀로 감지하며 그들의 개성을 무시하는 새는 이렇게 서로 공모하는 가운데 '인본주의'에 대한 우리의 절대 가치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것이다.

<사진의 극과 극>은 그동안 단일한 주제 안에서 사진과 일대일로 대면해왔던 관찰자들에게 새로운 사진읽기의 방법을 제시한 점에서 매우 신선했다. 또한 하나의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한 수작(秀作)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니 관찰자는 더욱 귀기울여 들을 수 밖에 없었고, 두 이미지들이 예기치 못한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까닭에 감동 또한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더해 저자가 들려주는 단상들과 인용된 사진가들의 작품 설명은 이미지들의 대화에 동참하는데 편안한 통로가 되었으며, 궁극적으로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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