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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역사다 - 한국 영화로 탐험하는 근현대사
강성률 지음 / 살림터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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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역사를 담아두기에 매우 안전하면서도 위험한, 그리고 은밀한 장소이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기록하여 남길 수 있기에 안전하며, 시대에 따른 풍경과 문화, 의식을 그대로 반영해 후세에 생생히 전달할 수 있기에 안전하다. 그러면서도 위험한 까닭은 왜곡이 쉽다는 것이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제작되거나 통제가 따를 때, 혹은 만든이의 치우친 견해로 사실이 타격을 받을 때 역사는 영화속에서 해야할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의미없는 이미지들만 남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전면적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역사적 인식을 스토리 안에 표출할 수 있다. 쉽게말해 <동물농장>이나 <걸리버 여행기>같은 소설처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의 상황과 논점을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영화의 이러한 특성을 짚어보는 이유는 영화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막대한 까닭이다. 다른 장르의 예술에서도 동일하게 역사를 다루지만 관객이 몇 백만이나 되는 영화에 비하면 그 파급효과가 미치지 못하니, 가장 대중적 장르인 영화에서 역사를 바로 그려내지 못한다면 관객들은 은연중에 우리의 과거를 왜곡해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영화는 역사다>는 바로 이런 상황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영화에서의 과거와 현재 간의 소통 문제를 면밀히 다루고 있다. 그리고 역사를 재해석해 온 우리 영화의 발전사를 살펴가며 관객들이 영화에서 역사적 진실을 만나는 과정이 얼마나 힘겹게 진행되어왔는지 고스란히 들려준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분단과 한국 전쟁을 그린 영화들'을 보면, 철저한 반공영화에서 북한군을 적대시하는 경향의 영화를 거쳐 북한군을 인간적으로 묘사한 <공동 경비구역 JSA>가 탄생하기까지 종전(終戰) 후 무려 50여년이나 걸렸음을 볼 수 있다. 또한 베트남전 영화에 있어서도 반공영화의 일환에서 멜로영화 수준에 그치지 못했던 것이 최근 <알 포인트>에 이르러 미국 용병으로서의 우리 위치를 본격화한다. 이처럼 한국 영화사 100년은 식민지와 한국전쟁, 군사정권, 민주화 항쟁 등 수많은 질곡의 시간을 건너왔기에 권력의 통제 안에 오래도록 남아있다가 불과 10년전부터 위축된 날개를 펴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간의 통제에 반작용인 듯 한국 영화계에서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던 영화는 대부분 분단과 한국전쟁을 다루고 있다. 영화 매니아가 아닌 내게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영화들이 친숙했던 까닭도 내가 영화를 많이 보아서가 아니라 흥행의 물결에 함께했기 때문이다. 문화연구가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에 따르면 이런 상황을 '민족적 알레고리(national allegory, 풍유)'라고 하는데, 민족이 집단적으로 가지고 있는 역사적 경험이 문화적 텍스트를 통해 알레고리로 드러난다(p.109)는 의미이다. 즉,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소재이기에 <쉬리>가 <타이타닉>의 관객수를 앞지르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비춰볼 때 조금은 조바심이 생긴다. 전쟁과 이념 갈등을 절감했던 세대들이 주류를 떠나기 전에 더 분주히 이에 대한 재조명이 시도되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정립해야 할 역사적 관점들을 함께 나눴으면 하는 바램에서이다.

한편 관객 동원에 있어서는 크게 성과를 올리지 못했음에도 다양한 역사적 사건을 영화속에 그려내려는 노력은 그 흔적을 뚜렷이 남겨왔다. 이 영화들은 4.3항쟁, 조총련, 비전향 장기수 등과 같이 보다 소수의 입장을 다뤘지만 전쟁과 분단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왔고, 때론 희생자들의 문제를 고발하면서 우리 사회에 의미있는 메시지 역할을 했다. 역사 영화를 집중적으로 탐구해 온 저자는 더 다양한 역사 영화들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일반 관객에 불과한 나로서는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해도 이 책에 등장한 역사 영화의 다양성에 내심 놀랐다.

저자는 특정 주제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영화적으로 재현되었는가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서술되면서도 주제가 뚜렷하게 부각되어 있어 전반적인 연대사에 통사를 겸비해 읽은 것같은 느낌이 든다. 또한 주관적 예술론이 아닌 사실적 기술을 바탕으로 했기에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바라볼 수 있어 좋았고, 소개된 영화들도 친숙한 것들이 많아 읽는데 공감이 더욱 컷다. 처음에는 막연히 영화를 가미한 역사 이야기일거라 짐작했었는데, 읽어보니 (예상을 깨고) 역사 영화와 그에 담긴 관점에 주목하고 있어 사뭇 진지해졌고 덕분에 관객으로서의 시선을 재정비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매우 흡족하다. 우리 역사에 대해서라면 영화인의 책임도 중요하겠지만 관객으로서의 책임 또한 중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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