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자음과모음 2024.겨울 - 63호
자음과모음 편집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정한 네트워크 : 문학, 연결, 그리고 '동료'

─『자음과모음』(2024 겨울 63호)을 읽고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폴란드 출신의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가능한 한 폭넓게 이해된다는 점에서 문학은 본질적으로 '네트워크'와 유사하다"라고 말했다. 문학을 통해 비로소 "하나의 존재를 구성하는 모든 개체 사이에 광범위한 교감과 연결"이 이루어진다고 본 것이다. 그의 문장을 보고 감명한 나는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을 기념해 기조 강연한 글을 찾아 읽었다. 거기서 그는 문학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문학이란 우리와 다른 모든 개별적 존재에 대한 다정함에 근거합니다. 이것이 바로 소설의 기본적인 심리학적 메커니즘입니다. 다정함이라는 이 놀라운 도구, 인간의 가장 정교한 소통 방식 덕분에 우리의 다양한 체험들이 시간을 여행하여 아직 태어나지 않은 누군가에게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언젠가 그들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의 세상에 대해서 기록하고 이야기 한 것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올가 토카르추크, 최성은 역, 『다정한 서술자』, 민음사, 2022, 364쪽.

계간『자음과모음』2024 겨울호(63호)를 리뷰하면서 올가 토카르추크의 문장을 인용한 이유는 이번 호의 크리티카가 다름 아닌 '동료'이기 때문이다. 김영찬, 최가은, 이여로 평론가는 비평에서 문학적 동료-되기/맺기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사유한다. 우지안 연출가는 '동료'라는 단어의 깃든 보다 사실적인 감정을 톺아보며, 끝으로 김영희 교사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동료들의 유대관계를 문학과 연결지어 풀어낸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한강 작가는 한림원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자신의 수상 소식이 "한국 문학 독자들과 동료 작가들에게도 좋은 일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노벨문학상 수상 직전 진행된 인터뷰에서 한강 작가가 최근 읽었다고 말한 작품은 김애란의『이중 하나는 거짓말』과 조해진의 『빛과 멜로디』였다. 두 작품 모두 올해 하반기 출간된 신작이다.)

이에 힘입어 계간『자음과모음』2024 겨울호(63호)의 [특별기고] 코너에서는 이택광 평론가와 이영일 번역가, 김유태 기자가 한강의 작품들과 한국문학의 현재를 연결해 살펴본다.

또한 [메타비평] 코너에서는 성현아, 오혜진, 한설 평론가의 예리하고 치밀한 평론을 확인해 볼 수 있으며, 이어지는 [시], [단편소설], [장편소설], [에서이] 코너에서는 한국문학장에서 뛰어난 성취를 보여주고 있는 여러 작가들의 신작도 만나볼 수 있다. 그중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읽은 시 한 편을 여기 남겨둔다.

우리가 마음을 말할 때

물에 떠 있는 새들이 무리를 지어 덤불 부근으로 움직일 때

질척이는 진흙 바닥에 애벌레와 지렁이가 몸을 숨길 때

부모와 아기 새가 부리로 깃털을 빗어 기름을 바를 때

얼룩덜룩한 깃털이 저녁 빛에 잠겨들어 눈에 띄지 않게 될 때

우리를 향해 윙크하는 오리 한 마리를 당신이 가리킬 때

마음에 잔잔한 물결이 일어 우리는

자기가 간직한 첫 기억을 꺼내 들려준다

동생이 태어난 날 이모 등에 업혀 낮잠을 잔 날

굴뚝 옆 공터에서 흙 밥을 지어 놀이한 날

상여가 놓인 마당에서 자갈을 가지고 논 날

너무 어려 이마에 링거주사를 맞은 날

징검다리를 건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린 날

페치카에 장작을 넣고 불을 피운 날

아빠가 지은 새 집에서 가족사진을 처음 찍은 날

그 모든 날이 우리의 마음에 깃들어 쉴 때

당신은 오리 한 마리를 지나

어둠을 지나 이 산책을 계속하기로 한다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에도 작은 감탄을 뱉으면서

남지은, 「우리가 마음을 말할 때」

* 마지막으로 이번 호에서는 <제12회 자음과모음 네오픽션상>의 당선작과 심사평, 수상소감을 엿볼 수 있다. 새로운 작가의 탄생과 '다정한 네트워크'의 접속됨을 여실히 기쁘게 생각한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4 제1회 림 문학상 수상작품집
성수진 외 지음 / 열림원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마다의 시선과 저마다의 이야기

─『2024 제1회 림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1. 성수진의 「눈사람들, 눈사람들」

덕분에 살고 싶어졌거든요.

p.19

살고 싶어졌다는 말. 그 말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어쩌면 소설을 읽고 쓰는 일은 이 말을 듣고, 또 들려주기 위함인지도 모르겠다. 떠난다는 것은 '다른 곳으로 옮기다', '지금 있는 곳을 벗어나다'라는 뜻이다. 아주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다. "이곳에서는 떠났지만 어딘가에 도착했을 거"라는 뜻이다. 성수진의 「눈사람들, 눈사람들」은 떠남의 주저함을 삶의 긍정으로 전도한다.


2. 이돌별의 「포도알만큼의 거짓말」

나는 인간에게는 거짓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가릴 거짓.

p. 58

진실이 아닌 거짓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작품. 그러나 진실로 가득한 작품. 그래서 필요한 작품. 이돌별의 「포도알만큼의 거짓말」을 읽고 처음 든 감각은 '매섭다'는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교육 현장을 다루는 이야기가 더 많이, 더 새롭게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작품이 그 시작이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3. 고하나의 「우주 순례」

시선은 다시 풍경으로, 이름을 알 수 없는 바위들을

지나 지평선 너머까지 뻗어 나갈 듯 닿았다.

p. 92

현실과 비현실, 가상과 실재, 진실과 거짓, 이 모든 것들이 고하나의 「우주 순례」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기묘한 장면들이 긴밀하게 연결되며 반복되어서 수상작품집의 폭을 한층 넓힌 작품. 완성도를 떠나 개인적으로는 수상 목록의 SF작품이 있다는 것이 흡족하기도 하다.


4. 이서현의 「얼얼한 밤」

엿을 먹어도 세상을 개판으로 만들 순 없었다.

그 엿 같은 지론은 엿 같은 사람이 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제야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을 개판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p. 121

'단편 소설'이라는 장르의 구조적 짜임새를 가장 잘 갖춘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심사위원이었다면 이 작품이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인물들간의 관계성과 사건 이후의 변화된 지점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섬세하게 잘 포착한 작품. 혀끝에서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처럼 얼얼한 상태로 달콤한 감각을 맛볼 수 있는, 그런 작품.


5. 장진영의 「날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직선으로든 기든 뛰든 구르든 헤엄치든, 아니

너는 날아갈 수 있어.

p. 153

지극히 주관적으로, 좋은 의미에서 제일 '문제작'처럼 보였던 작품. 이제 "너는 날아갈 수 있어."라는 말 너무 좋았다. 그 말이 작품의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것도. (그러고보니 제목은 더 좋은 것 같다.) 내가 가진 상처와 흉터를, 그 안에 새겨진 무수한 시간을 떠올려보게 만드는 작품.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우키스의 말 - 2024 제18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배수아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우키스의 변신과 순간의 오래된 소리

─배수아의 『바우키스의 말』 (제18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제목에서 등장하는 '바우키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남편인 '필레몬'과 각각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캐릭터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바우키스'가 보여주었던 사랑하는 사람과의 작별의 순간을 배수아는 자신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고?

언어가 아닌 음악으로,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현실이 아닌 환상으로,

배수아가 그려낸 작별의 순간을 보면서 나는 그 순간의 오래된 소리를 상상해 보았다.

아득했고,

영원했다.

"그 순간이 다가오자 바우키스의 몸은 나무로 변했습니다. 내 음악은 그 바우키스의 변신의 순간에 그녀의 주변에

일어나고 있던 일들에 귀 기울이기입니다. 그 순간을 이루고 있던 오래된 소리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한번 공명한 소리는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배수아, 『바우키스의 말』(제18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中

바우키스는 작별의 순간 뭐라고 인사를 건넸을까.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나는 몹시 궁금했다.

분명한 건 단 하나. "마침내 나뭇가지가 얼굴을 뒤덮기 시작한 최후의 순간, 일생 동안 내 입에서 살던 하나의 어휘가 해방되었다"는 사실.

나는 '배수아'라는 이름이 한국 문학에서 지니는 독보성에 대해서 늘 경외심을 품고 있었는데, 이번에 「바우키스의 말」을 읽으면서 내 생각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성의 아이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환상과 실재 사이, 그 어딘가

─김성중의 『화성의 아이』를 읽고

생각해보면 대체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인간보다 비인간을 더 좋아했다. 내게 인간은 마음을 써야 하는 존재이고, 비인간은 마음을 주고 싶은 존재이다. 전자는 마음을 고갈시키지만 후자는 마음의 우물을 계속해서 기르게 만든다.

또,

생각해보면 대체로 그랬던 것도 같다. 나는 비인간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이야기 속에서 만난 비인간은 한없이 이상적인, 허무맹랑한 나의 꿈을 실현시켜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느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길 바라는 내 꿈을. 세상 사람들이 타인의 절망과 허무를, 상실로 인한 슬픔과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길 바라는 그런 세상을.

김성중의 장편 소설 『화성의 아이』에는 탐사로봇과 신인류, 유령 개 등 비인간 존재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삼백 년 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미래의 화성에 모여 함께 살아간다.

함께 살아간다는 건 함께 삶에서 오는 사랑과 상처를 공유하며 성장한다는 뜻이다.



김성중의 『화성의 아이』는 환상과 실재 사이, 그 어딘가에서 신비로운 소재를 마구 끌어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허물어트린다.

경계의 벽이 부서지는 그 순간에 우리는 더 큰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사랑과 함께 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우리는 사랑이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 없이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임을,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우물을 기르고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킬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화성의 아이'들이 열렬히도 보여준 자유롭고 신비한 사랑 이야기가 마침내 지구에 도달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닷가의 루시 - 루시 바턴 시리즈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르는 채로 나아가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바닷가의 루시』를 읽고

유난히 길었던 여름을 보내면서 소설 클래스 하나를 신청해 들었다.

강좌명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모르는 채로 나아가기'

생각해보면 항상 그랬던 것 같다. 모르면서도, 모르는 채로 그냥 나아갔던 것 같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만큼만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만큼만 볼 수 있으니까. 모든 것이 다 처음인 현재에서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온전히 '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모두 늘 록다운 상태에 있다는 생각.

단지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저 헤쳐나가려고 애쓸 뿐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바닷가의 루시』, 中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바닷가의 루시』는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져 있었던 팬데믹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의 전작인 『내 이름은 루시 바턴』과 『오, 윌리엄!』에서도 등장했던 '루시 바턴'은 바이러스를 피해 한적한 바닷가 마을로 떠난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것들을 계속해서 마주하는 루시의 삶은 이전과 또 다른 국면으로 흘러간다. 그 시절, 우리 모두가 그러했던 것처럼.



사건은 벌어졌고, 상황은 펼쳐졌다. 소설 속에서 '루시'가 그러했듯이 우리는 여전히 모르지만, 여전히 나아간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19가 퍼지기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고, 이상하고 혼란스러운 일들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혐오와 차별, 분열과 혼란의 시대에서

삶이라는 미지의 세계 속에서

우리가 잊지 말고 계속 소환해내야 하는 것은

서로를 연결시켜 줄 그 무엇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그 무언가가 어쩌면 우리의 기억 속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