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권의 주식 투자 특급 비밀 - 시장을 압도하는
박석호 지음 / 한국경제신문i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 스포일러가 있는 서평입니다. 주의 바랍니다. 원치 않으시면 돌아가기를 눌러주세요.


말문이 막히다

아내는 종종 내게 말한다.
"자긴 물에 빠지면 입만 둥둥 뜰거야."

그렇다. 나는 수다쟁이. 몸의 모든 부위 중에서 특히 입이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러니 아내도 '동동'이 아니라 '둥둥'이라고 표현했으리라. 헌데 이럴 수가 있는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말문이 막혔다. 한동안 아무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아니 왜?


연작안지홍곡지지(燕雀安知鴻鵠之志) : 소인은 대인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

내가 말문이 막힌 건 이 책을 쓴 저자의 마음이 헤아려지지 않아서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린 다음 거기서 수다 거리를 찾아내는 솜씨가 자칭 부인칭 예사롭지 않은 수준인데, 나는 이 책을 쓴 저자의 마음에는 도무지 접근하지 못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오래 전에 잊힌 고사성어를 떠올리게 됐다.

연작안지홍곡지지(燕雀安知鴻鵠之志). '제비나 참새 따위가 어찌 기러기나 고니의 큰 뜻을 알리오'라는 한자로, 통상 소인은 대인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렇다. 이 책을 쓴 작가가 대인이었고, 그래서 나에게는 그 마음이 헤아려지지 않았던 거다.


대인(大人)이란 무엇인가? : 군자 - 본분에 투철한 자

대인과 소인의 구분에 대해서는 동양의 여러 학자들이 후대에 길이 전해질 말을 많이 남겼다. 그중 공자는 다음과 같이 군자와 소인을 구분했다.
"군자는 정의(본분)에 투철하고 소인은 혼자만의 이익에 투철하다."

저자의 군자됨을 설명하려면, 이 책의 후반부의 내용을 인용해야만 한다. 인용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권장 사항은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분은 아래의 서평을 읽지 말고, 아직 이 책을 읽을지 말지 결정하지 않은 분들만 이하의 서평을 읽을 것이다.

어릴 적 저희 집은 가난했습니다. 어떻게든 먹고살고자 아버님은 백방으로 노력하셨지만, 안타깝게도 사업 실패로 이어지며 가세가 더욱 기울었습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저는 공부를 잘했지만, 장남이라는 책임감에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학업을 그만두고 생업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할 자신이 있었지만, 현실은 중학교 중퇴에, 마땅한 기술도 없는 저를 써주는 곳은 많지 않았습니다. 국어 · 영어 · 수학 점수 높다고 취직이 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직업을 찾는 와중에 아버지께서 부산에 있는 세탁소에 일자리를 알아봐주셨습니다. 당시 숙식이 해결되는 직장이 많지 않았는데, 세탁소에서 숙식을 제공해주는 조건으로 월 5만 원의 월급으로 취직을 한 것입니다.

세탁소는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밤 12시를 넘기도록 일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처음엔 어린 나이에 낯선 부산까지 와서 하루 17시간이 넘도록 일을 하니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장남이라 약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어린 마음에 제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이 가슴 아팠습니다. 세탁물을 들고 거리를 지나갈 때 가방을 멘 또래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습니다.
'먹고살 걱정 없이 공부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
공부를 잘했던 저였기에 더욱 공부에 대한 그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가난한 집의 장남이니 학업을 포기하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마음 한편의 의무감이 더욱 컸습니다. 당시엔 나름 제법 큰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중학교 3학년에 불과한 어린 나이였는데 마음 씀씀이가 대견하단 생각이 듭니다.

5만 원의 첫 월급을 받던 날은 지금도 기억합니다. 은행으로 뛰어가 일부를 부모님께 보내드리고, 나머지는 오롯이 적금을 넣었습니다. 세탁소에서 숙식을 하니 큰돈 들어갈 일이 없었고, 설사 사 먹고 싶은 간식이 있어도 참았습니다. 이제 첫 월급이지만 열심히 돈을 모으면 나중에 세탁소를 차릴 수도 있겠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264P)

공부를 잘했기에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은 본인의 이익을 생각한 마음이다.
그리고 가난한 집의 장남이니 학업을 포기하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가족을 책임지려는 장남의 본분을 생각하는 군자의 마음이다.
나는 중학생이 일자리를 찾아 전라북도 정읍에서 낯선 부산으로 넘어 와, 세탁소에서 하루 17시간이 넘도록 일하면서도, 본인의 이익이 아니라 장남의 본분을 더 크게 생각하며, 무려 십육 년 동안이나 묵묵히 그 일을 수행하는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헤아리지 못한다.

군자는 동양 고전에서만 보았을 뿐 현대 우리나라에서 군자의 삶을 살아 온 사람을 만날 것이라곤, 그것도 주식 투자, 가치 투자의 세계에서 만날 것이라곤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말문이 막혔다.


군자가 주식 투자를 만나게 된 사연

1999년, 32살의 나이가 된 저자는 부산에서 서울로 거주지가 바뀌었다. 한 젊은 아주머니 고객과 인연이 이어져, 당시 증권회사 애널리스트였던 그녀의 남편과 연락이 닿는다. 99년 저자는 고향인 전라북도 정읍에 32평 아파트를 장만해서 전세를 놓고 있었는데, 수중에 임차인의 전세자금 2,500만원이 있었다. 애널리스트는 '메디다스' 종목을 매수하라고 추천해주었는데, 한 주에 13만원의 가격이었다. 99년이면 주식으로 세상이 들끓던 시절이다. 저자는 생각한다.

'내 나이 서른두 살에 아직 장가도 못 가고 학력도 변변치 않으니 모험을 해볼까?'
'아니야, 그러다 전 재산 날리면 장가가기 더 힘들어질 텐데···.'
모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잘못되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갈팡질팡합니다. 그러다 '용기도 능력이다'는 생각과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오겠냐'라는 마음에 저질러보기로 했습니다. (269P)

그 당시 술을 마시지도 담배를 피우지도 않고(지금도 술, 담배를 하지 않습니다) ... (268P)

16살때부터 32살까지 연애 한 번 못하고 일만 했습니다. (280P)

주식과 저자의 첫 인연은 다행스럽게도 좋은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꼭 주식이 아니었더라도 저자는 좋은 결과를 맞았을 것이다. 다만 주식이 그 시기를 앞당겨 주었을 뿐이다.
그후 저자는 중, 고등 검정고시를 거쳐 고향 대학교에서 나이 어린 동기들과 함께 대학생활을 하게 된다. 그때 소개받은 인연으로 가정을 꾸리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저자는 장남이었다. 옛날 장남의 의무란 부모형제를 건사하고 대를 잇는 것이다.


종목 , 제자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효심

저는 가치 투자를 지향하는 투자자입니다. 주가가 내일 오를지 내릴지는 알 수 없지만, 장기적으로 오를지 내릴지는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해당 종목의 가치를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과정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 책은 주식 초보자들을 위해 쉽게 서술했습니다. 복잡한 거 다 빼고, 딱 오르는 주식을 어떻게 고를지에 핵심을 맞췄습니다. 제가 웬만해선 종목을 추천하지 않는데, 이 책에서는 주식 이름을 콕 짚어 추천도 했습니다. 아마 제 실력 여부는 독자들께서 판단해주실 것 같습니다. 추천해드린 주식이 오르면 실력을 알아주실 테고, 떨어지면 별 볼 일 없다고 판단하실 테죠. 그러니 제가 얼마나 심사숙고해서 추천을 했겠습니까? (6-7P)

사람 인생이란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제가 주식 블로그를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냥 주식 카페에 독서 열심히 하라는 글을 우연히 올리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의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늘면서 소중한 인연도 만들어졌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주식 제자들과의 인연입니다. 블로그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인연이 닿아 스승과 제자가 되었는데, 주식에 관한 여러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289P)

저는 주말마다 아버지를 모시고 온천에 갑니다. 아버지께서 연로하셔서 눈이 침침하신데, 온천이 눈에 좋다고 해서 수년 전부터 주말마다 온천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실제 아버지 눈이 많이 좋아지셨는데, 온천욕으로 인해 혈액 순환이 잘 되어 눈 건강에 도움을 주는 듯합니다. (295P)

추천 종목을 보면, 저자가 후학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지 알 수 있다. 건전한 호흡의 긴 투자를, 확실하게 장기 우상향 할 종목으로 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16살부터 32살이 될 때까지 오로지 절약과 저축으로 자신의 상황을 개선시켰다. 그때는 IMF 이전으로 은행의 저축 수익률이 상당히 높았을 때다. 반면 현재는 저자와 같은 군자의 마음을 가진 이라 하더라도 절약과 저축만으로 자신의 상황을 개선시킬 수가 없다. 그러므로 저자의 권유는 자신과 같은 길을 가려는 후배들에게 그 당시의 저축 수익률에 상응하는 수익을 줄 수 있는 확실한 가치 투자처를 일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가 나오고, 제자의 투자 수익률을 인증하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위화감을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저자가 왜 이러는지, 무슨 사업적 목적으로 이러는지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사람도 분명 있으리라. 바로 그 지점에 대한 나의 해석은 아래와 같은데, 이 해석이 맞는 것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 책 한 권 읽었을 뿐인데 어찌 그 사람을 알 수 있겠는가. 다만 아래의 해석이 이 서평이 위에 적어온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군자삼락 : 첫째, 부모가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 둘째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것, 셋째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

얼마 전 대학 후배가 투자자문의 투자일임 서비스를 소개해 주었다. 투자자가 일정 금액을 맡기고, 자문사가 투자자의 계좌로 주식을 사고 파는 것이다. 어떤 주식을 언제 어느 가격으로 사는지 본인의 계좌에 거래내역이 찍히므로, 주식 고수의 매매 과정을 그대로 보면서 배울 수 있다.

이 책의 저자가 제자에게 제공하는 가르침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저자는 직접 매매를 하는 대신 제자에게 지금 A주식을 사라고 일러줄 뿐이지만 본질은 같다. 투자자문사의 투자일임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1억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고, 투자자문사에 스스럼 없이 찾아갈 수 있는 학력이 필요하다. 가치 투자는 그만한 자본과 학력이 있는 자만, 스승으로부터 주식의 실제 운용을 배울 수 있어야 하는가.

이 책의 저자는 그 질문에 다른 대답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본인이 애널리스트였던 스승으로부터 지도받았던 내용도 자신이 가르치려는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

저자는 슈퍼개미를 자청하며 유료 회원을 긁어 모으는 유튜버와 동일한 사업 목적으로 이 책을 쓴 것일까?
나는 사람의 말과 의도를 살필 때 그 사람이 살아 온 이력을 본다. 군자삼락이 아니라 사업의 목적일까? 내 대답은 '아니다'이다. (허나 잊지 마시라. 투자자라면 모든 판단은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 하에 이루어짐을. 이것은 단지 하나의 견해에 불과하다)


일독을 권유하는 대상 : 겸손한 투자를 하려는 가치투자자

세상의 넓음을 배울 때 사람은 겸손해진다. 겸손한 마음으로 가치 투자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지식이 아니라 마음가짐의 측면에서 다른 어떤 책도 제공하기 어려운 독보적 사례를 제공한다. 그런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수다쟁이인 나는 이 저자와 가까이 지내기는 어렵겠지만 (생각해보라. 수다쟁이와 군자가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그냥 스쳐가는 것 이외에 둘의 인연이 무엇이 있겠는가) 누군가에게 이 저자와의 만남은 인생의 인연이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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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워런 버핏, 숙향의 주식 투자 이야기 - 더욱 진화해 돌아온 투자 고수, 숙향이 안내하는 경제적 자유의 길
숙향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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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드디어 투자심리다. 올해 쓴 서평들은 이 주제에 다다르기 위한 긴 여정이었다. 먼저 오랫동안 나를 붙잡았던 무협에서 얻은 화두부터 공유해보자.

실력과 심리의 상관관계 : 소년 검수의 경우

초보 검수가 무공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집중한 상태에서 검을 정확하게 휘두르는 행위를 반복해야 한다. 재능이 동일하다면 이 행위를 더 많이 반복한 자의 검술 실력이 더 높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아래의 질문에 대답해보자.

1) 가문이 멸망하여 복수를 위해 십 년을 피눈물을 흘리며 검을 휘두른 소년 검수 A
2) 검을 휘두르는 게 즐거워 십 년을 한결같이 검을 휘두른 소년 검수 B
재능이 동일하고, 집중해서 정확하게 검을 휘두른 횟수가 동일하다면 두 소년 검수의 검술 실력은 어떠하겠는가? 그렇다. 동일하다.

실력을 기준으로 보면 두 소년 검수는 동일하다. 그러나 과연 두 검수의 인생을 같은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긴장하라는 그 말

투자를 괴롭게 하든 즐겁게 하든 그 자체는 투자수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올바른 투자판단과 올바른 투자행동을 했다면, 투자자의 심리가 어떠했든 결과는 올바를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투자심리가 중요한가? 다음은 십오 년 전 군대에서 겪은 사례다.

선임병 : "야 긴장해라. 긴장 안 하냐?"
나 : "예 알겠습니다!" (그러나 더 얼어붙는다)

당시에도 이 말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내 행동이 더 부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저 말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곰곰히 생각하다 나는 다음과 같이 바꾸었다.
"야 집중해라. 집중 안 하냐?"

소년 검수 A는 원한에 집중해서 검을 익혔다. 실전에 닥치면 그는 원한의 마음을 떠올려야 훈련 때와 같은 집중력으로 실전에 임할 수 있을 것이다. 소년 검수 B는 즐거움에 집중해서 검을 익혔다. 실전에 닥치면 그는 즐거움에 집중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투자를 할 때-주식을 매수하거나 보유하거나 매도할 때- 떠올리려는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당신은 어떤 마음 상태일 때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당신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


가치투자자와 기질 : 평정심

"확신하건대 투자할 때 제일 중요한 자질은 지능이 아닙니다. 물론 사리분별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머리는 필요하지만, '기질'이 90%를 차지합니다."
- 워런 버핏 

"나는 20여 년 동안 워런 버핏에 대한 책을 썼다. 이 기간에 나는 이 책의 방법론에 격렬히 반대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워런 버핏의 글에 전적으로 동의함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으로는 버핏의 교훈을 적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만났다. 어쩌면 이것이 버핏의 성공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자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은 퍼즐의 한 조각인지도 모른다."
- 로버트 해그스트롬

책을 읽으며 점점 더 크게 다가오는 건 저자 숙향님의 평정심이다. 평정심이란 '감정의 기복이 없이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을 말한다. 

좀 더 구체적인 스트레스 관리 방법이나 취미 생활이 있으신지요?

(...) 주식 투자를 함에 있어서 낙관적인 생각은 책에서 얘기한 것처럼 스톡데일 패러독스에서 얻은 겁니다. 가치에 비해 싼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면 주가가 내리면 더 사면 될 텐데 뭘 걱정하느냐는 거죠. 100% 주식이라면 매년 한 번씩 입금되는 배당금으로 싼 가격에 주식 수를 더 늘리면 될 테고요. 주식이 제 가치에 어울리는 주가가 될 시기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주가가 올라갈 것을 믿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자는 겁니다.
그리고 많은 대가들이 얘기했듯 그날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죠. 기다리는 동안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역시 책입니다. 독서를 통해 대가들의 경험에서 배우고 위로를 받는 거죠. (...)
또한 만사형통이란 말이 있듯이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중요합니다. (...)
(339-340p)

왜 은퇴 계획을 계속 바꾸는가? 처음부터 완벽한 계획은 힘들겠지만 오래전부터 은퇴를 준비했다면 지금쯤은 완전무결한 은퇴 계획을 세웠어야 하지 않은가?

《전쟁론》의 저자로 19세기 프로이센의 장군인 클라우제비츠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좋은 계획을 망치는 최대의 적은 완벽한 계획을 만들려는 꿈이다." 세상일이 대부분 그렇듯 완벽한 것은 없으며 시대의 흐름에 맞춰 끊임없이 개선 ·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은퇴 계획 역시 더 좋은 게 있다면 그에 맞춰 바꿔나갑니다. 
(286p)

위처럼 평정심을 갖춘 사람은 아집이 없어 배움과 적응에 순한 면모를 보인다. 주식 투자가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는 게임이라면, 마음의 긴장도를 높여서 상황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과 위처럼 마음의 평정심을 넓혀서 상황 변화에 순응하고 배움을 이어나가는 것 중 어느 태도가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확률이 높겠는가. 혹여 둘 다 살아남는다면 둘 중 어떤 선택을 할 때 마음이 더 평안하겠는가.


평정심과 평상심

그렇다면 평상심은 무엇인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잘 그리지 못하는 그림을 그려 본다.
 


1) 평상심은 평소의 마음이다. 그림에서는 집으로 표현된다. 마음의 상태는 계절로 표현된다. 집이 지어진 위치다. (위 그림에서 평상심은 봄과 가을 사이 중 봄에 가깝다)

2) 평정심은 집중했을 때의 마음 상태다. 평소의 마음에서 집중된 마음의 상태로 전환하려면, 집에서 사람이 서 있는 위치까지 걸어가야 한다. 이 거리가 길수록 집중력 발휘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뜻한다. (그림에서 주인공은 겨울과 가을 사이 그 중 겨울에 가까운 곳에 평정심의 자리를 마련했다)

3-1) 계절은 마음의 날씨를 뜻한다. 겨울은 냉기와 한기다. 세상에 대한 냉소, 자기자신에 대한 미움, 차별받은 설움, 멸시당한 분노, 타인에 대한 악의 등을 뜻한다
3-2) 가을은 쓸쓸함을 뜻한다. 외로움, 고독을 말한다.
3-3) 봄은 따스함을 뜻한다. 기분좋음, 따스함, 함께함, 사랑받음 등이다.
3-4) 여름은 뜨거움을 뜻한다. 불타는 열정, 지독한 근성, 확고한 신념, 강렬한 승부욕, 타인에 대한 뜨거운 질투 등이다.

4) 바람은 마음에 맺힌 게 많은 사람에게 부여되는 특수한 부가 성질이다. 평상심이 일관되려면 집을 지어야 하는데, 바람이 거세면 집을 짓지 못한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서도 감정이 일관된 평상심 없이 구천을 떠돈다면 마음에 맺힌 게 많은 탓이다. 맺힘을 먼저 풀어야 집을 지을 수 있다-평상심을 가질 수 있다. (내가 우울증,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글을 먼저 적고 나서 이 글을 적을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라 할 수 있다)

직장인 투자자 입장에서 그림을 해석해보자.

1. 무엇보다 먼저 평상심과 평정심의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 많은 품을 들여야 하는 비효율은 직장인이 감수하기 어렵다.

2. 평상심과 평정심의 거리가 먼 경우 위 그림에 따르면 당연히 사람의 자리를 집 쪽으로 옮기는 게 효율적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반대로 행동한다. 집을 사람 쪽으로 옮기려고 한다.

3. 특별한 노력과 지독한 끈기로 집을 사람 쪽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집중력을 발휘하기는 쉬워진다. 그런데 평소 마음이 봄에서 겨울로 바뀌어 버렸다.

(주식 투자에 더 집중할수록, 인생이 더 쓸쓸해지거나 더 춥게 느껴지는 사람의 경우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마음의 계절은 오히려 나빠졌다. 연봉이 높은 직장인, 성공한 사람 중에 우울한 사람이 많다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좀더 보편적으로 말하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할수록 마음이 괴롭거나, 쓸쓸하거나, 지나치게 불이 붙거나, 부풀어오르는 승부욕으로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상태에 빠지는 경우다. 집중할수록 마음의 계절이 악화하는 모든 경우를 말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노력과 괴로움의 학습된 상관관계

평정심이란 마음이 집중하는 자리다. 달리 말하면 한 사람이 노력을 기울일 때의 마음 상태다. 그리고 슬프게도 우리에게는 노력을 기울일 때의 마음 상태가 '괴로워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우리는 노력을 학교에서 학업을 통해 처음으로 만나기 때문이다. 학업을 익히고 시험 공부를 하며 즐거웠던 기억이 있는가? 아니면 괴로웠던 기억이 떠오르는가? 노력, 이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제일 먼저 떠올리는 감정은 무엇인가? 그 감정은 긍정적인가 아니면 부정적인가?


'성장'에 대한 새로운 서사 : 괴로움에서 즐거움으로

다음 두 가지 사례를 먼저 살펴 보자.

1) 고등래퍼 시즌 2 우승자 김하온
"공부 아닌 공부를 하면서 'No pain,  no gain'이라는 말이 하나의 프레임이란 걸 깨달았지. 고통 없이는 얻는 게 없다는 말이 너무 잔인하지 않니? 그래서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려고 했어. 최대한 즐긴 것 같아. 그게 제일 노력한 것이야. 웃으면서, 즐기면서, 긍정적으로." - 명상 래퍼, 김하온

'No pain, no gain'은 익숙한 말이지만, 하나의 관점에 불과하다. 18세 소년은 이 관점이 자신에게 맞지 않다면 벗어던져도 된다고 말한다.


2) 2020년 롤드컵 우승팀 담원의 이제민 감독, 양대인 코치 → T1으로 함께 이적. 양대인 감독 이제민 코치로 역할은 바뀌어서

"함께 성장하며 재미까지 느끼는 게 가능하다 생각이 들어서 이적하게 됐다." - 이재민 T1 코치 (전 담원 감독)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갖는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있다. 이재민 코치는 저에게 '이 사람과 같이 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 양대인 T1 감독 (전 담원 코치)

"제 생각엔 저는 롤 판에서 꽤나 오래 있을 것 같다. 오래 있기 위해서 제겐 '성장'이 1순위다. 나머지는 성장을 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장과 재미 이 두 개를 T1에서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 이재민 T1 코치

"제가 생각하는 '재미'는 2가지로 나눠 볼 수 있는데 먼저 첫 번째는 배움에 있어 이 길을 따라가면 프로로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기 자신이 성장을 해내간다라는 걸 느끼는 것. 성장을 하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알려주고 싶고 그런 분위기를 전파하고 싶다." - 양대인 T1 감독

League of Legend라는 게임에서 3년 만에 세계 1위에 해당하는 롤드컵 우승을 한국에 안긴 담원. 두 사람은 담원의 사령탑으로 함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감독, 코치의 역할까지 바꾸어 가면서 두 사람은 T1으로 함께 이적하기로 결심했는데, '성장'과 '재미'라는 두 관점에서 뜻이 일치한다고 서로의 사이를 설명한다.


문화 현상은 사람들의 내적 욕구를 반영한다. 위의 두 사례와 BTS의 서사는 같은 맥락을 드러낸다. 괴롭게 이기는 자가 아니라 즐겁게 성취하는 자가 각 문화의 제일 상위를 차지하기 시작했고, 대중들의 열렬한 환영을 얻고 있다. 그렇다면 투자의 세계는 어떤가. 우리는 돈을 좋은 것이라 생각할 수는 있어도, '돈 버는 행위를 즐겁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노력은 '힘겨움을 극복하는 행위다'라고 생각할 수는 있어도, '평온한 마음으로 즐겁게 집중하는 일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웃집 워런 버핏 숙향의 의미

가치투자자 숙향 선배의 사례는 '이웃집'의 친근한 사례이자, '마음 평온한 과정을 오랜 기간 거쳐 특별한 성취를 얻은' 사례-그러므로 새로운 시대의 문화 욕구에 부응하는 사례-이고, 가치투자자를 꿈꾸며 입문하는 후배 직장인 투자자들에게 '정확한 한국형 롤모델'을 제공하는 사례다.

숙향이라는 한국형 롤모델은 우리에게 왜 중요한가?

1. 우리가 닮으려는 롤 모델은 현재 행복한 상태이고, 그의 과정 또한 행복한 것이었다.
2. 롤모델의 특별한 성공 비결은 투자심리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목표는 그의 투자심리를 닮아가는 것이다.
3. 롤 모델을 닮아가는 과정은 그 자체가 행복할 것이다.

'행복한 과정을 통해서 행복한 목표에 이를 수 있다'는 게 꿈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와 있다. 그 증거로 『이웃집 워런 버핏 숙향의 주식 투자 이야기』가 우리의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당신은 이 책을 펼칠 것인가 아니면 한 켠에 꽂아둘 것인가? 다음의 얘기가 당신의 선택을 도울 수 있다면 이 서평을 쓴 보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정답을 맞추도록 교육받았다. 그러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정답을 연구하는 것이다. 왜냐면 아무도 인생의 정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연구의 과정은 이렇다. '가설을 세운다' - '이를 실험으로 검증한다' - '결과로 얻은 데이터를 반영하여 다시 가설을 검증할 실험을 계획한다'
당신이 검증하고 싶은 가설은 무엇인가?
'고통은 행복한 성취에 이르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라는 기존의 가설인가? 아니면 '즐거움과 재미를 통할 때 특별한 성취를 얻을 수 있다'는 가설인가. 현대 뇌과학은 재미를 느낄 때 사람의 뇌가 더 큰 집중력을 발휘한다고 설명한다.

숙향 선배를 따르는 후배들 중 눈길을 사로잡는 세 분이 있었다.

우용오요옹 - https://cafe.naver.com/vilab

세 분의 글을 읽다보니 한 가지 공통점을 느끼게 된다. 자기와 타인, 자기와 세상과의 관계맺음에서 '자기과잉'이 없다. 달리 말하면 자신과든 타인과든 말걸기가 자연스럽고 편하다. 평정심과 평상심이 가까운 거다. 그러니 이 사람들이 어떤 마음의 여정을 거쳐서 바라보는 목표에 이르게 될지 가히 짐작이 간다. 아마 비슷한 이유 때문에 숙향님도 '확실한 것은.. 우리는 실패하지 않을 겁니다 ^^'라는 댓글을 달았으리라.

프롤로그
투자자의 경험은 어떻게 자산이 되는가

투자에 있어서 일반적으로는 적절한 증권을 선택하는 일을 가장 중시한다. 그러나 나는 투자자가 그의 수익을 어떻게 사용할 생각인가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적절한 증권을 선택하는 것보다 앞서 고려해야 할 것은 삶의 철학과 투자의 목적이다. 투자자의 최초의 실수는 삶의 철학과 투자의 목적을 잘못 설정한 데서 발생한다. 잘못된 증권을 선택하는 것도 바로 삶의 철학과 투자의 목적을 처음에 잘못 설정한 데서 기인한다.
- 프레드 쉐드, 《고객의 요트는 어디에 있는가》 p.212
(6p)

'숙향과 후배들'의 투자 여정에 동행할 수 있다면 참 즐거울 것이다. 기분좋은 동행이 함께 하는 여정이란 얼마나 마음 따듯한가. 이 책을 읽는 가치투자자들 모두 나와 같은 기분이기를.


p.s 1
컴퓨터로 가치투자연구소 카페에 접속하면 대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가치투자 연구소는 집단 지성의 힘을 통해 같이 즐겁게 공부하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남을 속이지 않는 그런 투자자들이 함께 하는 커뮤니티 공간이고자 합니다. 선배투자자는 후배의 손을 잡아 이끌어주며 후배는 그 배움의 고마움을 청출어람으로 보답했으면 합니다. 또한 항상 나보다 못한 사람을 한번쯤 뒤돌아 보는 따듯하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까페이었으면 합니다."

언제 처음 보았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 글귀 덕분에 나는 가치투자연구소 카페의 죽돌이가 될 수 있었다. 어떤 글 하나는 사람이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p.s 2
마음에 맺힌 것을 풀어 바람을 멈추었으므로, 이제부터는 평상심과 평정심을 봄에 마련해보려고 한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1 김하온 : 고등래퍼 시즌2 그의 모든 인터뷰, 모든 노래 장면은 시간을 들여 볼 가치가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O9KUZVUqfA '내면의 평화를 찾아서' 여행가 김하온
https://www.youtube.com/watch?v=-smJmQYKBsA 191점, 최고득점의 주인공 명상래퍼 김하온
https://www.youtube.com/watch?v=-849OGRrRMI 서로를 더욱 깊이 알아가는 하온과 병재 - '대화'란 무엇인가 
https://www.youtube.com/watch?v=YLAKEOW8HB8 김하온 & 이병재 바코드 - 전설의 무대

※2 "21년 목표? 담원 제압하는 것" ... 이제는 T1이 된 양대인-이재민의 솔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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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워런 버핏, 숙향의 주식 투자 이야기 - 더욱 진화해 돌아온 투자 고수, 숙향이 안내하는 경제적 자유의 길
숙향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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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 무엇이 가치투자인가?

가치투자자가 되려고 할 때 마주하게 되는 질문이 하나 있다.
바로 '무엇이 가치투자인가?'라는 질문이다.

그 질문에서 추억이 하나 떠오른다. 대학교 문학 동아리 생각이다. 신입생 때 무작정 찾아간 그곳에 빠져 죽돌이가 되었다. 그 결과 대학교 첫 학기에 학사경고를 받았다. 학점이 0.77인가 그랬는데 동기들이 선동렬 방어율 보다 낮은 학점이라며 놀렸다. F학점을 두 개나 받은 나는 '니들이 쌍권총을 알어?'라며 맞장구를 쳤다. 우리는 함께 즐거웠다.

문학은 전혀 몰랐다. 동아리에 가입하고 나자 선배가 시집을 한 권 선물해 주었다. 문학회 전통이라고 했다.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이었는데, 시인 이름이 참 특이하다 생각했다. 나는 고교 교과서에 실린 윤동주, 서정주 시인 말고는 다른 시인을 몰랐는데 동기들은 대부분 이 사람을 알고 있었다. 동기들이 진지하게 그 시집과 그 시인의 시를 논하는 것을 보고서 나는 시를 알고 싶다고 생각했다. '시란 무엇일까?'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나는 이 질문을 마음에 담았다.

가치투자연구소 카페의 죽돌이가 되어 '무엇이 가치투자인가?'라는 질문을 마음에 담은 이유도 비슷하다. 이 카페의 글들이 좋아지자 그 글들의 공통분모인 가치투자를 알고 싶었던 거다. 내가 주식 투자 중에서도 가치투자를 화두로 삼게 된 건 이런 이유다.


이웃집 워런 버핏 : 숙향

숙향님은 가치투자연구소 카페에 매월 투자보고서를 올린다. 펀드(친구)의 운용보고서다. 눈에 띄었던 점은 글의 호흡이다. 잔잔한 여유, 부드러운 문장 전환, 감정을 표현할 때에도 치달리지 않는 문체, 장문의 글을 적으면서도 면면한 호흡을 유지하는 내공.

닉네임 숙향은 무슨 뜻일까. '춘추시대 학자, 숙향에게서 배운 삶(투자)의 지혜'라는 글을 쓰신 것으로 보아 닉네임의 연원을 짐작할 수 있을 줄 알았으나, '제가 필명으로 쓰는 숙향은 춘추 시대의 학자를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닙니다'라는 언급을 남겼다. 다른 단서는 찾지 못했는데 이런 경우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어 즐겁다. 아래는 나의 상상이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 사람은 감탄한다. 마음이 즐거워지고 들뜬다. 그런데 아름다움은 화려함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아름다움을 만나면 반갑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반면 향기는 어떨까. 잘 익은(熟) 향기는 미성숙한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맑은(淑) 향기는 어지러운 마음을 씻긴다. 좋은 향기는 향기를 맡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숙향이란 닉네임의 의미를 나는 그렇게 새긴다.


책, 『이웃집 워런 버핏 숙향의 주식 투자 이야기』

이 책은 숙향님의 두 번째 책이다. 나는 첫 번째 책은 아직 읽지 못했다. 한스미디어 출판사의 서평 이벤트에 응모하여 본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 내가 준비한 화두는 두 가지다.

1. 숙향님은 직장인 투자자로 오랜 기간 직장과 투자를 성공적으로 병행해 왔다. 시간활용 측면에서 대단히 소중한 사례로 연구 가치가 높다. 투자 공부와 투자 활동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적었음에도, 어떻게 장기간 높은 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이 무엇일까.

2. 숙향님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낸 가투소(가치투자연구소) 후배들에게서 공통된 특징을 발견했다. 그 특징은 '평상심'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이는 나에게 대단히 중요한 주제여서 하고 싶은 말들이 정말 많다. 

자, 첫 번째 이야기부터 해보자.


직장인 가치투자자의 성공 비결

생각건대 투자의 과정은 아래의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투자철학 → 투자판단 → 투자행동. 그리고 이 과정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투자심리.'

1. 투자철학
네 가지 요소를 모두 공들여 쌓아갈 시간이 없는 직장인이라면 투자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이견의 여지 없이 먼저 투자철학을 세워야 한다. 투자철학이란 투자에 대한 관점을 말한다. 관점이 없으면 자신이 뭘 하려는지 알 수가 없다. 본인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면 아무것도 성찰할 수 없고, 성찰 없이는 배움도 없다. 초보 투자자가 배우지 않고 어떻게 현명한 투자자가 되겠는가.

우리는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않는다. 우리는 경험에 대한 성찰로부터 배운다. - 존 듀이 (미국의 교육철학자이자 심리학자)
We do not learn from experience.
We learn from reflecting on experience.

숙향님의 투자철학은 무엇일까.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가치투자'다. 그렇다면 가치투자란 무엇인가. 숙향님의 대답은 이렇다.

제가 지향하는 가치투자에 대해서는 세스 클라만이 자신의 명저 《안전마진》에서 멋지게 정의한 것을 인용합니다.

가치투자 철학에는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1) 가치투자란 저평가 종목에서 투자 기회를 찾아내는 상향식 투자 전략이다.
(2) 가치투자란 상대 수익률이 아니라 절대 수익률을 지향하는 투자 전략이다.
(3) 가치투자란 위험 회피 투자법이다. 즉 투자수익을 얻는 것(수익)뿐만 아니라 손실을 보는 것(위험)에도 만전을 기하는 투자법이다. (15p)


2. 투자판단

1) 투자판단 - 투자행동 - 투자공부, 선순환의 출발점
투자철학을 세웠다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 투자판단일까? 맞다. 판단을 하지 않고 무엇을 매수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초보 투자자가 스스로 투자판단을 시작해서 끝마치기란 어불성설에 가깝다. 처음에는 타인의 판단을 활용하는 게 좋다. 가투소나 투자 블로그에서 종목에 대한 분석 글을 읽고 수긍한다면 그 종목을 매수할 수 있다. 첫 투자판단과 첫 투자행동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투자 후 주가가 올라도 좋고 주가가 내려도 좋다. 중요한 건 먼저 실전을 경험하는 것이다.

실전을 강조하는 이유는 공부의 맥을 짚기 위해서다. 왜 공부하는지 모르면 학생은 무엇을 배워야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면 가르치는 선생이 강조하는 포인트만 기억에 남는다. 내 지식이 아니라 남의 지식이 머리에 쌓이면 실전에서 지식을 활용하기 어렵다. 그러면 지식을 쌓는 일이 재미 없고 하기 싫은 일이 된다. (타자가 자신의 배트가 아니라 다른 이의 배트를 휘두르고 자신의 스윙이 아니라 다른 이의 스윙으로 공을 때린다면 당연히 타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타석에 서는 일이 재미 없어 질 것이다)

주식을 산 다음 주가의 변동성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살 주식을 고르기 위한 공부를 할 때 어떤 포인트에 중점을 두어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막연하게 공부하면 공부 재미를 느낄 수 없고 그러면 공부하는 일이 고된 노동이 된다. 직장인 투자자가 주식 공부를 또하나의 직장을 다니듯이 해야 한다면 꾸준히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초보 직장인 투자자에게는 빠른 투자 판단을 할 수 있는 기준이 꼭 필요하다. '종목 선정 - 매수'의 경험을 반복하면서 공부의 필요, 공부의 의미, 공부의 맥을 알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즉, 초기 투자는 수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부 동기를 얻기 위해서 행해져야 한다. 단기간에 공부를 몰아서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 긴 기간 동안 매일 조금씩 공부를 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공부 프로세스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 이 관점에서 숙향님이 권유하는 투자판단을 살펴보자.


2) 숙향의 투자 기업 선정법

투자할 기업을 선정할 때 고려하는 네 가지 조건
(1) PER 10 이하 : 낮을수록 좋습니다
(2) PBR 1 이하 : 낮을수록 좋습니다.
(3) 배당수익률이 은행 정기예금 금리 이상 : 높을수록 좋습니다.
(4) 순현금 기업 : 현금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149p)

(1)~(2) : 기업가치를 '영업가치 + 자산가치'로 파악할 수 있다면, (1)과 (2)는 영업가치 측면에서도 자산가치 측면에서도 저평가된 기업을 고르라는 조언이다.  
(3) : 저평가된 기업을 고를 경우 정상평가가 이루어지기까지 오랜 기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많다. 오랜 기간을 견디기 위해서 배당수익률을 감안하라는 조언이다. 투자 결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은행 금리의 2배에 해당하는 훌륭한 저축 상품에 가입한 것으로 생각하고 느긋하게 기다리자는 조언이다.
(4) : 잃지 않는 투자를 위한 가장 안전한 장치이자, 주가가 아무리 하락하더라도 기업 가치를 믿고 견딜 수 있는 강력한 조건이다.

모니시 파브라이가 언급한 바 있듯, 안전마진은 리스크를 낮추면서 수익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 아니라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을 기대할 수 있는 마법. 다만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긴 시간이 될지도 모를 기다림을 견디는 인내다. 기다릴 수 있는 가치투자자는 안전하게 충분한 수익을 얻는다. 숙향님의 투자 기업 선정 네 가지 조건은 정확히 이에 부합한다.

투자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적은 직장인 투자자가 투자판단을 빠르게 할 수 있고, 리스크를 최대한 낮추며, 기대 수익은 높인다. 그 대신 인내를 요구한다. 이 교환 조건이 불만족스러운가? 어쩌면 당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조건이란 꿈속에나 있는지 모른다.


3) 포트폴리오 구성
 
포트폴리오에 몇 종목을 넣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가들의 조언과 제 경험을 감안했을 때 10개 종목 내외가 가장 적당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160p)

초보 투자자라면 처음에는 소화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종목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노력한다. 많은 투자 종목은 많은 투자 경험, 많은 투자 배움, 많은 투자 공부로 이어진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공부를 통해 배우는 게 아니다.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성찰하면서 배우고, 배움을 통해 무슨 공부가 필요한지를 알게 된다. 그러면 공부를 해서 필요한 지식을 쌓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배움이 공부 보다 앞서 자리한다는 걸 다시 한번 기억하자. 초보 투자자는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를 배우기 위해 경험한다.


4) 매수 후 보유에 대한 의견

보유하는 동안 무엇보다 힘들 때는, 시장은 계속 올라가고 있는데 포트폴리오에 담긴 주식들은 꼼짝도 않거나 실망한 동료들이 매도하는 통에 오히려 평가손실을 키울 때입니다. 이래저래 따져보아도 딱히 나쁠 게 없지만, 시장의 외면으로 딱한 상황에 놓이게 된 거죠. 사실 이런 일은 가치투자자의 숙명입니다. (201p)

가치투자의 아버지 벤저민 그레이엄을 비롯한 많은 대가들이 보유기간을 2~3년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은행 금리 이상의 배당금을 지급하면서 주요 투자지표(PER, PBR)로 보았을 때, 충분히 싸면서 순현금 보유 기업으로 재무구조가 우수하다면 보유 기간의 제한을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203p)

투자 기업 선정을 위한 네 가지 조건을 고려했을 때, 보유 기간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숙향님의 견해는 충분히 수긍이 간다.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므로 어쩌면 편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기한이 없는 인내를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다. 분명 이치에는 맞는데 과연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면 당신은 평범한 초보 투자자다. 이 이야기는 '평상심' 파트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


5) 매도 의견

매도는 분석을 통해 충분한 안전마진을 확보한 주식을 매수해 보유했고 시장에서 제 가치를 알아줄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렸던 결과를 얻는, 투자 과정에서 마지막 완성 단계입니다.
(...) 하지만 투자에서 큰 성공을 거둔 대가들을 포함해서 모두가 한결 같이 얘기하는 것은 매도가 가장 어렵다는 겁니다. (205p)

저PER 투자의 달인 존 네프는 몇 가지 매도 기준을 제시했는데 다음은 제가 엇비슷하게 실행하는 매도 방법입니다.
- 투자한 주식이 자신이 정한 목표 수익률의 70%를 실현한 시점을 매도 기준으로 삼았는데, 이 시점에서 보유주식의 70%를 매각하고, 나머지는 더 오르면 매각했는데요. 최초 매각 시점이 목표 수익률의 70%인 이유에 대해 당신으로부터 주식을 매입하는 투자자를 위해 (투자수익)을 남기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 《이투데이》, 2011년 11월 2일 (206p)

'어렵다. 분할매도한다. 최대값에서 팔지 못하더라도 나에게 주식을 넘겨받은 사람의 몫으로 남겨둔 것이라 생각하고 미련을 두지 않는다.'로 요약할 수 있다. 대가들조차 어렵다고 한다면, 내가 연구한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이자.


6) 숙향님의 투자판단에 대한 종합의견

직장인 투자자가 이 조언에 따라 투자를 실행한다면 다음과 같은 주식 투자의 부작용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1) 수시로 mts를 들여다보느라 업무에 지장을 받는다.
(2) 주가의 변동성 때문에 하루하루 기분이 오락가락 한다.
(3) 투자 공부에 빠져 업무를 소홀히 한다.
(4) 일확천금을 노리며 원금 손실 위험이 큰 투자를 한다.
(5) 시간을 내 편으로 삼아 느긋하게 투자하는 게 아니라, 시간에 쫓기는 급박한 마음의 투자를 한다.
(6) 남들이 큰 수익을 얻었다는 소식을 듣고, 흔들리는 마음에 묻지마 투자를 감행한다.

가치투자의 핵심은 직장인이 바라마지 않는 경제적 자유를 지금 여기나 당장 내년으로 데려오는 게 아니라, 먼 미래지만 확실하게 예약한다는 데에 있다.
이는 정파 내공심법의 특징과 같다. 꾸준히 연마하면 안전하게 내공이 늘어나고, 충분한 시간이 흐른 뒤에는 틀림없이 절정 고수가 되어 강호를 누빌 것이다. 필요한 것은 꾸준한 수행, 그리고 인내뿐이다. 이견의 여지없이 정론이고, 가장 건전한 방법이며, 투자자들에게 가장 널리 권장되면 좋을 투자문화(투자판단)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투자판단 - 투자행동 - 투자공부'의 선순환 측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언제 투자행동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기약없는-더욱이 왜 공부하는지 그 이유를 체감하기 어려운- 투자공부를 강조하는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에 직장인 초보 투자자에게 무척 적합한 전략이라 생각된다.

"투자 전략은 그 전략을 실행하는 투자자의 능력을 고려해 세워야 한다" - 리처드 번스타인
(능력을 상황으로 바꾸어 읽자)


3. 성공비결

그렇다. 뭐니뭐니해도 역시 가장 궁금한 것은 숙향님의 '성공비결'이다. 가치투자를 지향하는 사람은 국내에도 많은 듯한데, 이상하게도 장기간 가치투자로 성과를 내었다고 알려진 사람은 극소수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투자과정을 세세하게 일반에 널리 알린 직장인 투자자는 숙향님 한 분뿐이다. (혹시 다른 분도 계신가? 과문하여 다른 분은 알지 못한다)
 
후학의 입장에서 정말 특별하고 소중한 사례이고, 이 사례를 연구할 수 있도록 자신의 투자 과정을 공유해주신 숙향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자, 그렇다면 그 성공비결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내가 꼽은 것은 '투자심리'다. 그리고 이건 긴 이야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별도의 장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절단신공을 발휘하려는 게 아니라 최근 며칠 계속 오른쪽 어깨가 아파서 아무래도 병원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 타이핑을 많이 치면 어깨가 아플 수도 있는 건가? 원래 아주 약간의 충돌 증후군 증상이 있긴 했다. 병원에 다녀와서 다음 부분을 마무리하려 한다. 부디 오늘 글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이후의 내용은 2편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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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의 인간 수업 - 300년 경제학 역사에서 찾은 인간에 대한 대답 36
홍훈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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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인가? 

정치든 경제든 문화든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이 책, '들어가는 글'에 저자가 쓴 문장이다. 정치와 문화가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경제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문장은 어딘지 모르게 낯설다. 왜 그럴까?

경제라는 단어에서 먼저 읽히는 것은 '직장', '돈', '경쟁', '피로' 그리고 '탈진'이다. '돈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문장 보다 '돈을 벌기 위해 인간이 소진되고 있다'는 문장이 더 체감된다. 우리나라 자본주의 경제 하에서 개인들이 마주하는 현실이 후자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를 하나의 사례로 짚어보자. 이유가 무엇이었든 나 또한 직장의 업무가 괴로운 노동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일찍 은퇴를 하고 싶었다. 이른 은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재테크 서적을 뒤졌다. '먼저 연봉을 높여라.' 이것이 재테크 서적의 결론이었다.

'괴로운 노동에서 빠르게 벗어나기 위해 더 많은 괴로운 노동을 실행하라.' 이 문장은 모순이었지만 나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으므로 그 문장을 따라 있는 힘껏 자신을 소진했다. 수입은 늘었지만 은퇴는 여전히 요원했다. 나는 점점 탈진하다 이내 건강을 잃고 쓰러졌다.

내가 더 빠르게 나를 소진해야 했던 건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강력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내 돈벌이를 다만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더 뛰어야만 했다. 앞서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레일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서, 불안에 쫓기지 않기 위해서, 나는 자신을 한계까지 사용해야 했다. 이것은 나뿐 아니라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보편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이다. 현 시대가 우리들에게 부여한 질병인 셈이다.

불안에서 탈진으로 이어지는 이 질병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 이 화두는 나에게 중요했다. 나는 직장을 그만둔 뒤 심리학을 뒤지고, 명상을 흉내내고, 돈에 대한 관념을 임시 인지 치료한 다음 주식 투자에 입문하는 것으로 그 처방을 마련했다. 그러면서 '나'의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은 너무 개인적이어서 보편적인 처방으로서는 거의 의미가 없다. 우리 시대 동년배들에게 널리 적용 가능한 다른 대안은 없을까?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경제학자'의 대답이다.


읽을 만한가?  ★★ (특히 독서 토론 모임 책으로 권한다)

나의 대답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지 자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의 대답으로 그들을 설득할 수 있기를 바라며 서평을 적는다.

내게는 언젠가 대학원에 진학해서 '행동경제학'을 수학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구체적인 바람은 아니었다. 그냥 왠지 즐거울 것 같은 기분 좋은 하나의 상상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그 상상을 조금 더 구체적인 목표로 삼기 시작했다. '하게 되면 즐겁겠지' 가 아니라 '한번 해보고 싶다'로 마음이 바뀌었다.

대학 시절 금속재료공학과에서 철학과로 전과했던 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내게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질문이었고, 그 질문에 대답할 힘을 기르기 위해서 나는 이적했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 십 년을 생활하니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어떤 경제 인생을 살 것인가?' 이 질문은 삼십대 이후 은퇴 전까지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는데, 나는 전혀 대비를 못했던 것이다.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적은 이유는, 직장인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경제 활동에 쏟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 활동에서 본인만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그건 철학도인 나로서는 도저히 즐거울 수 없는 삶의 방식이다. (이 표현은 중요하다.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생의 즐거움과 의미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철학도와 공학도가 다르고, 철학도와 예술가도 다르고, 철학도와 경영학도도 다르다. 성취지향형 인간과 관계지향형 인간이 다르고, 돈이 수단인 자와 돈이 목적인 자도 다르다. 경쟁의 승리가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단인 자와 경쟁에서의 승리 그 자체가 목적인 자 또한 다르다)

이 책은, 경제 철학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우리 사회의 경제 주체(=개인)가 겪고 있는 시대적 질병을 이해하기 위해서 기꺼이 먼 길을 탐험한다. 경제학의 주류 사상이 어디서 시작되어, 어떻게 변모되어 왔고, 그 가운데 인간에 대한 경제학적 관점이 어떻게 세계에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경제학에서 인간에 대한 어떤 논의가 중점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그러한 가운데 동양에서 서양의 주류 경제 사상을 가장 기적적으로 단기간에 흡수하여 성장해 온 우리나라의 경제 현실이 어떤 상태인지 진단한다.

시장경제에서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면 물건의 값을 지불해야 하므로 경제인은 재화의 가격, 임금, 이윤 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경제인이 가격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윤리 · 도덕이나 법에 둔감함을 의미한다. 경제인에게 가격은 일차적인 동기이며 윤리나 법은 부차적인 제약조건에 불과하다.
심지어 경제인은 자신의 이익 때문에 부도덕해질 수 있고, 법망을 피해 보려 노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주류경제사상은 놀랍게도 이 경우 경제인이 아니라 경제인을 부도덕하게 만들거나 죄인으로 만드는 도덕이나 법을 문제로 삼는다. 정치인이나 문화인도 부도덕해지거나 법을 위반할 수 있고 또 사회적인 지탄도 받지만, 경제학은 경제인의 도덕이나 법을 특별히 문제삼지 않는다. (30p)

경제인은 '결과'에 초점을 맞춘다. 경제인은 행위 자체나 의도와 과정, 절차 보다 결과를 중시하는데 이것은 시장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는 금전적 유인을 위시한 '외적인 동기'가 경제인을 움직인다는 것을 뜻한다. 이와 대비되는 몰입이나 헌신과 같은 '내적인 동기'에 경제인은 무관심하다. (35p)

이렇게 보면 신고전학파의 합리적인 경제인은 시장에 부합되도록 고안된 인간이다. (35p)

부를 추구하는 인간은 무한한 부의 축적을 마다하지 않는다. 여기서 부는 생존, 생계, 생활에 필요한 수준을 넘어서는 물자와 화폐의 축적을 의미한다. 
(...) 부는 물질적인 가치이므로 부에 대한 추구는 덕성이나 현명함 등 정신적인 가치나 미적인 가치 혹은 넓은 의미의 좋음, 그리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과 구분된다. (36p)

경제이론은 세속적인 경제현실에 대한 설명이지만 이를 넘어서 경제에 대한 이상이나 이념을 담고 있다. 쉽게 말해 경제가 실제로 '어떤지'와 더불어 '어떠해야 하는지'까지 말하고 있다. (39p)

노동자와 자본가, 생산자와 소비자뿐만 아니라 시민, 정치인, 공무원, 판검사, 언론인, 예술가, 의사, 학자나 교수, 목사 등도 점점 더 자신의 이익과 돈을 삶의 일차적인 가치로 삼으며 이를 위해 보다 꼼꼼하게 계산하고 있다. (41p)

세인들은 돈이나 권력을 중시하지 않는 사람을 좋게 보면 순진하고, 나쁘게 보면 어리석은 사람으로 취급하게 되었다.
(...) 이에 따라 현대 경제사상에서는 경제주체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주체에게 이기심과 합리성을 적용해 '경제인'이라고 상정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전에는 제한된 영역(시장경제)을 대표하던 경제인이 이제 거의 인간 자체를 대표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인간에게서 경제인이 파생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인에 비추어 인간상을 도출하기도 한다. 이제 경제학자와 세인들은 기존의 시장 경제를 이끄는 주체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서 경제인을 찾아낸다. (42p)

체감할 수 있는 우리의 일상을 통해 위의 얘기를 이해해보자.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소비자가 있다. 기존 경제이론의 관점에서는 값싼 커피숍의 커피로 대체될 수 있는 스타벅스 커피를 굳이 선택할 이유가 없다. 돈을 더 지불하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건 경제적으로 어리석은 행위다. 그러나 소비자는 커피라는 음료뿐만 아니라, 스타벅스 커피라는 '개념'을 함께 소비한다. 그는 돈을 더 지불하지만 더 만족한다. 경제적으로 불리한 행위지만 만족은 더 늘어나고, 기존 경제이론이 이러한 행위를 비판한다고 해도, 소비자는 그 이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자기의 행동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행위를 바라보는 제3자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현대 경제학 이론인 행동경제학은 개인의 이러한 행동을 이론적으로 설명한다.

이번에는 소비 측면이 아니라 생산 측면을 보자. 대기업 직장인은 근로를 통해 업무 결과물을 생산하고 이를 통해 돈을 번다. 그는 다른 기업의 직장인 대비 같은 시간에 더 많은 대가를 받는다. 그러나 업무강도, 경쟁 강도, 그리고 주 업무 활동의 자기만족도 측면에서 대기업 활동이 심리적으로 대단히 불만족스러울 경우 그는 이직을 고려한다. 그러나 기존 경제이론은 이러한 이직을 경제적 불이익을 초래하는 어리석은 행위로 판단한다. 그로 인해 연봉을 낮추더라도 더 나은 심리적 만족을 추구하는 이직을 선택하는 데 개인은 어려움을 겪는다.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스트레스가 있어야 한다. 본인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가족, 제3자도 이직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은 개인의 이직 행동 또한 이론적으로 설명한다)

위처럼 기존 경제이론이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이 '소비'와 '생산'에 있어서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서는 특히 '타인의 평가'가 중요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남들의 평균적인 의견이 나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느냐 아니면 부정적으로 평가하느냐가 개인의 결정에 압도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만약 우리 사회의 평균적인 의견이 기존 경제이론에 입각한 것이라면?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모든 생산 활동은 어리석은 짓으로 치부된다. 그러면 개인은 돈을 벌기 위해 쓰러질 때까지 자신을 소진할 뿐, 자신의 만족을 위해 수입을 줄이는 행위를 선택할 수 없게 된다. 선택이 자유롭지 않은 근로자에게 더 잔인한 노동 환경이 주어지는 건 흔한 일이다. 업무 강도가 높은 직장에서는 지원한 이의 사는 곳부터 물어보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 아니던가.

졸업 후 취업이라는 자신의 문제와 어머니의 병환에 대한 걱정이 뇌신경계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미국인과 중국인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그러자 양자에게서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미국인은 자신의 취직을 걱정할 때와 어머니의 병환을 걱정할 때 자극을 받는 뇌의 부위가 달랐다. 반면 중국인의 경우 양자가 동일했다.
이것은 미국인이 자신과 어머니를 독립적으로 여기는 데 비해 중국인은 자신과 어머니를 상호의존적으로 여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로부터 서양인이 독립적 자아를 지니고 있다면 동양인은 상호의존적 자아를 지니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400p)

동양인의 특성이 위와 같기 때문에, 동양에서 개인이 만족스러운 경제적 활동을 추구하려면, 개인과 관계를 맺는 타인, 가족, 직장 동료, 친구, 사회 일반의 인식이 무엇보다 개선되어야 한다. 서양보다 동양에서 일반 인식의 개선이 개인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크다. 그러므로 기존 경제이론이 아니라, 행동경제학과 같은 현대 경제학 이론을 일반에게 널리 퍼트리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대니얼 카너먼 - 다중적인 존재
조지 애커로프 -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조지 에인슬리 - 내면적으로 갈등을 겪는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여성주의 경제학 - 다양한 정체성으로 네트워크와 연결된다
아마르티아 센 - 역량을 바탕으로 자유를 실현한다
제임스 헤크먼 - 성격도 생산성에 영향을 미친다
필리프 판 파레이스 - 노동보다 자아실현이 중요하다

그래서 경제사상의 변천사에 따라 인간을 탐구하는 이 책의 후반부에는, 위와 같은 현대경제학 이론이 소개된다. 책의 후반부까지 오면, 이 책의 제목이 왜 "경제학자의 인간 수업"인지,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것인지 분명해진다.

위와 같은 이유로 이 책은 대단히 흥미롭다. 혼자 읽어야 했던 게 안타깝다. 만약 토론 모임에서 읽었다면 이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의 번뜩이는 해석과 나의 해석을 공유하며 아주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다.

다만 한 가지. 경제학 비전공자인 나로서는 책의 후반부까지 다다르는 여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배경지식이 충분하지 않다보니 이 책을 읽어내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서평이 다소 늦어진 이유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읽는다면, 그리고 토론 모임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읽고 토론을 한다면, 정말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질 훌륭한 책이다.
책의 표지에 생각하는 로뎅의 조각상이 빨간색 시계와 넥타이를 차고 있는데, 경제적 이득을 위하여 시간을 촉박하게 사용해야 하고, 경제적 이득을 위하여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현대인의 벌거벗은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책을 읽다가 생각이 많아져서 십 분간 산책을 하고, 돌아와 책을 한 페이지쯤 읽다가 다시 산책을 하러 나가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독자에게 정말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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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사용설명서 - 내 품격을 높이는
이미숙 지음 / 이비락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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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머리말에 작가가 쓴 첫 문장이다.
'말은 정신의 집이라고 한다'

우리말 장인의 장인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첫 문장이다. 바르고 고운 말을 사용해서 품위 있는 인격과 교양을 풍기자. 그리고 남의 나라 말이 아니라 우리말을 되도록 더 많이 쓰자. 특히 일제강점기에 우리에게 심어진 말들은 되도록 우리말로 순화해서 쓰자. 작가의 입장이다. 

최근에 글을 많이 쓰다 보니 맞춤법, 올바른 표현, 띄어쓰기가 궁금할 때가 많다. 이 책은 나와같은 글쟁이들을 (나는 '글장이'가 아니라 '글쟁이'라고 적었다. 이러한 섬세한 구분은 이 책을 읽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올바른 표현과 그 근거가 되는 지식으로 안내하는 길잡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분명 이 책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이다.

책은 총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바르게 쓰자 우리말'로 자주 쓰는 말 가운데 습관적으로 잘못 사용하거나 헷갈려 하는 말들을 알기 쉽게 바로 잡는다.
2장은 '알고 쓰자 한자말'로 뜻도 모르면서 남들 따라 쓰는 한자말, 문맥이나 상황에 맞지 않게 쓰는 한자말들의 뜻을 자세히 풀이하여 예문과 함께 바로 잡는다.
3장은 '솎아내자 일본말'로 우리말 대신에 무심히 사용하는 일본말들을 집어내고 대신에 순화한 우리말을 제시한다.

예시를 들어본다.

<1장>
①  '너무'를 너무 쓴다

'너무'를 너무 많이 쓴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2015년 국립국어원은 현실 쓰임의 변화에 따라 '너무'를 긍정적인 서술어와도 어울려 쓸 수 있다고 수정했다.
우리에게는 '너무'가 들어갈 자리에 적합하게 쓸 수 있는 섬세하면서도 풍부한 뜻을 지닌 말들이 많이 있다.

"정말 사랑해." "옷이 예쁘네요." "아주 행복합니다." "무척 좋다." "이 물건이 좋아 보이는구나." "매우 기쁘다."

▶ 우리말 참 아름답다. 아름다운 단어가 정말 많다.


② 굵은 목, 가는 목소리
"허벅지가 두꺼운 게 좋아요, 얇은 게 좋아요?"
"허벅지는 굵은 게 좋아요."
"두꺼운 목소리와 얇은 목소리 어느 게 좋아요?"
"굵은 목소리와 가는 목소리 중 어느 게 좋아요?"가 맞다.

▶ 아내에게 가끔 두꺼운 허벅지를 자랑했는데 이 글 보고 뜨끔했다. 두꺼운 허벅지도 두터운 허벅지도 아니다. 굵은 허벅지다.  


③ 오늘이 몇 월 며칠이니?
결론을 말하자면, 모든 경우에 '며칠'을 쓰는 것이 맞다. (...) '몇일'이나 '몇 일'은 어떤 경우에도 써서는 안 된다.

▶ 무조건 '며칠'이 맞다니. 충격이다. 그런데 왜 이리 즐거운가. 앞으로 고민 없이 쓸 수 있겠다. 


<2장>
①  이송과 후송
후송이란 적군과 맞대고 있는 전방지역에서 부상자나 포로가 생겼을 때, 후방 지역으로 보낸다는 말이다. 다음과 같이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기는 것을 후송이라 쓰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응급환자가 제주해경에 의해 긴급 후송됐다." (→ 이송됐다 → 옮겨졌다)
"범죄자나 용의자를 다른 곳으로 후송할 때에 호송차량을 이용한다." (→ 이송할 → 옮길)

▶ 군대를 제대하였으니 후송될 일은 없다. 일반인은 무조건 '이송되었다.'로 쓰면 되겠다.

 
② 미망인

'아직 죽지 못한 사람'이란 뜻의 한자말이다. 남편을 따라 죽어야 하는데 아직 죽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란 뜻으로, 남편을 여읜 여인이 스스로를 겸손하게 일컫는 말이다. (...) 옛날 순장의 풍습에서 유래하였다. (...) 사회가 변함에 따라 순장의 풍습이 사라진 지 오래 되었고, (...) 미망인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무서운 언어폭력이다.
과부라는 말도 '부족한 여자', 즉 남편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여자라는, 곱지 못한 말이므로 쓰지 않는 게 좋겠다.

'(故) O O O 님의 부인 O O O 님'과 같이 쓰면 된다.

▶ 이제 알았으니 나라도 혼자 남은 쓸쓸한 사람을 언어로 때리지 말자.


<3장>
- 개인적으로

'개인적으로'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쓰이고 있다. 아마 어떤 연예인이 재미있게 말하려고 한 것에서 시작된 듯싶은데,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습관처럼 쓰는 것을 본다. (...)
'-적(的)'은 일본에서 온 말투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이 말투가 우리말에 들어와 지나치게 많이 쓰여 우리말의 자연스러움을 해치고 있다.
"이 제품은 자극적이니 장기적으로 쓰지 말고 일시적으로 쓰세요."
"오늘은 비교적 온도가 높고 국지적으로 비가 오겠으니 가급적 우산을 챙기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게 우리말의 현 실정이다. 이것을 자연스럽게 바꿀 수 없을까?
"이 제품은 자극을 주니 오래 쓰지 말고 잠깐씩만 쓰세요."
"오늘은 온도가 높은 편이고 곳에 따라 비가 오겠으니 될 수 있으면 우산을 챙기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우리말 사용이 기본이되, 운율감 리듬감 그리고 느낌적 느낌을 위하여 가끔은 일본 말투를 사용하기도 할 것 같다. 3장을 읽다 보면 정말 일본말이 뿌리깊게 우리말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조금씩 바꾸어 나가면 좋으리라.


책을 읽으며 1장과 2장은 모든 사례를 에버노트에 기록하고 핵심을 간추렸다. 그런데 3장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일본말이 많이 체화되어 순화말로 바꾸면 원 표현이 가진 맛이 도무지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3장의 일본말과 순화말에 대해서는 조금 더 나은 방법이 있는지 연구를 해보아야겠다.

예시를 보아도 알 수 있겠지만 이 책은 바른 표현으로 우리말을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 그리고 글쓰기를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외없는 필독서라 할 수 있다. 우리말 장인의 장인 정신이 녹아든 책이다. 예시로 든 사례들 모두 억지스럽지 않았으며, 그 처방 역시 대부분 고개가 끄덕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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